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read 14886 vote 0 2004.02.16 (21:06:41)

왜 김기덕을 좋아하는가 하면 .. 이 양반이 좀 도사거든 .. 예컨대 유태인의 1차원적인 논리가 있어.. ‘죄지은 넘은 걍 돌로 쳐죽여라’ 이거거든.. 기독교가 약간 업글된 버전을 내놓았는데 ‘너희 중에 누구 죄 없는 자 있거든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런 말쌈이쥐..

이거 가지고 여태 해먹고 있었거든.. 장사를 말이지.. 뭐 한 이천년 해먹었다고 봐야지.. 근데 말야.. 불교는 약간 고수야.. 뭐냐믄..

● 죄 있는 자는 돌로 쳐죽여라! <- 헐리우드 영화의 논리임
●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 헐리우드에 맞서는 서구영화의 공식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친구가 죄를 지었거든 니도 죄를 짓는 방법으로 친구를 배려해주라’는 아주 고등한.. 고차방정식의 논리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석가형님인데 이 형아가 아시다시피 고수야. 대단한 고수지.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이 야그가 바로 그 이야기거든.. 무슨 말쌈인고 하면..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치라’는 예수의 화두를 석가가 풀어낸 야그라 이말쌈이거든

즉 예수가 2000년 전에 던진 화두의 답이, 석가가 2500년 전에 던진 말쌈이 되더라 이런 스토리쥐..ㅎㅎㅎ

예수는 화두를 던졌지만.. 하나의 강렬한 영감을 던져주었을 뿐, 그야말로 뇌세포를 간지럽게 하는.. 똥꼬에서부터 찌르르 전율이 올라오는 멋진 화두를 하나 던졌을 뿐 ... 답을 풀어내지는 못하고 떠나버렸는데 그 화두의 답이..

임제스님의 말씀하신 바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이 야그거든.. 이것이 왜 그러코롬 연결이 되느냐에는 또 곡절이 있지. 왜 그런고 하면.. 죄의식은 일종의 사회의식인데..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란 말이지.

결론인즉슨 인간의 모둠살이가 죄를 생산한 셈이거든.. 즉 철저히 고독한 개인으로 돌아가서 해원하고 상생하자 이것이쥐.. 죄를 극복하자는 말쌈이지.. 한 마디로 똑 잘라서 말하면

‘죄보다 죄의식이 더 큰 죄이니라’

이런 말쌈이지

실제로도 그렇지.. 죄 때문에 죄가 일어난 예는 매우 적고 .. 죄의식 때문에 죄가 일어난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아.. 히틀러가 러시아의 공산당을 막는다면서 수억 죽인 것이나.. 부시가 후세인의 죄를 막는다면서 이라크인 수십만을..

의약품 공급 안해서 죽이고, 식량 수입 방해해서 죽이고, 폭탄 던져서 죽이고 하면서 염병 한거나.. 무역규제를 해서 북한 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나.. 이것이 다 죄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잉된 죄의식이 도리어 죄가 된 경우이지..

근데 한마디 보태자면 .. 부시넘은 돌 던져서 보내버려도 괘않음.. 내가 예수형님한테 삐삐를 쳐봤더니 괘안태.. 고얀넘~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하여간에.. 그런게 있단 말이시.. 유태인의 1차방정식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2차방정식이 있고 선종불교의의 고차방정식이 있는데.. 또한 본질을 봐야 혀.. 예컨대 이런거지..

옛날에 원효성사라고 있었어.. 그때만 해도 불교도가 되기 어려웠지.. 종이도 귀하고, 먹도 귀하고, 붓도 귀하고, 책은 더 귀해서 상넘들은 돈이 없어서 불교를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가 없었지. 절집 옆으로 지나다니면서 담너머로 반야심경을 얻어듣는 것이 고작이었어.

인도의 브라만들은 하층민이 사원 옆으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경전 외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당장 잡아다가 귀에다 끓는 납물을 부어서 죽이거든.. 그 정도로 그 시대에 있어서 학문은 배타적인 권리였어. 유세가 대단했다 이거지..

신라시대도 마찬가지였어.. 근데 원효형님이 짠~ 하고 나타나서 무시칸 백성들에게 말했지.. ‘관세음보살 나미아미타불’ 이거 하나면 외라.. 그러면 당신도 훌륭한 불교도이다. 우리와 같이 평등해진다.. 이건 혁명이지.. 그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중국에서 교종시대를 끝막은, 보리 달마의 선종도 마찬가지여.. 달마가 괜히 할 일이 없어 동쪽으로 왔간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시.. 즉 불교도가 되는 엄격한 자격기준을 크게 완화시켜서 불교를 대중화시킨 것이지..

‘화두 하나만 들거라 글자 몰라도 되니라.’

예수가 한 일과, 원효가 한 일과, 보리 달마가 한 일이 본질에서 같다는 거지... 관문을 열고 문턱을 낮추기, 대중화 작업이지.. ‘史랑’님 글을 빌면 조선시대에 장시를 연 것과 같고 지금 시대에 인터넷을 연것과 같다는 말씀이지.

