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피부색으로 가고, 인도는 카스트로 가고, 한국은 지역색으로 가고, 일본은 농촌당으로 간다. 차별의 표지를 따라 몰표가 가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교 세력의 발호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프레임 걸면 피곤해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다. 네티즌이 똘똘 뭉쳐서 몰표를 던지는 건 괜찮고 교회로 뭉쳐서 몰표를 던지는 건 안 되고? 노조가 뭉쳐서 몰표를 던지는 건 괜찮고 이대남이 일베로 뭉치는 건 안 되고? 이런 식이면 피곤하다. 구조론에서는 프레임을 걸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사건은 개인의 논리에서 집단의 심리로, 환경의 물리로 커진다. 논리로 옳은 것 중에 심리로 한 번 거르고, 물리도 두 번 걸러서 통과되어야 합격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옳으면 다 옳다는 생각은 무식하다. 만민이 평등해야 옳은데 왜 어떤 사람은 작은 키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큰 키로 태어나냐? 인류의 유전자를 통일하자. 같은 피부색, 같은 신장, 같은 외모로 시험관에서 태어나게 하자고? 동물권도 피곤하다. 왜 사람만 우대받냐? 고양이도 투표권 주자. 모기와 벼룩은 어디서 유권자 등록을 하지? 논리는 부분의 논리라는 말이다. 전체에 먹히는지 심리와 물리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실행에 비용이 조달되기 때문이다. 무뇌좌파 – 논리가 옳으면 옳다. 동물학대를 막기 위해 인류는 채식을 해야 한다. 육식하는 인간은 모두 때려죽이자. 일베우파 – 물리력으로 이기면 된다. 약육강식이다. 강대국이 약소국 치는 것은 정당하다. 역사 이래 늘 그래왔잖아. 논리로 따지면 비건에, 페미에, 성소수자에, PC에, 온난화 애들이 난동을 부리고 물리로 따지면 극우 깡패들이 난리 친다. 둘 다 피곤한 놈들이다. 그렇다고 어중간한 물타기 타협도 안 된다. 이런 것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좀 알아먹자. 옳은데 시행이 안 되는 제도는 많다. 주나라의 정전제부터 왕전제, 균전제, 한전제 하며 역사 시험에 골때리는 문제가 출제되는 이유다. 생각은 좋은데 실행하면 관리 감독의 문제로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세종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전분 9등법, 연분 6등법으로 작황에 따라 세금 매기면 좋잖아. 매뉴얼은 잘 만들었는데 예측가능성을 깬다. 세금이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이 좋은 제도를 모든 농부가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심사과정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비동의간음죄가 안 되는 이유도 지귀연 판사 만나면 좆되기 때문이다. 처벌이 판사가 누구냐로 정해진다면? 여자 판사는 일단 피해야 한다면? 사법부 불신이라는 본질을 놔두고 옳고 그름만 따지니 노무현 죽는다. 농부가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최상등급을 때려 세금을 왕창 걷어가겠다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세종의 이상적인 제도는 대실패로 끝났다. 농부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세금 몇 푼 더 내더라도 풍년이냐 흉년이냐 따지지 않는 게 낫다. 왜? 세금이 오르면 그만큼 일을 더하면 된다. 파종면적을 늘리면 된다.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뇌물을 바치라고 하면 견적이 안 나온다. 논리 뒤에 심리와 물리가 있는 이유는 이런 현실 문제를 책상물림 지식인, 공무원이 간과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사람 탓하는건 초딩이다. 제도의 구멍을 고쳐야 한다. 악당들도 제도의 구멍을 발견하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악당 없는 사회는 더 위험하다. 여기서 짜증나는 게 이렇게 말하면 아, 이준석도 나름 좋은 역할이 있구나. 이런다. 이준석은 때려죽여야 한다. 우리는 악당을 죽이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왜 사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차피 죽는데 왜 살지? 삶의 결론은 죽음이다. 죽는데 사는 이유는 답을 찾는 게 아니고 우리가 문제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출발점에 선다. 