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를 영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없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성의있는 풀이는 없다.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라고 한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우리가 이런 뜻으로는 의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교적 해석일텐데 굳이 말하자면 오상에 해당하는 '인지의신예' 다섯이 모두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라 하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인들이 유독 의리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역주의를 조장할 때 이 말을 쓴다. 조선시대부터 그래왔다. 집권당인 노론이 의리의 당이었다. 조폭들도 의리를 강조한다. 파시스트들의 파쇼Fascio 곧 결속도 의리와 느낌이 닿아있다. 노론이든 조폭이든 파쇼든 결속력이 강하다. 의리는 결속력이라 하겠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은 결합한다고 했다. 질의 결합이 의리다. 왜 결합할까? 결합해야 에너지가 나오고 사건은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엉뚱한데 결합해서 탈이지 잘만 결합하면 막강해진다. 의리에서 권력이 나온다. 그래서 맹자는 의를 주장한 것이다. 의義는 옳음인데 왜 옳다고 할까? 옳지 않은 것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말일까? 에너지의 유도다. 의義라고 하지 않고 굳이 의리라고 하는 뜻은 의義라고 하면 옳다 곧 동사로 쓰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명사다. 술어가 아닌 주어, 진술이 아닌 전제의 의미여야 한다. 어떤 구체적인 사실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옳음이 사건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 옳은 걸까? 도덕적으로 옳다? 그건 의리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도덕이다. 이익이 나와주니 효율성이 옳다? 그건 의리가 아니라 실용이다. 어떤 사실이 옳은 것은 의리가 아니다. 팀플레이가 옳은 것이 의리다. 혼자서 무언가를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하지 옳다고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잘생겼으면 잘났다고 하지 옳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옳음은 여럿이 함께하는 일이 목적과 방향에 맞게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바로 거기서 사건이 시작되므로 의리는 진술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야 하고, 동사가 아니라 명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리가 사건의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의리는 천하의 대의여야 하며 곧 대의명분이어야 한다. 명분은 공익이다. 여러 사람이 뜻을 일으켜 함께 하는 일이 모두의 이익으로 귀결될 때 대의명분이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는 소승이 아니라 대승이다. 조폭의 의리가 소승적이라면 참된 의리는 대승적이다. 공무원이 편법으로 친구를 봐준다거나 하는건 대의가 아니다. 소승적이다. 조폭들도 의리라는 말을 쓴다. 왜? 결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털어봤자 현찰을 쥐면 서로 배신하다 줄줄이 경찰에 달려가는게 보통이다. 의리는 권력의 창출이다. 집단이 에너지를 조직할 때 에너지에 대한 통제권 곧 권력이 창출된다. 의리에서 권력이 나온다. 먼저 균일한 집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외력의 작용이 수용되기 때문이다. 불균일하면 에너지는 내부로 들어오지 않는다. 외력이 강하면 깨지고 외력이 약하면 에너지는 튕겨 나간다. 그러므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균일할 때 외력이 수용되며 외력이 내부로 들어와야 외력의 작용에 맞서 지도자가 등장하고 집단은 지도자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한다. 그래서 권력이 만들어진다. 권력은 위임된다. 지도자가 권력을 사유화하면 의리 없는 배신이 된다. 오인조 도둑이 은행을 털었다 치자. 다섯 명 중에 한 사람이 돈가방을 보관한다. 그런데 그자의 직업은 도둑이다. 도둑을 믿을 수 있나? 나머지 네 명은 언제 개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때 의리라는 말을 쓴다. 누구든 의사결정권을 가졌을 때는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 동료를 신경 써야 한다. CEO는 주주들을 신경 써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을 신경 써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의리는 권력의 자궁이며 집단이 권력을 조직하는 방법이다. 첫째 균일한 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리더를 선출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셋째 힘을 합쳐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들 조건이 충족될 때 에너지가 유도된다. 만약 차별이 있다면? 계가 균일하지 않다면? 같은 성별로, 비슷한 나이대로, 비슷한 지역출신이,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들로 집단을 조직하는 것은 그래야 균일해서 의리가 조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소해진다. 억지로 균일을 찾을수록 획일화된다. 포지션을 나눠가질 수 없다. 좋은 조직을 만들려면 다른 성별, 다른 인종,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의리는 균일해야 탄생하지만 겉보기로 쉽게 균일을 달성할수록 협량해진다. 그렇다면? 교양이 필요하다. 다른 성별, 다른 피부색, 다른 지역, 다른 학교 출신과 공존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학교교육이 있다. 그래도 하나는 일치해야 한다. 그것이 생각이다. 일베충들은 절대 안 된다. 엘리트는 피부색을 넘는다. 