구조론을 알면 구조를 볼수 있소. 문제라는 것은 만남이 문제요. 모든 변화가 이질적인 것의 충돌로 야기 되오. 선악을 떠나서 득실을 떠나서 일단 문제요,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니 문제요. 하여간 남자끼리 만나는건 만남이 아니오. 아군끼리 만나는건 만남이 아니오. 별일 없으니 문제 없으니 만남이 아니오.
만남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충돌인데, 구조론적으로 힘의 충돌과 질의 충돌을 구분해야하오. 뉴튼 역학이 힘의 충돌이면 질의 충돌이란 핵융합이나, 핵분열 정도 되오. 파동이 입자를 만나서 열이 나는게 밀도가 있는 만남이고, 입자끼리의 충돌, 파동끼리의 상쇄등은 힘의 교섭에 가깝소.
사소한 것은 해결 않는다오.
모든 문제는 관계맺기에서 출발하오.
1. 나의 문제 > 2.개인과 개인의 문제 > 3. 개인 과 조직의 문제 > 4. 조직과 조직의 문제 > 5. 인류와 자연의 문제
1의 문제는 2로 커버하고, 2의 문제는 3으로 커버하고, 3의 문제는 4로 커버하고, 4의 문제는 5로 커버하는 것이오.
이건 예전과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것인데...
예를 들어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하는 카페활동- 카페조직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소.
카페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입하는 곳이오.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채워진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오.
사람이 모이다보니 정보가 모이오. 아이디어가 모이는 것과 같다고 보오.
그래서 모이는 큰 주제가 카페 이름속에 들어 있는 것일 것이오.
카페에 가입하면 - 많은 사람이 모이면 전체가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하는 것과 같소.
그런데 종종 그 합의를 깨는 사례들이 있소.
그럴 땐 카페가 갖는 기본 취지를 이해가 될 때까지 늘어 놓을 수밖에 없게되오. 특별히 그 사람이 뭔가 그곳에 해가 될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설득하는 것이오. 그 과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며 카페는 권을 획득하게 되오.
반면에 누군가 반론을 제시하는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해 옳다거나 힘을 얻게되면 그 반론 역시 카페의 합의에 추가되는 것이오.
그렇게 흐르면서 자꾸자꾸 변이를 해가는 것이오. 그렇다고 그 카페가 추구하는 기본까지 훼손 시키지는 않소. 그 기본이 훼손되는 방향은 선택을 하지 않는 방법이오.
그래서 카페의 대부분의 일은 운영진들에게 귀속되오.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쳐내는 것이 운영진의 몫이라서- 사람들은 자기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쳐내는 것이(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더 많다고 생각하기에 상심을 하게 되는 경우,무관심해져 버리는 경우들도 많소.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모두 만족하오. 개별적으로 보면 불평한 것이 많으나 전체적으로는 평등해졌소. 그러나 개별적인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결을 하기 위해 또한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오.
이러다보면 다시 대부분의 일이 카페지기에게 귀속되오. 처음부터~최종 수렴과 판단의 몫까지 남는다는 것이오. 그렇게되니 좋을 때는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 모든 화살이 카페지기로 쏠리게 되오. 왜냐, 회원 개인들은 카페지기를 공격하는 것이 가장 자기를 보호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고, 가장 의견을 빨리 전달하는 길이고, 의사 결정이 빨라지기 때문이오. 급할수록 바로 치고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오.
그런데 이 방법은 극단의 방법이오. 좋거나 나쁘거나 .... 여기서 밸런스가 중요해진다고 생각되오. 여기서 균형이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리거나 와해되거나 카페지기 혼자 독박 쓰거나이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가 여기서 중요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아닌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야 하고 문제인 것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하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의 일이기에 대체로 문제로 보면 충돌이 생기기에 문제로 인식하기 보다는 같이 가는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고 생각되오.(이것은 일반적인 경우에도 그럴 것이오.우리가 사는 곳에서 모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허구한날 싸움이 멈추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권한은 가장 크게 갖고 있으나 가장 실제적인 것은 운영진회의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거기에 떠 맡기거나, 다시 전체 회원들에게 떠 맡기는 것이고, 그리고 그러한 의견 재수렴으로 다시 판단하는 것이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오.
문제를 문제라고 받아들여 버리면 반드시 해결하려는 의지(충돌)가 생기므로 문제라고 인식을 될 수 있으면 안하는 방식으로 해결을 보려다보니, 이러한 것이 계속 누적되어져 많은 개인(운영진,혹은 카페지기)의 신경을 혹사하고 스트레스를 받게하는 상황이 발생하오.
