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와 무언가의 결합은 사실 '무언가와 무언가와 뭔가와 뭔가'로부터 나뉘어진 양쪽 중 한 쪽을 뜻한다. 사건 이전은 불균일이라는 상태지만 우리는 이걸 사건의 첫단추로 쳐주진 않는다.
불균일이 대상끼리와 관측자끼리의 편으로 나뉠 때를 비로소 사건의 시작으로 친다. 대상과 관측자는 서로에 대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끼리끼리 '대' 끼리끼리이므로 질'대'칭이다.
대상끼리 결합하니 퉁쳐서 하나의 대상이며 관측자끼리 결합하니 또 퉁쳐서 하나의 관측자이다. 경계면인 축을 기준으로 각각 한 뭉탱이로 퉁쳐지니 입자대칭이다.
이때 양측은 서로를 가리켜 대상이라고 부름과 동시에 스스로를 관측자라고 부른다. 서로 가리키는 게 힘대칭이다. 가리킴으로서 서로의 정보가 전달되니 운동대칭이다.
위 모든 건 최종적으로 전달된 정보인 량으로부터 추론된다. 자연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측하는만큼 끊임없이 쪼개진다. 다만 쪼개진 양측은 쪼개짐으로서 쪼개지기 이전엔 하나였다는 단서를 얻는다.
우주의 본래상태는 동적상태입니다.
왜 동적 상태이냐? 그건 원래 그렇습니다.
정적 상태라면 그 정을 동으로 바꾸는 무언가의 필요합니다.
동이 아니면? 존재는 연출될 수 없지요.
존재는 시간적 존재이며 시간은 변화를 반영하고
변화는 동에 의해서 성립하므로 우주의 근본은 동입니다.
그럼 우리 눈에 보이는 정은 뭐냐?
그건 관측자와 나란한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동이고 동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충돌하고
여기서 결합과 분리가 판정됩니다.
결합하려면 그 조건 즉 계의 균일성 문제가 제기됩니다.
특정 조건에서만 결합한다는 거지요.
즉 질은 사건을 유발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합할 수 있는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그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외력이 작용하면
그 힘의 작용에 의해 결합이 일어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플러스가 아닙니다.
아직 사건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합한 다음 사건은 시작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관측되는 질은 대부분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수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남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시간차를 두고 관측되지만
이는 인간의 관측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자체적으로는 시간차가 없습니다.
작용의 결과가 대상에 입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실제 자연에서 의사결정은 결합즉입자입니다.
즉 결합하고 한참 후에 입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 그것이 바로 입자이며 입자의 독립 그것이 바로 힘이며 힘의 교섭 그것이 운동이며
운동의 변화 그것이 량입니다.
량은 침투한다는 표현도 오해될 수 있는데
사건이 종결되면 에너지가 빠져나와서
외부의 대상에 칼라의 형태로 입혀져야 관측이 됩니다.
온도계 눈금이 올라가야 우리는 량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온도계 눈금은 사건과 무관합니다.
사건이 종결되면 열이 발생하고 그 열이 온도계로 침투하면 우리가 그것을 보는 것이지요.
외력이 작용했을 때 계 내부의 균일에 의해 코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상태라고 하면
문장이 너무 길고 이를 짧게 표현한 말이 결합입니다.
이 말은 역으로 어떤 것이 결합되어 있다면 거기에 질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녀가 결합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질이 숨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지요.
왜냐하면 존재의 근본은 동이고 동은 움직이고 움직이면 이탈해야 하는데
이탈하지 않았다면 뭔가 있는 겁니다.
질은 정확히 말하면 사건의 시작점이 되는 코어를 발생시킬 수 있는 조건의 갖춤입니다.
나는 남녀에게 외력을 가했는지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남녀가 외력을 처리해서 배출한 자투리 량이 나에게 침투한다. 그 남자와 그 여자를 별개로 여기던 나는 그제서야 남녀라는 결합을 알아챈 관측자가 된다.
내가 늦게 알아챘다고 해서 남남이던 남녀가 그제서야 사랑을 한 건 아니다. 남녀는 그 이전부터 계속 결합 대기중이었다. 다만 내가 인식한 량으로부터 남녀관계를 추론하는데에 단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는 관측자인 나의 사정이다.
