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짱과 뚝심이 최고의 전략이다]
전략적으로 융통성있게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고집할 것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주의는 원칙을 지키고 전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회창반대에 집중해야하며, 백기투항 가능성을 고려하여 정몽준의원을 보호하고 이익치의 박쥐행각을 비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뜻보면 그럴 듯한 전략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적 사고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안됩니다. 왜 안되는가? 행동통일이 안되기 때문에 안됩니다.
정몽준의원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의외로 민주당에 대해서는 반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에 투항할 경우를 고려하여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정의원과 이심전심으로 힘을 합쳐 이회창공격에 치중하였다가 나중 정의원과 단일화를 논의하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해야 할까요? 천만에요! 꿈은 깹시다. 이야 말로 정몽준의원이 바라마지 않는 것입니다.
얼치기 전략가들이 초조해하며 함부로 나서고 있습니다. 타이밍 상 지금은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배짱이 전략이고 뚝심이 전술입니다. 우직하게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앞서가는 열걸음 보다 함께가는 한걸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길을 갑니다. 행동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뒤로 처집니다. 보조가 맞지를 않아요. 이때 발을 맞추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요?
뒤처진 장애인들에게 책임이 있나요? "야이 바보들아 왜 쫓아오지 못해?!"하고 장애인들을 다그칠까요?
섣부른 전술구사로 우리편끼리 자중지란 일어나면 지도부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 네티즌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것일까요?
민주주의는 혼자가는 열걸음이 아니라 함께가는 한걸음입니다. 원칙가와 전략가가 손발이 맞지 않을 때는 원칙가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바른 리더십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YS가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였습니다. 삼당합당의 고독한 결단을 내리면 속으로 마뜩치 않아도 대세를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좋았나요?
민주주의는 '당이 결심해도 옳지 않으면 우리는 하지 않는다'입니다. YS가 결단을 내려서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나를 쫓아오라!'고 외쳐서 안됩니다.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면 애초에 가지를 말아야 합니다.
어렵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 노무현입니다. 뒤처진 한 마리 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 자신도 믿지 못하는 10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하는 진짜 지도자를 만나버렸는데.
[민주주의의 유괴범 정몽준]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습니다만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 이나라의 민주주의는 정몽준이라는 유괴범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유권자라 불리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요. 아니면 후보단일화라는 1억원의 현금가방으로 범인과 협상해야 하나요.
역사상 딱 한번만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범인과 협상해서 민주주의라는 인질을 살리는 것이 옳겠지요. 그러나 사건은 계속됩니다. 한번 유괴범에게 굴복한다면 제 2, 제 3의 유괴범은 나타날 것이며 제 2, 제 3의 김민석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착실히 망쳐먹을 것입니다.
경찰의 오랜 수사경험으로 말하면 범인은 대개 인질을 죽입니다. 범인과 협상하여 인질을 살린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합니다.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절대로 옳습니다. 왜?
■ 범인이 인질을 죽여놓고 연락해 올 경우 - 당연히 경찰에 알려야 한다.
■ 범인이 인질을 살려두고 연락해 올 경우 - 경찰이 개입해야만 범인이 인질을 살려놓고 감당할 수 있는 시한인 3일 안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유괴사건의 경우 '문제의 3일'이 사건을 좌우합니다. 범인이 장기간 인질을 자동차 트렁크 뒤에 싣고 다닐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최초에 범인은 인질을 죽일 생각이 없었더라도 보통 3일을 전후하여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인질을 죽입니다.
다섯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1. 범인이 인질을 돌볼 수 있는 기한인 3일 안에 재빨리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2.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범인에게 확인시켜 범인을 안심시켜야 한다.
3. 목격자 없이 범인에게 현금을 전달하는데 성공해야 한다.
4. 목격자 없이 범인으로부터 인질을 돌려 받아야 한다.
5. 인질이 범인에 대한 일체의 단서를 가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범인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돈을 주면 인질을 풀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마음 약한 부모의 순진한 생각입니다. 대개 범인은 협상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결국은 이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하지 못하고 범행개시 3일을 전후하여 범인은 인질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경찰을 개입시켜 3일 이내에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이와 같습니다. '정몽준과의 흥정 어떻게 되겠지?' 천만에요. 인질범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끝입니다.