결국 이 방식은 일반 회원을 희생하는 방식이 아닌 구심점을 희생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되오.
그래서 운영진 개인들을 희생하게 하고 카페지기를 희생시키며 전체를 통제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며 전체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생각되오.
그러나 이것은 운영진을 할 사람들은 계속 충당해야 하고,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조달이 되어야 하는 방식이오.
잠재적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고 언제든지 대체가 되어야 하는 방식이라고 보오.
그래서 전체적으로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자신의 경험치와 이해도와 관계는 확장되지만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전제도 포함되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스타일이 다르므로 조금씩 방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부작용도 나타나고..)
전체적으로는 좋아지는데 운영진들은 고독하고 불행(?)한 마음을 갖게되고,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기에 상태가 나빠지는 방식이오. 그러다보니 운영진 하기전.후가 달라지오. 성격이 조금 까칠해진다든가.뭔가 참고 사는 사람들, 그래서 조금씩은 뭔가 힘겨워하고 우울해 보이는 것들.
그래서 이러한 방식들은 카페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문제로 보지 않는 방식이지만, 개인에게는 지속적으로 문제가 쌓이게된다고 보오.
이것이 가장 내게 큰 관심거리였소.왜 그런걸까. 왜 전체적으로 다 좋아지는데 왜 아닌 것이 발생하게 될까..? 같이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무엇을 희생한 것일까...? 그런 희생이 참다운 것인 것일까...? 참 많이 답답했었소. 아마도 일반 회원들에게 문제를 전가하거나 책임전가를 한다면 카페가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운영진들과 카페지기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흘렀던 것이 아닐까 하오.(겉은로는 조명을 받지만, 본질적으로 희생이었다는 것이오) 이것은 본능에 가까운 판단이었다고 생각되오.
그런데 이러한 원리와 구조가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오. 누군가를 희생하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며 자신이 희생하고자 한 것도 아닌데 방향은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 고통이었소. 무엇인가를 성장시키는 방식은 생각하지만, 개인의 희생이 발생하는 것에는 왜 그러한지 이해를 하지 못했소. 전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반 회원을 희생시킬 순 없기에, 운영진과 카페지기를 망가뜨리는 방법은 필연적이었던 것이오.
이제는 개인이 희생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흘러야 한다는 것이 더 추가된 셈이오.
지금 한 얘기가 구조론적으로 제대로 푼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어찌되었든 뭔가 이해되거나 알고나면 고통은 해소되오.
가장 큰 고통이나 충돌은 자신이 문제인식을 하지 못하다가 문제를 만나게 된 것이오. 진짜 풀어야 할 문제들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오.
어찌보면 우리는 진보하는 큰틀에서 다시 진보와 보수로 경계를 나누고 있지만 전체 큰 틀에서 보자면 인간은 모두 진보의 방향을 가고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오.
구조론하고 특별히 관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카페 운영에 관한 문제제기는 구조론으로 풀어볼 만 하오. 나도 한때 2년 정도 음악회를 운영하면서 같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름의 해법이 있었소. 카페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을 한큐에 해결하려면, 운영자금을 모아서 소정의 금액을 운영진한테 풀면 된다오.
여러가지 말이 많지만, 본질은 운영진의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운영진 개인의 희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고, 이럴땐 되려 구성원으로부터 운영자금을 모아서 일정부분 운영진에게 피드백하는 것이 약이라오. 에너지를 유입시키는 문제.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가 자율야구를 해도 돌아가는 원리와 같소. 연봉을 많이 주니까... 왜 연봉을 많이주냐고? 시장의 크기가 크니까...
그런 생각으로 해법을 생각 안해본 것은 아니오. 그러나 원론적으로 그것은 찬성은 이끌어 내기가 어려웠소.
왜냐하면 비상업체제를 선언(이것은 독단이 아닌 흘러가는 방향을 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보오)했으므로... 선언한 말에 갇혀 버린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 때문에 성장한 것도 사실이라고 보오.
금전이 필요하지 않는 곳은 없으나 금전과 상관없이 마음을 내는 사람들도 있소.
그래서 그 보상을 자부심.자존감.소속감으로 보상을 했다고 보오. 일종에 명예라는 방식의 보상이고, 뭔가를 자신을 연습해보는 장으로서의 보상이오. 그러나 가치없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은 없으므로 가치를 상승 시키는 일이오. 가치를 높임으로서 자부심을 높여주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소.
