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검찰이 언론대응을 하는 것을 보니까
어쩜 저렇게 빠르게 언론대응을 하나 봤더니
윤석렬이 2012, 3년 정도에 공보담당으로
검찰의 언론 대응 했었습니다.
윤석력은 언론은 상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바빠서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또 검찰에 소윤, 대윤은 뭔 이야기인지!!
어째든 윤석렬이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며
본인은 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고 하는데
윤석렬은 확실한 검찰주의자이며
상관인 검찰총장을 몰아낸 이력이 있습니다.
자녀문제를 일으킨 자유한국당 두의원의 뉴스는 이제 아예 나오지 않는다.
민주당이 공정한 언론보도를 얘기하면
언론은 언론탄압으로 화답하고
네티즌이 물의를 일으킨 국회의원의 경찰수사를 성토하면
경찰은 잠깐 하는 형식만 취한다.
경찰은 일하는 제스처만 취한다.
자유한국당이 언론보도에 법적대응 얘기를 하면
언론들은 스스로 자기의 입에
재갈을 물고 아예 기사를 내지 않는다.
이게 공정한 사회인가?
지금은 바뀐 것은 대통령 하나이고
탄핵당한 박근혜를 보좌한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언론은 그대로 이며
국회의원이면서 업무지를 이탈하며
광화문에서 그 저 여론전만 일삼고 있다.
국회의원이 여의도가 싫으면 뺏지를 반납하고 여의도를 떠나면 된다.
그것도 전율할 일이군요~
직접 접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접촉조차 못한다니
감상적으로는 없는 거나 다름 없다는~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과 함께 타보면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에너지(인간 포함)는 '의미'없는 공존을 불편해하며,
반드시 질서(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우주의 원리에 의하면,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공존 밸런스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것은 전에 말씀하셨던 제주도?에서 서로 다른 마을에 갈 수 없는
심리적 경계선과도 관련있는 개념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가도, 집단도, 개인도, 심지어 물질도 존재적 밸런스에 의해
각자의 거리를 지키는 딱 그만큼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존재는 에너지의 가능성만큼만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영역의 크기가 얼마인가는
상대방의 의사결정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선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이 맥락으로 보면 인간은 눈에 보이는 개인이 아니라
관계에 의해 분절인식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안철수를 안철수 개인으로 착각하기도 하죠.
마마보이는 독립적인 의사결정 단위가 아니므로
생물적 관점에서는 개인이지만
에너지 관점에서는 개인이 아닌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좋지는 않지만 흔히들 고슴도치를 비유하기도 하죠.
골디락스존이라는 것도 해석을 달리해야 하는게
단순히 지구는 운이 좋다라는 식이 아니라
그것이 전체 우주의 확률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라고 봅니다.
결국 인류가 존재하는 것은 외계인류와 딱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서로의 의사결정을 방해하지 않는 선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