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카제식 전투를 먼저 시작한 것은 미군이었다. 미드웨이 전투는 일본군에 의해 완벽하게 계획된 일본군이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미군이 일본군의 암호를 도청해도 일본군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지휘관은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여 질 수 없는 싸움을 설계한다. 대파된 요크타운을 급하게 수리하여 투입한 것은 일본군이 예상할 수 없는 변수다. 원칙을 중시하는 고지식한 미군이 그런 임기응변을 할 리가 없잖아. 예상이 가능한 범위에서 일본군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는 애초에 전쟁을 반대했다. 일본이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쟁은 이미 벌여졌고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한다면 선빵을 날려 시간을 벌고 독일군이 소련을 이기면 좋은 조건에 강화를 하면 된다. 그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했던 것이다. 시간은 생산력이 넉넉한 미군의 편이다. 일본은 단기결전할밖에. 일본은 있는 함대를 다 끌고 나와서 전력을 몽땅 쏟아부어야 한다. 미군은 한 번만 이기면 되는 전쟁이고 일본군은 한 번도 지면 안 되는 전쟁이다. 일본군의 교리는 몽땅 쏟아붓는 함대결전이었다. 그러나 전쟁 끝까지 함대결전은 해보지도 못했다. 몽땅 쏟아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몽땅 쏟아붓지 못한다. 도박을 해도 밑천이 넉넉해야 간 크게 초장부터 올인을 하는 법이다. 언젠가 올인을 할 생각이라면 내일 올인해도 되잖아. 왜 하필 오늘 올인이야? 이것이 구조론에서 말하는 닫힌계의 압박이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최선을 구하지 않고 차악을 추구하다가 그 차악이 모여서 최악이 되는 법칙이다. 몽땅 쏟아붓는게 최선인데 그것을 할 타이밍을 재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그냥 초장부터 올인하면 되는데 못한다. 미드웨이에서 야마모토는 있는 함대를 다 끌고 나왔다. 몽땅 쏟아붓겠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이겼다면 실제로 몽땅 쏟아부었을 것이다. 미군은 한 번만 이기면 된다. 한 번은 이겨야 전쟁국채가 팔리고 국채가 팔려야 예산을 지원받고 예산을 따야 전쟁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저 지긋지긋한 원숭이놈들과 전쟁을 계속할 필요가 있나? 그냥 떡 하나 주고 말자고. 이런 여론이 있었다. 일본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고 미국은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전쟁이다. 그러므로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무조건 미군이 이기는 싸움이다. 밑바닥 에너지 밸런스로 보면 무조건 미국이 이긴다. 구조론은 현장에서 눈을 떼고 밑바닥 에너지 하나만으로 판단하라는 거다. 현장의 득실은 상호작용 과정에서 용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을 살펴보면 미드웨이는 무조건 일본이 이기게 되어 있는 전투다, 왜냐하면 이기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일단 공격 측이 유리하다. 공격이 먹히는 지점을 골라서 때리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무조건 전투를 이겨야 하고 미군은 전쟁국채를 팔아야 한다. 애초에 전쟁의 목적이 다르다. 이겨야 하는 일본이 이기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졌을까? 인간에 대해 오판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군이 카미카제식으로 나올 줄 몰랐다. 미군 뇌격기는 어뢰스캔들로 잘못 만들어진 데다 잘못된 교리로 잘못된 공격을 반복했다. 한 발의 어뢰도 명중하지 않았고 뇌격기 조종사만 속절없이 죽어나갔다, 놀라운 것은 미군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엉터리 어뢰로 자살공격을 하루 종일 퍼붓는다. 편대도 갖추지 않고 도착하는 대로 각자 알아서 자살하는 초보 조종사들의 무식한 공격이 이어진다. 바보 같은 닥돌을 반복하니 일본군은 아무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다. 뇌격기는 수평으로 온다. 수평선만 감시하다가 제로센이 출격하면 된다. 그때 급강하 폭격기가 수직으로 내려꽂혔고 제로센은 수면에 있어서 대응하지 못했다. 새벽 3시에 시작된 전투가 7시간을 끌다가 5분 만에 결판났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미국은 운이 좋았다. 뇌격기가 탱커 역할로 어그로를 끌어줄 때 급강하 폭격기가 기습을 때린다. 이것이 누군가의 계획이었다면 그 설계자는 잔인한 자다. 사실은 함대 간 통신이 되지 않는 미군의 실수였다. 뇌격기가 코 앞에서 죽어가도 연락을 받지 못해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던 거다. 미군의 실수가 정교한 덫이 되는 바람에 운으로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절대 미국이 이기게 되어 있는 전쟁이다. 일본군은 한 번도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고지식해진다. 오히려 미군이 창의적인 전쟁을 하고 일본군이 고지식했다. 도박을 해도 밑천이 많아야 창의적인 도박을 하는 법이다. 오링이 걱정되면 창의할 수 없다. 심리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것이다. 닫힌계의 작동이다. 밑천이 달랑거리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차악의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필자가 논하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오해다. 