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구조론을 모르는 이유는
언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결과측을 보고하는 언어는 있는데
원인측을 지시하는 언어는 없습니다.
원인측은 추론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며
구체적인 값이 없어 명명하기 어렵습니다.
태평양 섬의 부족민들은 작은 카누는 잘 보는데
앞바다를 지나가는 큰 범선은 보지 못합니다.
물어보면 봤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소실점을 보고도 모르듯이 못 보는 거지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모노리스를 보고 그것의 존재를 알아볼 유인원은 없습니다.
현대인이라도 특별히 교육받지 않으면 못 알아봅니다.
그것은 길고양이가 달려오는 자동차에 반응하지 않다가
로드킬을 당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자동차가 눈앞에서 멈추면 알아보게 되는데
개가 로드킬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개의 코앞에서 자동차가 급정거 하면 됩니다.
모노리스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영어에도 원래는 blue가 없었습니다.
blue는 바래다는 뜻인데 블라인드와 같은 말입니다.
한자도 회색 삽살개를 청삽사리라고 하듯이
바래다>푸르다>희미하다>회색이다>백색이다>흑백이다>흑색이다
이렇게 되어 블루가 검은색 곧 블랙이 되어버린 거지요.
흑인을 니거라고 하거나 멜랑꼴리 등에서 보듯이
검은색을 뜻하는 단어는 다수가 있습니다.
블랙은 바래어진 것>탈색된 것>색깔이 없는 것>검은 것으로 변합니다.
우리말 파랑도 바래다에서 온 말이며
그러므로 회색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바래다>우울하다는 뜻으로 되어 블루 썬데이는 우울한 날이 된 거지요.
빨강색 red는 쇠가 녹쓸에서 녹에서 나왔는데
옛날에는 녹을 붉은색 안료로 썼습니다.
white는 밀가루를 빻은 것입니다.
색깔의 이름은 원래 물질의 이름이라는 거지요.
하늘이 파랗다는건 현대인의 고정관념입니다.
하늘은 특정한 색깔이 아니고 날씨에 따라 변합니다.
하늘을 색으로 칠하면 구름도 그리고
해도 그리고 낯달도 그리고 그림자도 그려야 하고 졸라리 피곤하지요.
봉건시대는 그림을 사실주의 관점이 아니라
일종의 기호라고 여겼는데 기호는 쌍방간 약속이므로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대와 날씨까지 고려하면
약속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배경은 그리지 않는다는 거지요.
서양은 이게 인상주의에 와서 도입된 거고.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
배경을 안 그리다니 깜놀.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고.
이 짐승들을 어떻게 쳐죽여야 하나.
전두환과 그 패거리들을 뜯어 죽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