남이라는 동과 녀라는 동은 어째서인지 엮여있다. 그러나 나라는 동에 대해서는 둘이 짝짜꿍 코어를 형성하며 나를 배척해낸다. 나는 배척당한 사실을 이미 튕겨져나온 시점에서야 슬슬 추론해나가기 시작한다.
추론에 단계가 걸리는 즉 관측에 시간이 걸리는 건 내 사정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한 박자 뒤쳐지는 별 수 없는 관측자이기 때문이다. 사건에 멋모르게 외력으로서 가담했다가 자신이 가담한 사실을 나중에 내팽겨쳐지고 나서 알아챈다.
남녀가 팀먹고 나를 쳐냈다고 해서 둘이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외력에 대하여 살아남았다. 또한 튕겨져나간 내가 외부의 도움없이 그들에게 또다시 개입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동과 동이 이탈하지 않는다면 두 동은 서로에 대하여 나란한 것이며 이 나란함을 가르켜 균일이라고 한다.
숨은 전제의 단계이다.
나란한 동들은 외부의 나란하지 않은 동과의 충돌에 대하여 코어를 발생시킨다.
코어 동은 내부의 나란한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며 외부에 대해서 입자이다.
형성된 코어 동은 외부와 맞서니 힘이다.
코어 동 하나가 코어를 이루는 나란한 동들을 연동시킨다.
내부를 대표하는 코어 동과 외부의 동은 나란하지 않으니 서로에 대하여 정이 아니라 운동이다.
내부끼리는 여전히 균일하지만 내부와 외부는 충돌하여 분리가 판정되니 량이다.
답글 감사드립니다.
질문 한가지만 더 드리겠습니다.
외력이 내부에 작용할때 귀납적으로 보면 이미 정해진 상태로 보입니다.
내부의 관측자 입장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질단계의 의사결정이 존재한다면(사건은 의사결정의 구조적 전개이므로)
동과 동의 충돌에서 외력과 내부의 결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정해야하지 않을까요?
본의 아니게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오해 있을것 같아 추가합니다.
질단계의 의사결정으로 내부가 외력으로,외력이 내부로 바뀔수 있지않나 하는거죠.
공이 벽을 치면,튀어나오는 사건과,벽이 무너지는 사건은 다르니까요.
저 역시도 오랜동안 그 부분에 난맥상을 겪어오고 있어 부쩍 모형과 글로서 표현을 시도중입니다.
동렬님께서 달아주신 답변을 참조하자면 남녀 간 사랑이란 질이 내가 외력을 가하기 시작했을 때 결정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 이전으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남녀 간의 친연이 제 삼자인 저와 그 남자 혹은 여자와의 친연보다 깊냐 아니냐에 따라 남녀의 결합이 성립될 것이며 그로부터 사건이 결정된다는 식이죠.
남자와 여자가 썸 수준의 수준이라면 약간 나란한 것이죠. 무엇에 비해서요? 그 남자와 저의 친함 혹은 그 여자와 저의 친함에 비해서 말이에요.
만약 여행시즌에 둘과 친구 사이인 제가 둘 중 남자에게만 놀러가자고 하는데 이 녀석이 승낙한다면? 남녀의 사랑이 저와의 친함보다 덜 긴밀했으므로 이 경우 두 남녀의 썸은 저와 친구 녀석의 관계에 대해서 외력으로 작용한 것이겠죠.
또한 사건은 저와 친구녀석과의 우정이라는 질에서부터 진행할 것이구요. 이 경우 우정이 사랑을 이긴 비극적인 사건이겠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결국 보다 긴밀하여, 보다 나란하여, 보다 연동이 잘 되어 , 보다 효율적이어서, 결국 다음 단계로 연결을 성사시켜 살아남은 관계로부터만 관측자인 우리는 해당 사건의 질을 추론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셋 중에서 상대적으로 상수 마냥 고정된 쪽이 소모되는 외력 측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남녀의 썸은 진도가 고정되고 수컷끼리의 우정은 여행으로 긴밀 포인트가 +1올라버리는 낭패를 피하려면?
친구인 저는 둘이 썸임계치일 때까지 적당히 기다려줬다가 추근대주는 거죠.
