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이 흐른다. 내마음도 흐른다. 네 마음은 어떠냐?’ 이것이 언어의 원초적인 규칙이다. 모든 것은 패턴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에 이런 구조가 들어있다. 지하철 시 말고 제대로 쓴 시 말이다. 지하철 시가 시가 아닌 이유는 이런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네 마음은 어떠냐?’는 생략된다. 그것은 독자의 응답이라야 한다. 시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장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거다. 근데 뜬금없이 안 물어본 자기소개를 하면 안 되고 자연의 패턴을 보이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독자가 따라오게 해야 한다. 근데 학교에서 이걸 안 배운다는게 문제다. 패턴에 반응하는게 인간의 뇌다. 패턴Pattern은 족보가 있다. Pattern의 어원은 아버지를 뜻하는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다. 틀로 찍어낸 것이 패턴이다. 너와 나의 공통요소를 찾는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이것은 좋다 혹은 싫다로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나는 짜장이 좋다. 너는 싫으냐? 이런 식이다. 즉 패턴은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하는게 아니라 서로가 가족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는 공통점을 찾으려고 한다. 고향이 어디인지 묻고 동향출신이면 좋아한다. 혹은 취미를 물어보고 같은 취미를 가졌으면 좋아한다. 대화를 하려면 공통요소가 있어야 한다.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한국인은 이렇고 일본인은 저렇다 하고 차별을 드러내려고 하면 좋지 않다.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언어는 주어와 술어로 조직되고 전제와 진술로 조직된다. 그런데 반복된다. 바람이 분다고 하면 부는 것이 바람이므로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부는 것이 분다. 흐르는 것이 흐른다. 열개를 열고, 닫개를 닫고, 밀대를 밀고, 뽑기를 뽑는다. 전제와 진술도 같다. 진술은 전제를 보충하여 반복하고 술어는 주어를 보충하여 반복한다. 어떤 둘이 공유하는 토대에 의해서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반복됨을 보이는 것이 담론이다. 언어는 반복함으로써 패턴을 보인다. 즉 복제하는 것이다. 복제를 제시하고 한 번 더 복제할 것을 타인에게 제안한다. 좋은 영화를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들었다면 내가 느낀 것을 상대방에게 복제하라고 제안하는 것이 말걸기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족주의를 이기는 가족주의가 필요하다. 패턴이 있다는 것은 자궁이 있다는 거다. 패턴의 패턴, 자궁의 자궁을 계속 추구하면 근원에 이른다. 언어는 어떤 사실을 전달하는게 아니라 패턴을 복제하여 유대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 가족임을 보이는 방법으로 서로를 결속시키는 장치다. 사실을 추구하면 필연 차별주의로 간다. 쟤는 검고 쟤는 희다. 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다. 누구는 선하고 누구는 악하다. 누구는 진보고 누구는 보수다. 우리는 이런 것으로 언어를 구성하지만 실패다. 그런 차별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뭔가 늘어나면 좋지 않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진짜가 남는다. 철학은 언어학으로부터 시작되며 언어는 패턴이며 패턴은 자식에서 부모로 올라서는 것이다. 모든 것의 자궁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 자체다. 아기가 이거 뭐야? 저거 뭐야? 하고 묻는 것은 이름을 알고자 하는게 아니고 패턴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말이고 저것은 당나귀란다 하고 이름을 알려주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아기는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듣고자 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이면 당나귀는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아기는 사물들 속에서 어떤 대칭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숨은 질서를 포착하고자 하는 것이다. 패턴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POD 출판 신의 입장 .. 책 주문하기 POD출판이므로 링크된 사이트를 방문하여 직접 주문하셔야 합니다. |
인공지능 교과서에 들어가면 딱 어울릴 칼럼입니다.
철학을 빼고 인공지능을 논할 수 없는데,
현대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철학없이 기술을 논하거든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틀려먹었다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