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까르푸에 이어 월마트가 철수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힘을 쓰지 못하는 현상은 이 외에도 많다. 네이버에 밀리는 구글과 한글에 밀리는 MS워드가 그렇다.

가요가 팝송을 밀어낸지 오래고, 영화도 국산영화가 헐리우드의 흥행기록을 깨뜨린지 오래고, 한류 드라마도 잘 나가고 있다. 일회성의 우연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문명사적 트렌드인 것이다.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뿌리도 많고 가지도 많다. 그러나 줄기는 하나다. 그것이 보편성이다. 뿌리에서 모여든 자원이 보편성이라는 줄기를 통과한 다음에는 특수성이라는 가지로 갈라지는 것이다.

씨앗이 처음 떡잎이 자랄 때는 한 개의 기둥이 보편성으로 자라난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어느 정도 크게 자라나면 굉장히 많은 특수성의 갈래가 나타난다. 21세기 이 문명이 지금 그러한 시대에 도달해 있다.

20세기는 산업화 시대이다. 근대주의가 힘을 쓴다. 근대주의는 획일성과 보편성을 추구한다. 표준을 추구한다. 근대주의는 뿌리와 가지 사이를 연결하는 하나의 큰 줄기다.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직장으로 출근해서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같은 방송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월드컵을 즐긴다. 그러나 이 현상은 20세기에 한정된다.

21세기는 정보화 시대이다. 탈근대로 나아간다. 표준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특수성을 추구한다. 이제는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최근의 양극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MBC 9시 뉴스를 시청률이 7프로대 까지 추락했다고 한다. 전성기의 35프로와 비교하면 대폭락이다. 다른 시간에 출근하고 다른 밥을 먹고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수준의 임금을 받고 다른 방송을 보고 다른 오락을 즐긴다.

왜 9시 뉴스를 보지 않는가?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남이 어떤 생각을 하면 나도 그 생각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이 어떤 생각을 하면 나는 다른 생각을 해야 승리할 수 있다.

본질을 살펴야 한다. 까르푸와 월마트가 한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인을 CEO로 쓰지 않은 현지화의 실패를 비롯하여 선진 경영기법 모두가 한국 실정에 하나도 맞지 않았다.

이것을 일일이 다 고치기 보다는 차라리 손을 떼는게 더 낫다. 영화나 음악이나 검색이나 워드나 다 마찬가지다. 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원인이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그 바탕에는 근본 소통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다. 결정적으로 현장에서 치열한 경쟁이 있고 매년 수 많은 혁신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한국의 경쟁사가 더 많은 혁신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12년 전부터 해 온 이야기다. 밑바닥에 토대가 되는 구조가 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글로벌기업도 대응할 수 없다.

필자가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월마트, 드라마, 구글, 영화, 가요 뿐 아니라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한국형이어야 성공한다고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에는 인류문명이 통째로 뿌리에서 일어나 줄기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보편성과 획일성과 표준에서 높은 효율성이 달성되었다.

그때는 언어도 세계공통어 영어를 배워야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세계공통어 에스페란토어가 시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다. 인류문명이 줄기에서 벗어나 가지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좌파들이 배우려고 하는 핀랜드나 덴마크나 노르웨이 형의 성공모델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왜인가? 그 서구의 강소국들은 이미 줄기에서 벗어나 가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줄기는 하나의 큰 기둥을 공유하지만 가지는 서로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제는 다양성이 대접을 받는 시대이다. 성숙한 문명이 인류에게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구를 배우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가 된다.

우리는 서구를 모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브랜드로 들이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산업화 시대를 끝막고 이제는 다양성이 꽃을 피우는 정보화 시대이다. 그것이 문명의 구조이자 역사의 구조이다.

구조는 과학이다. 구조는 물리다. 누구도 물리와 싸워 이길 수는 없다. 물리는 자연법칙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다. 구조야말로 뿌리와 가지를 연결하는 단 하나의 기둥줄기다.

