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074 vote 1 2016.11.23 (16:47:09)

 

   
    인간들에게는 실망한지 오래다. 제법 아는척 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들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그들이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이 멋지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씩씩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피가 끓어오르는 이야기, 가슴이 뛰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들 시시한 이야기나 하더라. 70억 중에 한 명쯤 있을 것도 같은데 내가 찾는 진짜는 없더라.


    대화가 통해야 한다.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정해야 대화에 착수할 수 있다. 친한 형제와의 대화는 실무적이다. 동료직원과의 업무에 관한 대화나 부부 사이의 대화라도 그렇다. 내가 대화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화제거리에 끌려가게 된다.


    ‘오늘 밥 맛있었지?’ ‘그래 맛있었어.’ 서로 맞장구 쳐주기로 합의가 되어 있다. 물론 ‘오늘 날씨 좋지!’ 하고 인사하면 ‘좋기는 뭐가 좋아! 흐리잖아. 저 구름 안보여?’하고 시비거는 삐딱이도 있다. 역시 딴지맨으로 자기 캐릭터를 정한 거다.


    다들 집단 안에서의 역할에 갇혀 있으니 대화는 뻔하게 굴러간다. 시시하다는 말이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의 의기투합하는 대화라야 한다. 약간의 긴장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고 상대의 심중을 넌지시 떠보는 코스도 있어야 한다.


    적당한 정도의 밀당이라면 나쁘지 않다. 의례적인 정중함 이후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차 상호작용이 긴밀해져야 한다. 천하를 엎어먹는 역적모의를 해야 한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과 같은. 제갈량과의 융중에서의 만남과 같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모든 것을 끌어내는 그런 만남, 그런 대화는 참으로 드물다.


   555.jpg


    친구 좋아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일상의 반복되는 역할 속에 자신을 가두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언제라도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친구와의 뻔한 레파토리가 상호작용을 증대시키는 거죠. 그 결과는 나빠집니다. 점차 무례해지고 무감각져서 날로 변하는 세상의 생장점과 균열을 일으킵니다. 낯선 것이 더욱 낯설어지면 결국 익숙한 쪽으로만 가게 됩니다. 낯선 사람과의 어색하고 불안한 지점을 과단성있게 통과해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27549
공지 신라 금관의 비밀 image 7 김동렬 2024-06-12 17493
2635 사랑의 정석 5회 1 김동렬 2015-12-02 4776
2634 박원순과 살인 기레기들 7 김동렬 2020-07-10 4773
2633 사건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김동렬 2021-03-10 4769
2632 국힘당이 망가진 이유 1 김동렬 2024-02-07 4767
2631 이낙연 배후는 동교동? 5 김동렬 2021-01-02 4766
2630 쌍방향 통제는 없다 1 김동렬 2019-03-28 4765
2629 사랑의 정석 18회 1 김동렬 2015-12-24 4765
2628 사랑의 정석 56, 길 끝에서 만난다. image 1 김동렬 2016-02-18 4761
2627 최동훈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김동렬 2024-01-11 4758
2626 사랑의 정석 52, 고빗길 넘어가기 image 1 김동렬 2016-02-12 4757
2625 사랑의 정석 49, 도망치지 말라 image 2 김동렬 2016-02-05 4752
2624 이준석의 몰락 김동렬 2022-08-13 4751
2623 백래시와 구조손실 1 김동렬 2020-10-15 4747
2622 사랑의 정석 25, 왜 사는가? 1 김동렬 2016-01-04 4747
2621 사랑의 정석 40, 일이 깨달음이다 image 1 김동렬 2016-01-26 4746
2620 사랑의 정석 19회 1 김동렬 2015-12-26 4739
2619 정준영은 왜 그랬을까? 2 김동렬 2019-03-12 4738
2618 사랑의 정석 42, 부드러운 이륙 image 2 김동렬 2016-01-28 4738
2617 질을 이해하라 4 김동렬 2018-09-12 4737
2616 사랑의 정석 48, 진보나무는 자란다 image 1 김동렬 2016-02-04 4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