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12501 vote 1 2008.12.22 (00:49:50)

나는 간절히 원한다. 사랑

구조론을 말하고 깨달음을 말하지만 거쳐가는 정거장들일 뿐, 나의 진짜는 아니다.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낙담하고 만다. 사랑이란 말은 너무 흔하다. 오해할 것이 뻔하다.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영어 love가 아니라 그리스어 philo에 가까울 터이다. 그것은 간절히 염원하는 것,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는 것, 희망하는 것, 내 안에 뜨거운 열정을 품는 것, 목숨을 거는 것이 philo다.

어원으로 보면 philo는 팔을 뻗는다(petition)는 뜻이다. 목마른 이가 물을 향하여 팔을 뻗는 것이 사랑이다. 팔을 뻗듯이 그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절로 마음이 뻗히는 것이 사랑이다.

어원이 같은 단어로 physical, physics, physiology이 있는데 모두 ‘저절로 뻗어가는 자연’이라는 뜻이 있다. 그렇다. 사랑은 자연이다. 사랑은 자연히 그 대상을 향하여 마음이 뻗어가는 것이다.

목마른 이가 물을 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물과 불을 비교하여 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갈증이 가득차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내 안에 본래 그것이 가득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국 그게 그거다. love가 philo다. 구태여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근본은 하나다. 다만 ‘좋아한다’는 표피를 넘어 그 이면에 감추인 ‘왜 좋아하게 되었느냐’를 추궁함이다. 바닥을 알고 싶은 것이다.

사랑은 내 감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겉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차 있는 무엇이다. 내 속이 텅 비어 아무 것도 없는데, 갈증도 열정도 없는데 사랑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랑에도 계급이 있다. 구조의 다섯 단계가 있다. 저급한-동물적 사랑에 목숨 걸어봤자 헛되다. 밤새도록 생각하고 종일토록 생각하고 눈물 젖고 꿈에 그리고 그래봤자 감정의 유희일 뿐이다. 그럴 겨를조차 없어야 한다.

진짜는 과학이다. 사랑은 과학이어야 한다. philo는 physics이므로 진짜라면 과학이어야 한다. 선이 굵은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하나를 당기면 전부 끌려나오는 틀거리가 내 안에 갖추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댐의 낙차와도 같은 것이다. 개울물이 우당탕퉁탕 시끄럽게 흘러도 개울물일 뿐이다. 큰 강이 큰 바다와 만나고서야 큰 사랑은 이루어진다. 저 산과 저 강과 저 바다와 저 하늘처럼 존재하여 있는 것이어야 한다.

17살 때 깨달음을 표상하여 경구 하나를 만들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또한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 이 말에는 각별한 의미가 없다. 즉흥적으로 지어낸 거다. 중요한건 내가 스스로 그것을 기념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나다. 모든 출발은 나로 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나가 희미하다. 안개같고 이슬같고 풀잎같다. 뚜렷한건 신이다. 나의 존재가 이슬처럼 희미하기 때문에 뚜렷한 신의 존재와 연결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의 존재 그 자체는 의미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신이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앞에서 말한 경구에서 필연의 존재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신과 나, 현존재의 연결이다.

모든 사랑은 신과 나의 연결을 복제한 것이다. 신은 원본이고 나는 복제본이다. 복제본은 원본과 연결될 때 피가 돌고 맥박이 뛴다. 거듭 태어난다. 한낮에 사그라질 이슬이 내일 아침에 되살아나듯이.

신이 내게 팔을 뻗어 philo하였으므로 신의 philo를 복제하여 나 또한 네게 philo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향하여 가지를 쳐 나가는 것이다. 신의 마음이 내게 뻗혔으므로 내 마음이 그리로 뻗히는 거다.

라디오는 방송국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가진다. 가치에 이른다. 나라는 라디오가 신이라는 방송국과 주파수를 맞추고 스피커를 울릴 때 비로소 진짜는 시작된다. 그것이 내가 구하려고 했던 존재의 필연이다.

필연으로서의 사랑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연결된다. 그 연결은 필연적인 연결이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부모가 자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의 복제본이 내 안에서 전개하여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인 것이다. 비교되고 선택되고 대체되고 변개되고 거래된다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발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과학이다.

나와 너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과 인간이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방송국과 라디오가 연결되어 있어서 먼 길을 함께 간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과연 연결되어 있는가다. 작동하고 있는 가다. 굴러가고 있는가다.

깊은 분노가 용기있는 실천을 낳는다. 커다란 의문이 진정한 깨달음을 낳는다. 존재에 대한 근원의 불안이 뜨거운 열정을 낳는다. 그 만큼의 낙차가 내 안에 실제로 존재하여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면 안 된다. 신이 내게 팔을 뻗었듯이 세상 모두가 팔을 뻗어 서로 손을 맞잡으려면. 모든 사랑은 불완전한 복제본의 완전한 원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유래된 거다.

진짜는 사랑하다가 아니고 사랑이다. 은이 아니고 금이어야 한다. 돌이 아니고 옥이어야 한다. 직녀와 견우가 만나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한 하늘이, 한 우주가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에 팔을 뻗어 사랑인 거다.

www.drkimz.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08.12.22 (09:38:36)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 보고 보이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 결국은 근원의 하나에 연결되는.. 그런 사랑.
[레벨:1]청솔가지

2011.11.19 (10:48:22)

이거 다 책에 쓰여있는 거 아닌가요?

미안해요. 잘 읽어놓고선....그저 읽고..그치고  싶진 않아서요..

[레벨:0]카키

2013.04.05 (12:49:57)

그러나 , 처음엔 아니 지금도 그 사랑을 다 모른다.

어느 부모사이에 태어나  사랑을 받을 지 내가 선택할 수 없으니...절대 절명 부모 자식간의

그 어색하고 불평등하고 때론 서럽기까지 한 , 큰 사랑 앞에 유연해질수밖에.

우연히도 너무나 아무일 아닌 듯 찾이온 그 처음의 가슴 떨리던 사랑도,

좀더 멀리서 위에서 바라보고 내려다보면, 신의 의지, 계획, 우주의 원리...

뭐  그런것들과 연관이 있음과 또 다른 나를 만들고,  그 다음 이벤트를 위한 전조라는 것을

그 아득한 시간전에 짐작하였다 한들...

그 아픔이 , 눈물이 , 슬픔이, 보고픔이 ,초라함이,

없었을까 한다.

그 눈물나도록 좋음이, 푸르도록 아름다움이

없었을까 한다.

그 사랑... 

오늘도 하며 산다.  덜 아픔으로...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배태현배태현

2015.12.31 (03:35:10)

오랫만에 다시 읽었는데 역시 좋네요.
우연찮게 그 사랑과 잠시 조우하던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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