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614 vote 0 2022.03.15 (11:58:34)

    신은 의미다. 의미는 연결이다. 연결은 방향이다. 방향은 있거나 없다. 방향이 있으면 필연이고 방향이 없으면 우연이다. 방향은 갈라지거나 아니면 합쳐진다. 모이거나 아니면 흩어진다. 인생에 의미가 있고, 방향이 있고, 필연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서로는 동지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존재에 방향이 없으며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서로는 남이다. 연결이 없고 의미가 없으면 남이다. 남이면 말을 걸 수 없다. 의미를 부정하는 자와 대화하지 않는다. 대화해봤자 의미가 없다. 허무주의자와의 대화는 허무하다. 


    우리의 대화는 의미가 있다는 전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로, 방향이 있다는 전제로, 우연이 아니라는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망부석과의 대화가 된다. 허무주의자와, 의미가 없다는 자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자와 대화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의미로 쓴다. 의미를 긍정하는 것이 신이다. 연결을 긍정하고, 필연성을 긍정하고, 남이 아니라는 전제가 신이다. 우리 대화할 수 있는가? 신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 이 대화에 낄 수 있다. 


    대화를 거부하는 자와 대화할 수 없다. 신을 부정하는 자와 대화할 수 없다. 왕년에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이 많이 팔렸다. 웃프다. 그때 분위기가 그랬다. 단이니 환단고기니 하는 환빠 책도 많이 팔렸다. 라즈니쉬도 기세를 올렸고 유리 겔라에게도 많이 속았고.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거짓말을 원한다. 믿지 않는다. 믿는 척한다. 주변과 맞춰주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이다. 본능을 충족시키려고 대본에 맞게 연극한다. 인간의 본능적으로 대집단을 만든다.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이 필요하다. 그것이 신이다. 


    내 편이 필요하다. 내 편을 들어달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대가를 요구한다. 공짜로 내 편 들어줘.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신이라는 말은 그런 때 써먹는 말이다.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나도 네 편을 들어줄 테니 너도 내 편을 들어줘. 이 문장을 한 글자로 줄이면 신이다. 


    사람들이 쓰는 신이라는 말의 뜻이 그렇다. 서로 편들어주기. 위로해주기. 공감해주기. 네 잘못이 아냐 하고 말해주기. 나는 진짜 신을 이야기한다. 신은 수염 난 할아버지가 아니다. 범신론자들의 숭배 대상도 아니다. 신은 대표성이다. 암행어사는 임금을 대리한다. 


    어사 앞에서는 임금 앞에서처럼 행동해야 하는게 규칙이다. 인간이 신을 대표하는 성질이 신이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이 아니라 동이다. 멈추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사라진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신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때로 신을 대리한다. 그러나 당신은 신이 아니다. 어사는 임금이 아니다. 그러나 차이는 없다. 왜냐하면 임금도 임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도 신이 아니다. 임금은 집단의 필요에 의해 주어진 역할일 뿐이다. 


    신의 역할이 신이다. 인간이 항상 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역할이 주어지면 해야 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닐 도널드 월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 시리즈는 내용이 방대한데 알맹이는 없다. 25개의 핵심 메시지를 추려서 내놓았다.


    "What God Said"라는 제목이다. 번역이 개떡인지 원문이 개판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개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 비문이다. 그래도 토를 베풀어주자.


    1. 우리는 하나다. 모든 것이 하나다. 하나만 존재하고 모든 것은 하나의 부분이다. 이 말은 당신이 신성한 존재라는 뜻이다. 당신은 몸이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영혼도 아니다. 당신 전체를 구성하는 몸과 마음, 영혼의 고유한 결합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신성의 분신이고, 지상에서 신의 표현이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의사결정은 연결의 중심에서 일어난다. 존재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끊어지며 끊어진 것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사라지지 않고 어엿하게 존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연결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결되면 반응한다. 상호작용한다. 그 부분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으로 보면 전체와 부분의 차이는 없다.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 50 대 50으로 팽팽할 때는 하나가 전체를 결정한다. 그러한 대표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모든 것이 충분하다. 자원을 얻으려고 꼭 경쟁할 필요는 없고, 서로 싸울 필요는 더욱 없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이라고는 나눔이다.


    존재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부족하다. 경쟁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피를 흘려야 국가가 만들어진다. 싸워야 집단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그래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서로는 동지가 될 수 있다. 팽이는 돌아야 살고,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살고, 비행기는 날아야 살고, 물고기는 헤엄쳐야 산다. 부단한 전진이 존재다. 멈추면 죽는다. 나무는 자라거나 아니면 죽거나다. 동면상태로 멈추어 있을 수는 없다.


