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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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603 vote 0 2008.12.30 (13:47:55)

 

1994년에 쓴 글입니다.

과거 글이므로 최근의 글과 모순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1-6가설 1-25존재 2-11종의 기원 4-30유전적 다양성 5-31나눠살이와 모듬살이 11-35계통 12-42진화 14-36잃어버린 고리 15-32잡론 

###가설###

열개의 상자가 있다. 그 상자들 속에는 퍼즐 조각이 들어 있다. 상자를 계속 흔들다보면 우연히 열 개의 상자에 든 퍼즐조각들의 위치가 모두 맞아져 퍼즐이 맞추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지구의 생태계는 그런 식으로 우연히 맞아떨어져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확률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과학에 대한 그릇된 맹신에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우연히 퍼즐조각이 맞추어질 확률은 0이다. 왜냐하면 쏠림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상자를 흔들면 무거운 것은 중심쪽으로 밀리고 가벼운 것은 가장자리로 밀리기 때문에 복잡도가 줄어들어 점점 단순화 된다.

퍼즐 조각들은 동일한 방향으로 줄서 버리고 복잡구조 그 자체가 와해되어 단 하나의 조각도 맞추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지구의 생태계는 그 퍼즐조각들이 맞추어진 상태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떤 가설들이 있을수 있는가? 열개의 상자가 있다. 그러나 그 상자들은 평면 위에 양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상에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아홉개의 상자들은 첫 번째 상자 옆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자 위에 덧씌워져 있다. 이것이 확률적으로 훨씬 가능성이 있다. 양파껍질 처럼 덧씌워져 있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통일하는 새로운 관점이다.

###존재###

존재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짜임새다.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어떤 것의 존재에 선행하여 그 어떤 것의 존재를 담보할 그 어떤 것의 자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그 어떤 것과 그 자리가 만나야 한다.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서와 방향이라는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순서와 방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순서와 방향을 통일하는 순서와 방향의 집의 존재가 전제 되어야 한다.

다음엔 순서와 방향 사이에 교통정리가 이뤄져야 한다. 그 다음에 비로소 순서에서 방향, 또는 방향에서 순서로의 이행이 성립하며 이 이행에 의해서 마침내 현상적 존재가 실현되는 것이다.

존재는 그 자체로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성립하는 하나의 정밀하고 복잡한 과정이다. 어떤 것이 있다면 반드시 그 안과 밖이 있게 마련이며 안과 밖 사이에 그 사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 사이가 짜임새다. 짜임새는 순서와 방향의 짜임새이며 모든 존재는 순서와 방향의 실현이고 모든 변화는 순서와 방향의 자리바꿈이다. 순서와 방향을 실현하는 순서와 방향의 자리가 시, 공간이다.

모든 존재는 시, 공간 안에서의 존재이며 시공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구조이다. 생물 종은 눈에 보이는 눈이나 코나 귀나 입의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눈의 구조, 귀의 구조, 코의 구조, 입의 구조이다.

그 전에 눈과 코의 연결구조, 코와 입의 연결구조, 입과 귀의 연결구조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 전에 눈, 코, 귀, 입과 머리의 짜임새가 선행되어야 한다. 몸과 기관의 연결구조가 선행하고 다음에 기관과 기관의 연결구조가 뒤따른다.

다음으로 기관 안에서 근육과 신경의 연결구조가 설정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눈, 코, 귀, 입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이 모든 것에 선행하여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전정보의 구조가 설정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하다.

유전정보의 구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유전정보의 집의 구조가 또한 선행되어야 한다. 그에 비하면 환경에의 적응이나 생존경쟁 같은 개념은 존재의 본질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는 소소한 문제다.

###종의 기원###

종은 시간상에서 진화해 왔다. 이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다만 진화했을 뿐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진화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자선택이나 생존경쟁의 개념은 진화하여 새로운 종이 생겨난 다음의 문제일 뿐 어떻게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개체변이설은 밀가루를 헝겊으로 덮어 놓으면 쥐가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이다.

내가 유리창을 깨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 한명을 데려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유리창을 깨는 것을 본 사람 한사람이 보지 못한 사람 백명을 이기기 때문이다. 주변적인 것을 아무리 갖추어도 본질적인 논의가 없는 이상 다윈의 진화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가 둘로 쪼개지는 것이 이론이고 둘을 하나로 되돌리는 것이 논리다. 이론이려면 그 하나와 둘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그 중간을 밝혀야 한다. 하나와 둘 사이에는 변화가 있다.

시, 공간 안의 모든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변한다. 시, 공간이 변하므로 시공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변화엔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있고 원인과 결과 사이엔 원인과 결과를 매개하는 인과 연과 기가 있다.