주먹으로는 칼을 이길 수 없고, 칼로는 총을 이길 수 없고, 총으로는 전차를 이길 수 없고, 전차로는 전투기를 이길 수 없고, 전투기로는 핵폭탄을 이길 수 없다. 이것이 구조다. 사전에 승부는 정해져 있다.  

간단하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반대로 큰 그릇에 작은 그릇을 담을 수는 있다. 이것이 구조다.

가끔은 예외도 발견된다. 뛰어난 사무라이는 총잡이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사무라이가 설사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총잡이를 이겨서는 안 된다. 왜인가? 총잡이 열받아서 이번에는 기관총을 들고 오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열심히 수련한 사무라이가 정신력 따위로 총잡이를 한 번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로 된다. 앉은 황소를 따르는 인디언 수족이 커스터장군의 기병대를 몰살시켰다가 얻은 후과와 같다.

왜인가? 칼로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데 비해 총에서는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서 지속적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권총으로 안 되면 장총을 들고오고 소총으로 안 되면 기관총을 들고온다.

칼은? 칼로 안된대서 창을 들고온들 달라지는 것이 없다.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월마트나 까르푸가 포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므로 전략을 마련하여 한 두 번은 어떻게 승부를 걸어볼 수 있겠지만 이쪽에서 날마다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다. 단순한 구조와 복잡한 구조가 있다. 단순한 구조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복잡한 구조는 지속적으로 혁신이 일어나므로 결국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는 쪽이 승리한다.

그러므로 구조의 대결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호남+영남일부+충청+개혁세력이 다국적군을 결성하여 연합하고 있는 우리당이 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난다.

반면 한나라당은 구조가 단순하다. 총은 구조가 복잡하므로 고장이 나지만 칼은 구조가 단순하므로 고장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 벼른 칼로 고장난 우리당 권총을 제압할 수 있지만 ..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칼이 늘 총을 이길 수는 없다. 왜? 총은 망가질수록 더 많은 신제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가 복잡한 쪽이 단기전에서는 그 복잡한 구조가 고장을 일으켜 패배하지만 장기전에서는 이긴다.

한나라당은 구조가 단순하다. 영남이다. 이들은 뭉치기만 하면 이긴다. 그런데 뭉치려면 모여야 한다. 모이면 포위된다. 그러므로 결국은 진다. 단 한나라당을 포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로 된다.  

영화가 그렇다. 영화의 주제의식이나 작품성 분야에는 더 이상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거기가 한계다. 그러나 촬영기술에는 피아노줄 액션에서 CG로 진화하며 지속적인 혁신이 일어난다.

필자가 스필버그나 홍콩영화 그리고 김기덕의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구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걸작은 많다. 명감독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 주어진 자원을 잘 활용하여 갈고 닦아 명품을 만든 것이다.

김기덕은 구조가 복잡하다. 우선 판타지와 현실을 뒤섞어버리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비약을 집어넣는다. 그러므로 김기덕의 영화는 고장난 권총과 같아서 당장은 쓸모가 적지만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60년대 한국영화들이 리얼리즘 운운하며 멈칫거릴 때 홍콩영화들은 과감하게 뻥을 치면서 앞서나갔다. 그들은 허풍액션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구조적으로 더 복잡한 영화를 만든 것이다.

한국영화는 이미 김기덕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판타지와 현실의 믹스라는 기법을 동원하여 예전보다 더 뻔뻔스럽고 수완좋게 리얼리즘과 상업주의의 경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왜 한류가 뜨는가? 일본 드라마는 갈등구조가 단순한데 비해 한국드라마는 거기에 고부간의 대결을 곱하기 한다. 한국 드라마가 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더 많은 혁신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한국드라마의 수준은 아직도 낮지만 더 높아질 여지가 상당하다. 한류드라마는 한국드라마의 지금의 낮은 수준을 점점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으로 앞으로 30년간 아시아의 안방을 지배할 것이다.

