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는 진화 얘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 나름대로 "포화진화"라는 용어를 임시로 만들어 사용하려고 합니다. 영어로 풀어쓰면 evolutionary diversification to full niches 정도가 될까요? 이미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틀림없이 있을텐데, 당장 논문 검색에서 쉬 잡히지 않아서 임시로 만들어 씁니다.
이 포화진화의 의미는 한 두 소수의 분류군이 단기간 내에 폭발적으로 진화하여 대부분의 niche (ecological niche, 서식 환경, 생태계 위치 등을 일컫는 말)를 점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무려 2억년에 이르는 중생대 동안 공룡을 비롯한 파충류들이 육상과 바다, 하늘까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육상에서도 초식성 용각류 공룡들(Brachiosaurus 등)과 포식성 조각류 공룡들(Tyrannosaurus 등)로 각각의 niche를 형성했습니다 (모든 용각류, 조각류가 각각 초식성, 육식성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님).
6천5백만년 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공룡들이 멸종한 뒤에는 중생대 동안 내내 쥐 형태 정도의 niche를 벗어나지 못했던 포유류들이 폭발적으로 진화하여 공룡들이 사라진 빈 niche들을 차지하였습니다. 사자, 호랑이 등의 대형 포식성 포유류들과 얼룩말, 영양들의 대형 초식성 포유류, 코뿔소, 코끼리와 같이 몸집을 키운 포유류, 바다로 진출한 고래, 여전히 쥐와 같이 남아있는 포유류들까지 다양한 niche에 적응한 진화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늘은 공룡의 후손인 새들이 차지하고 있고요.
지리적으로 격리된 환경에서도 포화진화 현상은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구대륙과 아메리카에서는 경쟁에서 밀려 멸종된 유대류들(아기주머니 포유류, 캥거루 등)이 쥐 이상의 진태반류(자궁 포유류)가 없는 호주 대륙에서는 크게 번식, 진화하여, 그곳 호주 대륙에 주머니늑대, 주머니쥐 등 여러 포식성, 초식성 유대류들의 다양한 niche를 형성한 유대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비슷하게 다른 분류군의 포유류들이 없었던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섬에서는, 인간이 들어오기 전까지, 다양한 niche의 포식성, 초식성 이족보행 조류들(타조와 같이 날지 못하는 새들)의 분화와, 마치 초원의 코끼리와 같은 niche를 점한 거대 여우원숭이의 진화 결과들이 있었습니다.
즉, 다른 곳에서는 다른 분류군과의 경쟁의 red ocean에 밀려 특정 niche로밖에 진화하지 못했던 동물들이 특정 지역의 blue ocean에서는 경쟁이 없는 빈 niche들로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진화해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척추동물들이 육상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양서류의 출현), 지구의 육상은 곤충들을 비롯한 절지동물들이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는 날개 길이가 2m에 달하는 거대 포식성 잠자리도 있었지요.
여기서 조금 시각을 바꾸어, 역사적인 (지질학적인) 포화진화의 의미를 파충류 이후의 진화를 통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파충류인 것은, 파충류 이후의 진화가 비교적 최근의 진화이고, 거대 동물 화석들이 많아서 그래도 잘 분석된 내용들이 많고, 따라서 각종 niche에 적응해가는 진화적 다양성들을 얘기하기에 상대적으로 편하기 때문입니다.
양서류에서 파충류의 이행 과정은 뭐니뭐니해도 본격적인 육상 척추동물의 출현입니다.
양서류가 파충류로 이행하는 과정은 결국 물을 떠나서도 살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두꺼운 알 껍질, 수분 증발 방지용 피부 조직, 육상 보행용 수족과 골격 구조, 더 효율적인 순환계 (육상 생활은 아무래도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변화들은 일부 현존하는 양서류에서도 하나나 두,세 가지씩 발견되는 특징들입니다.
