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7075 vote 0 2002.09.26 (12:46:19)

장선우를 죽이고 싶다. - '성소논쟁을 마치며'

유쾌한 영화였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밑바닥에서의 거대한 새로운 시작의 용틀임이 느껴졌다. 물론 한쪽에선 어떤 위화감도 느껴졌다. 문제는 돈이다. 120억?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여기까지는 순수한 나의 판단이다. 이곳저곳에서 쏟아지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쓰다. 입맛이 쓰다. 재미없다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영화는 일단 재미있고 봐야한다.

"그래도 난 재미있던데?"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 어쩔 것인가? 캐첩만 먹던 사람이 고추장 맛을 알리 없다. 어쨌든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법. 장선우의 잘못이다. 캐첩맛에 익숙한 사람에게 고추장을 퍼먹였다면 요리사를 짤라야 한다.

영화는 많이 허접하다. 필자가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것은 그런 허접함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거슬리는 많은 장면들, 기본에 미달하는 상식이하의 신들을 나는 무시하기로 했던 것인데 다른 관객들은 그러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영화에는 그냥 버리기 아까운 많은 보석들이 숨어있다. 그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주인공 주가 제작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에 짜장면 배달을 온다. 직원들은 중국음식을 주문하지 않았다며 쫓아내려 한다.

주는 배달통(철가방이라 부르지 말라. 배달통이다.)에서 기관총을 꺼내 난사한다. 사무실은 박살이 난다. 조금 있다가 정신을 차리면 사무실은 멀쩡하다. 조금전의 난장판은 주의 상상이었던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 신은 진짜 짜증나는 장면이다. 멋지게 총을 난사해 놓고는 그게 상상이었다니. 이와 유사한 허접한 장면은 영화에 수도 없이 나온다.

"장난하냐?"

필자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다.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총을 쏘았다면 그 상상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필자는 지금 장선우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장선우시리즈는 이전에 끝났다. 지금부터는 필자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장선우의 영화가 허접하다고 해서 필자를 비난하지는 말기 바란다. 장선우는 욕을 먹어도 싸다.

지금 필자가 질문하는 것은 장선우가 천재감독 티낸다고 영화속에 교묘하게 숨겨둔 질문을 필자가 잘도 찾아내어 그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건 필자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다. 여러분은 지금 학교에서 수업 중이다. 선생님이 야단을 친다. 선생님을 패죽이고 싶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패죽이고 싶은가? 정말로? 내가 대신 죽여줘?"

아마 아닐 것이다. 그냥 죽이고 싶다고 느꼈을 뿐 그 죽음이 살인(殺人)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은 어느 게시판에 '자살하고 싶다'고 써놓았더니 어느 독자분은 '왜 아직 자살하지 않았니?'하고 묻더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의 만화도 있었다. 주인공이 증오하는 사람을 그 주인공의 충직한 하인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살해해버리는 것이다. 황당한 사건이다.

장선우를 패죽이고 싶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이 살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필자가 질문하는 것은 진짜냐 가짜냐 하는 점이다.

영화는 가짜다. 영화는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가짜를 진짜라고 생각하므로서 재미를 발견한다. 진짜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상상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게임의 가상현실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가짜다. 왜냐하면 그건 가상현실이니까?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는데도? 그렇다면 진짜로 가짜인가, 가짜로 진짜인가?

이런 질문이 재미있는가? 아마 재미없을 것이다. 이런 질문이 재미없다는 분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필자의 글을 재미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질문에 굉장한 흥미를 느낀다.

어떤 사람은 씨네21이 성소를 띄웠다고 비난한다. 필자도 동의한다. 씨네21은 너무 좌편향적이고 난해하다. 이런 난해한 잡지를 독자들은 왜 읽는 것일까?

씨네21의 성소띄우기는 제작사로부터 뒷돈을 받고 쓴 잘못된 기사이고 그런 잘못들 때문에 씨네21은 조만간 망하고 말 것인가?

그런데 필자는 영화보기보다 씨네21 보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기보다 평론가들의 분석을 해부해보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많지는 않겠지만 필자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대화가 통한다. 그 뿐이다.

실은 어느 누구도 장선우의 영화에 등장하는 라라처럼 총을 쏘지는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 영화에 등장하는 5인조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건 가짜다. 그러나 상상이라면 진짜다.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가짜가 진짜이다.

재미있느냐 없느냐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는 재미있었고 여러분은 재미없었다. 난해하기 때문에 씨네21을 읽는 독자도 있고 난해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 독자도 있다. 난해하기 때문에 씨네21을 읽는 독자가 더 많다면 씨네21은 발전할 것이고 그 반대라면 뒷돈먹고(?) 성소띄우기 벌인 씨네21은 조만간 망할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많이 허접하고 많은 관객들은 그 영화가 재미없었다 한다. 그렇다면 장선우는 그러한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븅신 삽질을 3년씩 열심히 하다니 패죽이고 싶다.

그런 허접한 영화에 재미를 느끼는 필자도 아마 븅신일 것이다. 이런 때 자살하고 싶다. 자살 자살 자살이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는 자살 자살 자살의 유혹을 받을 때 마다 소설 한권씩을 뽑아내었다고 한다.

자살의 유혹도 잘만 다스리면 창작열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 프랑스 인가작가 아멜리노통도 자살의 유혹을 소설쓰기로 극복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런 허접한 글로 다스리고자 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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