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4299 vote 0 2007.02.01 (23:31:26)




인디언은 대머리가 없다고 한다. 수염도 잘 없다. (대머리 없는 인디언 이야기는 발모제 광고에 등장한다. 광고에서처럼 식물성 샴푸로 머리를 감아서 대머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없다. 수염은 간혹 나는데 몇 올 안되는 것을 족집게로 뽑아버린다.)

대머리 거지를 보신 적이 있는지? 서울역 지하도에서 대머리 노숙자를 보신 적이 있는지? ‘봤다’는 사람도 있기는 한데 사실이지 거의 없다.

‘대머리 거지는 없다’는 말은 이태리 속담이다. 중국 송나라 때도 ‘대머리 거지를 보는 일’을 7대 꼴불견 중 하나로 꼽은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대머리 거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드물게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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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지하도에는 두 명의 노숙자가 살고 있다. 수도하는 은자처럼 책상다리로 편하게 앉아 지나다니는 행인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은 신림역 생활이 2년을 넘긴 고참 노숙인이다.

고참 아저씨는 노숙을 즐기는듯 하다. 청소도구함에서 마대를 가져와 걸레질을 하기도 한다. 역 주변의 상인들을 사귀어 두기라도 했는지 얻어놓은 음식물이 넉넉해 보일 때도 많다.

맞은 편 구석에서 행인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쪼그리고 앉아 노트에 쓴 메모를 정리하고 있는 사람은 6개월 정도 밖에 안된 신참이다. 신참 아저씨는 서울역에서 방금 도착한 여행자인양 가방을 잘 챙겨놓고 있다.

이 분은 유난히 깔끔을 떤다. 머리칼도 단정하고 옷도 비교적 깨끗하다. 항상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기록하고 있다. 항상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을 뿐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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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풍경을 본 행인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가엾은 노숙자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고 ‘저 게으럼뱅이 보게나’ 하는 표정으로 경멸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도 있고, 정부의 무대책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고, 노숙자를 보지 못한 척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어느 쪽이든 좋지 않다. 노숙의 삶도 본인이 선택한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그 안에도 어떤 종류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의 삶이 본받을만한 삶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삶들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

글머리에서 ‘대머리 거지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 뜻은.. 동성애가 인류의 5~7프로를 차지하는 유전형질이므로.. 그 또한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해야 하듯이.. 노숙 또한 일정부분 유전일 수 있다는 거다.

‘동성애를 죽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걍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손님이라고 생각하시라. 영화 토탈리콜의 다양한 돌연변이 인종으로 보면 된다.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고 그 다양한 삶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 다양한 삶들이 인류문명의 깊이와 넓이를 심화하여..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대의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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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에덴 동산에서 인간은 수렵과 채집에 종사하고 있었다. 노숙인은 부시맨이나 피그미족과 마찬가지로 채집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문득 바람이 불어와서 앞서 가는 백인의 모자를 공중에 날려 버리면 뒤에 오던 인디언이 그 모자를 줏는다. 백인이 모자를 돌려달라고 부탁하지만 인디언은 모자를 돌려주지 않는다.

백인들은 인디언을 도둑 취급 한다. 그러나 인디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채집경제의 정상적인 작동방식이다. 그것이 인디언 사회의 정당한 룰이다.

인디언의 방식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인이 인디언을 오해한 것도 사실이다. 인디언은 도둑이 아니다. 인디언의 언어에는 도둑이라는 개념도 없다. 사유재산이 없는데 훔칠 일이 있겠는가?

인디언은 늘 백인의 말을 훔치지만 인디언 입장에서는 그 또한 정상적인 채집활동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인디언 관점에서 보면 말은 들판에 자유롭게 있는 것이고 그걸 울타리에 가둬놓은 백인이 이상한 행동을 한 거다.

아직도 아마존의 삼림 속에는 문명을 거부하는 인디오들이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을 굳이 문명화 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라면 존중해야 한다.

탐험가 백인 남자와 결혼하여 영국까지 와서 근대식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다시 아마존 정글로 돌아가 버린 36살의 인디오 여성 이야기도 있다. 무엇이 아기 둘 낳고 문명사회에 적응하여 잘 살던 그녀를 정글로 이끌었을까?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무언가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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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주류 질서가 있다. 노숙자를 동정하든, 혹은 노숙자를 방치하고 있는 정부를 비판하든, 게으럼뱅이라며 비난하든, 혹은 모른척 하든.. 그것은 그들을 사회의 기성질서에 편입하려는 부당한 시도가 된다.