    3. 당신이 행동을 해야 할 것은 없다. 당신은 많은 행동을 할 것이지만, 행동하도록 요구되지는 않는다. 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명령하지 않는다.


    존재는 액션이다. 신도 멈추면 죽는다. 태풍이 멈추면 죽는다. 소용돌이가 돌기를 멈추면 죽는다. 행동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다. 집단은 방향성을 잃고 움직이지 못할 때 죽는다. 신은 액션을 요구한다. 악기는 소리를 토해내야 하고 그림은 칼라를 전시해야 한다. 


    4. 신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말한다. 문제는 신이 누구에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듣느냐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자는 듣고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자는 듣지 못한다. 활력이 있는 자가 듣고 활력이 없는 자는 듣지 못한다. 촉이 살아있는 자가 듣고 촉이 죽은 자는 드지 못한다. 예리한 자가 듣고 둔감한 자가 듣지 못한다.


    5. 삶의 세 가지 기본 원칙은 기능성, 적응성, 지속성이다.


    삶의 기본원칙은 활력이다. 매력이다. 에너지다. 기운이다. 움직이는 상태에서 주변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활력이다. 뭐가 잘못되는 것은 인간이 판단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항상 기분이 업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울증에 갇혀 있으면 좋지 않다.


    6. 옳고 그름 같은 것은 없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전제로 제구실을 하는 것과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은 당연히 있다. 했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미 갔던 길을 또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앞에 가는 것이 옳고 뒤에 따라가는 것은 그르다. 저울에 올려지는 것은 옳고 저울에 올릴 수 없는 것은 그르다. 멀쩡한 것은 저울에 올리고 썩은 것을 저울에 올리지 않는다.


    7. 인간적 의미에서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영적 의미에서는 이 세상에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 하지만 당신은 신성한 존재이기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는 당신에게 이롭다.


    게임은 승자와 패자가 있다. 승자는 다음 게임에 초대받고 패자는 초대받지 못한다. 패자는 다른 선수를 위한 도우미 노릇을 하게 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기본은 권력이다. 하나가 하면 다른 것도 하게 되는 것이 권력이다. 하는 것은 좋고 당하는 것은 좋지 않다.


    8.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서는 그 어느 누구도 부적절한 일을 하지 않는다.


    자체 동력이 없이 상대를 자극하여 되돌아오는 남의 힘을 역이용하려는 노자의 세계관은 잘못된 것이다. 남의 칼로 되치기 하는 자는 대화상대로 삼지 말아야 한다. 남을 이용하려는 자에게 이용당할 이유는 없다. 자신의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 남의 게임에 로얄티도 내지 않고 편승하는 것은 좋지 않다. 


    9. 지옥 같은 곳은 없으며, 영원한 천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심판도 없다. 만약 그런게 있다면 그것은 신의 부정하는 것이다. 지옥이 있다면 지옥이 신을 대신하므로 신은 지워진다. 천국이 있다면 천국이 신을 대신하므로 신은 지워진다. 내세, 천국, 지옥, 심판 따위를 믿는 자는 신을 믿지 않는 자다. 내세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는데 신을 믿을 이유가 뭐지? 신의 역할이 신이다. 내세, 천국, 지옥, 심판은 신의 역할인데 역할이 별도로 있다면 신은 없는 것이다.


    10. 죽음이란 없다. 당신이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다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경험할 수 없지만 남들은 죽음을 경험한다. 자신의 죽음은 없지만 타인의 죽음은 있다. 자기 팔 하나, 다리 하나가 잘려나가는 일은 무수히 있다.


    11.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도 없다. 단지 지금 여기만 있다.


    존재는 액션이다. 당연히 액션이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은 있다. 지금 여기는 없다. 지금 여기라는 말은 고양이가 박스 안에 숨듯이 구석에 숨으려는 비겁한 행동이다. 시공간이 정지한다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가 유행하는 이유다. 끔찍한 일을 당할 때는 이건 아마도 꿈일거야 하고 생각하면 3초간 편하다. 장난하냐?


    12.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사랑은 없다. 사랑의 부재에 따른 고통이 있다.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는데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반면 팔과 다리가 붙어있는데 따른 이로움은 없다. 사랑이 있는게 아니라, 연결의 이로움이 있는게 아니라, 연결의 부재의 부재가 있는 것이다. 상실은 있다. 사랑에서 멀어지면 매 순간 죽음을 느낀다. 연결은 기본 모드이므로 이득이 없고 단절은 커다란 고통이 있으며 그 단절의 극복이 사랑이다. 단절을 극복하는 과정에 이득이 있다. 사랑은 그곳에 있다.  