모든 이론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서 인과 연과 기의 순서와 방향의 짜임새를 밝혀놓은 것이다. 자연 발생설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 연, 기를 말하지 않으므로 이론이 아니다. 이론이려면 이 세가지를 말해야 한다.

첫째의 기는 하드웨어로서의 형태의 진화이다. 외형에 있어서 어떻게 단순한 형태가 복잡한 형태로 바뀔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명이다. 그런데 이 외형의 진화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또 세가지를 말해야 한다.

첫째는 생김새(기)의 진화이고 둘째는 짜임새(연)의 진화이고 세째는 짜임새를 통일하는 짜임새의 집(인)의 진화이다.

예컨대 인간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단지 지능만 높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게 하는 입과 혀와 성대와 배의 외형이 말을 할 수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말을 할 수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는데에 관계하는 모든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단지 이빨이 날카롭다고 해서 고기를 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윗니와 아랫니의 교합이 잘 이루어져야 음식을 씹을 수 있듯 각부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려 있지 않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점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생겨남으로서 기존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언어기능이 진화하기 위해선 언어기능 이외의 부분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컴퓨터 속에 라디오기능을 더할 수는 있어도 라디오 속에 컴퓨터기능을 집어 넣을 수 없듯이 하나의 문제 해결은 또다른 하나의 문제를 낳는다는 점이 간과되어선 안된다.

둘째의 연은 소프트 웨어로서의 본능의 진화이다. 외형이 진화해도 본능이 진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본능은 곧 뇌기능이다. 손가락의 진화는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뇌기능의 진화이다.

손가락이 생겨나도 형태가 있되 신경계가 없다거나 신경계가 있어도 그 신경계를 다스릴 뇌회로가 생겨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한 마리의 개미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백과사전 분량의 본능이 입력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숨쉬는 것,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눈을 감는 것 같은 기본적인 동작도 사전에 이미 본능의 회로에 입력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리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이것은 본능이 아니라 훈련된 학습이다. 그러나 그리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고자 했다고 해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관능이다. 대뇌의 기능은 학습이지만 대뇌와 실제 행동을 연결하는 소뇌나 간뇌, 척수의 기능은 본능이다.

인간에게도 백과사전 일만권 또는 그 이상의 분량의 뇌기능이 본능으로 사전에 이미 입력되어 있다. 말을 하는 능력은 학습에 의한 것이나 말을 배우는 능력은 본능이다.

중요한 것은 말을 배우는 것은 있는 프로그램에 정보를 집어넣는 만큼 간단하되 말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없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만드는 것 만큼 복잡하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말을 배우는 학습은 아래아 한글로 일기를 쓰는 정도이고 말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을 새로 발명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 본능의 진화에도 인과 연과 기의 세가지가 있다.

먼저 본능의 뇌회로의 진화가 있어야 하고 다음 뇌회로와 신경계와 근육을 연결하는 짜임새의 진화가 있어야 하고 또 이 짜임새를 담아낼 그릇의 진화가 있어야 한다.

세째의 인은 이 모든 것을 담을 유전정보의 진화이다. 진화는 형태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변하게 하는 유전정보가 변하는 것이다. 있는 유전정보가 자리바꿈 하는게 아니라 없는 유전정보가 생겨나야 한다.

개체변이는 외형에서 보면 변이지만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보면 변이가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일 뿐이고 돌연변이는 있는 유전정보를 파괴할 뿐 없는 유전정보를 생산하지 못하므로 진화와 관련이 없다.

유전정보의 진화에도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별 유전정보 하나하나의 진화이고 둘째는 유전정보들 간의 짜임새의 진화이고 세째는 유전정보를 진화하게 할 유전정보의 집의 진화이다.

외형의 진화를 가져오게 할 외형의 진화의 집으로서의 유전정보는 염색체 안에 이중 나선구조로 되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유전정보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아직 과학이 찾아내지 못했다.

진화의 비밀을 풀려면 유전정보를 생산하는 유전정보의 집을 찾아내야 한다. 유전정보는 다만 있는 것이 복제될 분 없는 것이 생겨나는 것은 관찰된 바 없다. 이 유전정보의 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진화론은 이론으로 성립할 수 없다.

유전정보의 집은 세포 안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완벽하게 부정된다. 현재로선 없다. 그러므로 현재로선 진화론은 완성된 이론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꿀을 먹는 벌의 주둥이가 먼저 변하고 나중에 꿀을 구하는 본능이 생긴다면 그 벌은 그 사이에 먹지 못하여 죽고 만다. 먼저 본능이 변하고 나중에 외형이 변해야 한다. 인과 연과 기의 진화엔 분명한 순서가 있다.

인의 유전정보가 먼저 변하고 다음 연의 본능이 변하며 마지막으로 기의 외형이 변한다. 유전정보가 변하지 않았는데 형태가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유전정보가 변하면 형태는 저절로 변한다.