근데 참.. 김기덕감독 이야기로 돌아가서 .. 기덕이형님의 역할은 모냐? 헐리우드의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하는 1차원적 사고에 대항하는, 서구영화의 2차원적 사고 곧 .. ‘뉘 있어서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랴?’ 하는 화두를 완성한 최종 업글버전을 내놓았다는 거지..

‘화두’라는 것이 별 것이 아니고 뇌간지럼증에 걸리게 하는 씨앗인데 .. 화두를 들면 뇌가 간질간질해져서 몰입에서 못 벗어난다는 말야.. ‘삼매’라고 하는 거 말야.. 기덕이형아의 영화에는 그런 일종의 쾌감이 있어. 똥꼬 뻑적지근한 쾌감이지. 중독되면 못벗어나.

결론적으로.. 예수형님의 원죄론은 논리적으로 미완성이야. 문제는 ‘죄’야.. 죄란 무엇인가? ‘죄(罪)’ 그 자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구원은 불능이야.. 예수의 화두는 하나의 암시에 불과해.. 너도 죄를 지었으니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칠 자격은 없다.. 이건 아냐..

근본적으로 죄, 혹은 죄의식 그 자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돼.. 기덕이형님 생각은 인간이 가족이라는 형태로 모둠살이를 하면서, 사회를 이루면서, 타인의 삶에 참견하고 개입하고 간섭하면서.. 죄가 만들어졌으니 최초의 근원적인 상태로 회귀해야만..

아담과 이브의 본래마음으로 돌아가야만.. 죄의식을 떨치고.. 죄의식이 죄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고 인간의 최종적인 구원이 가능하다는.. 인간의 해방이 가능하다는.. 그러므로 본래의 고독한 개인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논리라 이거쥐..

그래서?.. 김기덕영화는 ‘반구상’이라 이거쥐.. 피카소의 업적과 비슷한 거야.. 피카소가 없었다고 생각혀봐.. 사진사들이 등장했어.. 화가들은 다 밥굶게 생겼지.. 초상화 한 장에 50만원은 받아야 먹고사는데 사진사넘들이 단돈 1만원으로 덤핑을 치거든..

피카소의 추상이 없었다면 화가는 다 굶어죽었어. 신규시장을 창출한 거지.. 헐리우드의 공세에 다 죽게 생겼는데 작은이야기를 위주로 하는 유럽 영화에 한줄기 빛과 희망을 던진거지.. 김기덕영화는 사실이지 내러티브가 부족해..

소설이라면 단편과 장편이 있어. 단편소설을 TV드라마로 찍으면 50분에 끝나거든.. 근데 극장영화는 단편의 소재라도 100분을 돌려야 해. 왜? 영화는 무조건 7000원으로 요금이 균일하거든.. 김기덕의 영화소재는 사실 30분 짜리야..

3000원이 적당한 가격이지. 근데 극장에 걸면 무조건 7000천원을 받거든.

미국영화는 대개 장편소설 비슷한 거야.. 대작이지.. 제작비 왕창들여 2시간 혹은 3시간으로 물량공세를 한다말야. 유럽의 작은영화들이 처한 입장은 그야말로 화가들이 사진사들에 밀려 굶어죽게 된 상황과 같은 거야.

근데 김기덕과 홍상수감독의 영화에는 작은 이야기로 100분을 채워내는 힘이 있어.

김기덕은 갖가지 상징과 비유와 암시로.. 인간의 뇌를 간지럽게 하는 요법을 쓰거든.. 즉 그림으로 대사를 대체한다 말야. 다른 영화라면 대사로 전달할 것을 그림으로 전달해.. 그래서 김기덕영화에는 주인공이 말을 안하는 경우가 많지.

홍상수는 그 반대야.. 다른 영화라면 그림으로 설명할 것을 주인공의 재미난 대사로 풀어낸단 말야. 그래서 장면전환이 없이 롱테이크로 찍어도 덜 지루하지. 관객들이 하품 안하고 집중할 수 있는거지.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작업은.. 그야말로 피카소가 추상을 고안해서 신규시장을 창출하는 방법으로 화가들을 먹여살려준 것과 같아. 어떻게 보면 그것도 구원이지. 김기덕영화를 보면 영화의 소재가 안되는 단순한 설정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

작은 영화의 구세주이지.

결론적으로 김기덕은.. 접근성을 높인다 이말이쥐.. 역사의 위대한 천재들은 모두 같아.. 예수는 난해한 유태교의 경전을 불쏘시개로 쓰고.. 하느님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말야.. 하느님은 참 멀리있는 존재였는데 예수 덕분에 가까워졌지.

원효는 불교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어. 불교에 입문 하려면 쌀 몇십섬을 시주해야 했고.. 스님이 되려면 값비싼 중국서적을 구해서 어려운 한문글자를 익혀야 했거든.. 귀족이나 되어야 스님이 될 수 있었지. 근데 원효의 야단법석(야외 부흥회)은 볏단 한단만 내면 받아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요것만 외면 합격시켜줘. 고맙지.

