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을 봤다면 무언가를 본 것이다. 구조의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된다. 인간의 뇌는 자연의 패턴에 반응한다. 패턴을 닮은 꼴이다. 인간의 뇌는 닮은 것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쾌감을 느낀다. 흥분하고 집중한다. 인지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서 숨은 질서를 찾아 지식을 구성한다. 패턴이 뇌를 자극하고 뇌는 자극에 반응한다. 패턴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저장하는 것이 인식이다. 인간과 환경의 인지적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왼손과 오른손은 닮았다. 닮은 꼴 둘이 하나의 축에 꿰어지면 대칭이다. 대칭은 외부에 대해서는 하나의 개체로 행세한다. 원시인이 사냥한 토끼를 묶어서 운반하며 즐거워하듯이 뇌는 패턴을 카테고리로 묶으면서 즐거워한다. 인식은 패턴에서 카테고리를 추출하는 두뇌활동이다. 문제는 인간이 정적 인식에 능하고 동적 인식에 약한 점이다. 자연은 가운데를 꿰는데 인간은 외부의 상자에 담는다. 자연은 내부 밸런스로 묶는데 인간은 그냥 외부를 묶는다.
자연 - 움직이는 것의 내부를 관통하며 꿰어낸다. 묶으려면 움직임을 멈춰야 한다. 자연이 멈추면 죽는다. 인간이 죽은 것을 잘 묶는데 산 것을 묶지 못한다. 분해는 잘하는데 합치지 못한다. 서구 문명은 통째로 죽은 문명, 해체문명이다. 인간은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사고에 약하다. 자연은 움직이며 스스로 묶는다. 움직임에 의해 묶인다. 새가 이동할 때 그룹을 만든다. 동력을 조달하면 동력에 묶인다. 안전을 꾀하면 위험에 묶인다. 늑대 무리에 쫓기는 사슴은 직진만 계속한다.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이는 것이다. 인간이 움직이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운반을 돕는 매개에 묶인다. 움직이면 간섭되고 간섭에 묶인다. 움직이면 충돌하고 깨진다. 깨지지 않고 버티려면 이겨야 하며 그러려면 밸런스가 필요하다. 밸런스의 효율성에 묶인다. 인식은 패턴, 패턴은 대칭, 대칭은 움직임이다. 인식은 움직임을 묶어 저장한다. 자연이 스스로 묶는 것은 대칭의 코어이고 인간이 상자에 담아서 묶는 것은 카테고리다. 카테고리는 인간의 편의일 뿐 자연의 진실이 아니다. 인식은 묶음을 추적한다. 인간이 죽은 것을 잘 묶고 산 것을 못 묶으며, 멈춘 것을 잘 묶고 움직이는 것을 못 묶으며, 외부를 잘 묶고 내부를 못 묶는다. 이는 인식의 실패다. 구조론은 자연이 스스로 묶어내는 방법을 따라간다. 자연은 움직임을 묶고, 내부를 묶고, 산 것을 묶고, 효율성으로 묶고, 밸런스로 묶고 게임에 이겨서 묶는다. 진 것은 깨져서 가루가 되고 이긴 것은 모두 둥글게 묶여 있다. 양양해변의 몽돌은 이겨서 살아남은 묶음들이다. 인간은 죽은 외형을 묶을 뿐 살아있는 내부 에너지를 묶지 못한다. 죽은 외형은 상자에 담으면 되는데 살아있는 에너지는 내부 밸런스의 축을 꿰어내는게 쉽지 않다. 자연은 외부의 상자가 없으므로 에너지의 결로 묶는다. 묶지 않고 그냥 묶었다고 선언하면 원자다. 구조는 내부를 묶고 원자는 외부를 묶는다. 내부 에너지를 묶는 것이 진짜고 외부 형태를 묶은 것은 가짜다. 에너지는 내부압력과 외부간섭 사이에서 밸런스 조절로 묶어야 한다. 존재하는 것은 살아남은 것이고, 살아남은 것은 이긴 것이며, 이기는 것은 효율적인 것이며, 그것은 짝지어진 대칭 2가 축을 얻어 외부에 대해 1로 행세하는 것이다. 내부에 묶음을 갖춘 것이 구조다. 구조는 이기는 구조다. 움직이면 쪼개지고, 쪼개지면 압력이 발생하고, 압력이 발생하면 질서가 얻어지고, 그 질서가 축이다. 축은 쪼개져서 대칭된 둘의 간격을 조절한다. 닫힌계에 갇혀야 압력이 작동한다. 열린계는 간섭되고 상쇄되어 깨진다. 축을 움직여 구조를 작동시키는 것이 메커니즘, 메커니즘에 동력을 제공하여 완전체를 이룬 것이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메커니즘은 사람이 작동시킨다. 작동하는 도구의 의사결정하는 날이 구조다.
구조의 본질은 의사결정을 통한 모순의 해결이다. 움직여야 가능하다. 움직임은 방향전환이다. 우주는 방향전환으로 모두 설명된다. 방향전환은 내부를 잘게 쪼갠다. 쪼개는 자가 쪼개지는 자를 지배하는 것이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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