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전성시대다. 사이비에 대한 실망으로 무종교인 비율이 늘어났다. 국민 절반이 자신은 무종교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신론도 사이비다. 깊이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라 되는 대로 지껄이는게 무신론이다. 그들은 논쟁에 이겨먹을 생각을 갖고 있다. 모든 종교가 일단 거짓이므로 논쟁하면 무신론이 이긴다. 문제는 기술을 건다는 거다. 진지하지 않은 자세다. 신이라는 말에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을 이용한다면 교활한 것이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우리는 과학적 사고방식을 지키면서도 무신론의 허무주의 퇴행을 피해야 한다. 끝끝내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 세 가지에 의지해야 한다.
첫째, 나는 존재한다. 추가될 둘은 나무의 가지 끝으로 가면 연결은 끊어진다. 뿌리 쪽으로 가면 연결된다. 허무는 연결이 끊어진다는 말이다. 의미는 연결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연결이 끊어지는 이유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연결이 이어지는 이유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무신론은 의미를 부정하고 연결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다. 인생이 허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허무일 뿐 절대적 허무가 아니다. 허무하다면 허무하다고 말하는 것도 허무하다는게 허무의 딜레마다. 연결이 끊어지는 방향으로 가면서 길이 없다고 푸념한다. 길이 없는게 아니고 길이 없는 쪽으로 가는 사람의 자기소개다. 의미는 절대로 존재하고 허무는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의미는 연결이고 허무는 단절이다. 신은 연결의 중심이다. 신의 의미를 종교의 신으로 좁혀놓고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항상 의미를 좁게 해석한다. 사이비 종교의 특징은 성경의 에피소드를 좁게 해석하는 것이다. 포괄적인 의미로 말한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좁히는게 정명석의 사기 수법. 예수가 사랑하라고 했으니 얼른 정명석을 사랑하라고 속이는 것이 기술. 신을 수염난 할아버지로 치고 인간을 창조한 자로 의미를 좁히면 신은 없는게 맞다. 집단과의 연결을 지향하는 인간의 종교적 본성으로 신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신의 의미는 인간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결정할 때 근거가 되는 최종 보스 역할의 그 무엇이다. 그것은 있다. 우주가 존재한다는 게 그 증거다. 신을 믿기 어렵다고? 그럼 우주의 존재는 믿어지는가? 우주와 자연과 나의 존재는 믿어져서 믿는게 아니고 그냥 있으니까 있는 것이다. 사실 말도 안 되는 거다. 우주가 왜 있냐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확실히 있다는 거다. 물론 종교와 헷갈릴 수 있는 신 말고 다른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 맘대로 단어를 지어낼 수도 없잖아. 분명한 것은 그것은 있고, 나도 있고, 그사이에 변화가 있고, 우리는 그 변화에 부단히 대응해야 한다는 거. 라디오와 방송국은 연결이 끊어질 수 없다. 부단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는 말은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귀족은 귀족으로 태어나고 노예는 노예로 태어나는 식으로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다면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없고 신도 없는 거다. 구조론은 기능론이다. 기능이 있으면 존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