달마형님의 선종도 그래. 육조 혜능은 글자도 모르는 절의 종놈 신분이었어. 멋모르고 불목하니 하다가 졸지에 종통을 이어받은거야. 글자를 몰라도 화두 하나만 들줄 알면 된다 이거야. 불교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인 것이쥐.

선(禪)이 곧 인터넷이란 말쌈이쥐.

깨달음이란 것이 별게 아냐. 큰 '문'을 하나 만든 다음에.. 상놈이든 곰배팔이든 여성이든 네티즌이든 안가리고 다 들어와라 이거야.. 그게 쉬울 거 같지만 또 어렵다면 어려워.. 김기덕의 역할도 일종의 그런거쥐.. 담장을 헐고 반구상이라는 지름길을 열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깨달음에 대해서 다들 약간씩은 맛을 봤거든. 그래서 김기덕의 영화를 우습게 보는 거쥐.. 그 정도 생각은 나도 해낸다 이거야.. 그런 생각은 ‘피카소그림도 그림이냐’고 비웃는 것과 같은 거지.. 근데 도가 빈곤한 서구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야.

‘뉘 있어서 저 여인을 돌로 치랴?’

단순한 용서와 화해가 아냐. 죄와 죄의식 그 자체를 근원적으로 해체하지 않으면 안돼. 김기덕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지. 그는 이미 달마와 석가를 죽이고 왔거던.. 일생에 한번은 건너야만 하는 다리를 건넜다는 말이야.. 예수의 2천년 묵은 화두에 김기덕이 댓구를 했단 말야.

서구문명은 예수의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무려 2천년을 우려먹었어. 김기덕에 의해 업글버전이 나왔으니 또 이천년을 우려먹을 수 있는 양식이 생긴거야. 은곰상을 받을만 하지.

하여간 내 결론은 이래..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넘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난 말야. 저쪽 넘들 노가리는 조또 아니라고 보거든.. 무슨 근대가 어떻고 탈근대가 어떻고 조또 아니라는 말씀이쥐.. 그거 다 공자형님 석가형님의 발바닥에도 못미치는 하찮은 논리라구.

하여간 페미니즘 입장도 있고.. 여성주의 쪽의 반대논리도 분명 있지만 .. 그건 그것대로 존중해주면 돼.. 참고는 하되 가던 길은 계속가야 한다는 말이쥐..

뭐 간단혀..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해.. 개가 변소에 빠졌어.. 개를 구하기 위해 팔을 뻗으면 개는 자신을 해치려는 줄 알고 그 팔을 물어.. 안타까움 뿐이지.. 그 변소에 가득한 죄를 다 퍼내는 수 밖에 없어. 원래부터 그랬어.

죄를 미워하고 죄에 물든 사람을 건지려 해서는 결국 실패해. 사람을 구하는 대신 죄를 건져내는 방법으로만 해결이 돼.

지리한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결론적으로.. 요즘의 추세나 경향은 한국이 세계를 제패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는 거야. 자기비하의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용기를 내자는 말쌈이쥐.. 우리도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이지..

딴잔샴에 발목이 잡혀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빨리 진도나가야 한다는 야그야.. 그런 얘기가 하고싶었던 거지. 나는.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263 이해찬의 미소 image 김동렬 2004-12-28 14250
1262 위기의 우리당 image 김동렬 2004-12-27 14584
1261 보안법, 최후의 승부가 임박했다 image 김동렬 2004-12-23 14203
1260 "뭘하고 있어 싸움을 걸지 않고." image 김동렬 2004-12-22 14458
1259 누가 조선일보의 상투를 자를 것인가? 김동렬 2004-12-21 13065
1258 중앙은 변할 것인가? 김동렬 2004-12-18 13134
1257 홍석현의 출세신공 김동렬 2004-12-17 15789
1256 강의석군의 서울대 법대 진학을 축하하며 김동렬 2004-12-16 15641
1255 박근혜간첩은 안녕하신가? 김동렬 2004-12-15 14432
1254 박근혜 깡패의 화끈한 신고식 김동렬 2004-12-14 13831
1253 나가 죽어라, 열우당. 스피릿 2004-12-13 15695
1252 짐승의 이름들 김동렬 2004-12-11 14386
1251 자이툰은 씁쓸하지 않다 김동렬 2004-12-09 14053
1250 대통령의 아르빌방문 김동렬 2004-12-08 16746
1249 천정배, 살아서는 못내려온다 image 김동렬 2004-12-08 14991
1248 혼자서도 잘 노는 조선일보 김동렬 2004-12-06 13473
1247 돌아온 강금실 김동렬 2004-12-03 14805
1246 일어서라 유시민 김동렬 2004-12-01 14427
1245 조중동의 3연속 병살타 image 김동렬 2004-11-26 14056
1244 유시민도 있는데 왜 김두관이냐? image 김동렬 2004-11-25 14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