화석 기록을 보아도 골격 구조는 거의 육상 보행용인데 물갈퀴 구조의 발로 수초를 먹고 살던 양서류도 있습니다. 완벽하게 파충류로 분류할 수 있는 화석이 출현한 뒤에도, 그 파충류 골격의 생물들은 양서류들 세상 속에서 최소한 2천만년 동안은 큰 의미가 없는 분류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다양한 파충류 화석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3억년 전에 발생한 Carboniferous rainforest collapse (CRC)라는 지질학적 사건(많은 석탄층이 이때 생겼습니다) 이후입니다. CRC 이후 파충류들은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빠른 진화적 변화와 다양성들을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CRC로 급격히 건조해진 육상 조건 덕분일 것입니다. CRC 이후 파충류의 진화적 다양성들은 차츰 양서류의 그것을 압도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더 많은 niche에서 양서류와 경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골격 구조상으로 구분되는 대부분의 파충류 분류군들은 사실상 모두 나왔습니다만 (포유류의 조상형 파충류도 포함하여), 그것들의 niche는 아직 포화진화에는 크게 못 미쳤습니다.
그렇게 약 5천만년이 지난 후 다시 Permian-Triassic (P-Tr) 대멸종 (고생대와 중생대의 경계)이라는 엄청난 지질학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 이후 석탄층이 다시 형성되기까지 거의 천만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즉, 수백만년 뒤에야 지구의 숲이 회복되었다는 얘기). 사실 이 대멸종 사건은 지질학적으로는 단일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최소 몇십만년 이상 걸려 진행된 사건으로 보입니다. 지구의 모든 땅이 한데 뭉쳐져서 Pangea라는 거대한 단일 대륙이 형성되었고, 때문에 육상의 서식 환경이 극도로 간단해졌습니다. 중간에 혜성도 한 방 세게 때려준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 P-Tr 대멸종 사건은 멸종된 종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혹독한 지질학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특히 지구의 산소가 거의 고갈되어 있었는데, 그 때문에 바다 종의 96%가 멸종하였다고 합니다.
이 P-Tr 대멸종으로 육상에서도 양서류와 포유류 조상형 파충류를 비롯하여 많은 파충류들도 급격히 줄었다가, 그 이후 차츰 회복된 육상 환경의 빈 niche들에 폭발적으로 적응, 번식하기 시작한 것은 Archosauromorphan Diapsid라는 그룹입니다. 바로 이들의 후손이 공룡과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새와 악어입니다. 이 그룹을 이후 공룡형 파충류라고 부르겠습니다.
참고로, 나머지 현존하는 파충류인 도마뱀, 뱀, 거북은 다른 그룹의 Diapsid 파충류이고, 따라서 악어는 현존하는 다른 파충류인 도마뱀, 뱀보다도 새와 더 비슷한 동물입니다. 공룡형 파충류는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악어의 조상들이고 나머지가 본격적인 공룡들과 새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룡들은 현존하는 새들 무리와 더 가까운 파충류였고, 악어와는 조금 멉니다 (엄밀히 말해 새들은 공룡 그룹의 일부). 포유류는 이들보다도 훨씬 더 원시적인 Synapsid 파충류에서 기원한 동물입니다. 여기서 원시적이라는 말은 시기적으로 먼저 출현한, 조상형에 가까운 형태라는 의미일 뿐입니다.
P-Tr 대멸종 이후 3천만년 정도가 지나면, 앞서 얘기한 파충류의 포화진화가 완성됩니다. 대멸종 이전 대형 양서류들이 차지하고 있던 대부분의 서식 환경들까지 공룡형 파충류들로 완벽하게 대체됩니다. 그만큼이나 공룡형 파충류들이 폭발적으로 번식하고 눈부신 진화 다양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 이후는 무려 2억년 동안이나(!!!) 일명 공룡의 시대라고 하는 중생대가 이어지죠.