그러면 친구 녀석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제 제안이라는 외력에 대하여 여자와의 데이트 신청으로 처리해내며 '그러니까 니가 쏠로지. 니 덕에 내가 지금 할일이 뭔지 바짝 정신차렸다'라는 량으로 내뱉을 겁니다.
저와 친구의 구조값이 소모된 정도의 일부 만큼 친구와 여자의 구조값은 상승하구요.
친구와의 우정은 나중에 또다른 외력으로부터 조달되던 말던 그만이겠네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사건의 집합입니다.
육이오 전쟁이라면 4년 동안 일어난 무수한 전투의 집합입니다.
자연은 그런게 없고 번개가 치듯이 순식간에 결정됩니다.
질은 입자를 만들고 입자는 힘을 만들고 힘은 운동을 만들고 운동은 량을 만들며 이는 동시에 일어납니다.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는데 구조는 찰나에 하나만 결정하므로
내부가 외력으로 바뀐다는둥 하는 것은 없습니다.
공중에서 날아온 두 총알이 정면으로 충돌했다면 모든 의사결정은 충동순간에 일어납니다.
그 순간 두 에너지가 내부적으로 결합하고 독립하고 다시 외부에 대해 교섭하고 운동하고 침투합니다.
이건 단순히 에너지의 방향전환입니다.
빛이 거울에 반사되는 거지요.
빛을 철판에 쪼였는데 에너지가 불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면?
철판 속에서 빛이 결합 독립 다시 외부와 교섭 외부로 운동 외부에 침투한 거지요.
이런 모형을 머리 속에 그리면 됩니다.
결합이란 단어는 좀 난감하긴 한데..
나는 <균일>이란 용어가 더 와닿습니다.
건조주의보..나..홍수주의보..등속의 <경고등> 같은 개념이지요.
빵빵한 긴장..그,게 <질>이라고 봅니다.
우리 뒷동산에 불이 안날 수도 있고..우리 집이 떠내려가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런 부분적인 이야기는 빼고..전체 분위기가 어느 바운더리 안에 있느냐..
이게 질이라고 생각함.
동사로 이야기하면..
질은 결합한다가..아니라 질은 결합되어 있다..가 더 좋은 표현.
결합의 반대는 분리인데..
분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일시적이고 국부적인 상태.
건조주의보 내리면 불 납니다.
누가 불질렀지? 비행청소년? 이건 그 다음 이야기.
맘대로 뜯어고치면 안 됩니다.
그런 표현을 써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겁니다.
결합이라는 것은 미묘해서 이미 결합되어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간에 결합됩니다.
결합되어 있어도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결합된게 아닙니다.
결합된 것도 아니고 결합되지 않은 것도 아닌 그런 상태입니다.
균일은 결합을 만든 조건일 뿐 그냥 균일하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외력의 작용에 따라 혹은 우연히 내부가 결합되면서 즉 조건이 충족되면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컨대 잘 결합된 서로 죽고 못산다며 사랑하는 사이라도
호랑이가 나타난 순간 서로 손을 잡고 함게 대항해야 결합인 것입니다.
그때 남자가 잠들어 있었다면?
사건이란 복수의 존재가 어떤 이유로 하나처럼 행세하는 것이며
구조론은 내부적으로 그 하나를 도출하는 과정을 해명하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들어간 느낌. 디테일 하군요.
동렬님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다른분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다른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글 전체의 기조에 전격 동의하며,평소에 제 생각과 같은 글을 만나 반갑습니다.
첨언한다면,구조론은 의사결정학이라고 할만큼 의사결정 개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의사결정은 양자역학적 개념을 적용해 이해해야하며,
슈레됭거의 고양이처럼 삶과죽음이 공존하는 상태,제논의 괘변에서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 즉 2가 1로 통제되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질에 적용하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경계면이 의사결정에 해당하고
관측자와 대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2에 해당된다고 사료됩니다.
의사결정 측면에서 질을 생각하면,2의 불균일 측면이 드러나고
이는 연역적 방향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2(대칭이라 부를수도 있고)의 측면에서 보면,균일한 측면이 드러납니다(같은 질은 결합한다).
이는 귀납적 방향이라 생각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