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는 바로 대통령에 나가는 것이
국회의원선거부터 나가거나
퇴직 후 3년이내에 대통령선거출마 금지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동연이 문재인정부가 박근혜탄핵 당하고 인수인계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라 살림을 맡으면서 시민간에 불평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TV 나와서 부동산을 잡겠다고 뒤로는 부동산부자 세금감세에
임대사업자에 세금면제로 불평등을 초래한 사람이 김동연입니다.
기재부도 당입니다. 감사원만이 당이 아니라.
이준석같이 백팩만 메고 다니면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김동연.
홍남기나 김동연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가계부채를 얘기하면서 전세금 대출조정은 하지 않는 기재부.
집값을 바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전세금 대출인데도 손보지 않는 기재부.
그러면서 뉴스에 나와서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기재부와 한국은행.
이 놈의 공무원들이 문재인을 만만하게 보네.
보통 이런 것은 처음에는 학자들이
관념적이고 공허한 정신분석학적 설명을 시도하다가
갈수록 물리적인 이유.. 해마의 성장, 소뇌의 압박, 뉴런의 단절로 바뀌게 됩니다.
아기 때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면 입양을 할 수가 없지요.
동물이건 사람이건 친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키우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유아기 때를 회상했다는 것은 학자들의 정신분석학적 설명과 같은 잘못된 접근법입니다.
기억은 어떤 단서가 주어지면 그냥 떠오르는 것입니다.
기억은 공감각적이기 때문에 그때의 느낌, 기분, 전율 이런 것이
찡하게 재현되면서 소리와 시각적 정보들이 떠오르는 것이지요.
어떤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 형태로 되어 있는 기억도 물론 있지만 많은 경우는
스틸사진에 소리와 느낌이 첨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도리도리 잼잼 곤지곤지 푸레질 같은 거지요.
단편적이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특별히 회상할 가치가 없는, 사건이 없기 때문에 맥락이 없는
그때의 느낌이 찡하게 전달되는
그런 단편적인 기억은 혹시 가짜기억이 아닌가 의심될 수 있지만
동생의 행동을 목격한 것을 나의 행위로 착각한다거나 하는 식의
그런데 스토리가 있는 기억도 많이 있기 때문에 진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리력과 언어력으로 설명한다. 즉, 유아기에는 논리적인 사고력과 언어적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기억 재생능력이 약하다는 설명이다. 어떤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흐름에 맞춰 순차적이면서 논리적으로 머릿속에 저장해야 하는데, 유아들은 감각적으로 그 순간을 받아들일 뿐이다. 더구나 어떤 상황과 사건의 개연성을 언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기억으로 남길 수 있지만, 유아들은 언어 기능이 없다.
검색해보면 나오는데 이런 것은 오류입니다.
다수의 기억은 그냥 스틸사진이며 감정이 첨부파일로 붙어 있습니다.
언어와 기억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자궁 속에서의 일도 기억난다는 사람도 있는데 자궁 속에서 말을 배웠을 리 없고.
물론 그 사람이 거짓말 한다고 우기면 되지만
말 못하던 아기 때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아기 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연구되어야 합니다.
검색해 보면 기억을 언어와 연결시키는 사람이 많은데 황당하다.
봤던 영화를 봤다는 사실을 까먹어 버리고 또 보다가 어 이거 지난 번에 봤잖아 하고 느낌이 떠오른다.
이때 의외로 많은 것을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언어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기시감이라는게 있다. 처음 간 장소인데 이미 한번 왔던 거 같은 느낌
기시감을 뒤집으면 무엇일까? 여러번 왔던 장소인데 여러번 왔던 편안한 느낌.
기억상실증이면 자기집에 가면서도 낯선 집이라서 조심스러울 테고
자기 아내에게도 낯선 사람처럼 접촉을 피할 것이고
더 심하면 달에 처음 도착한 암스트롱처럼 발을 내딛기도 어려울 것이다.
땅이 꺼질지도 모르잖아. 익숙하다는 것 자체가 기억이 있다는 거다.
어렸을 때 타던 자전거를 타지 않다가 10년 만에 탔는데 익숙하다는 편안한 느낌.
기억은 공감각적으로 저장되고 인출되는 것이며 익숙한 느낌 그 자체가 기억인 것이다.
영화를 보며 과거에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것과
여자친구의 찌찌를 보며 엄마의 찌찌를 먹던 느낌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로 보는데, 성장에 따라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면서 두뇌가 진화/발달한다고 봅니다.
변증법적으로 해석하면 맞죠.
기억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듯 한데,
기억이라는 말에는 완전한 사건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것은 예전 그 시점에서 완전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
물론 불완전이라는 표현도 적당하지는 않습니다.
뭐랄까 부품 혹은 부분이 되었다는 표현이 좋을듯.
야생으로 나온 송어를 다시 양식장으로 되돌리면 적응을 할까?
무리없이 적응한다고 봅니다.
다만 야생에 있던 송어에게 양식장의 기억을 물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 것.
왜냐하면 야생에 있는 바로 현재 상황에서 물어봤기 때문.
하지만 예전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즉 예전 양식장에 놓인 상황에서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적응하거나 혹은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런 맥락에서 남성이 여성을 때로 엄마로 여기는 게 말이 되는 게
젖꼭지를 보면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
남성은 이 상황이 되면 배우지 않아도 뭘 해야 할 지 알고 있습니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더군요.
상황의 논리에 의해 떠올릴 수는 없지만
예전의 기억물은 어디 간 게 아니기 때문에
다시 적응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ex-em.com/1321
링크의 그림처럼 인간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물리적인 형태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걸 발생생물학이라고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