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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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521 vote 0 2008.12.30 (23:16:08)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하기

깨달음이라는 개념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언어가 서툴렀던 옛 사람이 덧씌운 신비주의적인 의미를 버리고 본연의 깨달음을 말해야 한다. 깨달음은 완성을 위한 완전의 깨달음이다. 깨달음과 완전성은 동의어이다.

자연은 완전하다. 자연의 완전성을 매개로 삼아 내 안의 완전성을 끌어내고 이를 토대로 인류의 집단지능과 접속하여 소통함으로써 세계의 완성으로 전개하여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깨달음이다.

대승의 정신에 따라 깨달음의 참된 의미는 널리 대중과 소통함에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완성에 있다. 완전한 자연의 밭에 완전한 나의 씨앗을 심어 인류의 집단지능이라는 꽃을 피우고 현대성이라는 열매를 맺기다.

깨달음은 우주와의 합일이다. 자연의 완전성과 감응하기다. 안테나가 있어야 감응할 수 있다. 자연의 완전성에 의해 자연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규칙성을 포착할 수 있는 직관력이 계발되어야 한다.

자연은 밀도가 걸려있는 계 내부에서의 안정성을 지향한다. 그것이 자연의 완전성이다. 그 완전성으로 외부세계와 소통한다. 완전한 한 알의 씨앗을 뿌릴 때 완전한 한 송이 꽃은 피어나고 완전한 한 개의 열매는 맺힌다.

불완전한 씨앗은 싹트지 않고 불완전한 꽃은 나비를 초대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열매는 썩어 없어진다. 외부와 소통하지 못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인간의 행동 또한 언제라도 고립계의 완성을 지향한다.

자연의 완성을 포착할 때 반갑고 내 안의 완성과 교감할 때 자연스럽고 세상과의 소통에 성공할 때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는 어색함과 떳떳함의 감정이야말로 완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긴장과 이완의 1 사이클은 인간의 행동이 하나의 고립계를 이룬 것이다. 동기부여와 성과보상의 시스템을 구성하며 행동의 1 단위를 이룬다. 이때 행동을 촉발하는 기쁨과 행동을 종결하는 자랑스러움이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인간은 만날 때 떳떳하고 대화할 때 자연스럽고 받아들일 때 자랑스럽다. 만날 때의 온전한 긴장이 떳떳하고 교감할 때 완벽한 밸런스가 자연스럽고 받아들일 때의 완전한 릴렉스가 자랑스럽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여기에 있다. 신(神) 앞에서 단독자로 삶과 죽음을 넘어 실존의 동그라미를 완성함이 자유라면 삶 안에서 하나의 드라마를 완성함이 사랑이고 일상에서 오늘 하루의 생활을 완성시키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는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넘는다. 나와 세계를 하나의 고립계로 통일하여 완성한다. 사랑은 나의 삶 안에서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동을 의미롭게 완성시킨다.

오늘 당신의 일상은 자연스러운가? 떳떳한가? 완성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행복하다. 당신의 일생을 통틀어 일관되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가? 그것이 자연스러운가? 온전한가? 그렇다면 그것이 당신의 사랑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세상 전부와 맞서는 지점이 있는가? 자연과의 교감에서 진(眞)을, 공동체와의 소통에서 선(善)을, 삶의 양식에서 미(美)를 완성하여 가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완성시켜야 할 자유다.

깨달음은 당신의 일상을 행복으로 완성시키고 당신의 삶을 드라마로 완성시키고 당신의 실존을 세계정신의 일부로 완성시킨다. 그렇게 끝없이 동그라미를 그려나간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우주로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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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본래 완전한데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해체되어 불완전해진 것이다. 인간에게는 해체되기 전의 본래의 완전성과 감응하는 안테나가 있다. 어색함과 떳떳함,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이 그것이다.

자신의 일상적 행동 하나하나가 매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창피해질 것이다. 어색해질 것이다. 부끄러워질 것이다. 죽고 싶어질 것이다. 상심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자연이 당신을 통제하는 안테나다.

자기 내부에 ‘이야기’를 품을 때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다. 내 안에 이야기를 품는다는 것은 일의 진행에 있어서 다음 단계의 프로세스를 안다는 것이다. 전모를 보고 일의 전체과정을 안다는 것이다.