고로 모든 변화는 유전정보의 변화이며 형태의 변화는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형태의 변화를 보고 유전정보의 변화를 추론할 수는 있다. 여기에 복잡도의 문제가 제시된다.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 컴퓨터 프로그램이 들어갈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렵다. 외형의 진화가 프로그램의 실행이라면 본능의 진화는 프로그램 제작이다.

유전정보의 진화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고 유전정보의 집의 진화는 컴퓨터를 만드는 공장을 짓는 것이다. 외형의 복잡도가 1이라면 본능의 복잡도는 1만이다.

게임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 자판의 글쇠를 한번 누른다면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글쇠를 1만번은 눌러야 하고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만배인 1억번의 손놀림이 있어야 한다.

물론 수억바이트 용량의 반도체라도 기계가 한꺼번에 대량으로 생산하므로 간단하지만 복잡도의 면에서는 그러하다. 어떤 종의 외형이 1만큼 변했다면 그 본능은 1만의 숫자만큼 변했으며 유전정보는 1억의 숫자만큼 변한 것이다.

유전정보가 먼저 변하고 외형이 나중에 변하므로 1의 숫자만큼 외형의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1억의 숫자만큼 유전정보의 진화가 일어나야 한다. 곧 1억개의 잃어버린 고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말하는 능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가지 이상의 외형의 변화가 따라야 하므로 유전정보의 차원에서 말을 못하는 호모 에렉투스와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는 1조개 이상의 잃어버린 고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에 의해 가능하다고 치고 확률적으로 우연히 1조가지 변이가 동시에 일어날 확률을 계산한다면 거기에다 다시 1조를 곱해야 한다. 곧 1조 곱하기 1조 만큼 변이가 있다면 호모 에렉투스가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의미있는 변이는 자연에서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복잡도의 증가는 산술 급수가 아닌 기하급수로 일어나고 한 단계를 오를때마다 네제곱씩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유전적 다양성###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최초에는 한 종의 한쌍이었을 것이다. 다른 아종들은 그 한 쌍으로 부터 변화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것을 진화라고 할 수 있는가?

갈라파고스 섬이 아닌 다른 섬에서 여러가지 핀치새를 교배하여 새로운 잡종을 만들어내면 이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전건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후건긍정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동차가 있으면 달릴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고 고장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가 없으면 달릴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고 고장날 수도 없다.

달리기나 멈추기나 고장나기는 자동차의 등장 이후에 자동차가 진화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동시에 생겨난 것이 드러나지 않고 예비되어 있다가 운전자의 운전솜씨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동차의 관계가 아니라 운전자의 관계다. 최초의 핀치새가 한마리 뿐이었다면 다양한 종류의 핀치새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차만 있고 운전자는 없다면 달리기나 멈추기나 고장나기는 생겨나지 않는다.

다양한 종류의 핀치새는 진화한 것이 아니라 두마리의 핀치새 사이에서 중간이 나타난 것이다. 치타는 세계적으로 1종 1속 밖에 없어서 멸종 위기에 빠져 있다. 왜 치타는 핀치새처럼 다양하게 진화하지 못하나?

중간은 둘 사이에서 성립하는데 그 둘이 없기 때문이다. 종이 살아남는가 도태되는가는 오로지 적응력이 결정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은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멸종한다.

그런데 그 적응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적응력이 강한 것이고 어떤 것이 적응력이 약한 것인가? 사람이라면 지능이 높을 수록 적응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지능이 의미가 없다.

다윈은 이를 제시하지 못햇다. 생존경쟁이란 말은 결국 시간이 흘러봐야 안다는 뜻으로 의미가 없다. 적응력은 오로지 유전적 다양성이 결정한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나 쥐는 종류가 많아 별의 별 개가 다 있고 별 이상한 종류의 쥐가 다 있어서 이들의 중간에서 잡종이 계속 만들어지므로 한 종이 멸종해도 다른 잡종이 살아남으므로 생존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환경은 계속 변하므로 적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잡종을 많이 만드는 것이 곧 적자이다. 아무리 종들간의 생존경쟁에 강하여 다른 종을 이긴다 해도 특정한 종류의 전염병에 걸려 멸종할 수 있으므로 종들간 경쟁은 의미가 없다.

자연에서 살아남는가의 여부는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서 스스로 변하는가 그렇지 못하는가가 결정한다. 유전적 다양성이 결정하는 것이다.

다윈은 유전공학을 배우지 못했다. 만약 다윈이 유전법칙을 배웠다면 자신의 주장을 모두 취소했을 것이다. 우리가 변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모두 변이가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오해이다.

흑인과 흑인이 결혼하면 흑인이 나오지만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흑인도 아니고 백인도 아닌 중간이 나온다. 이것이 유전적 다양성이고 이는 진화와는 상관이 없다.