인생의 목적은 결과의 행복, 사랑, 성공이 아니다. 그건 바보들을 어르는 말이다. 애들을 단속할 목적으로 인생의 답은 행복이야. 답은 사랑이야. 성공이야 하고 사탕발림으로 꼬드기는 것이다. 사랑, 행복, 성공 다 필요 없다. 에너지가 중요하다. 열정이 중요하다. 흥분해야 한다. 설레이는 가슴이 중요하다. 호르몬 나와야 한다.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더 높은 레벨의 세계로 등급을 올리는 것이다. 결과가 중요하고 답이 중요하다고 믿으므로 오판한다. 초딩의 정답 – 착한 어린이가 보상받는다. 선해야 한다. 선은 논리다. 다들 비건이 되고,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페미가 되고, PC 정책을 따르고, 지구 온난화를 막고, 성소수자 운동 하자. 일베의 정답 – 돈이 최고다. 약육강식이다. 명문대 나와서, 강남에 입성하고, 미녀와 결혼하고, 포르쉐 타고, 명품을 사서 인스타에 올리자. 좆빠지게 공부한 만큼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 초딩좌파와 일베극우의 공통점은 둘 다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한탕주의다. 무뇌좌파 초딩과 일베극우 애어른이 싸우는데 둘 다 머저리라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왜 두 멍청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냐? 지역주의도 나름 밸런스 기능이 있다고 말하면? 그럼 나도 일베할걸 그랬나? 이준석도 나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에 포함된다면? 그럼 나도 개신당 가야지.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는데 애들 흉내 내면?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초딩좌파와 일베극우의 낮은 수준에서 탈출하여 높은 세계로 올라와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원인을 보는 세계다. 보상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어른들한테 인정받으려는 어린이의 마음을 들킨다. 우리는 선의 편에서 악을 물리쳐야 한다. 선은 논리다. 논리 중에 먹히는 것을 실현한다. 당장은 사법부 불신 때문에 차별금지법이나 비동의간음죄가 통과되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될 수도 있다. 옳은 것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싸우는 이유는 직업이 전사이기 때문이지 싸워서 무얼 얻는 게 아니다. 인생은 부단한 투쟁이며 얻는 것이 없다. 싸우는 자와 방관자가 있는 것이며 싸우는 자는 사람이고 방관하는 자는 똥이다. 방관하는 냉소주의자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싸우는 이유는 흥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는다. 얻는 것은 없다. 흙으로 돌아간다. 싸우는 이유는 호르몬 때문이다. 싸울 때 나의 존재가 완성된다. 싸워서 획득하는 게 아니라 전사로 완성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전사인가? 전사로 완성되었는가? 내 손에 활이 쥐어져 있는가? 흥분했는가? 긴장했는가? 집중했는가? 호르몬 나왔는가? 전사가 아니면 똥이다. 싸우는 자가 인간이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다. 강아지한테 간식을 던져주는 것은 훈련과정이다. 영리한 강아지는 간식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찾는다. 간식이나 얻어먹으려고 공을 물어오는 게 아니다. 공을 물어와야만 강아지로 완성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부분의 논리에 빠진 좌파의 독선과 전체의 논리에 매몰된 우파의 허무주의 사이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우파도 필요하니까 존재한다. 2030이 보수에 투표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90퍼센트 먹으면? 나라가 망한 거다. 우리가 옳지만, 우리만으로 안 되고 보수도 달고 가야 한다. 그러나 보수는 인간이 아니므로 매우 때려줘야 한다. 거름과 똥은 필요하지만, 밭에 뿌려야지 자신이 똥거름이 되려고 하면 미친 거다. 모기나 파리도 필요하지만 박멸해야 한다. 왜? 그게 우리의 임무다. 모기나 파리도 필요해서 존재하지만, 그 필요는 인간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용도다. 