그러다보니 그저 소속된 것에 만족하는 안주가 많아져, 혹은 개인이 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도 하므로...오히려 자신의 삶을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나, 상대적으로 자기역할에는 소홀해지기도 하오.
그러나 그것이 있기에 조금 자신이 힘들더라도 버티지만, 자신에게서 쌓이는 것(신경은 누군가 반드시 긁는다고 해서 신경을 쓰는 것만은 아니고 스스로 스여찌기에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오.)은 어쩔 수 없이 자신(개인)을 힘들게 하는 것이오.
그래서 그만두게 되는 것이고, 혹은 점점 그 역할이 둔해지거나 하지 않거나 하기에 늘 새롭게 교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기능이 제대로 안되기에 기능이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오. 그러나 그 교체도 원활하게 안될 때가 많소.
모든 카페의 문제는 그것이라고 생각하오.
아무래도 무엇이든 장단기 싸이클이 있으므로 한 싸이클이 마무리되어야 새로운 싸이클이 형성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보오.
구조론과는 관계가 없을지는 몰라도 사람이 모이는 곳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보오.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고 다시 방향을 잡아서 끌고가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결정을 해야하오.
뒤로 갈 수는 없고 앞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뒤로 퇴보하면 유지가 안되오.
그래서 계속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고, 새로운 에너지를 찾게되는 것이라고 보오.
이것은 카페뿐만 아니라 회사도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오.
모이는 것에서 본다면 늘 구심점이 문제요.
구심점이 너무 좋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는 어려워지게 되오.
구심점이 좋지 않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찾기는 쉬워지오.
그래서 늘 잘되고 나면 그 다음이 문제라서 그 다음을 어떻게 대비하느냐, 누수를 막을 수 있는가...지속적으로 에너지가 충당이 될 것인가가 관심거리라고 생각되어지오.
그리고 이것은 동렬님 글 보고 느낀건데...
때로는 사람은 자기 역할에서 폭주를 한다고 생각되오. 그러나 방향이 이미 정해져 버리면 그 폭주는 차단되어야 할 때가 있다고 보오.
왜냐면 그 폭주는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 때문이오.
그러다보면 그것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고 보오.
어찌보면 방향이 정해지면 비록 자신이 망가지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야 같이 사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않고 떠넘기기 방식으로 흐르다보면 결국 자기 살자고 자기 주변을 다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오. 그러면 결국 같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되오.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이미 망가지는 것이고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라 붙었다는 것인데 명예는 가지려하고 희생은 떠넘기기로 간다면 모순이 발생하오. 그것을 막으려 하다보면 갈등은 피할 수 없소. 그것마저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가려다보면 신경줄 끊어지는 것이라고 보오. 그리고 자기역할에 대해서 너무 과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소.
내부가 때로는 문제오. 사실 내부가 잘 돌아가면 외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때가 많소.
왜냐하면 상황보아가며 맞춰가면 되는 것도 많기 때문이오.
계속 첨가하게 되는데...역할을 맡았다면 그 역할에 충실까지는 아니라도 어느정도는 해주어야 한다고 보오.
자기 역할을 안하면 누군가 대신하게 되어 있소.그래야 돌아가니까... 그래야 서로의 직장이든 어디든 편해진다고 보오.
(직장 생활 많이 안해봤기에 남의 경험을 참고하기도 했소..^^;)
자기가 맡은 역할을 안한다면 누군가가 희생을 한다는 것이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자기 역할 하고 싶어하는데도 할 수가 없으므로 불만이 있는 것이고,
젊은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가 없으니 그들은 눈치를 보며 사는 것이고, 그 가족들이 힘든 것이오.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역할을 잘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지오. 물론 역할극에서 벗어나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소. 그러나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정치에서 혹은 그 어디라도 역할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여지오.
단, 그 역할이 자신 혹은 개인을 짓누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오. 그래서 환경이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역시나 양모님 글에는 글이 길어지오...ㅋㅋ...어쩌면 좋을까요...^^:()
뭐... 따로 말 할 필요도 없이... 그건 원래 그런거요. 인류는 진보하지 않으면 멸종하게 되어있소. 문제가 생기면, 더 큰 문제로 해결하고, 또 문제가 생기고, 또 해결하면서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오.