그 중간과 중간이 결혼하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흰 코스모스와 붉은 코스모스 사이에서 분홍 코스모스가나오는 것은 진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분홍 코스모스와 분홍 코스모스를 교잡하면 다시 흰 코스모스와 붉은 코스모스로 되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중간이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 다른 두 종류가 있어야 한다.

다윈은 어째서 처음부터 두가지 종류의 핀치새가 있었는지를 규명하지 못하므로 그 사이에서 다양한 종류의 핀치새가 관찰된 것은 의미가 없다.

###나눠살이와 모듬살이###

종들은 서로 경쟁하는게 아니라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를 통해 서로 협력한다. 종들이 서로 싸우면 동물은 박테리아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멸종할 것이고 식물은 대나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멸종할 것이다.

박테리아는 종류가 많아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신종을 만들어내므로 한 종을 멸종시키면 곧 다른 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교한 컴퓨터와 무딘 망치가 싸우면 반드시 무딘 망치가 이기듯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이 싸우면 반드시 하등동물이 이긴다. 대나무는 우후죽순으로 순식간에 자라 햇빛을 독점하므로 대숲에 다른 식물은 자랄 수 없다.

또한 뿌리가 땅속을 온통 헤집어 다른 종이 뿌리내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박테리아는 기생하므로 어떤 종의 신종 바이러스가 다른 모든 동물을 멸종시키면 궁극적으로 박테리아 자신을 죽이게 된다.

대는 꽃이 잘 피질 않아 씨앗을 퍼뜨리지 않으므로 겨우 다른 종이 살아있게 되었다. 무기엔 본질적인 것이 있고 주변적인 것이 있다. 동물이 독이나 가시나 색깔로 자신을 지키는 것은 주변적인 무기다.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것이나 병에 강한 것은 본질적인 무기다. 아무리 샊깔로 위장하고 독으로 방어해 봐야 소용이 없다. 병에 걸리면 그만이다. 주변적인 무기 열이 본질적인 무기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고로 생존에 강한 종들은 특별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생존에 약한 종들이 쓸데없이 희한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진화는 다 그런 생존에 별 도움이 안되는 주변적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본질적인 것은 변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병에 강한 종이라도 신종 전염병이 출현하면 대책이 없다. 염소가 뿔로 양을 쫓아 양과의 경쟁에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를 이기지 못하는 한 의미가 없다.

고슴도치가 가시로 자신을 보호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고슴도치의 먹이가 늘어나지 않는 한, 고슴도치가 살아남는 방법은 적으로 부터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먹이를 소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윈의 경쟁이 동료와의 경쟁인데 비해 진화의 핵심부분은 천적과의 경쟁이다. 그런데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조화다. 좋은 천적을 가진 종이 진화한다. 많은 질병을 가진 구대륙 사람이 살아남았고 질병이 없었던 인디언이 죽어갔듯이.

사람의 수염이나 눈썹같은 것이 생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흔히 겨드랑이의 털이 겨드랑이의 살을 보호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린이는 겨드랑이에 털이 없기 때문이다.

또 설사 보호한다고 해도 평균수명이 짧았을 옛날에 비하면 그런 것은 거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람만 수염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은 수염이나 눈썹을 가지고 있다.

단지 종에 따라 그것이 분명히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할 뿐이다. 고양이도 눈썹이 있지만 고양이는 눈썹이 소용없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인간만이 특별히 진화해서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실은 알고보면 모든 종들이 가지고 있다. 사람도 말처럼 목에 갈기를 가지고 있고 소도 사람처럼 머리에 가마가 있다.

다윈은 생존경쟁에 의해 예쁜 여자가 살아남았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소도 암소는 예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모든 포유류 종에 공통되는 특징이 사람에게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개는 혀를 내밀어 체온을 조절하지만 토끼는 귀속의 모세혈관을 확장하여 체온을 조절하고 사람은 땀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만약 에스키모개가 땀을 흘린다면 땀을 심하게 흘린 개는 추위에 땀이 털에 얼어붙어 죽을 것이다.

체온조절은 본질적이고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갈기나 수염은 주변적이고 생존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윈이 생존경쟁을 위해 있다고 여기는 것들은 모두 갈기나 수염처럼 생존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정작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체온조절처럼 따로 있다. 사람은 소금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물은 거의 소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땀을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

땀을 이용한 체온조절은 생존의 면에서 불리하다. 그러나 생활의 측면을 볼때 훨씬 유리하다. 사람은 적당량의 비타민과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아도 코끼리처럼 근육이 우람하며 운동을 하지 않아도 호랑이처럼 날쌔다.

