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문제의 본질은 엘리트 길들이기 우리는 막연히 자유, 평등, 박애 따위를 주워섬기며 낭만적으로 접근하지만 그런 구호들은 어떤 아저씨가 3초 만에 생각해낸 레토릭에 불과하다. 마르크스 아저씨가 계급투쟁 어쩌고 하며 떠들지만, 화장실에서 똥 누다가 생각해낸 개소리에 불과하다. 똥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누구나 그 정도는 생각해낸다. 본질은 권력투쟁이다. 자동차라면 엔진이 있고 사회의 엔진은 엘리트다. 그 엘리트를 어떻게 발굴하고 양성하고 조직하느냐다. 엘리트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엘리트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념이란 것은 어떤 아저씨가 얼떨결에 투척해본 단어 몇 개가 우연히 식자들의 눈에 띄어 먹힌 것이고 혁명의 본질은 힘과 힘의 대결이며 개를 길들여도 강형욱 훈련사가 개고생을 하는 판인데 대한민국 엘리트 길들이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개가 가자는 대로 견주가 따라가면 안 된다. 사실은 개도 사람의 간을 본다. 주인이 힘이 있는지를 테스트한다. 견주가 단호하게 목줄을 당겨야 개는 ‘이 주인 믿을만하네. 한번 의지해 보겠어.’ 하고 만족해한다. 문재인의 핸들링이라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검사와 조중동과 기득권을 매우 때려줘야, ‘어? 이 운전사 핸들링 좀 하네. 문어벙이 아니었어. 타고난 레이서잖아.’하고 엘리트도 만족하는 것이다. 보통 다섯 차례 정도의 푸닥거리가 있다. 419 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이 있었다. 푸닥거리 한 번 더 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도 반동과 반동의 반동을 거치며 부르주아들이 방데 농민학살과 파리코뮌에서의 노동자 학살을 거치며 별별 생쇼를 한끝에 겨우 이룬 것이다. 본질은 시스템의 구축이며 원래 쉽지 않다. 피가 강처럼 흘렀다. 그게 역사의 교훈이다. 미국이라도 신대륙 이주, 독립혁명과 미영전쟁, 남북전쟁, 민권운동, 반전운동을 거치며 겨우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일본은 그런 푸닥거리를 별로 하지 않았다. 명치 이후로 몇 번의 쿠데타와 정치적 음모가 있었을 뿐이다. 원자폭탄 먹고 정신 차렸지만 후쿠시마에도 불구하고 다시 헬렐레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신해혁명과 국공내전, 문화혁명을 거치며 제법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슬슬 나사가 빠지고 있다. 혼란기에 권력을 쥔 엘리트들은 반드시 폭주를 저지른다. 그게 군부든, 검사든, 조중동이든, 관료든, 시민단체든, 의사든 패거리의 힘이 공세종말점에 도달할 때까지 폭주하며 찔러본다. 역사의 필연법칙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권력공백이 발생하자 폭주하는 마적단과 군벌들처럼 말이다. 삼국지에도 나온다. 헌제가 동탁에게 잡히고 조조에게 억압되자 권력공백 노리고 제후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제각기 개판쳤다. 원술이 옥새를 주워서 멋대로 황제를 선언하는가 하면 원소는 유우를 황제로 옹립한다며 난리를 쳤다. 부르주아들의 무개념도 알아줘야 한다. 바보 나폴레옹 3세를 앉혀놓고 개판친 프랑스 부르주아들 말이다. 나폴레옹 3세는 안철수다. 부르주아 요구 다 들어주겠어. 귀족들? 부활시켜 주겠어. 농민들? 소원수리 해주겠어. 만인에게 두루 아부한 것이다. 빌헬름 2세도 그런 식으로 맛이 갔다. 부르주아들은 자기들이 혁명을 시작해놓고 자기네 손으로 황제를 옹립했다. 왜? 바보를 앉혀놔야 해먹기 좋거든. 바보 영삼 앉혀놓고 주무르려고 시도한 조중동 패거리와 같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폭주하며 찔러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매우 때려주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의 엔진이 되는 엘리트와 기층민중 사이에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선을 넘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푸닥거리를 반복하게 된다.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구호나 몇 개 쓴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정치가 장난이냐? 현실은 냉정하고 인생은 실전이다. 혁명의 본질은 엘리트와 기층민중 사이에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시스템의 구축이며 그 과정에 엘리트는 자멸할 때까지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공세종말점에 이르도록 제힘으로는 멈추지 못한다. 훌륭한 견주는 단호하게 목줄을 당겨야 한다. 훌륭한 지도자는 단호하게 엘리트를 제압해야 한다. 의사, 검사, 판사 등 사짜 붙은 자들을 조지고 기레기를 갈궈야 한다. 엘리트를 길들이는 것이 혁명의 본질이다. 녹초가 될 때까지 마구 털어줘야 한다. 자동차는 엔진이고 사회는 엘리트다. 구조론은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하는 엘리트주의 사상이지만 엘리트를 방치하거나 패거리에 끌려다니면 안 되고 적극 길들여야 한다. 엘리트를 연주할 줄 아는 초엘리트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미덕이다. |
"구조론은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하는 엘리트주의 사상이지만 엘리트를 방치하거나 패거리에 끌려다니면 안 되고 적극 길들여야 한다."
- http://gujoron.com/xe/1230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