......그러다가, 그 2억년의 좋던 시절이 지나고, 지금으로부터 6천5백만년 전에 다시 혜성 충돌에 의한 Cretaceous-Tertiary (K-T) 멸종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으로 공룡들 중에 오직 새들 무리만 살아남게 됩니다.
(사실 중생대 중간에도 Pangea 단일 대륙이 쪼개지기 시작하면서 Triassic-Jurassic 멸종이라는, K-T 멸종보다는 살짝 약한 지질학적 사건이 있었지만, 공룡형 파충류의 완전한 멸종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논외)
이 K-T 멸종 이후의 결과는 이미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K-T 멸종으로 공룡들이 사라지자, 그 비어있는 niche로 포유류들이 급격하게 진화하여 지금과 같은 다양한 포유류 진화상들을 새로 구축하게 됩니다 (P-Tr 대멸종 이후 공룡 진화와 비슷하게, 이 포유류 포화진화에 약 3천만년이 걸렸습니다). 공룡과 같은 계통의 새들이 차지한 하늘만 빼고요.
그런데 사실 현존 포유류의 기본적인 분류군들은 대부분 공룡 시대인 중생대 때 이미 분화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룡들이 멸종하기 전까지 그 긴 시간 동안은 그 여러 포유류 분류군들은 모두들 대동소이하게 오늘날 쥐와 같은 형태의 niche들만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공룡이 자리를 비운 뒤에야 비로서 폭발적인 포유류의 진화, 즉 포유류의 포화진화가 가능했었습니다.
이상의 얘기들을 정리하자면,
지질학 기록에서 확인되는 다양한 생물의 진화 속도들은 명백히 환경 조건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환경 조건의 변화에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내용은 생물체들 사이의 경쟁 구도 변화).
후에 벌어질 폭발적인 혹은 빠른 진화 속도를 보여준 분류군들의 기본적인 형태들은 이미 거의 대부분 그 환경 변화 사전에 오랫동안 준비되어 있었던 것들로서, 그 이전까지는 긴 시간 동안 큰 변화없이 조용히 있다가 (이러다가 그냥 없어진 생물체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겠죠?), 그러다 천지개벽적인 변화가 도래하고서야 그것들의 포화진화와 같은 급격한 진화적 성공들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화학자들이 얘기하는 대진화의 의미는 사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실상 학계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적용례는 단순히 종 단위의 분화), 지질학적인 큰 시간 단위에서 대진화라고 얘기하는 내용은 바로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와 함께 수반되는 빠른 속도의 진화, 다양성 분화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대중에서 보통 얘기되는 지질학적 대진화는 사실상 생물 자체의 내부적 진화 동력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외부로부터 강제되었던 요소가 더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포화진화와는 다른 경우이지만, 환경 변화와 수반된 진화의 또 다른 예로서, 나중에 현생 인류가 갈라져 나오게 되는 인류 조상 계통의 유인원들이 밀림의 침팬지들에게서 갈라져나와 빠른 속도로 진화하게 된 사건도 그들 밀림 유인원들의 원래 거주 환경이었던 밀림이 지구 건조화로 크게 쇠퇴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물론 밀림 쇠퇴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초원에서의 직립 생활로 영역을 넓혀들어간 유인원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 못해도요.
김동렬님의 모듈 진화 이론을 가다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얘기해보았습니다.
지질학적 대진화는 사실상 생물 자체의 내부적 진화 동력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외부로부터 강제되었던 요소가 더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내부의 감추어진 동력은 외부환경에 의해 격발이 됩니다. 그 시기까지는 잠복된 채로 존재하죠. 겨울에 곰팡이가 없어도 숨어있는 겁니다. 사라진게 아니고.
대진화 개념의 핵심은 소진화와 방향이 반대라는 겁니다. 대진화는 모듈교체고 소진화는 이에 따른 불안정성을 해소해 가는 과정입니다. 즉 전혀 다른 두 진화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거죠. 이 둘은 완전히 다르게 작동합니다. 소진화는 환경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며 종을 안정시키는데, 그 경우 경쟁에서 우세를 점하여 초원을 장악하고 많은 자손을 퍼뜨리지만 대신 환경변화에 따라 멸종할 확률이 높아지죠.