사회의 질서가 전부는 아니며 그 질서 바깥에서의 삶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가 있다. 고참 아저씨에게는 은자의 삶과 같은 유유자적한 삶의 미학이 있고, 신참 아저씨 또한 아무리 다리가 저려도 바닥에 퍼질러 앉지 않는 고집의 미학이 있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 자기류의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고참 아저씨가 신참 아저씨에게 ‘왜 바닥에 편히 앉지 않느냐’고 시비하지 않고, 신참 아저씨 또한 ‘왜 세수도 안하고 사느냐’고 나무라지 않는다.  

인디언에 대한 편견, 노숙자에 대한 편견, 원시문명에 대한 편견들에는 문명사회의 질서에 대한 강한 집착 그리고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 기성질서에의 편입를 통한 자기 정당화의 심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념은 사회의 변화에 흔들린다. 세상은 지금도 부단히 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선패배로 하여 이 나라가 ‘반듯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며 좌절하는 딴나라 인간도 있듯이 말이다.

그들은 타격받은 것이다. 심한 내상을 입었다.

그러니 스트레스 안 받고 살려면.. 사회의 기성질서에 편입할 생각만 하지는 말고 자기류의 질서를 찾아볼 일이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는 나만의 고유한 질서를 창안하여 보기. 예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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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욕망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기성질서에 대한 집착도 실은 그렇게 끌어내어진 욕망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 또한 누군가가 찾아낸 것이다. 모두가 노숙자 신세였던 에덴 동산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욕망이다. 그 욕망들 중 가장 큰 부분은 자기정당화의 욕망일 터이다. 그것은 주류 질서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이다. 주변과의 관계를 질서있게 정립하는 방법으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으려는 태도.

그러나 그러한 욕망에의 집착이 도리어 인간의 삶을 왜소하게 만든다. 더 많은 다양한 질서들이 찾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이스 신화 이야기는 물론 백프로 거짓말이지만 르네상스로 부활한 유럽문명의 풍요로운 자양분이 되었다. 마찬가지다. 노숙인들의 삶, 인디오의 삶, 티벳인의 삶은 인류전체로 볼때 ‘문명의 자양분’으로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주류 질서만 알 뿐 변방의 작고 은밀한 질서들을 모른다. 그 안에도 은밀히 작동하는 1사이클의 미학적 동그라미가 있고, 삶이 있고, 가치가 있고, 기쁨이 있고, 꿈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계는 그 변방의 작은 질서를 낱낱이 해체하여 서구 기독교문명 중심의 주류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부단히 시도한다. 예술은 그러한 주류 질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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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무엇일까? 기독교도라면 예수님을 면회하는 일이다. 그것은 영적인 체험이다. 기적의 현장을 목도하는 것이다. 어떻든 그것은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불교도라면 깨닫는 것이다. 도교신도라면 아무런 걱정없이 편하게 사는 것이다. 유교주의자라면 가부장적 질서아래 잘 사는 것이다. 어떻든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의 형식에 대한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 말하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만나되 겉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고 체험으로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공감하고 호응하고 동의하고 동감하는 것이다. 만나지 못한다면? 만나도 서로 공감하지 못한다면? 한 편이 되지 못한다면?

영화 ‘왕의 남자’가 아니라 연산일기에 기록된 바 실제로 공길이 연산군에게 했다는 말..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니 양식이 있은들 어찌 그것을 삼킬 수가 있으리오’.. 하듯이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서로가 체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서로 동감하지 못한다면 양식이 있은들 삼킬 수가 없고.. 천금을 소유한들 쓸 데가 없고, 명성을 얻은들.. 그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도무지 의미가 없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을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사람은 안목이 없는 사람이다. 심미안이 없는 사람이다. 미추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가려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사람인들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겠는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 무슨 얼어죽을 공감이 있고, 동감이 있고, 마음으로 하나된 체험의 공유가 있고.. 울림과 떨림의 가슴저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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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자 아저씨는 몇 십년간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고향친구와 술이라도 한 잔 되면 장롱에서 배낭 한 개를 꺼내보이곤 한다. 그 배낭에는 금괴가 가득 들어있다. 금괴를 자랑하며 그 부자 아저씨는 말한다.

“이제는 걱정이 없어. 이 배낭만 있으면 돼. 이제는 전쟁 나도 까딱 없다구. 집이 불타고 논밭을 다 빼앗겨도 이 배낭 하나만 딱 짊어지고 가면 돼. 이것만 있으면 나는 이제 아무 걱정이 없어.”