일단 양들을 한 곳에 모아두면 다시 각자 어디로든 가려는 성질이 있소. 사람도 마찬가지요. 누군가 지향점을 설정해줘야지 그곳을 향하여 가게 되는 것이오. 벌써 꽤 지났지만, 한때 카페에 대해서 나름 연구를 한 적이 있소. 우리나라의 카페는 세 종류가 있는데, 온라인 친목모임, 온라인 정보공유 모임, 오프라인 활동모임 이오.
개인적인 친분이나 혈연, 지연, 학연관계가 아니라면 친목모임은 99% 망하게 되오, 온라인 정보공유 모임도 특정 정보라는 컨텐츠가 있긴 하지만 지속적인 연구모임이 아닌이상 반짝 뜨고 천천히 사그라 들게 되오.(대부분 이런 조직은 특정 잇슈와 함께 몰렸다가, 잇슈가 사라지면 흩어지는 경향) 마지막으로 오프라인 활동모임이 그나마 시스템이 안정적이오.
오프라인 활동모임이 안정화 될 수 있는 것은 오프라인으로 주기적으로 뭔가 할만한 확실한 가치, 컨텐츠가 있기 때문이고, 그걸하려면 돈이 들기 때문이고(돈이 안들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것 같지만, 오히려 돈이 들기 때문에 시스템이 확고해지는 경향이 있소) 돈과 사람을 운영하려면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오.
말하자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시작점과 지향점을 설정해 주어야 하오. 진보하지 않으면 멸종하게 되오. 운영진이 하는 일은 양떼몰이를 하는 목동과 같소. 때로는 없는 신대륙도 만들어서라도 "저기 신대륙이 있다!" 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오. 그게 안되면 100% 망함. 호불호를 떠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안 일으켰으면, 바로 목이 날아갔을테고, 유럽이 다닥다닥 붙어서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유럽 전체가 멸망했을 것이오. 나무는 원래 자라나게 되어있소.
또 한가지 얘기하자면, 조직이 작으면 의사결정속도를 높여야 하고,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데, 무작정 의지만 가지고 민주주의를 하려고 들면 100% 망함. 민주주의를 지탱해주는 것은 돈이오. 돈이 흘러야 시스템이 견고해지고, 시스템이 견고해져야 민주주의도 할 수 있는게요. 거기에서 신뢰가 생기면 의사결정에 선순환이 이루어지게 되오.
조직이 어느 이상으로 확대되면 문제가 생기게 되오. 에너지가 먼저고, 그 다음이 밸런스요. 밸런스를 맞추려면 리더가 축을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가능하려면 권위가 있어야 하고, 권위가 있으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오. 가치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돈이 에너지요. 돈은 수치화 된 신용이기 때문. 아무한테나 마이크를 넘긴다고 다 민주주의는 아니오. 누구나 마이크 앞에서 말할 수 있지만, 마이크를 건네는 권한은 운영자한테 있어야 하오. (비상업주의로 한다면, 돈이 아닌 다른 가치(아이디어)가 측정되어 선순환 하는 것이 눈에 보여야 함. 거기에서 신뢰가 생김)
구조론연구소가 돌아가는 건 운영자가 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조론이라는 신대륙(아이디어)이 있기 때문이오. 김동렬옹이 머릿속에 구조론 보따리가 있어서, 매일 한웅큼씩 풀어내기 때문에 선순환 하고 있소. 말하자면 구조론 그 자체가 에너지요.
그 에너지를 보고 내가 느끼는 문제에 대해서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했소.
물론 꼭 안다고 한들 대수일 수는 없겠지만 시도해 본 것이오.
그리고 구조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란 것이오.
무엇인가 모순을 느끼지만,그 원인에 대해 알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오.
그러니 일단 속은 후련하오.
하지만 그러한 속성을 얼마나 관리하느냐, 혹은 자기 관리가 되느냐 혹은 얼마나 그 방향성에 대한 에너지를 투입하는가에 따라서 지속성은 달라지오.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할 수 있다는 것이오. 그것에 관심이 있소.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도 항상할 수 있는 그것 말이오.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그것이라고 생각되오.
물론 필요한 소요재가 무엇인가는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돈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활용하는 것일까? 이므로 그 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오. ()
* 구조론으로 수영하기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오기 - 부력을 발견하고 내 동작 안으로 데려오기 즉 띄우기
계 내부에서 밸런스를 조절하기 - 들숨과 날숨의 균형에 맞춰 물 차기
1.숨을 들이쉬고
2.물을 차서 물 속으로 가라앉고
3.숨을 참고 물에 몸을 맡기기
4.붕~~ 뜨는 느낌이 오면 자동으로 머리가 쑥 물 위로 올라감
5.숨 쉬고 자세정비 즉 다시 물을 찰 준비함
그리고 반복
물에서 숨을 유지하는 건, 곧 목숨을 지키는 것.