일본은 미군은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월남전에서 베트콩에 질려서 손을 떼듯이 집요한 일본군에 질려서 손을 뗄거야.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군과 미군은 악착같이 덤비는 조선군에 질려서 포기하고 간 것이 맞다. 우리가 동학농민전쟁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언가?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창의적인 전쟁을 해야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는 역사의 맥락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역사에 그런 것이 있다. 아테네의 살라미스 전투 때부터 민중의 창의성이 전면에 등장했다. 창의적인 민중이 귀족 중심의 고지식한 군대를 이긴다. 그래서 찾아봤고 찾아봤더니 동학이 있었다. 발굴하자. 그런 거다. 광주싸움의 의미도 그런 것이다. 인간을 만만히 보는 자들의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역사적 맥락이 있는 것이다. 미군을 만만히 본 일본군의 오해다. 자살공격은 일본군만 할 수 있다는게 착각이다. 귀족들은 오해한다. 진중권은 오해한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모른다. 말 안 듣는 대중은 고지식한 교범과 원칙에 가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중동이 도덕몰이를 하는 이유도 민중을 가두는 심리적인 덫을 설계한 것이다. 일본은 왜 중일전쟁을 일으켰을까? 일본군이 총 한 방만 쏘면 중국군은 다 도망간다고 믿고 상해사변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도망가지를 않아서 전쟁이 10년을 넘게 끌었고 미국이 수출봉쇄로 함정을 파서 태평양전쟁에 끌어들였다. 제주 4.3항쟁도 같다. 북에서 온 그들은 제주도 사람을 몰랐다. 북에서 내려와 갈 곳도 없이 악에 받친 서북청년단이 얼마나 악질인지 보여주면 제주도민은 쫄아서 다 도망갈 거라고 생각하고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그런데 도망을 안 가더라. 저것들이 도망을 안 가? 쫄지 않아? 그럼 더 잔인하게 보여줘. 더 악마같이 학살을 해. 어린이와 여성을 마구마구 죽여. 그런데도 제주사람은 도망가지 않았다. 섬은 원래 도망갈 곳이 없다. 학살자들은 섬사람은 원래 어디로 안 간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오해다. 김일성도 인간을 오해했다. 서울만 점령하면 남한은 다 넘어가. 미국이 중국도 포기했는데 중국의 1/100에 불과한 남한을 포기 안 한다고? 그게 말이나 돼? 중국도 넘어간 판에 눈치가 있으면 남한 사람들이 인민군에 호응하여 들고 일어나겠지. 남한이 제 발로 넘어오면 국제사회가 북한의 정통성을 인정하겠지. 그게 착각이다. 그건 여유가 있을 때의 안이한 생각이고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은 다르다. 여론조사를 하면 전쟁 나면 다 내빼겠다고 대답하지만 실전이 벌어지면 인간은 원래 도망을 안 간다. 도망가는 경우는 지휘관이 없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그렇다. 625 때 미군은 충격받았다. 장개석 군대처럼 국군이 도망칠 줄 알았다. 그런데 도망을 안 친다. 국군을 믿어보겠어. 그런데 다 도망쳤다. 사창리와 현리에서 국군은 미친 듯이 도망쳤다. 저번에는 도망을 안 치더니 왜 도망쳤지? 리지웨이는 국군이 중국군을 너무 존경해서 도망친다고 망언을 했다. 왜 광주시민은 싸웠을까? 당연히 싸운다. 그 상황에서 안 싸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그들은 역사를 안 배워서 인간을 오해한다. 왜 싸우는가? 한 번만 이기면 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민은 한 번 이겨서 도청을 되찾았다. 그러면 된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광주시민은 할 일을 했다. 목표 달성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떤 존재인지만 밝히면 되는 싸움이다. 광주시민은 인간선언을 한 것이다. 미군은 한 번 이겨서 국채만 팔면 된다. 계속 가면 결국 이긴다. 민주주의는 끝까지 가니까. 인간과 비인간의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백 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공생하듯 짐승과 인간은 공생한다. 부단한 싸움걸기야말로 우리의 존재하는 이유다. 왜 사는가? 인간은 짐승과 싸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미국인은 알고 있었다. 한 번만 이기면 국채가 팔려. 국채가 팔리면 예산이 나와. 예산을 퍼부으면 미국이 이겨. 왜냐하면 돈이 많거든. 그 바다에서 몽땅 쏟아부은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다. 교훈이 필요하다. 광주시민은 몽땅 쏟아부어 전초전을 이겼다. 민주국채가 팔렸다. 민주주의는 영원한 전쟁이다.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의인들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게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가면 인간이 짐승을 이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누가 발포를 명령했느냐고? 그 상황에서 발포 안 하는게 이상하다. 총을 쥐어주면 쏘는게 인간이다. 계엄군은 총을 쏘고 싶어서 안달나 있었다. 월남에서 저지른 학살을 한국에서 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전두환은 그 사실을 알고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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