이렇게 말하면서 흐느껴 운다. 그는 부자이지만 그의 삶은 빈곤하다.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소유는 공허할 뿐이다. 그는 저승 갈 때 아마 그 배낭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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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부인이었던 미스필리핀 출신의 이멜다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변명하곤 했다.

“내가 사치를 일삼는다구? 천만에! 나는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있는 거라구. 내가 이 좋은 궁궐과 좋은 옷과 삼천켤레의 구두를 사들인 덕분에 필리핀 민중은 멋진 영부인과 화려한 대통령궁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지. 이 모든 것이 필리핀 민중들의 것이야. 나는 조국 필리핀의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서 날마다 보석과 구두를 사모으고 있는 거라구.”

그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부자가 될 희망이 없는 가난한 필리핀인들은 이멜다의 사치와 낭비를 통하여 욕구를 대리충족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황된 것이다.

625 때 피난 온 부자가 금괴가 가득 든 배낭을 매만지며 안도하는 것이나 가난한 필리핀인들이 이멜다의 궁전을 보고 ‘필리핀 민중은 멋진 궁전을 갖게 되었다. 이건 조국 필리핀의 자산이다’고 말하며 흐뭇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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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얼어죽을 예술 타령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들은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모든 일은 동기부여로부터 촉발된다. 그리고 인생에는 다양한 동기들이 필요하다.

“원래 예술은 반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고, 피아노는 연주할 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작고한 백남준의 말이다. 백남준의 언설에서 새로운 방법의 동기부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이 가진 기성의 질서 있는 욕망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욕망의 존재 증거들을 제시하여 그들을 자극하기다.

예술은 세계의 질서 속에서 나만의 고유한 질서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는 주류사회의 기성질서 속에서 안도하기도 하지만 그 질서가 나 자신에게 내면화 되지 않으면 가난한 필리핀 민중들이 이멜다의 화려한 궁전을 소유하게 되었다며 자위하는 것 만큼이나 의미없다.

자기 자신의 고유한 질서를 가져야 한다. 그 질서는 근본 진리(眞理)에서 유도된다. 진리의 보편성에서 인간의 공동체적 가치를 유도하고 그 가치의 개인화를 통하여 각자의 삶에 의미를 반영한다.

그렇게 얻어진 의미 속에서 각자의 사랑을 실현하기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진리는 모두의 것이지만 사랑은 나만의 것이다. 모두의 공동소유인 진리에서 나만의 독점소유인 사랑을 유도해내는 과정에 예술이라는 방법의 의미부여를 통한 개인의 내면화가 있다.

가난한 필리핀 민중의 화려한 대통령궁 소유가 허황된 것은 그것이 집단에 공유될 뿐 개인에게 독점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나의 전부를 들어 당신의 전부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만의 것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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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우연히 그 사람을 마주친다 해도 그렇게 만나서는 만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은 심미안을 얻는 것이며, 심미안은 낱낱의 사물에 반영되어 있는 숨은 질서를 포착해 내는 능력이다. 예술이 심미안을 길러준다.

한떨기 작은 야생초에도 아름다움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다. 바람이 연주하는 잎새들의 속삭임에서 위대한 신의 음성을 끌어내기다. 그들 작은 미소들과 동감하고, 동의하고, 공감하고, 체험을 공유하고 그렇게 하나가 되는 과정을 실천하는 것이다. 곧 사랑하기다.

예술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숨은 욕망들을 끌어낸다. 백남준은 인간이 모르고 있었던 많은 작은 욕망들을 찾아내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성질서 속에 편입되지 않고도 나만의 독자적인 질서를 창안할 수 있게 되었다.

거대한 관현악단의 연주나 고독한 바이얼린의 솔로 연주나 그 예술의 무게는 같은 것이다. 함께할 수도 있지만 혼자할 수도 있다. 함께할 때의 질서에 호응하는 쾌감이나 혼자할 때의 질서를 창조하는 기쁨은 같은 것이다.

당신이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 여기에는 나만의 일관성이 있고 미(美)가 있다. 백남준이 그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유혹이다.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에게 예술은 진실이고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에게 예술은 사기요 시간낭비다. 용기있게 그 유혹에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왜인가? 그 유혹에 넘어간 사람만이, 그 유혹에 공감하는 사람을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건조한 인간은 누구도 유혹할 수 없다. 고로 사랑할 수 없다.

예술은 체험의 공유에 기초하며, 그 체험은 유혹에 넘어간 체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감이고 동감이다.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가? 그 타인은 당신과는 다른 종류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유혹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그의 인생은 실패일 터이다.