좀 보테면, 잔잔한 물인 경우 몸을 뒤집으면, 더 도움이 되오.
몸을 뒤집어 고개를 젖혀 뒷 머리부분을 잠그면 입과 코가 뜨오. 물에서 편히 쉴 수 있소.
돌을 매달고 있지 않는다면, 잠들지만 않는다면 잔잔한 물에선 굶어 죽을 지언정 물에 빠져 죽지 않소.
단, 여름엔 쉬파리가 코를 노리니 조심해야 하오.
저는 왜 배영이 아직 해결이 아니 될까요?ㅎㅎ
호흡에 문제가 있을까?
암튼 쉬파리 조심조심... ^^
우리 때는 방향과 순서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갈피를 잡았소.
우리가 인터넷 어느 공간에서든 댓글 놀이를 안하면 의미가 없어지오.
삶과 오락의 경계가 모호한 지금의 상황에서.... 일방적인 글 쓰기라면 의미가 없어지오.
그러면 혼자서 비공개 글쓰기를 하는게 났소.(물론 소통을 바라고 쓰는 글들이 아닌것도 있소. 그것은 별개로 칩시다.)
설사 댓글 놀이가 자신에게 별 의미가 없다 하여도 끼어들기 위해서는 삶으로 받아들여져야 하오, 거기에서 의미가 발생하오.
그러나 댓글 놀이를 하다보면 밑천이 없으면 금방 바닥이 나오. 들키고 싶지 않기에 혹은 그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안하는 것이오.
혹은 투명인간이 되거나, 자기를 숨기게 되거나...그렇다 할지라도 모든 개인은 보호되어야 하오. 그래서 익명성은 보장 되어야 하오. 그러나 반면에 모든 개인들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오.그것이 그래서 딜레마요.
어떤 식이든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때문에 안하는 것이오. 그러나 그 보호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밑천의 바닥을 보이면서 뛰어든다는데 의미가 있소.
그러나 밑천만 보이고 의미를 회득하지 못하면 그것은 무의미하오.시간을 낭비한 것이오.
거기서 사람은 상처를 받소. 개인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에...그러므로 댓글 놀이는 기본적으로 망가짐을 포함하고 있고 상처를 포함하고 있소.
그러나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을 내보인다는 것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하오.
존재가 자신을 내보이는 수단은 여러가지이나 지금의 상황에서 인터넷이나 댓글의 기능으로 의사 전달 수단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손실이라고 보오.
망가지면서 자신을 재건하는 것이고, 망가지면서 또 다른 많은 의미와 소통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보오.
어쨌든 끼어들면 자신의 포지션이 결정나오. 거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나 우리는 그것을 익혀가고 있소.
그것이 꼭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소. 포지션은 늘 바뀌기도 하오.
1. 말빨이 는다
2. 똑똑해진다
3. 멋진 친구들을 만난다(구조론 모임에서)
4. 신/진리/완전성과 맞장뜬다.
원래 공식은 머리 아퍼. 대입하고 뭐하고 그러는 순간부터 답답해지니까..
재미있게 놀게 된다~~~
저절로 그러하게 되어간다~~~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비방은 아니라는 생각.
* 구조론으로 한국어 가르치기
#외부의 힘을 끌어오기 -
나를 밖으로 밀어서 상대적으로 한국적 가치를 끌어 올리기,
한국에서 한국어 수업하기 보다 중국에서 한국어 수업 하는 것이 더 관심을 모음.
