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863 vote 0 2019.04.19 (13:46:09)

      
    의미는 천하에 있다


    작용했는데 반작용이 없고, 불렀는데 응답이 없고, 일했는데 보수가 없고, 프로포즈 했는데 수락이 없고, 노래를 했는데 앵콜이 없고, 만남을 했는데 애프터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다. 의미가 없으면 허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야 하고, 자극을 했으면 반응이 있어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종결이 있어야 한다.


    척력은 인력으로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의 방향은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뀌어야 한다. 계가 지정되면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우리는 억지 의미부여하기 좋아한다. '오늘부터 1일' 하고 카운트를 하는가 하면 백일기념 이벤트를 뛰기도 하고 남사친이니 여사친이니 하며 복잡한 분류를 제시하기도 한다. 잼있나?


    구조론을 허무주의로 오해할 수 있다. 빛은 태양에 있다. 태양 하나로 지구 전체를 충분히 커버한다. 70억 인류를 감당해낸다. 달은 그다지 하는 게 없다. 달이 해 옆에서 거들며 조수 노릇이라도 하는 것은 아니다. 밤을 비추는 달빛도 태양빛이 달을 거쳐온 것이다. 의미는 태양에 있다. 근본에 있다. 빛은 비추는 거다.


    백일기념을 하고 생일기념을 하고 입학식과 졸업식을 하고 명절차례를 지내고 온갖 행사를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개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의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게 아니듯이 우리가 기념하는 자잘한 이벤트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우주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굳이 의미 없다고 묵살하여 면박줄 이유는 없다. 사람은 만나기 좋아하고 모이기 좋아한다. 핑계가 필요해서 기념일을 정한 것이며 정치인들은 그런 행사장에서 마이크 잡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다수가 원하면 한다. 모든 사람이 필자처럼 비뚤어진 성격이라면 행사와 이벤트는 사라지고 인류의 문명은 삭막해질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잘한 이벤트에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우주가 온통 의미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의미는 만남이며 연결이다. 회로를 구성하며 거기에 에너지가 흐른다. 우주가 온통 의미로 곧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론은 의미론이다. 구조는 얽힘이며 인간은 만나서 얽힌다. 부름과 응답으로 만난다.


    노래와 앵콜로 만나고, 프로포즈와 수락으로 만나고, 노동과 보수로 만난다. 우리는 초대받은 존재이며 만남의 존재이며 의미의 존재다. 의미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전구 하나하나에 있는 게 아니라 배터리에 있다는 말이다. 근원에 있다. 하나의 근원에 회로를 연결하여 의미를 빼내니 그것은 신의 완전성이다.


    구조론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의미주의다. 의미는 개별적으로 있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연결로 있다. 그러므로 백 살까지 산 사람이 오십 살까지 산 사람보다 더 의미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다이아몬드는 반짝이므로 의미있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 선 프리마돈나의 목에 걸려 많은 청중의 시선을 모으는 데 의미가 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의미 없다. 각자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 세상의 주인은 사건이다. 우리는 부분을 보지만 사건은 통짜로 있다. 전체로 있다. 모든 부분은 전체와 회로가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한다면 인류 전체의 생각이 당신의 마음에 비친 것이며 당신은 거기에 칼라를 더할 뿐이다.


    우리는 자질구레한 것에서 의미를 찾지만 태양을 한 번 바라보느니만 못하다. 우주 전체가 의미라는 게 더 좋은 소식이 아닐까? 백 살까지 살아봤자 의미없고, 행복을 누려봤자 의미없고, 잘 먹고 잘살아봤자 의미없고, 출세하고 성공해봤자 의미없고, 미인을 만나봤자 의미가 없다.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진리의 부름에 응답하고, 역사의 부름에 응답하고, 신의 부름에 응답하기다. 의미는 기념행사에 있는 게 아니라 부름과 응답에 있다. 손뼉이 마주치면 의미가 있다. 대칭이 호응하면 의미가 있다. 물질이라도 그렇다. 분자든 원자든 소립자든 어떤 둘의 만남으로 되어 있다. 혼자서는 존재를 성립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혼자는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며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사건이 시작되고 존재가 시작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기는 것이며 이긴다는 것은 만나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나지 않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승전결로 가는 사건에서 기의 포지션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전부다. 노무현처럼 세상을 한 번 타격하여 흔들어놓고 갈 수 있다. 그것이 전부다. 나를 앞세우면 안 된다. 내가 어떻게 해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내가 존재하기 전에 그것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미라는 커다란 악기가 있고 인간은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다.


    의미는 악기에 있지 소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소리는 그냥 사라진다. 그 악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그 의미라는 악기를 연주하여 다른 사람의 가슴에 소리를 전해야 한다. 세상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소식을. 그러므로 완전하다는 소식을.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4.19 (16:16:54)

"하나의 근원에 회로를 연결하여 의미를 빼내니 그것은 신의 완전성이다."

http://gujoron.com/xe/1081931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31627
공지 신라 금관의 비밀 image 7 김동렬 2024-06-12 21733
2682 쉽게 이해하기 김동렬 2018-09-24 3876
2681 구조론의 기원 김동렬 2018-09-24 3687
2680 타자성의 철학 1 김동렬 2018-09-25 4258
2679 사실에서 사건으로 김동렬 2018-09-26 3523
2678 위하여에서 의하여로 2 김동렬 2018-09-26 3968
2677 방향성의 이해 김동렬 2018-09-27 3431
2676 시스템의 이해 1 김동렬 2018-09-27 3515
2675 아는 것은 분류할 줄 아는 것이다 1 김동렬 2018-09-27 4274
2674 욕망을 이겨야 이긴다 2 김동렬 2018-09-28 4745
2673 직관적 사유의 훈련 image 6 김동렬 2018-10-01 4576
2672 왜 소수가 중요한가? image 3 김동렬 2018-10-02 4527
2671 철학이란 무엇인가? 1 김동렬 2018-10-04 4391
2670 철학하지 않으면 죽는다 1 김동렬 2018-10-05 4377
2669 철학은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2 김동렬 2018-10-10 3334
2668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2 김동렬 2018-10-10 4510
2667 구조론을 치는 것은 구조론뿐이다 3 김동렬 2018-10-11 3406
2666 안시성과 구조론 1 김동렬 2018-10-12 3639
2665 의리없는 자들은 쳐죽여야 1 김동렬 2018-10-14 4159
2664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3 김동렬 2018-10-15 4242
2663 율곡은 맞고 퇴계는 틀리다 1 김동렬 2018-10-16 3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