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권력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안에 무엇이 있나? 권력이 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결국 한 가지 권력욕의 다른 버전들인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고 한다. 아니다. 인간의 욕망은 그다지 크지 않다. 문제는 권력에는 반드시 대항권력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필요이상 돈에 집착하는 이유는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권력의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 왜? 곧바로 대항권력이 뜨기 때문이다. 구조론으로 보자. 광장권력이 출발점이다. 광장권력이 커지면 정치권력이 뜨고, 정치권력이 커지면 경제권력에 뜨고, 경제권력이 커지면 문화권력이 뜨고, 문화권력이 크지만 도덕권력이 뜬다. 광장, 정치, 경제, 문화, 도덕이라는 이름은 필자가 가져다 붙인 것이니 이름에 현혹되지 말자. 본질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예컨대 경제권력은 현장 실무자의 권력이다. 무슨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평등하게 회의해서 결정한다. 안건이 채택되어 사업이 진행되면 책임자가 정해진다. 최초의 평등은 광장권력이요 책임자의 권한은 정치권력이요 그다음에 실무자가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경제권력이다. 사건의 진행에 따라 권력의 주도권이 계속 바뀌어 간다. 이를 거부하면 망한다. 북한이 그렇다. 시장에 권력을 넘기지 않고 김정은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니 당연히 망한다. 노무현은 시장에 권력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무뇌좌파들은 일제히 비난했다. 북한처럼 하라는 거다. 고인물은 썩는다.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면 망한다. 다음 단계가 쳐들어와서 권력을 빼앗아야 한다. 처음은 프런트가 하고 다음은 감독이 하고 다음은 선수가 해야 한다. 프런트가 다 하는 LG 망하고 감독이 다 하는 김성근 망한다. 그러므로 일의 진행에 따라 반드시 대항권력이 뜨는 것이며 그러므로 권력을 오로지 하려면 더욱 큰 일을 벌여야 한다. 건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을 탐하면 물질을 조달하면 된다. 명품백을 원한다고? 명품백을 주면 된다. 뭐가 문제지? 문제는 권력이다. 명품백을 원하는게 아니고 그 명품백을 나만 가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물질을 제공해봤자 폰카로 찍어서 SNS에 올릴 뿐 제대로 먹지도 않는다. SNS에 올려놓고 남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기다리며 그러한 권력행사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비싼 음식을 사줘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왜? 좋아요를 안눌러주니깐. 더 비싼 음식을 찍어서 페북에 올리면 좋아요를 눌러주겠지 하고 더 비싼 것을 먹으러 간다. 끝이 없다. 왜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을까? 대항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방에게 대항하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항권력도 권력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옳은 말을 해도 '흥!' 하고 콧방귀를 뀌어야 한다. 그것이 대항이다. 찰지게 대항해줘야 한다. 어떤 사람은 무소유를 주장하고 내려놓아라고 주장하지만 그게 교묘한 권력행사다. 남들이 한사코 돈으로 몰려가니까 경쟁률이 빡세네. 그렇다면 난 그 반대로 가서 시장을 개척해야지 하는 계산된 대항행동이다. 나름 블루오션이다.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는게 아니라 권력에는 반드시 대항권력이 있으므로 권력을 더 높여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답은 에너지에 있다. 에너지는 통제가능성이다. 광장권력,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도덕권력의 순서로 가야 통제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를 지켜야 한다. 인지의신예다. 순방향은 통제되고 역방향은 개판된다. 인간은 집단과의 관계를 맺고 집단 안에서 혹은 환경과의 관계를 맺고 그 환경 안에서 상황을 보기좋게 통제하려고 한다. 행복은 그러한 통제의 성공이 되겠다. 에너지가 있어야 통제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인간은 약자가 되려고 한다. 주인은 하인을 통제할 수 없지만 하인은 주인을 통제할 수 있다. 하인이 실무자이고 실무자에게 권력이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새로운 일에 가담할 때는 주인이 통제하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은 하인이 통제한다. 뒷좌석에 앉은 사장님도 차가 출발하면 운전기사에게 복종한다. 나쁜 남자를 사귀거나 혹은 폭력적인 남편에게 복종한다거나 하는 예가 그렇다. 자유한국당에 투표하는 일베충의 심리가 그러하다. 진보가 집권하면 정권이 죄다 해먹으려고 하지만 보수가 집권하면 정치권력만 가져가고 경제권력은 내준다고 믿는 것이다. 보통 그렇게 망한다. 그런 역할분담을 열심히 한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부족장 권력을 존중하다가 망했다. "영국에서는 파키스탄 갱단에 의해 소도시 로더럼에서 16년간 집계된 것만 최소 1,400명의 15세 미만 백인 소녀가 납치, 인신매매, 강간, 윤간을 당한 것이 밝혀졌는데, 이에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는 현지 경찰이 인종차별로 마녀사냥 당하는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있다. 펀잡 주에서는 아리파 비비라는 젊은 여성이 돌에 맞아 죽는 투석형을 당했다. 이유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더 기가 막힌 것은, 샤리아 법원 명령에 따라 그녀의 가족들이 사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2016년에는 212명이 명예살인을 당했다. 거기에다 파키스탄에서는 연이은 여아성폭행살해가 일어났다."[나무위키] 왜 인간은 걸핏하면 약자포지션에 서려고 할까? 왜 자신이 보스가 되려고 하지 않고 시다바리나 하면서 보스에게 투덜대려고 할까? 왜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고 하인이 되어 뒤에서 주인 흉이나 보려고 할까? 한나라당에 이어 자유한국당 찍은 인간이 한국인의 반이니 2500만 명은 주인보다 노예되기를 선택한 셈. 뒤에서 궁시렁대고 투덜대는 역할 갖기 좋아한다. 왜? 에너지 부족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와서 판을 설계하기는 힘들고 남들이 다 만들어놓은 요리 먹어주고 평해주기는 쉽다. 광야에 먼저 와서 터 닦기는 힘들고 남들이 닦아놓은 터에 집 짓기는 쉽다. 그 집에서 가게 하기는 더 쉽다. 그 가게에서 쇼핑하기는 더 쉽다. 그 가게 문 앞에서 구걸하기는 더 쉽다. 인간은 결국 등 떠밀려서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는 통제가능성이다. 통제하려면 촉수가 많아야 한다. 한꺼번에 이것저것 두루 챙겨야 하는 것이다. 통제하기 어려우므로 이미 만들어진 에너지 흐름에 가담하려고만 한다. 운전배우기 어려우므로 승객노릇만 하려고 든다. 인간들은 항상 불만에 찬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게 자기가 선택한 역할이다. 노예 역할을 선택했으니 불만에 찬 얼굴이 되는 것이다. 인간은 권력을 원한다. 좋은 권력과 나쁜 권력이 있다. 좋은 권력은 주인권력이고 나쁜권력은 노예권력이다. 주인노릇 하려니 양반예절 배우기가 골때리고 노예노릇 하면서 강아지 배때기 발로 차주기는 쉽다. 많은 경우 노예에게 더 많은 실권이 있다. 노예권력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유시민처럼 난 비판만 하면 돼! 하는 식으로 나오는게 노예권력 행동이다. 지식인은 비판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전체과정을 책임져야 한다. 항상 말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고 나몰라라 하면 안 된다. 보따리 찾아주고 취직시켜주고 결혼해주고 자식까지 낳아줘야 한다. 난 이것만 하면 돼 하는 식으로 역할을 좁히는게 인간이 노예가 되어가는 공식이다.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그 미래를 설계해야 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