여기서 제시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있다고 여기는 것이 대부분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활은 생존의 면에서 볼 때 오히려 불리하며 다만 다른 종들과의 차별성을 획득하므로서 나눠살이와 모듬살이에 기여하여 전체적으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진화는 개별 종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생태계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종들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고 이 다양성은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지만 다른 종들의 생존에 이바지 하여 전체적으로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어 왔다. 이것이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다.

수컷 물개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은 우월한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어 왔다. 싸우는 것은 그렇다치고 패자가 양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체 물개의 종족보존을 위해서 자기자신의 종족보존본능을 희생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전체 생태계의 보존을 위해서 자기 종의 보존을 희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물개의 싸움이 실제로 물개의 종족보존에 도움이 되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생존의 면에서 볼 때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을 죽이므로서 살아남기에 불리한 환경을 만든다. 여러개의 유전인자를 남기는 것이 새로운 질병이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쉽다.

그러나 물개가 사는 지역은 환경의 변화가 많은 육지와는 달리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는 바다이다. 특정한 종의 식물은 단성생식을 한다. 단성생식이 양성생식보다 유전인자를 남기는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환경이 변할때 단성생식을 하는 식물은 한꺼번에 멸종할 위험이 있다. 물개의 종족 보존은 이 단성생식과 같은 것이다. 물개의 특별한 환경에서만 해당되는 논리다.

이런 식으로 모든 종들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종족보존과 상관없이 제 나름의 독특한 방법을 가진다. 물개의 환경이 거의 변하지 않는데 비해 개의 환경은 매우 복잡하게 변한다.

개도 물개처럼 특정한 유전인자만 남긴다면 개는 벌써 멸종했거나 멸종에 가깝게 되었을 것이다. 개의 환경은 개를 지배하는 사람의 행동에 달렸고 사람은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키므로 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의 환경변화만큼 개도 변해야 한다. 고로 개는 물개와는 달리 가능한 한 많은 잡종을 생산한다.

인종주의자들은 우월한 종의 인간과 열등한 종의 인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한가? 분명히 말하면 종에는 우월이 없다. 지능지수는 유전인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혈액형에 더 많이 지배된다.

IQ가 높다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인디오들은 B형이 거의 없으므로 AB형도 없다. 혈액형이 비슷하면 성격이 비슷하고 성격이 비슷하면 사고하는 것이 비슷하고 사고가 획일적이면 전체적으로 사고수준이 떨어진다.

지능, 특히 창의력은 은 IQ보다는 사고의 유형, 사고하는 방식에 지배되고 사고는 지능이 아니라 정서와 더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성격이 지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역사상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천재들이 대부분 특별한 괴벽을 가진 것도 이에 기인한다.

일본이 성장에서 미국을 앞지른 것은 일본을 이끌어 온 일본의 50대와 60대가 미국을 이끌어 온 미국의 50대와 60대보다 더 지능이 높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적인 수준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훨씬 앞섰다.

일본이 미국을 앞지른 것은 우월해서가 아니라 달랐기 때문이다. 정보싸움에서 2등은 필요없다.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 일본은 일등하기 쉽다. 왜냐하면 미국인이 시도하지 않는 많은 다른분야를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미국인은 2등밖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의 아이디어는 이미 남이 특허를 딴 것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2등 아이디어는 아무리 뛰어나도 사용되지 않고 사장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사용되게 하려면 아이디어가 매우 유치하고 조잡하더라도 남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이 생각하지 않는 분야를 선택해야 하고 그러려면 남과는 다른 사고의 패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사고의 패턴은 성격이 전적으로 결정하는데 전 지구적 입장에서 볼때 일본인의 사고의 유형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시장을 얻을수 있었다. 미국적 사고방식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장을 얻을 수 없다.

환경이 변하므로 우월한 인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다른 것이 곧 우월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이 결혼하면 그 사이에 중간은 백인과도 다르고 흑인과도 다르다. 곧 우월한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트기와 트기가 결혼하면 백인도 사라지고 흑인도 사라지고 오로지 중간만이 남는다. 이것이 유전 2대의 법칙이다. 유전 1대에는 전대와 다른 것이 나오므로 크게 발전하지만 유전 2대에는 획일화되어 몰락한다.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섞이면 유전 1대의 법칙에 의해 크게 발전하지만 세월이 흘러 유전 2대가 되면 일제히 쇠퇴하여 몰락한다. 세계사를 보면 이점은 크게 드러난다. 문명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늘 돌아다닌다.

전쟁이 일어나면 문명이 섞여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고 크게 발전하지만 곧 유전 2대가 되어 일제히 쇠퇴하고 문명은 새로운 전쟁을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린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는 좀 달라 문명이 옮겨다니지 않았다.