일베와 이준석은 사람한테 얻어터지는 게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물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오물을 없애는 훈련에 필요하다. 우리는 순진무구한 좌파가 되어서 안 되고 노회한 능구렁이 우파가 되어도 안 된다. 그들은 모두 결과에 매몰되어 있다. 우리는 활을 쏘는 사람이어야 한다. 화살이 어디에 맞는지는 관심 없다. 당신은 활을 쏠 수 있는가? 당신은 전사인가? 당신은 전사로서 완성되어 있는가? 당신은 적어도 사람과 말이 통하는가? 당신은 어른들의 대화 상대가 되는가? 이 부분이 중요하다. 사람은 신의 무대에 초대되고 짐승은 배척된다. 짐승도 나름 역할이 있지만 그것은 빌런 역할일 뿐이다. 우리는 무언가 성공해서 칭찬받고, 보상받고, 부자 되고, 사랑하고, 행복하며 잘 먹고 잘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건 바보들이 하는 소리다. 초딩이 엄마 나 백 점 맞았어 하고 인정받으려는 거다. 당신은 전사로 완성되어야 초대된다. 하나의 사람을 완성하는데 80억 명의 투자가 필요하다. 한 명의 스타를 키우려면 만 명의 관객이 필요하다. 당신은 스타가 되어야 한다. 관객이 되면 곤란하다. 관객은 보상을 바라지만 스타는 스타가 되는 게 보상이다. 별도 보상은 없다. 찍어주는 정답을 찾으려 하면 안 되고 스스로 높은 세계로 올라서야 한다. 순진한 좌파도 능구렁이 우파도 필요 없다. 물고기는 백만 개 알에서 하나가 성체로 자란다. 걔네들은 숫자를 채워준다. 우리는 특별해야 한다. 완성되어야 한다. 답을 찾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세상에 문제를 내야 한다. 좌파나 우파 뒤에 가서 줄 서는 승객이 되지 말고 스스로 핸들을 잡아야 한다. 논리집착은 어린이의 인정투쟁이며 물리집착은 노인네의 회피기동이다. 매달리는 자와 피하려는 자다. 논리에서, 심리를 거쳐, 물리로 왔으면 거기서 어물쩍대지 말고 높은 레벨로 올라가야 한다. 어린이는 논리를 배워 집단에서 역할을 얻고, 청년은 심리를 배워 세력을 이루고, 어른은 물리를 배워 그 힘을 사용한다.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게임판에서 선수가 되면 안 되고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새로운 게임을 설계하지 못한다면 인생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만렙을 찍고 최종보스를 잡아봤자 허무하다. 거기까지 올라왔다면 자기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을 완성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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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용두사미가 된듯. 평이 안좋네요.
개인의 논리와 시스템의 물리가 대결하여 동귀어진한듯. 아직 안봤지만.
시스템 교체는 생각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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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프론트맨의 입장 : 내가 죽어도 누군가는 이 자리를 메꿔야 해
근데 구멍을 메워서 프론트맨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왜냐면 경찰 세력이 배 타고 오징어 게임 위치를 찾았거든요
그런데 찾은 시점이 오징어 게임이 모두 끝나고 우승자가 정해지고 VIP들이 떠난 시점입니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 배후가 무엇인지 추적 조사는 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에서 오징어 게임은 없어지고 해외에서 다시 개최됩니다
프론트맨은 구멍이 없어졌으니 자유인이 되었고 일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정재는 시스템과 붙고 패배 후 나쁜 선택만 하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나쁜 선택을 하면서 다음 게임으로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최후에는 임신한 여성 참가자한테서 태어난 아기를 살리고 자신이 죽으면서 엔딩이 되었습니다
오징어 참가자 1등이자 최후의 생존자는 아기가 된 셈이죠
결론은 이정재 입장에선 논리가 물리한테 졌고
경찰의 입장에선 게임이 끝난 후 당사자가 모두 떠난 시점에서 게임장을 찾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결이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내가 주인이 되어야 풀린다.
주인이 되어야 판을 바꿀 수 있고, 답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