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과 환경, 그리고 만나기
모든 일은 느끼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든 위대한 결정들도 느낌에서 태어난다. 모든 복잡한 이론도 단순한
느낌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 미세한 형태로 존재하는 그 느낌에서 역사의 거대한 행보가 시작되고, 지금도 우주적 순환을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의 근원이 되고 있다.
느낌은 무척 단순한 형태로 주어진다. 그것은 부정, 혹은 긍정 둘 중 하나로 나타난다. 부정적 느낌은 찝찝하고 개운하지 않고 답답하며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긍정적
느낌은 통쾌하고 시원하고 명쾌하고 확 뚫리는 느낌으로 나타난다. 모든 창조적인 성취는 부정적 느낌을
뚫고 긍정적 느낌을 향해 멈추지 않고 움직여가는 길의 끝에서 얻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이미 역사와 문명, 그리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이 근원적이며 단순한 척도를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에게 내재된 이 척도를 잘 따르기만 한다면 사람은 흘러넘치는 우주적 창조성의 세례를 무수히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 시작되는 이 처음 지점에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이 지점은 쉽게 묻히고 만다.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이 이 영토를 인식하고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모래 위에 건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교육은 개입을 다룬다.
언제 어떻게 얼만큼 개입할 것인가가 교육의 근본 문제이다. 이것은 세련된 개입, 균형 잡힌 개입이며, 다른 말로 하면 습관적인 개입을 멈추는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적 균형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개입이 불가한 영역을 교사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은 체험과 느낌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곧 환경의 문제이다. 교육기법이나 방법론보다
어떤 환경을 만들 것인가가 포괄적으로 교육의 가능성을 규정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도 억지로
보여주는 교육보다, 좋은 그림들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안목 있는 교사가 있고, 그런 좋은 것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더욱 교육적 가능성을 넓힌다.
느낌, 감수성, 체험, 환경은 같은 차원의 개념들이며 교육의 1차적 요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는
철학, 이념, 교사, 공간
등이 있다. 환경은 교육이 외부, 혹은 역사와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환경을 창조하는 것은 단지 공간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적 시도가 역사와 어떤 지점에서 맞물릴 것인가, 어떤 포지션을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이들과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서 역사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렇게
만남, 출발점, 혹은 대전제를 놓치고 출발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