    13. 당신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는 창조의 세 가지 도구를 사용하는, 당신 자신의 현실의 창조자이다.


    존재는 액션이다. 인간이 액션을 멈추면 죽는다. 행위가 생각과 말을 끌고 간다. 그러나 행위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생각과 말로는 행위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다. 언어는 행위를 이길 수 없다. 오직 더 큰 행위로만 잘못된 행위로의 끌려감을 막을 수 있다. 큰 행위로 작은 행위를 이겨야 한다.


    14. 당신의 삶은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삶은 당신이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에 관한 것이고,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환경과 절반이 겹쳐져 있다. 인간은 환경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다. 액션이 나의 존재다. 행위가 존재다. 상호작용의 랠리가 끊어지면 죽는다.


    15. 당신의 삶의 목적은 당신의 진면목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비전(vision)을 가장 훌륭한 버전(version)으로 당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다.


    삶의 목적은 행위를 발견하고 행위의 결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것이다. 갔던 길을 두 번 가지 않는 것이 좋다.


    16. 당신이 무엇을 선언하는 순간 그와 다른 것들이 공간에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반의 법칙이고, 그 속에서 당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체험될 수 있도록 문맥의 장이 펼쳐진다.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게임은 둘이 하는 것이다. 혼자 껍죽대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파트너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도 역사도 문명도 진보도 진리도 인간의 파트너가 된다. 


    17. 절대적 진실 같은 것은 없다. 모든 진실은 주관적이다. 이러한 틀에서 볼 때 진실을 말하는 수준은 다섯 가지이다: 당신에 관한 당신의 진실을 당신에게 말하기; 다른 이에 관한 당신의 진실을 당신에게 말하기; 당신에 관한 당신의 진실을 다른 이에게 말하기; 다른 이에 관한 당신의 진실을 다른 이에게 말하기; 모든 이에 대한 당신의 진실을 모든 이에게 말하기.


    절대적 진실은 당연히 있다. 모든 진실은 객관적이다. 그것은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명쾌하다. 주관적 운운하는 사람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얼버무리려는 것이다. 상대성이 어떻고 주관성이 어떻고 하는 사람은 어떤 문제에 임하여 해결할 도구가 없을 때 상대와의 상대적인 관계 그 자체를 도구로 삼으려는 수작이다. 상대를 찔러서 지렛대를 만들려는 수작이다. 사람을 애먹이는 방법으로 주의를 끌려는 짓이다. 관종들의 행동이다. 


    18. 인간은 환상(illusion)의 정교한 세트 속에서 산다. 인간의 열 가지 환상은 다음과 같다: 필요가 있다; 실패가 있다; 분리가 있다; 부족이 있다; 요구가 있다; 심판이 있다; 처벌이 있다; 조건이 있다; 우월이 있다; 무지가 있다. 이 환상들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반드시 사용 방법을 익혀야 한다.


    정과 사, 진실과 거짓, 인간과 짐승, 군자와 소인배, 기관차와 객차, 자체 동력과 글라이더, 진보와 보수, 문명과 야만, 머리와 꼬리의 차이는 있다. 앞에 가는 자에게 권력이 있다. 뒤에 따라가는 자는 당한다. 세상은 근본 에너지다. 인간사회에서 그것은 권력이다. 자연에서는 관성력이다. 개인에게는 활력과 매력과 능력이다. 그것은 당연히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게임에 승리하고 연결을 유지하며 큰 흐름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19. 전인적 삶(Holistic Living)의 세 가지 핵심 개념은 정직, 자각, 책임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살면 당신 자신에 대해 화가 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권력이다. 움직이는 자동차는 관성력이 있고 움직이는 집단은 방향성이 있다. 권력의 통제가 중요하다. 권력을 타인에게 의존하면 비참하다. 권력을 자신이 가지면 폭주한다. 비탈길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권력을 조절하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권력의 속도조절을 익혀야 한다.


    20. 삶은 존재-행동-소유의 패러다임 속에서 영위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 받아들여서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가져야’ 하고, 그래서 자신이 바라던 상태가 되는 것으로 안다. 이 순서를 바꾸면 삶에서 깨달음을 체험하는 가장 빠른 길이 열린다.


    행동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행동하려면 소속되어야 한다. 이방인은 소속이 없으므로 행동할 수 없다. 무엇을 하든 거대한 벽에 반사되어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소속되는 방법으로 에너지의 반사를 피하고 전진할 수 있다. 아기는 가족에 소속되고 어른은 사회에 소속된다. 사회는 움직인다. 소속되면 행동하고 행동하면 존재한다. 자신의 소속처를 찾아내고 연결부위를 강화해야 한다. 긴밀한 연결상태를 유지하며 변화에 즉각 반응하게 만들어야 한다. 