#계 내부에서 밸런스 조절하기 -
교실 안에서 선생과 학생 사이에 일어나는 정보 교환 과정,
(사람,사람) -> (선생>학생) -> (선생=학생) -> (선생<학생) -> (사람, 사람)
1) 중국어에 한국어 정보를 대칭시키고,
2) 한국어 정보를 엮을 수 있는 문법 사항을 전달,
3) 문법을 이용하여 한국어 정보를 스스로 구성, 증폭시킬수 있도록 기회 제공,
4) 증폭된 정보를 가다듬어 되먹여 줌
5) 테스트 확인
#수업의 진행
입력- 보고 듣고 따라하기
저장- 문법 설명과 이해
제어- 역할극 해보기
연산- 고치기
출력- 문제연습
저도 같은 구조론 행자로서
최근에 대입한 방법은,,,
직장내 배구동호회를 결성하여
외부 시합을 참석해야 할 때
감독으로서 몇가지 문제가 발생함
우선 팀 구성에는 밸런스가 중요함을 절감함
실력이 좋은 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격과 수비 밸런스, 고참과 신참 밸런스, 재능과 희생정신 밸런스 등의 조절이 더 중요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실력이 월등한 자원을 몇명 영입했을 때(에너지의 유입)
팀 전체의 실력이 급속히 향상됨
이것도 사례가 될런지는 모르겠음
하여튼 구조론 공부로 세상을 파악하는 시야가 급속히 확장되고 있음
다만 단점은 말이 많아진다는 것, 즉 잘난체가 심해짐^^
폭력적인 아이, 왕따아이, 지적장애 2급 아이, 완전 산만해서 약물치료 받는 아이 등등 우리반 애들이 참 다양한데...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한답시고 설득하고, 구슬리고 별짓을 다했다오.
구조론적 입장에서 보면 문제상황을 맞을 때 마다 제어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문제는 해결안되고 당연히 교사 목소리의 강도는 높아지고 애들은 더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다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은 아이를 둘러쌓고 있는 장(배경, 입력-문제아동에게 주된 자극을 주는 친구들과 부모)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소. 교사는 단지 수많은 자극원의 1인 일뿐, 영향력이 없었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한 것은 학부모와 주변 아동들에 대한 부탁이었소.
1달 동안만 문제를 가진 친구에게 관대하게 대하자. 너희가 참고 이해해줘라. 오히려 잘대해줘라.
문제아동은 핑계가 많았소. 누구 누구 때문에...
그런데, 부모가 어느 정도 바뀌고, 친구들의 태도가 바뀌니 핑계꺼리가 없어졌소.
남들이 변하는데 자신이 안변할 명분이 없었소.
자신을 방어하는데 소모했던 에너지는 다른 사람과의 상식적인 소통과 생활로 이어졌소.
에너지는 외부에서 오며, 일방향성이다. 밀도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듯, 문제 아이들도 그렇게 변해갔소.
문제아동이 바뀌니 주변아동들도 짜증나는 일들이 줄어들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선순환적 상승작용이 일어났소.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그렇게 문제아동이 된 원인은
정작 그 아이 자신이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 같은 학년 아이들이었단 말이오.
다들 문제 학생의 문제 원인을 아이 자신에게 돌리는 오류를 범하오.
문제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 주변의 자신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문제는 절반은 해결되었소.
구조론은 이처럼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주오. 고수 중에는 구조론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운으로 또는 직감으로 문제를 해결하나, 그것은 누구나 구조론적 사고를 어느 정도는 하기 때문이거나,
우연적으로 적용한 방법이 맞아 떨어져서 얻은 결과라오.
구조론 6년동안 접했는데 아직도 구조론과 생활이 따로 놓는 1인이 바로 여기 있소.,
그럼에도 구조론은 내 생활의 가장 큰 에너지원이며 일의 순서와 방향을 결정해주는 교범과 같다오.
교사로서 통제를 적게 해야 에너지를 효과적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론은 복잡해 보이는 상황을 일의 1사이클로 명쾌하게 보여주오.
문제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정작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 중요한 것으로 보이오.
문제를 보는 안목만 높아져도 힘이 훨씬 덜들고, 상황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오.
좀더 공부 좀하고나서 사례를 말씀드리겠소.
딱히 무엇이다라고 이야기하기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쟁문제에 구조론적인 사고를 대입시킬때가 많습니다.
1. 경쟁사가 사고하는 방향은 대략 비슷해서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때 구조론적인 사고를 대입시켜서 경쟁사가 예측할수있는 범위밖의 방향을 시도합니다.
2. 개인적인 인맥관리 등에서 좀더 냉철해질수있습니다. 벨런스, 심과 날개, 외부의 힘, 세력 등등을 대입.
3. 조직내부의 관계망 개선에 위와같은 요소를 대입시킵니다. 조직의 문제점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이 어딘지 파악하기 쉽습니다.
4. 목돈이 생겼을때 금리나 투자수익이 나는 방향으로 쌓아둘 것인가, 왕창써서 인심을 사둘 것인가 등 안해보던 생각을 해보는 것도 구조론 탓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