구글 본사에 근무하는 천재들이라면 성별이나 피부색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균일해야 진짜 균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교양되지 않은 야만인들이 손쉽게 균일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종과 국적과 성별과 학력으로 가르면 손쉽게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말이 잘 통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제일 먼저 천재가 걸러진다. 천재는 특이하기 때문이다. 천재는 아이디어에 올인하므로 대인관계에 약하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만 모으면 둔재들만 모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아이디어가 없으므로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려 한다. 훔치려면 접근해야 하고 접근하려면 비위를 맞춰줘야 한다. 맞춰주므로 잘 통한다. 누구와도 잘 통하는 사람이 손학규다. 아무것도 아닌 자인데 기레기들이 띄워주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워낙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춰주므로 모두가 손학규를 좋아한다. 그런 자가 쓰레기다. 의리는 같음이며 원래 같은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유비 삼형제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서 같아지는 것이 도원결의다. 원래 같은 것은 의가 아니며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아내는 것이 의다. 의리는 인지의신예 다섯의 연결이다. 인은 유비 삼형제가 서로 존중하는 것이고 지는 이들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고 의는 단단하게 결속하는 것이고 신은 그 결속을 시간상에 지속하는 것이고 예는 그러면서도 서로를 다치지 않고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이다. 대승이 의다. 맹자는 역성혁명이 대의라고 했다. 어리석은 군주를 세운다면 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리더가 비전을 제시하면 따라야 하는 것이 의다. 김영삼도 잘못이 있고 김대중도 잘못이 있다. 네 번씩 출마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런데 왜 노무현은 김대중의 의만 인정했을까? 김대중이 평화통일의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의리가 없다. 명성을 탐하는 소인배의 야심을 버리고 진보세력의 공론을 따르는 것이 의리다. 이해찬이 20년 집권의 비전을 제시했다. 비전을 따르는 것이 의다. 의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신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게 의리다. 의리는 옳음이다. 근데 뭐가 옳다는 거야? 주어가 없다. 옛사람들이 표현력이 딸려서 대충 말한 것이다. 의리는 집단의 에너지를 유도함으로써 집단을 발전시키는 방향성이다. 에너지가 나와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의리다. 축구라면 패스할 때 패스하고 드리블할 때 드리블해야 한다. 이기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의리다. 한국인의 강점은 의리뿐이다. 일본의 무사도나 서양의 기사도나 의리의 변형이라 하겠다. 배신의 대명사인 중국인들은 의리가 없다. 갑을관계를 분명히 하는게 중국인이다. 자신이 강하면 남을 짓밟고 약하면 고개를 숙인다. 강함을 믿고 의리 없이 남중국해를 털었다가 트럼프에게 밟히고 있다. 그들도 꽌시들과는 의리를 지킨다. 유목민들은 의리가 있다. 결속력이 있다. 흉노 선우 묵특 이래의 전통이다. 유목민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때문에 결속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자들과 손을 잡는게 유목민이다. 농경민은 자기 땅만 지키면 되지만 유목민은 대규모 동맹을 만들지 않으면 초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우리의 장점인 의리밖에 없다. 중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회사에서 시킨 일만 한다. 그들은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서구인들도 의리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기업을 일구어도 친족끼리 뭉쳐서 가족기업 형태로 가는게 보통이다. 의리가 없어서 그렇다. 직원은 기본적으로 회사를 적대한다. 의리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균일하다. 원래부터 의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 장점을 살려가야 한다. 개인의 명성을 탐하여 함부로 탄핵을 남발하고 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나잘났소 하는 의리없는 자들과는 상종을 말아야 한다. 소승의 아집을 버리고 내부에 다양성을 갖추고 다 함께 가는 대승의 길로 가야 한다. 에너지는 거기에 있다. 에너지는 결속에서 나온다. 막연하게 결속을 외치는 자는 나쁜 의도를 숨기고 있다. 결속하려면 교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피부색과 성별과 학력과 지위가 달라서 결속되지 않는다. 교양하여 생각을 일치시켜야 균일해진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단의 전진하는 방향이 옳아야 균일해질 수 있다. 대승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다. 막다른 길로 가고, 험한 길로 가므로 이리 몰리고 저리 쏠려서 불균일해지는 것이다. 천하인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 모두를 구원하는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만 살겠다는 좁은 길로 가므로 위태로운 것이다. 우리는 뜻으로도 지리로도 이념으로도 다름을 받아들이고 다 함께 가는 큰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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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다양하고 원인이 균일해야 의리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따르는 것이 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