일본 만화는 특이한 장점이 있다. 기독교 영향을 받아 선과 악의 대결이 치중하는 미국만화가 온통 슈퍼맨 일색인데 비해 선종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어떤 분야든 최고를 추구하기 때문에 지평이 넓어져 있는 것이다.

미국만화는 슈퍼맨 배트맨 빤스맨 ..  각종우먼.. 맨이 아니면 만화가 안 된다. 만화를 선과 악의 단순구도로 끌고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건 구조가 너무 단순한 거다. 그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근에 시작하고 있는 MBC 드라마 주몽은 주인공이 어리버리 하다가 사부를 만나 무예를 익혀 점차 상승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너무 궁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면 주인공은 처음부터 강하다.

강백호는 처음부터 '나는 천재야'..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부터 천재라고 설정하고 나가는 고행석의 불청객 시리즈가 인기가 있는 이유도 같다. 반면 이현세의 설까치는 전혀 천재가 아니다.

한국 만화의 주인공들은 반드시 무인도에서 지옥훈련을 하고와야 한다. 수준이 만화수준인 MBC의 주몽도 설까치처럼 지옥훈련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봐도 뻔한 거) 그러나 우리의 구영탄은 지옥훈련을 안한다.

구영탄은 원래 아이큐 250이기 때문에 지옥훈련을 생략해도 된다. 주몽은 처음부터 천재였어야 했다. 그렇게 설정되어야 드라마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주몽은 별수없이 궁예가 되어 내주의 지옥훈련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차이는? 일본만화와 같이 지옥훈련을 생략할 경우 굉장히 많은 응용이 가능하다는 거다. 즉 아류작품을 무한정 확대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봉성 만화와 고행석 만화는 작품수가 많다.

이현세나 허영만 작품은 작품 수가 그리 많지 않다. 또 그 많지 않은 작품도 대개 스토리 작가를 따로 두고 있다. 그러나 박봉성과 고행석은 그냥 작품이 포드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우르르 쏟아진다.

지옥훈련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박봉성은 지옥훈련을 생략하는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예 만화 제목이 신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무인도에서의 지옥훈련을 필요하지 않다.

이현세, 허영만 만화 주인공에게 반드시 등장하는 사부가 박봉성이나 고행석 만화에는 없다. 주인공이 초반에 조낸 깨지다가 숲속에서 은둔하는 사부를 만나 일취월장 실력이 늘어나고 그런 통과의례 없다.

한국의 설화는 자청비 설화나 바리데기 설화나 당금애기 설화나 다 마찬가지로 서천서역에 가서 지옥훈련을 거치고 아기 아홉 낳아주고 흰 빨래 검게 빨고 검은 빨래 희게 빨고 등의 지옥훈련 코스를 두고 있다.

이것이 구조다. 구조를 바꿀 경우 소재의 폭이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드라마는 무조건 주인공이 지옥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드라마 소재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다.

드라마가 다 비슷비슷해져서 주몽이 궁예가 되고 있다. 물론 일본만화도 약점은 있다. 그것은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주인공이 최고이기 때문에 적이 없다. 또는 적이 있어도 적이 주인공 만큼 강하지 않다.

그 때문에 갈등이 약하다. 대신 이 문제를 정밀묘사와 예술성으로 해결한다. 일본만화에 유독 전문지식을 다루는 만화가 많은 것이 그렇다. 주인공이 의사라면 작가는 의사 이상의 전문지식을 가져야 한다.

주인공이 요리사라면 드라마 작가는 실제로 일류호텔 요리사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 일본만화는 점점 전문서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이 경우 굉장히 많은 응용의 가능성이 있다.

이 원리를 한국의 드라마에 적용한다면 일단 고증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왕의 남자는 고증이 살짝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궁중연회 등등을 도입하여 고증의 수준을 높인 것이 사실이다.

왕의 남자는 광대의 줄타기를 비롯하여 굉장히 많은 역사에 관한 전문 지식을 전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엉터리이긴 하다. 어쨌든 왕의 남자는 그림자 인형 등 온갖 형태의 연극과 광대놀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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