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이지만서도, 타자성을 철저하게 훈련하면 집단과 나의 관계가 수면위로 드러나는것 같습니다. 모두가 타자인데 잘보일 이유도 없고, 성공할 이유도 없고, 내 억울함을 호소할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의 병폐는 집단을 갑으로 놓고, 나를 을로 보기 때문입니다. 집단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집단에서 인정받고, 집단안에서 높은 역할을 얻는게 아니라 집단의 질서 그 자체를 바꾸는데 관심을 둘 수 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한번쯤 고려해볼만 하나, 진정한 자유는 집단의 질서 안에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한 타자라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속도제한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속도제한을 없애면 이미 저앞에서 사고나서 길이 막혀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질서가 고도화 될때 극대화됩니다. 애인을 사귀면 둘의 규칙에 자유가 제한되나,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저 많은 교회의 십자가 만큼, 이혼한 가정만큼 우리의 사회의 공동체는 깨어져 있습니다. 약자에 대한 차별로 깨지고, 자본의 거대한 권력으로 인해 깨집니다. 공동체가 깨지는 만큼 문제는 누적되고 거기서 누구도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수 많은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고, 집단에 올바른 방법으로 기여함으로써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합리주의에 기반한 이념적 공동체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 공동체의 질서가 가지는 생산력으로 개개인에거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승의 방법입니다. 결론은 오프모임에 나가는 걸로 귀결 ^^;
오프에 못오시는 분은 그 대안적 실천방안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온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지요~
http://gujoron.com/xe/10004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