그 대신 중국은 많은 외침을 당했고 오랑캐가 한 번 중국을 칠때마다 중국은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곧 다시 쇠퇴하고 새로운 오랑캐가 쳐들어 올 때까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유럽의 발전은 분열되어 있어 끊임없이 전쟁하고 섞이므로 가능했다. 그러나 유럽이 한나라로 통일되어 있었다면 그리스나 로마처럼 일시적인 흥기를 얻었겠지만 곧 중국처럼 긴 암흑시대가 찾아왔을 것이다.

종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은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를 통하여 유전 2대의 몰락을 경계한다. 어떤 종이 강력한 무기를 얻어 생존경쟁에서 승리하고 다른 종들을 모두 멸종시킨다면 다음은 곧 자기가 멸종할 차례다.

종들이 살아남는 것은 다른 종을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종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사슴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호랑이를 죽여버린다면 늙고 병든 사슴을 처치해 줄 짐승이 없다.

늙고 병든 사슴은 악착같이 살아남아 병을 퍼뜨려 모든 사슴을 멸종시킬 것이다. 사슴이 살아남기 위해선 호랑이에게 져주어야 한다. 이기기 위해선 져야 하는 것이다. 종들은 생존경쟁을 벌이는게 아니라 지기경쟁을 벌인다.

사바나는 매우 위험하고 변화무상한 특별한 환경이다. 그 위험으로 해서 사바나에서는 특별히 팀웍이 강조된다. 짐승들의 나눠살이와 모듬살이가 유난히 드러나는 데가 곧 사바나다.

사바나에는 우기와 건기의 위험과 사막화의 위험이 있다. 동물들은 특별한 팀웍으로 모든 종들을 멸종시킬 수 있는 이 세가지 위험에 대비한다. 사바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기와 건기의 교차에서의 이동이다.

건기에는 물을 찾아 이동해야 하고 우기에는 호수화하지 않는 고지대로 이동해야 한다. 이동은 일제히 일어나므로 좁은 지역에 많은 종들이 몰리고 이들이 경쟁을 벌이면 전멸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사바나에서 모든 종들의 진화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이 교통정리와 연관이 있다.

사바나는 언제든지 사막화할 수 있고 이 사막화의 위험으로 부터 초원을 지켜주는 것은 우거진 수림이다.

수림은 우림과는 달리 키가 작은 관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동물들의 이동을 가로 막는다. 이동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이 수림을 파괴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이 파괴해서는 안된다.

수림이 파괴되면 초원이 사막으로 변해버리니까. 코끼리는 수림의 파괴자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면서 작은 관목의 나뭇가지를 통째로 부숴먹어 버린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코끼리는 너무 많이 번식하지 않으니까.

영양같은 작은 초식동물은 숫자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고 또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수림의 관리자인 코끼리는 숫자가 늘어도 안되고 줄어서도 안된다. 코끼리의 진화는 철저히 이점을 고려하여 이루어져 왔다.

몸집이 작으면 다른 동물에 사냥당해 전멸할 우려가 있고 번식을 잘해 무리가 너무 많으면 수림을 완전히 망쳐놓을 위험이 있고 수명이 짧으면 당연히 회전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또한 위험하다.

코끼리는 초원의 풀을 먹을 수 있지만 부드러운 풀을 두고 굳이 거친 나뭇가지를 먹는 것은 오로지 동물들이 이동할 길을 내기 위해서다. 코끼리가 길을 내면 기린이 그 길을 찾아낸다.

기린은 동물들의 리더이다. 동물들은 기린을 쳐다보고 있다가 기린이 움직이면 일제히 따라간다. 만약 기린이 허둥대거나 하면 모든 동물들이 놀라서 우왕좌왕하여 초원의 질서는 엉망이 된다.

고로 기린은 매우 신사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함부로 날뛰는 일이 없다. 오로지 다른 동물들을 위해서다. 기린이 반드시 나뭇잎만 먹는 것은 아니다. 기린이 나뭇잎만 먹는다면 목이 짧은 새끼기린은 굶어죽었을 것이다.

다윈은 목이 긴 기린이 생존에 유리하여 살아남았다고 했지만 새끼기린은 목이 길지 않으며 목이 짧은 기린은 풀을 먹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고 기린은 목만 긴 것이 아니라 다리도 길며 기린이 사는 지역은 키가 작은 관목이 많아 목이 좀 짧아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기린이 목이 긴 것은 망을 보기 위해서다. 눈이 밝은 기린은 긴 목으로 멀리까지 볼 수 있고 따라서 사자를 감시할 수 있으며 수림 속에 코끼리가 만들어 놓은 이동할 만한 길이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기린은 나뭇잎을 먹기 위해서 항상 초원의 가장자리를 맴돈다. 기린이 만약 초원의 중앙으로 가버리면 맹수들은 더 쉽게 동물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 있어도 키가 작은 동물들은 이동할 수 없다. 사바나는 항상 물이 부족해 키가 큰 풀은 자라기 어렵다.