구조론의 핵심
- 모듈개념으로 보면 굉장히 큰 진화도 지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
- 대진화는 모듈교체 형태로 단번에 비약적으로 일어난다.
- 대진화를 일으킨 종은 환경적응력이 떨어진다.(유전자간 충돌 모순, 취약)
- 환경적응 과정에서 소진화가 일어나며 소진화는 느리게 점진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 소진화는 특정 기관을 발달시켜서 환경과의 관계를 긴밀히 한다.
- 소진화가 일으킨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 소진화는 유전적 다양성을 잃는 방향으로 전개되므로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다.
- 소진화를 많이 일으킨 백인이 흑인보다 멸종확률이 높다.
굳이 더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좀 더 써봅니다.
코로나나 라이노와 같은 감기 바이러스들이나 독감 인플루엔자와의 비유는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infection이라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으니까요.
농경 사회 이후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조건에서나 이들 infection이 일상적으로 보여도, 조금만 조건을 바꾸면, 가령 가축이 없는 농경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들 바이러스들을 포함하여 대중적 전염병 자체가 거의 진화해오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합리적일 수 있는 비유는 아마도 암과 같은 질병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일평생을 기준으로 볼 때 암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유전 변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도 없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심지어 일부는 특정 조건에서 쉽게 암으로 전환될 수 있는 유전형을 물려받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전 변이들이 암으로까지 진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외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광의의 의미에서는 암조차도 유전병으로 정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암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전 질환으로 암을 바라보는 시각에 유용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특정 유전형이나 일부의 변이가 암의 소위 필요 조건일 망정 현실적으로는 너무도 부족한 충분 조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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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멸종의 원인에 대해서는 수없이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정리된 부분은 없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의 부족이라는 추정은 화석 기록이 부족했던 1900년대 초반까지만 유효했습니다. 공룡의 niche가 오늘날 소형 도마뱀과 같은 것들까지도 확인된 이상, 더 이상 의미없는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정할 근거가 없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공룡은 멸종된 것도 아닙니다. K-T 멸종 뒤에도 오늘날 새의 형태로 살아남았으니까요.
신생대의 한때까지만해도 이족보행 조류(사실상 깃털 덮힌 공룡으로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는 어느 정도 진화하여 포유류와 경쟁하였습니다. 최근까지도,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는 오히려 이족보행 조류가 포유류의 진화를 압도하여 포식 그룹을 차지하고서 여전히 쥐에서 벗어나지 못한 포유류를 사냥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섬에서의 포유류의 진화적 다양성은 나중에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여우원숭이가 거대화되어 마치 아프리카 대륙의 코끼리와 같은 niche를 점하게 된 정도에 그쳤습니다. (다른 얘기이지만, 알라딘의 거대 새 이야기도 고립된 마다가스카르의 독특한 생물상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K-T 멸종과 공룡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사실 그 상세한 일련의 과정들에서 아직 불명확한 ( )들이 많습니다.
김동렬님 지적대로 정확히, K-T 멸종의 명백한 가장 큰 원인인 Chicxulub 운석공은 궁극적으로 공룡이 사라지게 된 하나의 원인일 뿐입니다.
