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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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768 vote 0 2008.12.30 (23:31:33)

 

가치의 밀도

가치판단의 5 단계가 있다. 표면의 가치와 이면의 가치가 있다. 진, 선, 미, 주, 성으로 갈수록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 존재의 본질과 맞물리게 된다. 현대성에 대한 수준높은 이해가 된다. 그것이 더 가치가 높다.

● 초등생의 진(眞) - 무엇을 그렸나?

● 중학생의 선(善) - 모델과 닮았나?

● 고교생의 미(美) - 보기에 좋은가?

● 작가주의 주(主) - 한줄에 꿰었나?

● 스타일의 성(聖) - 어디에 놓을까?

초등생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알리려 애쓴다. 그림은 점점 기호가 된다. 중학생은 제법 실력이 늘어서 모델과 닮게 그릴 수 있다. 고교생은 구도와 밸런스에 신경을 써서 보기좋게 그린다.

화가의 그림이 되려면 테마가 있어야 한다. 그림 속 요소들에 통일성을 부여하여 전체를 한 줄에 꿰는 것이다. 일관성과 내적 정합성을 부여하기다. 주제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를 실어야 한다.

왜 그것을 그렸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야 한다. 이 수준에 도달했다면 그림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단계이다. 문제는 그림 바깥의 세계다. 이러한 통일성은 그림 바깥에도 있어야 한다.

진정한 대가는 그 그림을 어디에 걸어둘 것인지를 고민한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진정 누구를 위한 그림인가? 그림 안에는 답이 없다. 그림 바깥으로 성큼 걸어나와야 한다.

원래 그림은 귀족이 사는 저택의 거실에 걸렸다. 그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위압감과 경외감을 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거나 아니면 잔뜩 폼을 잡은 귀족의 초상화여야 한다.

인상주의 그림은 지식인의 응접실에도 걸 수 있다. 내 서재의 작은 벽에 커다란 사실주의 화풍의 그림을 걸 수는 없다.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친구를 위한 그림이라면 서양화 보다는 동양화에서 찾을 일이다.

스타일은 모델과 그림과 작가와 관객과 미술관을 통일한다. 그림 밖으로 나와 세상 전체를 한 줄에 꿴다. 그림 속 요소들을 통일할 것이 아니라 그림 밖의 시대배경과 통일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현대회화는 어디에 걸어야 할까? 전람회에? 박물관에? 재벌회장의 집무실에? 청와대 영빈관에? 아니다. 진정한 그림은 저 도시를 메운 사람들의 옷에다 걸어야 한다. 그것이 디자인이다. 누구인가? 몬드리안이다.

몬드리안은 그림을 캔버스에서 해방시켰다. 이제 그림이 어두컴컴한 미술관 안에 갇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팝 아트를 비롯한 현대회화의 본질은 그림을 거는 장소를 공간적으로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물랭루주의 툴루즈 로트렉이 그렇다. 지평이 넓혀진 거다. 뒤이어 온갖 그림이 탄생하였다. 포스터 그림도 있고 광고판 그림도 의상 디자인도 있고 소설책의 삽화도 있다. 만화도 당당하게 포함이 되어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캔버스가 된다. 도시 자체가 캔버스다. 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싱글벙글한 표정 위에도 그려보여야 한다. 지구 위에도 그려보여야 하고 마음 위에도 그려보여야 한다.

아직 한국인들은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백남준이 무슨 신기한 쇼를 보여줄까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초대받은 자신이 이미 백남준의 그림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당신이 왜 거기에 갔는지를 생각하라. 마음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린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왜 작품과 관객이 분리되어 마주보고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가? 왜 그림이 눈에 보여지는 것이라고만 믿는가?

평론가들의 문제는 아직도 미(美)와 주(主)의 단계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제의식을 중요시 한다. 그림 속에 무수한 복선과 암호들을 감춰놓고 찾아보라는 식이다. 그걸 찾아놓고 의기양양이다.

프랑스 요리라면 무슨 고급한 재료를 썼는지 알아맞춰 보라는 식이다. 냄새만 맡고도 재료의 이름을 알아맞춰야 미식가다. 요즘 유행하는 와인붐과 같다. 몇년 산 와인인지 혹은 누구네 포도밭의 와인인지 맞춰보라는 식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는 온갖 암호와 복선이 숨어있다. 얼뜨기 평론가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복선이 서른개나 깔려 있는데 난 알아. 넌 모르지?’ 하는 식이다. 이런 게임은 사실이지 유치한 거다.

평론가들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그림 속에 그리스 신화의 온갖 이야기들을 숨겨 놓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설명해 주려 한다. 저 인물이 저런 동작을 취한 것은 무슨 사연이 있기 때문이네 하는 식이다.

쓸데없는 지식자랑이다. 그러다가 인상주의나 표현주의를 만나면 벙찌게 된다. 그림 속에 숨은그림찾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메시지도 숨어 있지 않으므로 도무지 설명하고 해설할 것이 없다.

평론가들은 인상주의를 싫어한다. 아직도 예술을 숨은그림찾기로 여기는 3류 평론가들 좀 치워졌으면 좋겠다. 설명하는 그림은 가짜다. 통하는 그림이 진짜다. 현대회화는 설명되지 않는데 의의가 있다.

완성되면 통한다. 완성된 작가의 완성된 작품이 완성된 관객과 온전하게 통한다. 그림 속에 결이 있고 심이 있고 날이 있으므로 통한다. 이심전심으로 통하지 않으면 그 관객의 수준이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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