따라서 키가 큰 풀은 상대적으로 수분이 많은 수림 근처에 모인다.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수분증발을 막고 긴 뿌리에 많은 수분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수림 근처에는 키가 2M가 넘는 큰 풀들이 자라고 있어 작은 영양종류인 그레이트쿠두나 워터벅 스프링벅 같은 동물들은 풀숲에 막혀 이동할 길을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룩말과 누다.

눈이 나쁜 얼룩말은 망을 보지 못하므로 눈이 밝은 기린의 뒤만 따라다닌다. 귀가 어두운 기린은 귀가 밝은 얼룩말을 환영한다. 기린과 얼룩말은 늘 어울려 있다가 먼저 귀가 밝은 얼룩말이 기린에게 맹수의 발소리를 듣고 신호를 보내면 기린이 밝은 눈으로 찾아내어 다른 동물들에게 맹수의 위치를 가르켜 준다.

기린이 사바나의 가장자리로만 돌아다니므로 얼룩말도 가장자리의 키가 크고 억센 풀만 먹는다. 얼룩말이 가버린 다음에 누가 와서 얼룩말이 뜯어먹은 풀의 새순을 먹는다. 이 과정에서 떼로 몰려다니는 누가 키가 큰 풀을 짓밟아 작은 동물이 이동할 길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동순서다. 동물들은 키가 큰 순서대로 이동한다. 이 순서가 바뀐다고 해도 기린이나 얼룩말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그러나 키가 작은 동물에게는 치명적이다.

우기가 되어 초원이 물에 잠겨도 키 큰 기린은 별 피해가 없다. 그러나 다른 동물을 위해서 기린은 기꺼이 길잡이가 된다. 어떤 동물도 반칙하지 않고 충실히 순서를 지킨다.

기린은 이 길잡이 역할을 위해 별로 생존에 도움이 안되는데도 목을 길게 늘이고 귀를 먹었으며 얼룩말은 소중한 시력을 양보했다. 염소는 굳센 뿔을 내세워 양을 쫓아내고 초원을 독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거칠고 메마른 이란의 산악으로 올라가 버렸는가? 부드러운 풀을 놔두고 왜 굳이 거친 나뭇잎을 먹는가? 코알라는 굳이 독이 있는 유카리만 먹으며 팬더는 소화하기 어려운 대만 먹는다.

생존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이나 생활의 측면, 전체 생태계의 측면에서 보면 꼭 필요한 것이다. 사슴의 큰 뿔이 생존에 도움되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면 뿔이 떨어져 버린다.

필요없으니까 버리는 것이다. 버릴 것을 왜 가지고 다니나? 동물들은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리하게 진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이다. 벌거벗고 있는 것이 생존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모든 것은 유전인자가 결정하고 유전적으로 다양한 것이 강한것을 이기며 진화는 오로지 그 다양성을 좇을 뿐이다. 다양성은 한 개체의 면에서는 오히려 불리하나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

산사태가 나서 황폐한 토양이 있다. 씨앗을 가장 잘 퍼뜨리는 민들레류가 가장 먼저 온다. 민들레나 냉이 등 땅바닥에 붙어 자라는 식물이 제일 씨앗을 잘 퍼뜨리고 제일 멀리 이동하며 가장 먼저온다.

4월에는 민들레류가 가득하여 다른 식물이 뿌리내릴 자리가 없다. 그런데 6월이 되면 민들레 종류는 다 사라지고 다른 식물이 그자리를 메우고 있다. 민들레류는 먼저 오고 먼저 꽃을 피우고 먼저 가버린다.

다음에는 주로 독초 종류가 찾아와 맹렬한 번식으로 초본을 완전히 점령하고 다른 식물이 자랄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독초 종류는 자살풀이어서 처음 몇년은 완전히 그 지역을 점령하지만 몇년이 지나면 자신이 만든 독으로 자신을 도태시켜 싹 사라져 버린다.

한포기도 남아있지 않다. 미국자리공처럼 황폐하고 오염된 곳을 찾아 떠나가 버린다. 다음에 오는 것이 주로 국화과에 속하는 부쟁이 종류다. 이들은 8월에 꽃을 피운다.

그 뒤에 콩과가 오고 맨 나중에 가을에 꽃을 피우는 화본과가 오고 그 뒤에 짐승이 화본과의 풀을 먹으러 온다. 집을 오래 비워두면 쑥대밭이 된다. 왜냐하면 쑥대가 가장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생존에 강한 것은 최후에 오는 화본과다. 화본과는 무수한 씨앗을 퍼뜨려 토양을 완전히 장악하고 결코 다른 식물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본과는 입맛이 까다로와 토양형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또 씨앗을 많이 생산할 뿐 퍼뜨리지 않아 짐승이나 사람이 옮겨주지 않으면 이동을 못한다. 그래서 최후에 오는 것이다. 다른 식물들은 부지런히 씨앗을 퍼뜨려 옮겨 다니며 화본과가 자라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할 뿐이다.