집에 들어온 강도를 설득해서 돌려보낼 수 있나요? 천만에요. 물리적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몽준이 당선되어도 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치겠지.' 천만에요.
정몽준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몽준 개인이 가진 능력으로는 점차 떨어지는 지지율과 분열되는 개혁세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호랑이를 잡으러 간 YS는 호랑이에게 먹힙니다. 한나라당은 민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3일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괴범은 인질을 죽입니다. 약한 모습 보여서 안됩니다. 단호한 응징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정몽준을 쳐야 합니다.
[누가 보조를 깨는가?]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앞의 승리를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전략전술의 길이고 하나는 원칙을 지키므로서 일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일단 이기고 봐야 되겠지요. 원칙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그쵸? 과연 그럴까요? 문제는 과연 행동통일이 되느냐입니다.
전술구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편끼리 보조가 맞지 않아서입니다. 손발이 맞지 않아서입니다. 반드시 뒤로 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로 쪼개집니다. 이때 분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일부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정몽준의원 보다 이회창의 집권이 더 낫습니다. 비굴하게 승리하느니 떳떳하게 야당을 해야 말발이 서고 주장이 먹혀들고 발언권을 얻습니다.
예컨데 민노당의 진중권씨 같은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판단할까요? 제 짐작으로 그런 사람은 정몽준이 당선되어 일어나는 혼란상 보다는, 이회창이 당선되어 성립하는 선명한 전선을 택할 것입니다.
그의 출세에 도움이 될테니까요. 이 경우 우리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민노당입니다. 좌파이데올로기라는 방패막이 안에서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그들과의 행동통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중권씨의 예는 극단적인 비유입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까라면 까는 YS시대는 지났습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은 옳지 않으면 결코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전술구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는 길이 옳더라는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전략적으로 융통성있게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고집할 것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주의는 원칙을 지키고 전략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회창반대에 집중해야하며, 백기투항 가능성을 고려하여 정몽준의원을 보호하고 이익치의 박쥐행각을 비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언뜻보면 그럴 듯한 전략적 판단입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적 사고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안됩니다. 왜 안되는가? 행동통일이 안되기 때문에 안됩니다.
정몽준의원은 한나라당의 정치공작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의외로 민주당에 대해서는 반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에 투항할 경우를 고려하여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정의원과 이심전심으로 힘을 합쳐 이회창공격에 치중하였다가 나중 정의원과 단일화를 논의하는 고도의 전술을 구사해야 할까요? 천만에요! 꿈은 깹시다. 이야 말로 정몽준의원이 바라마지 않는 것입니다.
얼치기 전략가들이 초조해하며 함부로 나서고 있습니다. 타이밍 상 지금은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배짱이 전략이고 뚝심이 전술입니다. 우직하게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앞서가는 열걸음 보다 함께가는 한걸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길을 갑니다. 행동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장애인들이 뒤로 처집니다. 보조가 맞지를 않아요. 이때 발을 맞추지 못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요?
뒤처진 장애인들에게 책임이 있나요? "야이 바보들아 왜 쫓아오지 못해?!"하고 장애인들을 다그칠까요?
섣부른 전술구사로 우리편끼리 자중지란 일어나면 지도부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 네티즌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것일까요?
민주주의는 혼자가는 열걸음이 아니라 함께가는 한걸음입니다. 원칙가와 전략가가 손발이 맞지 않을 때는 원칙가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바른 리더십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YS가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였습니다. 삼당합당의 고독한 결단을 내리면 속으로 마뜩치 않아도 대세를 쫓아갔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좋았나요?
민주주의는 '당이 결심해도 옳지 않으면 우리는 하지 않는다'입니다. YS가 결단을 내려서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나를 쫓아오라!'고 외쳐서 안됩니다.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면 애초에 가지를 말아야 합니다.
어렵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 노무현입니다. 뒤처진 한 마리 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어쩌겠습니까? 우리 자신도 믿지 못하는 10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하는 진짜 지도자를 만나버렸는데.
