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36 vote 0 2023.02.21 (12:52:43)

    인류는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체계가 없다. 메커니즘이 없다. 분류가 안 되어 있다. 빌드업 과정이 없다. 인포메이션이 없다. 목차가 없다. 등장인물 소개가 없다. 중간부터 갑자기 난입한다. 뜬금없고 생뚱맞다. 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많은 것을 눈치로 배워야 한다. 그렇다. 이런 생각은 아스퍼거의 특징이다.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교과서를 신뢰할 수 없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둥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써놨다. 예컨대 이런 거다. 염소 두 마리를 끈으로 연결해 놓는다. 양쪽에서 풀을 주는데 염소는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한다. 끈이 짧아서 닿지 않는다. 실패한 염소들이 합의해서 이번에는 사이좋게 먹는다. 그런데 말이다. 당연히 힘센 염소가 이기지 않나? 교과서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협력의 중요성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초딩이라고 깔보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지 않다. 초딩 교과서라면 초딩이 납득하게 써놔야 한다. 애초에 풀을 조금 더 가까이에 주면 되잖아. 끈을 길게 하든가. 묶지 말든가. 염소가 서로 싸우지 않게 풀어주라고 가르치는게 더 도덕적이지 않나? 어쨌든 교과서의 그 페이지는 내 기억에 각인되었다.


    이걸로 우겨볼 생각은 없다. 어른들도 다 뜻이 있어서 이런 것을 교과서에 실었겠지. 애들 수준에 맞춰준 거겠지.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정부 당국의 잘못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는 점이다. 걸리기만 해봐라. 이런 심사가 되었다.


    중학생 형의 교과서는 달랐다. 뭔가 진지했다. 논리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딱 맘에 들었다.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다 하고 전제와 진술이 짝을 이루는 문장이다. 그래. 이거였어. 교과서는 이래야 교과서지. 문장이 짜임새가 있어야지. 과학 느낌이 나야지. 확실히 뭔가 있는 거야.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국어사전을 처음 펼쳐봤을 때는 흥분했다. 내가 찾던 것이 당연히 국어사전에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없었다. 체계가 없었다.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의 안내가 없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허탈함이라니.


    어렸을 때의 계획대로 시간이 나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 볼 참이다. 모든 어휘는 발생에 따라 계통이 있고 족보가 있고 어원이 있다. 학계의 정설은 자의성설로 되어 있다. 조상들이 생각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어휘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그럴 리가 있나? 과학을 똥구멍으로 배웠나? 생물이 진화한다면 물질도 진화하고 어휘도 진화한다. 마구잡이로 만든 어휘가 언중에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살아남은 어휘는 특별한 경쟁력이 있는 거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어휘가 살아남은 것이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뇌가 그렇게 반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뇌구조와 동조화되는 어휘가 살아남은 것이며 뇌구조는 자연의 구조를 복제한다.


    초딩의 염소 이야기가 대단한게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기억했다는 거다. 살아남은 어휘는 특별히 기억되고 전달되고 소통된 것이다. 의미를 실어 나르기에 성공했다. 의미의 운반에 적당한 구조다. 의미 메커니즘과 일치했다.


    인류가 여전히 쓸만한 인간형 로봇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로봇이 청소하고 인간은 명령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왜 이리 더딘가? 로봇은 한 발로 서야 한다. 한 발로 서고 한 발로 걷는 로봇이 진짜다. 두 발은 돕는다.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골반으로 걷는다.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걷는다. 발은 둘이지만 골반은 하나다.


    인간은 어떻게 물체를 드는가? 이걸 아는 사람이 없다. 그냥 든다고 생각하므로 초보 노동자는 공사장에서 허리가 나간다. 물체를 기울여서 무게중심을 빼앗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든다. 이미 공중에 들린 것을 더 높이 끌어올릴 뿐 지구와 결합된 것을 들 수 없다. 물체를 드는 것은 지구와 중력으로 연결된 것을 끊고 새로운 에너지 전달경로를 개설하는 복잡한 문제다.


    로봇으로 물체를 들어보자. 처음부터 강하게 힘을 주면 깨진다. 서서히 힘을 가하면 영천 할매돌 현상이 일어난다. 물체가 지구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혼다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가 계단에서 자빠지는 문제를 20년째 해결 못하고 결국 사업을 접은 데는 이유가 있다.


    새가 나는 원리다. 참새가 그물에 걸리는 이유는? 새는 점프를 해서 날아오르는데 새그물이 점프를 방해한다. 그냥 날개를 퍼덕여서 날려고 하면 영천 할매돌 현상이 방해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라이트 형제가 랭글러 박사를 이긴 이유다. 과학이 경험에 패배했다. 라이트 형제는 연을 많이 날려봤던 것이다. 