여기 까지 읽은 사람은 모두 낚였다. 그러나 낚여본 사람만이 낚을 수 있다.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유혹이다. 예술은 사람을 홀린다. 우리의 메마른 삶에 '동기부여'라는 이름의 샘물 한 바가지를 퍼붓는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과 실패

진짜 성공은? 그것은 재현 가능한 것이다. 독립적으로 계의 1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것이다. 근데 이건 테크닉으로 가능하다. 작품성이나 주제의식이 아니라.

그냥 만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글래디에이터도 재미가 있다. 글래디에이터가 중요한 이유는 ‘해외로케 괴담’을 깨뜨릴 수 있는 열쇠가 이 영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잘 분석하면.. 한국에서도 먹히는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을 찾아낼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는 드물게 블록버스터 전략으로 재미 본 케이스지만.. 한국은 바닥이 좁아서 해외로케 안 하고는 대작을 만들 수 없다.

충무로에 해외로케 블록버스터 흥행공식은 찾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땅덩이가 너무 좁아서 찍을 영화가 없다. 결국 해외로케를 해야 하고.. 그 경우 해외로케괴담이 적용되어 영화가 망한다.

해외로케괴담 뿐 아니라 판타지괴담, 사극괴담도 있는데.. 왕의 남자는 사극괴담을 훌륭하게 극복한 케이스다. ‘왕의 남자’를 잘 연구하면 해외로케 괴담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

해외로케가 낯선 외국으로 촬영을 떠난다면.. 사극 역시 과거라는 낯선 동네로 로케를 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2003년에 쓴 글을 인용하면 ..

“사극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을 180도로 뒤집으면 엄청난 대박이 된다. 춘향전이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이유는 춘향전은 누구나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즉 춘향전의 공간은 배우에게도, 감독에게도, 작가에게도 익숙한 공간인 것이다. 연기가 살아날 수 밖에 없다.”

무엇인가? 왕의 남자는 사극이 흥행에 실패하는 원인을 180도로 뒤집는데 성공한 예다. 왕의 남자는 춘향전의 광한루처럼.. 그리고 영화 ‘친구’의 범일동 골목길처럼.. 관객에게 익숙한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필자가 강조하려는 점은.. 모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이유를 알면 재현할 수 있고.. 재현에 성공하면 블록버스터 공식이 찾아질 수 있다는 거다.  

2001년에 나온 김성수감독의 영화 ‘무사’는 2000년에 나온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성공공식을 충분히 카피하고 있다.(특히 사실주의적인 촬영기술) 그런데 왜 관객의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 뻔하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이유를 분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글래디에이터의 핵심적인 성공이유는 점입가경법의 채택에 있다. 점입가경법이란 주인공이 미천한 신분에서 점차 상승하여 황제의 원형경기장으로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며 접근할 때의 흥분감을 말한다.


● 글래디에이터.. 시골검투사> 중앙검투사> 황제검투사로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룬다. 마침내 황제를 제압한다.

● 왕의 남자.. 시골광대> 서울광대> 궁중광대로 단계적인 신분상승을 이룬다. 마침내 왕을 제압한다.

● 무사 .. 노예> 자유민.. 신분상승의 측면이 부각되지 않는다. 주인공이 상승한 것이 아니라 공주가 추락한 사건이다.  


김성수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를 보고도 배운 것이 없다는 말인가? 이게 문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단한 걸작을 보고도.. 거기서 성공의 진짜 요인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예컨대 스필버그 영화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 영화 ‘죠스’에서 보여준 극단적인 클로즈업.. 상어의 아가리가 관객을 향해 확 달려드는 장면.. 그 수법이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의 아가리가 확 달려드는 장면으로 변주된다.

스필버그는 이 한가지 수법을 지루할 정도로 반복한다. 반복되기 때문에 관객은 다음 장면을 어느 정도 짐작한다. 이때 관객의 흥분감이 극도로 고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스필버그 영화를 베끼는 감독들은 이 수법을 두어번 써먹을 뿐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필버그 영화의 중요하지 않은 잡다한 테크닉을 골고루 베껴먹으려 하지만 이래서는 산만할 뿐이다. 베끼려면 본질이 되는 핵심적인 테크닉 하나를 집요하게 베껴야 한다. 한 놈만 패라는 말이다.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는 이 수법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는 같은 수법을 너무 써먹어서 눈감고도 다음 장면을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관객은 재미있다. 평론가는 얼척이 없어 벙찌게 되지만.

여기서 결론은.. 남의 작품 베껴먹는 일도 수월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베껴도 알고 베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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