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를 만들면 살고 대칭을 만들면 죽는다.
자전거를 연습하든 수영을 연습하든 비행기를 날리든 원리는 같다.
밧줄과 드럼통의 2가 대칭되면 죽고 둘이 하나의 계를 이루면 통제할 수 있다.
대칭되면 상대성이 작동하여 힘이 반대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수영을 배우든 자전거를 배우든 비행기를 날리든 항상 이 문제에 부딪힌다.
웨이터가 쟁반을 날라도 마찬가지인데 약간 흔들면서 리듬을 타야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수평을 잘 맞추면 쟁반과 와인잔 사이에서 대칭이 작동하여 망한다.
움직이면 1이 되어 계를 이루지만 수평을 맞추려면 오히려 움직여져서 계가 깨진다.
축을 이루는 대칭의 접점이 밖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인데 밖이면 죽고 안이면 산다.
하지 말라는 자기소개, 이분법, 흑백논리, 이원론 모두 같은 것이다.
동물이라면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을 줄 알기 때문에 빠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답을 알고 가야 하는 것이며 애초부터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밧줄을 잡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나 혹시나 빠지면 망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이러한 딜렘마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1) 밧줄을 잡으면 - 에너지 중심이 둘로 쪼개져서 반대쪽으로 움직이므로 통제불가로 망한다.
2) 밧줄을 잡지 않으면 - 에너지 중심이 통합되어 통제에 성공하지만 만의 하나 삐끗하면 옷 버리고 망한다.
정답은 - 물에 빠질 각오를 하고 밧줄을 잡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성공할 수는 절대로 없으며
진보가 좌절하는 이유는 무오류주의 망상에 빠져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보는 옳고 옳으므로 다 된다는 망상을 버리고 진보는 당연히 실험이고
실험은 원래 10개 시도해서 한 개 먹는다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진보의 정책이 다 옳은게 아니고 도전자의 관점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거다.
방향이 옳으면 확률을 믿고 가는 것이며 부분적으로 틀릴 수 있지만
계속 확률을 높여가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방향이 옳으면 확률을 믿고 가는 것이며 부분적으로 틀릴 수 있지만 계속 확률을 높여가다 보면 언젠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부 권력투쟁에서 누가 더 잘하느냐로 싸우는 게 아니라 누가 결점이 없는가로 전개되다보니 체질화되어서 그런가 아닌가 싶군요~
살려고 하면 살 수 없고, 죽으려고 하면 죽고, 통찰하면 통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