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타의 작업에 대해
개인의 느낌을 근거로 주장하면 안 됩니다.
민망하다거나 역겹다거나 불쾌하다거나 하는건
주관적인 감상평에 불과한 것이며
하지마라는 자기소개가 되는 것이고
지식인이라면 객관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개인의 감상을 양념으로 곁들일 수도 있지만
그게 논리적 근거는 아니지요.
로타현상은 일본인들이 만든 가와이 문화로 볼 수 있는데
원조교제가 성행하는 일본인의 관점으로 보면
혹은 섹스를 찬양하는 마광수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평가가 나옵니다.
이건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닙니다.
마광수가 틀렸다거나 일본문화가 틀렸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정답은 맞대응을 하는 것이며 대응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어떻든 개인의 주관적 감정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크레용팝이라는 일베돌이 7살 꼬맹이 흉내로 뜬 적이 있지요.
다 큰 어른이 책가방 매고 귀요미 행동을 하는데
아빠 어디가에 나오는 유치원생 흉내를 내는 거.
하긴 서태지도 책가방 매고 어린애짓을 했지요.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일본의 문화가 먹힌 거죠.
반대로 선탠을 해서 노숙하고 강인한 티를 내는 문화도 있고
바보처럼 해서 다니는 오갸루 문화나 영국의 펑크문화나
어디를 가나 일정하게 먹히는 퇴행적 뒷골목 문화가 있습니다.
중고딩의 욕설문화나 변두리 양아치문화도 존재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게 공중파에 나와서 주류가 된다면 평론가들은 뭣하지?
평론가와 칼럼니스트가 있는 이유는
그런 문제에 방향성을 정해주기 위한 건데
마광수처럼 엉뚱한 방향을 가리켜도 문제고
그런 서브컬쳐 문화를 전면부정하는 억압적 권위주의도 문제고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며
괴짜나 이상한 사람들의 똘끼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면 곤란하고
평론가들이 중심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며
무조건 싸우려고 하지 말고 상호작용의 증대 방향으로 기동하는게 현명합니다.
그런 뒷골목 문화가 잘 하면 대박을 내기도 하니까요.
21세기라는 시대정신을 의식하고
70억 인류의 리더라는 관점을 가질 때 바른 해답이 얻어집니다.
결론은 이기는게 중요하다는 말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근거로 주장하면 지는 거다.
역사와 진보의 방향성을 근거로 세워야 지식인 느낌이 와준다.
왜? 기승전결의 기에 서므로 이기는 것이다.
이긴다는 것은 기에 서서 승전결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진보의 방향성으로 보면 로타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많은 논의들이 연동된다.
외설이냐 예술이냐 하는 예술가의 표현한계라거나
주류문화와 언더그라운드의 대립각이라거나
이런 부분들이 연동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평론가의 임무는 그런 부분을 짚어주는 것이다.
이것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면
이런식으로 해쳐먹는다는 것.
이렇게 해쳐먹다가 권력 잃고 쳐먹지를 못하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는가.
어렵다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경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해쳐먹지 못해서 어려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