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29 vote 0 2021.07.09 (10:55:51)

나는 석사 두 개, 박사 한 개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줄리 못 하신 분도 이해할 수 있다. 46% 논문 표절 같은 거 이해할 수 있다. 사모펀드에 투자해서 8개월만에 겨우 83% 수익을 올리는 시추에이션도 이해할 수 있다. 주가조작도, 부인 집에 삼성이 전세권 설정한 것도, 윤우진 전 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덮어준 희대의 사건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시선집이나 시집을 사서 그걸 읽고 있다는 분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시(선)집은 읽기용이 아니다. 이걸 자꾸만 갈쳐줘야 하나? 시집은 사서 읽으라는 책이 아니다. 시집은 그냥 사는 책이다. 그냥 사놓고 잊어먹는 책이다. 그러다가 가끔 라면받침으로 꺼내놓고 제목을 상기하는 책이다. 누가 시 같은 거 물어보면 막 읽은 척 하면서 응, 나 그거 우리집 서가에 있어... 뭐 이럴 때 써먹는 책이다.
자꾸만 시집 사놓고 읽을 생각을 하는 건 시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차피 그래놓고 읽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읽어야 하는 게 부담된다고 사는 것조차 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피폐해지고 지폐만도 못해지는 것이다. 시집 절대 읽지 마시라!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이 또 계시다. 휴가 갈 때 누가 시집 같은 거 챙기면 왜 그런 짐을 들고 가냐고 잔소리하는 김주대 시인 같은 분들. 진짜 무식한 거다. 시집은 과시용이다. 어디 가서 낮잠 잘 때 핸드폰 베고 자는 사람과 시집 덮고 자는 사람은 품격이 다르다. 애인들이 막 꼬인다. 요즘 세상에 참 고아하고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시집은 쓸모가 많다.
그래서 시선집 사 놓고 그걸 읽느라 시간 끄는 답답한 분들 때문에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는 이제 겨우 5쇄를 찍고 하이파이브나 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집 읽을 시간 있으면 선물을 하셔야 한다. 시집은 원래 나는 안 읽고 남들한테 선물할 때나 써먹는 책이다. 세상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카O오톡 선물하기도 되고 요즘 슬프게 소문난 쿠O으로도 주문이 된다.
하여간, 나도 아직 다 못 읽은 시선집 다 읽었다고 자랑질하는 분들 진짜 이해가 안 된다. 5쇄가 뭔가, 5쇄가... 시바.


###


시는 읽는게 아니다.
섬기는 거다.
그런데 시가 똥을 싼다.
그게 시다.
꼬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3727 봄비 내리는 출석부 image 32 이산 2021-03-01 4981
3726 달려가는 출석부 image 17 김동렬 2012-04-26 4982
3725 말 달리는 출석부 image 33 김동렬 2014-06-17 4982
3724 토요일 출석부 image 19 김동렬 2013-11-30 4982
3723 긴뿔 출석부 image 31 솔숲길 2016-04-03 4982
3722 동그라미 출석부 image 40 이산 2019-10-14 4982
3721 하나가 된 출석부 image 11 ahmoo 2013-11-10 4983
3720 개냐소냐 출석부 image 22 이산 2020-07-09 4983
3719 진수성찬 출석부 image 22 이산 2020-08-04 4983
3718 말을 찾는 출석부 image 31 김동렬 2015-07-14 4984
3717 새하얀 출석부 image 48 김동렬 2016-01-11 4984
3716 정물화 출석부 image 42 김동렬 2017-08-07 4984
3715 우주로 출석부 image 43 솔숲길 2018-02-08 4984
3714 따땃하게 출석부 image 40 솔숲길 2018-12-29 4984
3713 빈대떡 출석부 image 36 김동렬 2019-10-13 4984
3712 청량한 출석부 image 28 이산 2020-10-11 4984
3711 조용한 휴식 출석부 image 27 이산 2024-03-20 4984
3710 몰랐지?놀랐지? image 28 이산 2015-11-05 4985
3709 아름다운 출석부 image 30 김동렬 2018-01-05 4985
3708 조용한 출석부 image 40 김동렬 2018-05-07 4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