    새가 나는 정확한 메커니즘, 인간이 물체를 드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설명한 사람은 없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을 무시하고 체계를 우습게 아는 거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되었지만 계속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체를 들 때 팔로 든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척추로 들고 하체로 든다. 영천 할매돌 현상은 기도를 하면 자세가 꼿꼿해져서 팔힘만으로 들려고 하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척추로 들고 하체로 드는 것은 무의식이므로 자기 자신도 모른다. 게다가 동작이 경망스럽다. 새가 점프를 해서 날듯이 인간도 상체를 공중에 띄운다. 상체를 기울여서 구부정한 자세가 되면 할매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자세를 바르게 하면 지렛대의 원리가 역으로 작용해서 들리지 않는다.


    합기도 고수에게 손목을 잡히면 바로 제압된다. 합기도 기술은 팔이라는 지렛대를 역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손목이 제압되는 순간 지렛대가 거꾸로 작동한다. 영천 할매돌은 기도를 해서 손목이 제압되어 있다. 손목으로 돌을 슬쩍 밀어서 무게중심을 빼앗아야 하는데 그것은 불손한 동작이다.


    공사판에서 무거운 물체를 들 때는 팔을 물체에 고정시켜 하나로 만든 다음 하체로 든다. 미리 하체를 구부려놔야 하는데 영천 할매돌 입장에서는 괘씸한 동작이다. 똑바로 선 상태로는 물체를 들 수 없다. 의자에 똑바로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숙이지 않고 그대로 일어설 수 없다. 이미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더 높이 띄울 뿐이다. 


    무엇인가?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먼저 물체가 인간에게 작용해야 한다. 물체가 인간을 짓누르면 근육의 조건반사로 들어올린다. 물체가 100으로 누르면 인간도 백으로 맞선다. 영천 할매돌은 먼저 인간을 누르지 않으므로 인간이 들지 못한다.


    새가 나는 것도 같다. 새의 날개는 중력의 작용에 반작용하므로 중력이 먼저 새의 날개에 작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점프해야 한다. 인간은 선제공격을 할 수 없다. 처음 물체를 들 때는 힘을 어디에 언제 얼마나 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 인간의 몸을 S자로 만든다.

    2. 물체의 무게중심을 빼앗아 공중에 띄운다.

    3. 물체가 인간에게 작용하는 만큼 반작용으로 들어올린다. 


    물체를 드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우리는 이런 기본을 배우지 않았다. 우리가 걷고 뛰고 들고 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은 동물적인 반작용이다.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과 마주치면 힘을 쓰는 요령을 몰라서 다치게 된다.


    공사장에서 거푸집 해체작업을 할 때다. 나는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자리 잡았는데 다른 사람은 반대편에 가서 나보고 위험하니 그쪽으로 가지마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실상 사고는 그쪽에서 났다. 거푸집이 쓰러지는 시작점은 안전하고 종결점은 위험하다. 종결점에는 에너지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각목이 쓰리쿠션으로 부딪쳐서 대포알처럼 튕겨져 날아간다. 등잔 밑이 안전하다.


    무지의 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런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야구판의 종속이론이 어떻다거나 혹은 확률은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주장처럼 황당한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당하게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치판이 요지경인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실험한다. 규칙을 바꾸는 자가 주도권을 쥐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반대로 가는 정의당들 많다. 초딩 교과서부터 다시 써야 한다.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 인과율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 인과율 틀렸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수피아

2023.02.21 (16:40:35)

물체가 인긴을 짓누르면 근육의 조건반사로 들어올린다. -> 인간을 (오타입니다) // 라틴댄스 수업에서 "땅의 힘을 받아 몸통을 통과해서 상체를 뻗는다"고 배웠는데 이번 칼럼에서 '물체 들어올리는 힘'에 대해 잘 풀어주셔서 너무 신기하고 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3.02.21 (17:06:28)

감솨요. ^^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412 지식의 타락이 위기의 본질 김동렬 2023-07-25 2864
6411 외계인은 없다 김동렬 2023-07-25 2899
6410 인간의 한계 김동렬 2023-07-24 2866
6409 조중동의 윤석열 관리 김동렬 2023-07-23 2938
6408 유체의 자발성 김동렬 2023-07-23 2677
6407 차별과 증오의 야만인 정치 김동렬 2023-07-23 2767
6406 존재의 엔진 김동렬 2023-07-22 2709
6405 오은영 원리주의 리스크 김동렬 2023-07-21 3162
6404 이기는 원리 김동렬 2023-07-20 2821
6403 남성이 가슴에 집착하는 이유 김동렬 2023-07-19 3319
6402 낳음 김동렬 2023-07-18 3208
6401 현대차가 도요타를 제치는가? 김동렬 2023-07-18 3391
6400 윤석열의 점령군 정치 김동렬 2023-07-17 3170
6399 하나가 더 있다 김동렬 2023-07-17 2810
6398 충청도 죽이기 김동렬 2023-07-16 3092
6397 완전성의 세계관 김동렬 2023-07-15 2917
6396 교권붕괴가 학교폭력 원인이다 1 김동렬 2023-07-14 4158
6395 궁예와 견훤의 진실 김동렬 2023-07-14 3068
6394 마크 저커버그 승 일론 머스크 패 김동렬 2023-07-13 3236
6393 부름과 응답 김동렬 2023-07-13 3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