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돌이켜보니 전교 TOP급 ADHD 학생들이 나를 만나면 쉽게 나아지더라.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나는 연기를 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를 존중하고, 너의 변화를 믿으며, 너를 기다려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그렇다고 참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내게 여유가 있을 때 2~3시간 이상은 끝짱 싸움할 각오로 언쟁을 하며 몰아붙였다.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나랑 승부보려면 2~3시간의 불쾌한 경험을 견뎌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 아이에게 준 것이다. 기싸움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때는 그 학생을 이겨먹어야 한다.
다만 기싸움을 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기싸움하다가 학생이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가서 안전사고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기싸움 중에 교사가 학생에게 공격을 받아서 교사가 교권침해를 받아 무너질 수 있으니 교육과 감각이 필요하다. 내 눈에는 보이는데 그 분들 눈에는 안보이고, 그렇다고 내가 훈수두는 순간 그분과 나와의 관계도 멀어질 것이 뻔하니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게 참 안타깝다.
그 학생과 부정적인 경험보다는 좋은 경험을 하고, 학생이 나아질 수 있도록 진부한 표현이지만 레포형성 - '나는 니가 좋아, 너랑 잘 지내고 싶어, 해치지 않을 게', '같이 한 번 해보자', '안되면 말고' - 을 하고 반아이들과 협력을 하면서 다른 학생들이 이 학생을 대할 때 '교사인 내가 그 학생 대하듯' 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도왔다.
이렇게 어느 정도 좋은 상호작용이 반복되면, 그 학생이 서서히 달라지고, 그 학생이 달라지는 만큼 다른 학생들의 스트레스도 줄어드니 ADHD학생의 변화에 가속이 붙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가 된 줄 알았는데 안된 거고,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방향만 맞다면 쉽게 좌절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예감이 나와 반 학생들을 압도하지 않도록 했다.
간혹 영화 '굿윌 헌팅'처럼 이 학생이 '내가 이렇게 못된 행동을 해도 나를 미워하지 않을 건가요?'. '선생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별 수 없어요' 라고 말하듯이 교사를 시험한다. 때론 자기도 못난 자기 모습이 싫고 변화가 귀찮으니 예전의 패턴대로 살려고 교사를 멀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끊질긴 사람이 이기는 법이고, 집요한 교사 이길 학생은 거의 없더라. 왜냐하면 그 학생도 더 나은 자신을 바라고, 공동체에서 의미있는 존재이고 싶으니까.
금쪽이의 부모들을 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사실 이 분들도 자녀 양육에 스트레스가 넘치고 지친 사람이고, 교사에게 자신의 자녀가 문제가 많다고 연락 안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니 나는 부모에게 답이 오든 안오든, 나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잊을 만하면 아이에 대한 정보, 아이와 있던 좋은 활동 사진을 보낸다. 그러면, 그 학생이 아무리 집에 가서 헛소리하고, 학교에서 있던 일을 왜곡해도 부모가 아이 말만 다 믿지는 않는다.
간혹 오해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땐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의 아이들이 본 것을 기억나는대로 적게 해서 부모에게 보낸다. '얘는 이렇게 아주 나쁜 행동을 했어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상황과 그 아이의 행동, 그걸 보는 학생의 마음을 간단히 적어서 보내면 부모도 아이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내 방식이 아니어도, 이미 좋은 교사운동에서 문수정, 최경희 선생님을 통해 정서행동 위기학생에 대한 긍정적 행동지원을 충분히 알리고 서울시 교육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은 교실에서 별을 만나다라는 책과 유튜브 영상(정서적 위기학생 검색)을 통해서 접해보시고 적용해보시면 좋겠다.
돌이켜보니 내가 학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그 학생의 문제행동이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학생 나름대로의 생존수단이고 학교생활을 적응하기 위한 방어기제라고 여기로 마음 먹었다. 그 학생을 적대시 하기 전에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였을 때 문제행동은 줄어들고, 권장행동이 늘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성취감과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좋은교사운동에서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반 동안의 교육정책을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을 촉구하는 온라인 토론회를 다음 주에 2회에 걸쳐서 진행한다. 어쩌다 정서적 위기학생에 대한 현정부의 정책에 대한 발제의 토론문을 쓰게 되었다.
사실 윤석열 정부가 무얼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행히 김영식 선생님이 발제문을 써주시고, 기사 검색도 하고 교육부 보도자료도 보면서 차근 차근 준비하려 한다.
혹시나 조언이나 의견 주실 분들은 댓글이나 페메로 알려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ADHD 학생들을 잘 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법학과 상담전공, 초등교육, 십수년 간의 과외경험, 교회에서 학생들을 오랫동안 만나고 생활한 것과 더불어.. 나도 ADHD 기질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항상 뭔가 이야기하다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 이 글도 그렇다. 이렇게 아이들을 홀리는 것인지, 같이 삼천포에 허우적대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아이가 나아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몇 개월 전 페북에 쓴대로 내게도 불편한 나의 가면을 내려놓고 아이와 있는 그대로 인간적인 생활하다 보면 아이는 나아진다.
이왕이면 혼자하지 말고 상담샘, 교장샘, 동학년 새샘들, 교과 전담샘들, 이전 담임샘들, 그외 그 학생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면 좋더라.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웬만하면 나아지게 되어 있다. 그 이상은 전문가 영역이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미리 도움받으면 헛고생 덜하니 더 좋기도 하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2.03 (13:30:45)

말로 설득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호르몬이 바뀌어야 합니다.

호르몬이 바뀌려면 일정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야 합니다.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므로 남학생은 남교사가 여학생은 여교사가 잘 해결할듯.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는데 덩치 큰 삼촌한테 끌리는 그런게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24.12.06 (10:01:13)

동렬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저는 같이 생활했을 뿐인데 아이가 달라져있더라구요.

그리고 부모와 협력이 필요해서 어떻게 해서든 부모에게 제가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들 좋게 보고 있으며

잘 도와주겠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더니 학교에 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자세가 달라졌고, 

자녀에게도 전에는 학교폭력 대응하듯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하다가 

친구들과 잘 지내보라고 하니까 확실히 애들과도 덜 싸우더라구요.

그리고 역시 주변의 아이들에게 시간이 걸리지만, 00이가 달라질 것이가 같이 해보자고 했고, 

00이가 조금씩 나아지니 다른 애들도 좋게 대하고, 상호 시너지가 생겨서 

아이들 모두가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평소 제가 애들에게 나는  그저 '동네 아저씨'이고 싶다고 했는데, 적어도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편안하게 다가간 것이 아이들 변화의 열쇠였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추론이 철학이다

2024.12.03 (22:42:15)

게이는 원래 게이고

내향인은 원래 내향인이고

ADHD는 원래 그런 성격인데

억지로 한 방향으로 맞추려는 사회의 기준이 문제인 듯하네요

아인슈타인 ADHD이며 학창시절 공부도 못하며 적응도 못했는데

원래 그런 성격이란 걸 알면 주변인들이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MBTI가 유행이라서 그게 과학적으로 맞다 그런 걸 떠나

각자 성격이 다르다는 것에 접근용으로 유용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얼핏 듣기로는 내향인의 뇌와 외향인의 뇌의 도파민 수용체는

외향인은 작은 자극에 반응하는 반면

내향인은 큰 자극에 반응하기 때문에 

외향인은 가벼운 얘기

내향인은 깊은 얘기의 주제로 흥미를 느낀다고 하더군요

뇌가 다른데 내향인보고 "왜 내향적이냐? 외향적으로 바꿔라" 이래 버리면 결이 어긋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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