제 나름대로의 추정이지만 (물론 누구나 다 하는), 아마도 그 원인은 P-Tr 대멸종 이후 중생대에 공룡이 득세하게 된 부분으로 거슬러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P-Tr 대멸종 이후 그 어떤 공룡 그룹에게 유리했던 환경 요소가 K-T 멸종 이후로는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부분, 하지만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공룡의 시대라는 중생대도 그 2억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실 Tr-J 멸종을 비롯하여 여러 크고 작은 대량 멸종 사건들이 있었고, 그래서 그때까지도 잔존했던 거대 양서류들이 남김없이 쓸려가거나, 악어 조상 그룹들 등의 멸종들이 일어났던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김동렬님 생각과도 정확히, 특별한 niche에 고도로 적응한 생물들(거대 생물체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예에 속하죠)은 대개 이런 대량 멸종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고, 그나마 파충류의 소형 도마뱀, 포유류의 쥐와 같은 niche들의 다산의 잡식성 소형 동물들이 이런 위기를 넘기는데 가장 유리합니다. 하지만 P-Tr 대멸종 이후 증가한 공룡들이 Tr-J 멸종 등 이후에도 다시 회복하여 오히려 더 번성하기까지 했는데, K-T 멸종은 피해가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K-T 멸종 이후에도, 좀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소형 도마뱀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들도 살아남았고, 또 새들도 살아 남았는데, 새를 제외한 나머지 크고 작은 공룡들은 남김없이 사라진 어떤 근본 원인 같은 것이요.
일부 근접한 성과, 혹은 접근들은 있습니다. 가령 K-T 멸종 이후 대기 조건의 변화같은 것이요. 하지만 심폐조직같은 것은 화석으로 남지 않기 때문에, 중생대의 높은 이산화탄소 함량이 줄어든 것이 어떤 문제가 되었을지 추적하는 것이 아직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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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 글과 김동렬님의 댓글은 서로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제 글은 공룡 멸종의 이유나 과정에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신다면, 공룡 멸종(K-T 멸종) 이후의 포유류의 급격한 포화진화나, 혹은 CRC, P-Tr 대멸종 이후 공룡의 포화진화 등에 집중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K-T 멸종 이후 살아남은 공룡들(새 무리)이 공룡 시대 때의 화려함(중생대의 거대 조류)을 회복하지 못한 이유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룡 시대 내내 그 오랫동안 쥐 무리 정도의 niche를 벗어나지 못했던 포유류가 공룡이 없어진 경쟁 구도 하에서는 눈부시게 그리고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진화하여 다양한 niche들의 생물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을 지질학상의 대진화라고 하는 것이지, 대진화의 중심 논의를 공룡 멸종 과정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동렬님의 대진화, 소진화 개념은 구조론에서 나온 것일망정 보편적인 용어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제 얘기에서는 사용을 보류하겠습니다.) 대진화 중에서도 지질학상의 대진화로 표현한 부분은, 일부 불연속진화, 혹은 계단진화라는 말들을 사용하는 그대로, 특정 시기의 진화 속도가 크게 차이나는 부분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질학상의 대진화(포화진화)를 촉발시킨 원인을 중생대 내내 큰 변화가 없었던 포유류의 자체 내부 진화 동력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강제된 조건 하에 몇 가지 가능 그룹들 사이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행운 속에서 찾아야 하는가, 이 부분이 제가 썼던 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조건만 구비하고 있다면, (생물체들 사이의 바뀐 경쟁 구도 하에서) 그 어떤 분류군이든 각각 얼마든지 충분히 화려한 포화진화들을 보여줄 진화적 능력들이 있다는 부분도 적었습니다.
호주 대륙의 유대류들이나 마다가스카르의 이족보행 조류들, 그리고 바로 옆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기껏해야 사람 팔뚝만한 크기의 야행성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우원숭이들이 마다가스카르로 건너와서는 코끼리와 같이 군림하는 예들이요 (물론 여전히 작은 야행성 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도 있습니다.)