    21. 자각에는 희망과 믿음 그리고 앎이라는 세 가지 수준이 있다. 세 번째 수준으로 살 때부터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이다.


    권력을 쥐었을 때, 핸들을 쥐었을 때, 되돌아오는 반응을 실시간으로 느낄 때 성숙한 단계다.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둔감한 자는 반응이 올 때까지 자극의 강도를 높인다. 그들이 미성숙한 자다. 상대의 반응을 떠보려고 괴롭힌다. 나쁜 짓을 한다.


    22. 위기와 폭력, 살인 그리고 전쟁을 만들어 내는 다섯 가지 신에 대한 오류가 있다. 첫째는 신이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 둘째는 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신이 얻는데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 셋째, 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당신이 주지 않아서 신이 당신을 신으로부터 분리시켰다는 생각. 넷째, 신은 아직도 그 부족한 무엇인가를 필요로 해서 분리된 위치에 있는 당신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 다섯째, 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신이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


    신과 나를 분리하는 즉 그것은 신이 아니라 빌어먹을 외계생물체다. 신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신은 인간 바깥의 그 무엇일 수 없다. 인간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의미는 연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3. 마찬가지로 위기와 폭력과 살인과 전쟁을 만드는 다섯 가지 삶에 대한 오류가 있다. 첫째, 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둘째,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 셋째, 그 충분하지 못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인간은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 넷째,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다섯째, 이러한 오류들에 의해 생겨난 심각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을 서로 죽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


    두 사람이 수렁에 빠졌는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빠져나올 수 있다면 어깨를 밟힌 한 사람은 죽는다. 그것이 전쟁이다.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그런 수렁에 빠졌기 때문이다. 수렁에서 탈출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오로지 생산력에서 조달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늘려가야 한다. 수렁을 이겨내야 한다. 인간은 행동해야 하는 존재이며 멈추면 죽는다. 전쟁은 여러 죽는 방식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본질은 의미의 부단한 연결이다. 흐름이 끊어지면 죽는다.


    24.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우리들이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우리들의 믿음에 의해 우리들이 테러를 당하고 있다.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 세상에 대한 우리들의 체험은 만약 우리들이 ‘평화 5단계’를 함께 받아들이면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심리는 물리를 이기지 못한다. 마음을 어떻게 하든 그것은 호수의 잔물결에 불과하다. 흐름을 타면 살고 흐름을 거역하면 죽는다. 인간이 괴로운 것은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지 마음이 어째서가 아니다. 파도를 읽고 파도를 타면 살고 파도에 치이면 죽는다. 큰 물결과 연결되면 살고 고립되면 죽는다. 


    25.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새로운 복음이 여기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의 길이 더 좋은 길은 아니고, 단지 또 하나의 길이다.”


    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점은 칭찬한다. 그러나 진지하지 않다. 대개 말장난에 불과하다. 분량 늘리는 기술 하나는 탁월하다. 번역이 엉망인지 원문이 엉터리인지 문장이 불성립인데도 비문을 읽어내는 자들은 굉장한 인내심이 있는 거다. 작가가 쓸만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972 자연과 권력 김동렬 2022-08-09 4177
5971 신은 누구인가? 3 김동렬 2022-08-08 4845
5970 구조론의 적 1 김동렬 2022-08-07 4553
5969 윤석열 죽음의 게임 김동렬 2022-08-07 4711
5968 이재명이 사는 법 2 김동렬 2022-08-06 4856
5967 이재명의 실책 1 김동렬 2022-08-06 4684
5966 조선일보 양상훈의 윤석열 심기관리 김동렬 2022-08-04 4965
5965 한국이 인류의 희망이다 1 김동렬 2022-08-03 4916
5964 힘을 이해하자 김동렬 2022-08-03 4032
5963 진중권 김종인 안철수 심상정 이준석 오적 김동렬 2022-08-03 4419
5962 제대로 하자. 대한민국 image 1 김동렬 2022-08-02 4615
5961 국뽕 걷어내고 한산의 실력은? 김동렬 2022-08-01 4545
5960 구조론에 중독되기 김동렬 2022-08-01 4499
5959 이기는 방법 김동렬 2022-07-31 4160
5958 계급배반 투표? 지식배반 종교는? image 김동렬 2022-07-31 4271
5957 국민이 잘못했다 1 김동렬 2022-07-30 4096
5956 이기는 힘 김동렬 2022-07-29 4792
5955 윤석열이 까이는 이유 김동렬 2022-07-27 4830
5954 구조와 권력 김동렬 2022-07-27 3644
5953 윤석열 폭탄이 터졌다 1 김동렬 2022-07-26 5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