길을 떠나온 이가 출발점과 목적지를 알고 나의 현재 위치를 아는 것과 같다. 나침반을 가진 것과 같고 등대를 바라봄과 같아서 갈림길을 만날 때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 언제라도 진로를 바로잡을 수 있다.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완전한 긴장, 완전한 깨어있음을 연습해야 한다. 그로부터 전개하여 완전한 평상심, 완전한 밸런스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로소 완전한 이완, 완전한 릴렉스가 가능하다.

의식적으로 긴장한다면 깨어있음이 아니다. 불안하고 초조하여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면,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불완전하다. 그것은 중앙이 지방을 통제하지 못하고 명령이 중간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이창호의 침착한 한 수처럼 돌부처의 마음으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전체 경로를 완전히 한 줄에 완전히 꿰어내는 것이 참된 긴장이다. 곧 중앙이 지방을, 두뇌가 몸을, 전체가 부분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통제하는 상태다.

그럴 때 명령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명령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 중간에 메아리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소통, 나의 내부에서 전체와 부분의 소통, 명령하는 두뇌와 수용하는 몸의 소통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준다면 중앙이 지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증거다. 기합을 넣고 호통을 치고 눈을 부라린다면 전체가 부분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긴장이 자각되고 있다면 불완전한 긴장이다.

0.1초의 찰나에 먹이를 낚아챌 수 있는 맹수의 날렵함을 얻어야 한다. 관절과 근육이 완벽하게 통제되어 반사적으로 몸을 날릴 수 있어야 한다.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서는 결코 날렵해질 수 없다.

완벽한 긴장은 고흐가 미친 듯이 그릴 때, 연주자가 신들린 듯이 두드릴 때, 작가가 밤을 새우며 원고를 쓸 때의 그 무아지경이다. 중앙이 지방을 완벽하게 통제하므로 명령이 중간에서 메아리를 일으키지 않아 나를 의식할 수 없다.

중앙이 지방에 가하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 두뇌의 명령에 대한 근육의 저항에 의해 나를 의식하게 된다. 그럴 때 어색하고 부끄럽다. 그 반작용을 소멸키는 데서 완전한 밸런스가 얻어진다. 그럴 때 자연스럽고 떳떳하다.

명령이 중간에서 반사되지 않고, 울혈을 일으키지 않고, 결절을 일으키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될 때 그 완벽한 긴장은 완벽한 이완으로 전개된다. 외계로의 완벽한 전달이 외계로부터의 완벽한 수용을 낳는다.

이때 인체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다. 나른해진다. 릴렉스가 된다. 그럴 때 자연에서 전해져온다.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고 볼 수 없는 그림이 잡힌다. 자연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완벽한 몰입, 완벽한 평정심, 완벽한 릴렉스의 체험이 있다면 화가 났을 때라도, 이웃과 다툴 때라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라도, 언제라도 그런 편안한 상태로 자신의 마음을 리셋할 수 있다. 재부팅할 수 있다.

그럴 때 우주와 내가 직결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투수가 투수판을 밟는 힘이 지구의 중심축까지 전해졌다가 다시 되돌아나온 느낌이다. 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순환이 나와 우주와의 순환으로 확장된다.

종교인은 기도에서 그것을 구하고 지식인은 인류의 집단지능과 접속함에서 그런 기분을 얻는다. 우주와 내가 한 편이 되고 세상과 내가 한 팀을 이루고 역사와 내가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기다.

우주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마땅하고 떳떳하고 자연스럽다. 비굴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다. 예술가들은 창작의 몰입에서 그것을 구하고 거리의 사람들은 연인과의 사랑에서 그것을 얻는다.

이미 그것을 체험하고 있느냐이다. 그 일 사이클이 진행되는 각 단계를 알고 있느냐다. 지금 내가 그 동그라미 안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를 아느냐다. 필요한 때 언제라도 그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이다.

만약 그것을 깨닫는다면, 내 안에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과 온전하게 교감할 수 있다면, 필요한 때 자유자재로 그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세상 모든 문제를 다 풀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은 자연의 완전성과 교감하는 능력이다.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다.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나의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난반사를 억제하고 모두를 한 줄에 꿰어내는 능력이다. 마침내 우주와 하나가 되기다.

그럴 때 귀납으로 얻은 교과서적인 지식을 연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지적 관점이 획득된다. 인식을 종합하여 거기서 판단을 유도하고 행동으로 전개시키는 구조를 내 안에 세팅하는데 성공한다. 곧 지식이 지혜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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