[민주주의의 유괴범 정몽준]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습니다만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 이나라의 민주주의는 정몽준이라는 유괴범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유권자라 불리는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요. 아니면 후보단일화라는 1억원의 현금가방으로 범인과 협상해야 하나요.
역사상 딱 한번만 일어나는 사건이라면 범인과 협상해서 민주주의라는 인질을 살리는 것이 옳겠지요. 그러나 사건은 계속됩니다. 한번 유괴범에게 굴복한다면 제 2, 제 3의 유괴범은 나타날 것이며 제 2, 제 3의 김민석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착실히 망쳐먹을 것입니다.
경찰의 오랜 수사경험으로 말하면 범인은 대개 인질을 죽입니다. 범인과 협상하여 인질을 살린다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합니다. 무조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절대로 옳습니다. 왜?
■ 범인이 인질을 죽여놓고 연락해 올 경우 - 당연히 경찰에 알려야 한다.
■ 범인이 인질을 살려두고 연락해 올 경우 - 경찰이 개입해야만 범인이 인질을 살려놓고 감당할 수 있는 시한인 3일 안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유괴사건의 경우 '문제의 3일'이 사건을 좌우합니다. 범인이 장기간 인질을 자동차 트렁크 뒤에 싣고 다닐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최초에 범인은 인질을 죽일 생각이 없었더라도 보통 3일을 전후하여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인질을 죽입니다.
다섯 개의 관문이 있습니다.
1. 범인이 인질을 돌볼 수 있는 기한인 3일 안에 재빨리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2.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범인에게 확인시켜 범인을 안심시켜야 한다.
3. 목격자 없이 범인에게 현금을 전달하는데 성공해야 한다.
4. 목격자 없이 범인으로부터 인질을 돌려 받아야 한다.
5. 인질이 범인에 대한 일체의 단서를 가지지 않았다는 확신을 범인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돈을 주면 인질을 풀어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는 마음 약한 부모의 순진한 생각입니다. 대개 범인은 협상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결국은 이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하지 못하고 범행개시 3일을 전후하여 범인은 인질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경찰을 개입시켜 3일 이내에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도 이와 같습니다. '정몽준과의 흥정 어떻게 되겠지?' 천만에요. 인질범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끝입니다.
집에 들어온 강도를 설득해서 돌려보낼 수 있나요? 천만에요. 물리적으로 제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몽준이 당선되어도 개혁세력이 하나로 뭉치겠지.' 천만에요.
정몽준은 민주주의를 파괴할 생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몽준 개인이 가진 능력으로는 점차 떨어지는 지지율과 분열되는 개혁세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국 호랑이를 잡으러 간 YS는 호랑이에게 먹힙니다. 한나라당은 민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3일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괴범은 인질을 죽입니다. 약한 모습 보여서 안됩니다. 단호한 응징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정몽준을 쳐야 합니다.
[누가 보조를 깨는가?]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앞의 승리를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전략전술의 길이고 하나는 원칙을 지키므로서 일시 죽더라도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일단 이기고 봐야 되겠지요. 원칙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은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이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그쵸? 과연 그럴까요? 문제는 과연 행동통일이 되느냐입니다.
전술구사가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편끼리 보조가 맞지 않아서입니다. 손발이 맞지 않아서입니다. 반드시 뒤로 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로 쪼개집니다. 이때 분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요?
일부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정몽준의원 보다 이회창의 집권이 더 낫습니다. 비굴하게 승리하느니 떳떳하게 야당을 해야 말발이 서고 주장이 먹혀들고 발언권을 얻습니다.
예컨데 민노당의 진중권씨 같은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판단할까요? 제 짐작으로 그런 사람은 정몽준이 당선되어 일어나는 혼란상 보다는, 이회창이 당선되어 성립하는 선명한 전선을 택할 것입니다.
그의 출세에 도움이 될테니까요. 이 경우 우리가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민노당입니다. 좌파이데올로기라는 방패막이 안에서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그들과의 행동통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진중권씨의 예는 극단적인 비유입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까라면 까는 YS시대는 지났습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은 옳지 않으면 결코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바른 길을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시행착오를 통하여 전술구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는 길이 옳더라는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