조금 규모는 작은 예들이지만, 다윈의 갈라파고스 핀치나 탕가니카 호수의 cichlid 물고기들의 분화와 같은 niche 분화들을 보아도, 생물체의 다양성 진화란 것이 어떤 조건만 마련된다면 거의 모든 생물체들이 보여줄 수 있는 생명체 보편적인 능력에 가깝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듈의 개념을 현실적으로 잡기는 어려워도, 진화 현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모듈을 가정해본다면, 이 진화적 모듈이라는 것은 특정 그룹에서 소모되거나 충전되는 특별한 진화 동력이라기보다 사실상 대부분의 생물체들에서 보편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때문에 거대척추동물들(보편적인 시각에서는 쥐나 도마뱀도 엄청난 거대 동물이지요)도 그보다 작은 규모의 동물들과 차별되는 niche들에서 진화적 안정성을 갖고 보존되어온 것이지요. 물론 이 niche들에서도 일체의 생존자들을 말살할 만큼 정말 엄청난 격변이 지구에 닥친다면,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해도 척추동물들과는 또 전혀 다른 분류군의 거대 육상 지배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좀 망설여지는데,
인종의 진화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인류학적, 분자생물학적으로 이미 확인된 연구 결과들을 반영하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과학원리 그 자체에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과법칙을 중심으로 논리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감기에 걸린다는 식의 주장은 액면으로 맞는 말이긴 해도 의미가 없죠.
감기는 추위 때문이 아니라 인플루엔자 때문입니다.
확실히 추울 때 감기가 기승을 부리긴 하지만 추위가 직접 원인은 아니죠.
흑인들이 가난한 이유는 백인의 착취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백인이 착취를 하긴 했죠.
백인의 약탈과 착취가 주변적인 요소를 구성하긴 해도 본질은 아닙니다.
본질적 원인은 흑인유전자 안에 있습니다.
공룡은 멸종하기 전에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습니다.
즉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대응을 못한 거죠.
진화에 방향성이 강할수록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지구에 환경변화가 오면 치타는 생존확률이 낮고 개는 확률이 높습니다.
개가 치타보다 더 변이가 많이 일어납니다.
치타는 한가지 능력을 극단적으로 발달시켰으므로 어떤 변이가 일어나도 무조건 그 능력을 잃게 됩니다.
느린치타가 태어날 확률은 높고 더 빠른 치타가 태어날 확률은 없죠.
개는 더 빠른 개가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느린치타는 살아남을 수 없죠.
이러한 방향성이 멸종의 원인입니다.
흑인의 경우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두 부시맨 종족(결혼관계 없는)의 유전적 차이가
한국인과 백인의 차이보다 큽니다.
즉 지구에 환경변화가 오면 흑인의 생존확률이 더 높다는 거죠.
흑인은 변이를 일으키지만 한국인은 변이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공룡은 멸종직전에 이미 변이의 가능성을 모두 상실했고
따라서 변이를 일으키지 못했으며 그것이 멸종의 직접원인입니다.
타이밍은 환경이 결정하지만 변이 자체는 내재한 메커니즘이 격발하는 것이며
진화의 방향성이 그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을 낮춥니다.
즉 진화할수록 진화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향전환을 못하는 것이지요.
자동차의 속도가 높을수록 급선회가 불가능해지듯이
환경변화를 당하여 방향전환을 해야하는데 고래나 코끼리처럼 특정한 기능을 발달시킬 경우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공룡이 멸종한 원인은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전적 잠재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진짜 원인입니다.
즉 모듈진화를 하기 때문에 모듈이 손상되며 종이 안정화 하는 방향성을 가졌고
따라서 모듈을 대체하지 못하여 망하는 거죠.
포유류는 그 방향성이 약했기 때문에 모듈대체가 가능했던 거죠.
방향성은 종이 유전적으로 안정화 하면서 환경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입니다.
코끼리의 긴 코, 개미핥기의 주둥이처럼 특수기관을 발달시키면 멸종확률과 생존확률이 동시에 높아지는데
일시적으로 우세를 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멸종하게 되죠.
포유류 조상은 환경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듈대체가 가능하여 살아남습니다.
과학가는 무엇보다 인과율 그 자체에 철두철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변적 요소와 직접원인은 구분해야 합니다.
직접원인은 항상 내부에 있습니다.
외부의 에너지 작용이 내부의 방아쇠를 격발하는 형태로 사건은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