식물들에게도 역할분담에 의한 나눠살이와 모듬살이가 있다. 식물들은 단순히 씨앗뿌리기 경쟁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물질을 분비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저희끼리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여기에도 먹이사슬과 같은 순서가 있어 특정한 종은 특정한 종의 식물만 공격한다.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 맨 먼저 씨앗을 잘 퍼뜨리는 민들레류가 봄에 날아와 토양침식을 방지한다.

다음에 여뀌같은 독초류가 와서 민들레류를 추방하고 토양을 완전히 점령하여 수년간 누리다가 일제히 자살한다. 독초류는 특정한 토양에서만 잘자랄 뿐 일반적인 토양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할미꽃이 무덤 근처에서 잘자라는 것과 같다. 다음에는 주로 깊이 뿌리를 내리는 다년생의 국화과나 현삼과가 몰려오고 다음에 콩과와 화본과가 온다. 이 과정에서 토양의 상태가 계속 변한다.

식물들의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는 토양의 형질을 변경하는데 목적이 있다. 씨앗을 잘 퍼뜨리는 식물들은 대체로 토양이 황폐해지기 쉬운 비탈에나 하천변에 잘자란다.

만약 식물들이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로 경쟁과 협력을 하지 않고 단순히 생존경쟁만 벌인다면 새삼처럼 다른 식물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기생식물이 번식하여 초원을 황폐하게 만들고 말 것이다.

호박꽃이 피지 않으면 나비나 벌은 먹을 꿀을 얻지 못한다. 나비나 벌이 꽃가루를 옮겨주지 않으면 호박꽃은 열매맺지 못한다. 호박꽃이 먼저 생겨났겠는가 아니면 나비나 벌이 먼저 생겨났겠는가?

이 둘은 동시에 생겨나야 한다. 이는 확률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비나 벌이 없어도 호박은 열매맺을 수 있다. 한꽃에 암술과 수술을 동시에 가지면 된다. 실제로 많은 식물이 그렇게 하고 있다.

나비나 벌에게 꿀을 제공하는 모든 식물이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종은 나비나 벌이 필요없지만 그래도 나비나 벌을 굳이 추방하지 않고 이유없이 꿀을 제공한다.

나리는 꽃을 피우지만 육아로 단성생식을 한다. 꽃은 괜히 피는 것이다.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많은 동물이 단성생식을 하고 단성과 양성을 겸하기도 하고 혼자서 암컷이 되었다가 수컷이 되었다가 하기도 한다.

성은 생태계를 위해 있지 번식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자연의 신비라고 불리는 생존을 위한 갖가지 무기들이 실제로 그 종의 생존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면 답은 항상 백해무익으로 나온다.

방아깨비는 가을이 되면 색깔을 바꾼다. 자신을 감춰주는 풀들이 말라죽어 색깔이 변하므로 풀 색깔의 변화에 맞추어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별 의미가 없다.

방아깨비를 공격하는 사마귀도 같이 변할 뿐만 아니라 곧 추위가 닥쳐와서 어차피 다 얼어죽기 때문이다. 방아깨비가 종족을 남기려면 색깔보다는 번식의 시기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것이 유리하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일찍 알을 낳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이다. 그런데 방아깨비는 메뚜기에 비해 훨신 큰 몸집을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하여 메뚜기보다 번식을 못하게 된다.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것은 짝을 찾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실은 귀가 밝은 새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가르켜 줄 뿐이다. 짝을 찾는데는 굳이 시끄러운 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많은 곤충들이 그러하듯 냄새를 피우는 것이 훨씬 쉽다.

누에가 굳이 그렇게 많은 실을 내어 단단한 고치를 만들어 봐야 나방이 나오기 어렵게 할 뿐이다. 어떤 것이든 효과가 있으면 반드시 두배의 역효과가 있으므로 생존을 위한 교묘한 위장술을 갖춘 종일수록 실제로 살아남기엔 어려워서 개체 수를 비교하면 아무런 무기가 없는 쪽 보다 훨씬 숫자가 적다.

대벌레가 교묘한 위장술로 새들의 공격으로 부터 자신을 감추면 그만큼 자기 짝을 찾기가 어려워져 종족보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그런 특별한 짓을 하는 것은 생태계의 진화를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나눠살이와 모듬살이는 동물이나 식물 안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은 통일한 전체 생태계의 차원에서 성립하고 진화는 개별 종의 차원에서 일어나는게 아니라 생태계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우연에 의하지 않고 정교한 설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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