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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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id: chow
read 2847 vote 0 2024.02.24 (17:50:57)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입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이 문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감독은 어슴프레 눈치를 깐듯.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선우(이병헌)가 쉐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시발꿈은 눈치없는 관객들의 몫이다. 적어도 감독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

분명하게도 거의 모든 인간은 힘을 이해하지 못 한다. 자기 눈에 비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권력을 알면서도 이해하지 못 한다. 이해는 권력이다. 선우는 보스를 이해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보스를 이해하지 못 했다. 왜냐하면 이해는 권력을 뒤따르기 때문이다. 선우는 자신의 행위가 항명이라는 것을 몰랐다.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여겼다. 

인간은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심은 개뿔. 진심이 아니라 물리환경이 세상을 움직인다. 진심은 선우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와 선우의 관계 사이에 있는 것이다. 권력은 옵션이나 허세가 아니라 보스와 선우의 존재 그 자체이다. 인간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별볼일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권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선우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보스도 자신이 왜 그러는 지 이해하지 못 한다. 모욕감 때문이 아니다. 서로 눈만 껌뻑이며 상대의 가슴에 총질을 해댄다. 우리 꽤 잘 맞았었잖아요? 자신들이 어떤 무대에 올라있는지 생각을 못한다. 전쟁터에서 서로에게 총질을 하다가 갑자기 어색해지는 것과 같다. 우리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내가 군대에 가서 가장 충격받았던 것은 권력의 존재였다. 교실에서 선생한테나 개겨봤지, 고참한테 개기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군대에서 처음 겪어보았다. 모든 인간들은 개똥만한 권력에 눈이 뒤집혀 으르렁대고 핥아대고 있었다. 아니 그게 뭐시 대단한 거라고 저렇게 난리들이람? 병장을 달고 모든 권력을 해체해버렸다. 내 손으로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 순간 내무반에 이상한 분위기가 감도는 걸 깨달은 건 후일담이다.

남의 밥그릇과 권력은 건드리는 게 아닌 걸 몰랐던 21살이었다. 그리고 그 밥그릇을 걷어차지 않고 공존하는 유일한 방법이 새로운 권력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걸 40대가 되어서야 알게되었다. 엉댕이로 밤송이를 까던가, 아니면 단검 들고 월북해서 김정은 목을 따오던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김정은 목을 따오는 것을 추천한다. 

[레벨:12]청풍녹수

2024.02.25 (10:39:55)

토대, 바탕, 공유점을 건드리려면,

더 강한 상위포지션으로 갈아타야 된다는 의미

[레벨:12]가랑비가 내리는 날엔

2024.02.26 (23:12:46)

02.jpg

모욕감이라는 것이 인간을 참 비참하고 만드는 것 같아요 ㅠㅠ;;

특히, 정직한 인간에게 모욕감 공격은 당황스럽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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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02.25 (11:52:19)

원래 영화라는 것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서로 상극인 것을 같은 공간에 던져두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킥킥거리며 지켜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레옹이라면 12살 소녀와 아저씨 킬러라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공존해서도 안 되는 둘을 같은 침대에 눕혀놓고 이게 말이 돼? 검열에 안 걸려? 말이 안 되잖아. 

얌마. 바보냐? 말이 안되니까 존나 말이 되잖아. 봐 평소에 말없기로 소문난 과묵한 네가 벌써 두 마디나 떠들게 만들었잖아. 이러면서 농담 따먹기 하는 건데

저번에 말한 올드보이 원작.. 박찬욱 영화는 말이 되니까 패스..

전혀 말이 안 되는.. 내가 노래 부를 때 네가 눈물을 흘렸어. 그게 복수의 이유다.

전혀 말이 안 되지만 현실에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납니다.

원작에서 유지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 혹은 깨달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깨닫기는 개뿔, 왕따의 설움을 실어 간절한 노래를 부르는 보통 꼬맹이였고

그러한 점을 최민식에게 들켰지요. 아 쪽팔려. 저새끼 죽여버리고 싶어.

보통은 죽여버리고 싶다에서 끝나는데 영화는 실제로 죽이는 거지요. 왜냐하면 영화니깐.

저 녀석 전학 와서 왕따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나 싶었지만 알고보니 한 많은 녀석이었어.

달콤한 인생에서 보스는 나에게도 순정이 있다며 곽철용이 대사를 치려고 하는데. 

올드보이 원작과 반대로 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아니라 16살 먹은 순진한 문학도라고

입만 열면 시가 튀어나와버려. 희수 앞에만 서면 갑자기 시인이 되어버려. 아 시 한 수 땡기고 싶네. 

이러는데 부하들이 알면 개쪽이야. 개망신이지. 근데 이병헌이 알아버렸네.

이 넘을 묻어버려. 암만. 당연히 묻어야지.

이병헌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나서 7년동안 신임을 받았다는데

이 정도로 눈치 없는 친구가 어떻게 보스의 총애를 받는 넘버 2 까지 올라가느냐고

전혀 말이 안되지만 관객은 다 이병헌이거든.

관객들은 다 눈치가 없어. 관객은 순정이 남아있는 곽철용이야.

그러므로 이병헌은 조폭 행동대장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관객 연기를 하는 거지.

관객은 달콤한 인생을 꿈꾸지만 쓰디쓴 현실을 맞이하는 거지.

타짜의 곽철용도 화란에게 순정을 보여주려 하지만 순정을 짓밟으면 마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

감독은 불교적인 인과응보를 이야기하려고 한듯

그렇지만 탐미주의, 미학의 관점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 거. 

본질은 이병헌은 폼을 잘 잡는다.

영화는 폼이다.

주윤발 폼과 이병헌 폼 중에 누가 더 낫냐?

진짜 폼은 죽기 전에 담배 한 가치 땡기는 거냐?

죽기 전에 여자한테 전화 한 통화 하고 뒈지는 거냐? 

가장 멋지게 죽는 것은 어떻게 뒈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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