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무엇인가? 구조론은 자연법칙과 사회법칙을 일치시킨다.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것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권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적절한 용어도 없다. 사전으로 보자.
“권력權力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권력을 표현하는 적당한 단어나 개념을 인류는 갖고 있지 않다. 한자어 권력權)은 보나마나 영어를 번역하다 유포된 근대의 용어일테고, 옛날에는 권세, 권위, 권權 따위로 불렸을 거다. 권權은 저울추다. 의사결정권 개념이다. 권력은 authority+power로 보는게 맞다. authority는 권權에 가깝고 power는 력力에 가깝다. power는 play를 펼쳐pose, 펼칠possible인데 ~ble은 여러 벌 반복을 의미하니 일을 벌여서 그 사건을 지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것이 파워다. authority의 auto는 자기 자신이다. 내뜻대로다. authority에다 power합치면 ‘내 뜻대로 일을 벌이고 진행시키는 근원’이 권력이라 하겠다. 이는 필자의 해석이고 인류는 권력에 대해서 무지하다. 권력을 설명할 단어가 없다.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빛은 빠른 길을 간다. 에너지는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한다. 인간의 권력의지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러다가 전체주의로 빠진다. 니체는 권력의지를 주장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권력은 ‘내 뜻대로 사건을 진행시키는 것’인데 권력의 속성은 내 뜻대로 하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박근혜는 자기 뜻대로 최순실에게 일을 위임하여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다만 대한민국에 효율적이지 않았을 뿐이다. 뜻대로 하니까 뜻대로 안 된다. 박근혜도 본의는 잘 하고 싶었을 것이다. 뜻대로 안 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authority 곧 내뜻대로가 뭔지 파악해야 한다. 권權은 법원의 판결이다. 정의의 여신이 손에 들고 있는 천칭 말이다. 그게 권이다. 내 뜻이 아니라 진리의 뜻이다. 니체의 권력의지는 잘못된 것이고 개인의 권력의지가 아니라 사회의 집단의지부터 규명해야 한다. 그전에 집단을 조직해야 한다. 페르만의 원리는 빛이 가기 전에 장場이 성립하여 있다는 말이다. 에너지가 작동하게 전에 장場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벼락이 치기 전에 피뢰침에서 코로나 방전이 일어난다. 벼락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게 아니다. 땅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복잡하다. 하늘에서 먼저 선발대가 땅으로 내려온다.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찢어져 흩어진다. 즉 길을 모르고 가는 것이다. 공기를 태워서 플라즈마화 된다. 절연이 파괴되어 도체로 바뀐다. 그중의 하나가 땅에 도달하면 곧 땅에서 대량의 양전하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다. 이것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번개다. 그냥 번개가 번쩍 치는게 아니라 매우 복잡한 절차로 쏜다.
활을 쏘듯이 번개를 쏘는데 공기의 절연을 파괴할 정도의 고압을 걸어야 하니 활시위가 매우 팽팽하게 당겨져야 한다. 테슬라코일이 만들어내는 아크방전과 같다. 뭐 하여간 번개가 치는 과정은 활을 쏘는 것과 비슷하다. 번개는 어떻게 길을 알고 갈까? 모른다. 빛은 어떻게 길을 알고 갈까? 모른다. 빛은 사방 모든 곳으로 간다. 먼저 마중나오는 곳이 빛이 가는 길로 결정된다. 인간의 의사결정도 같다. 먼저 집단의지 곧 장場이 형성된다.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하지만 사실 그 길이 가장 효율적인 코스인 것은 아니다. 누가 마중 나오면 그쪽이 선택되는 것이다. 권력의지라면 니체다. 니체의 권력을 정치권력으로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노예권력도 있다. 노예들은 모이기만 하면 ‘우리 주인님이 더 멍청하다니깐.’ 하고 자랑한다. 우리 주인님은 나 없이는 양말도 못 신는다니깐. 내가 신겨줘야 겨우 신어. 이게 큰 자랑이다. 권력이 추구하는 것은 일의 다음 단계로의 진행이다. 그러려면 임계에 도달해야 한다. 벼락이 치려면 공기의 절연을 파괴할 정도로 전압이 높아야 한다. 즉 관계가 긴밀해야 하는 것이다. 권력은 먼저 긴밀한 관계를 원한다. 그 다음 상대방을 밀어낸다. 당기는 것이 아니다. 부부라도 그렇다. 관계가 긴밀해진 다음에는 서로 밀어낸다. 부모가 자식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권력을 행사하면 가정은 파괴된다. 그러므로 권력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은 위태로운 것이다. 박근혜가 대책없이 권력을 행사했다가 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의지라는 말은 모순된다. 인간은 권력을 추구하지만 균형에 이를 뿐 권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의미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른다. 전방위적으로 권력이 균형잡혀 있을 때 지극히 아름답다. 권력은 사건을 진행시키면서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매개변수에 따라 계속 모드가 바뀐다. 권력이 변한다. 남에게 복종하려고 하고 남을 배척하려고도 한다. 권력의 중심과 자신의 거리에 따라 다르다. 새누리 지지자의 복종은 당연한 행동이다. 복종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불리하지만 그건 다른 게임이다. 그들도 조직되어 힘을 가지면 태도를 바꾼다.
권력은 균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균형에 이르렀는지 확인하려면 의도적으로 불균형을 드러내야 합니다. 삐딱한 짓을 해야 권력이 있는지 확인이 됩니다. 권력자가 바른 말을 하면 부하가 상사에게 복종하지만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말에 복종하는 것이므로 권력이 불분명해져서 불안하니 그것을 확인하려고 어긋난 짓을 하다가 망하는 것이지요. |
"권력이 추구하는 것은 일의 다음 단계로의 진행이다."
명언입니다.
그리고,
상상은 자유!
일필휘지로 써보았습니다.
권력학 제1법칙
의사결정하는 존재가 여럿 모이면 '권'이 형성된다. 눈에 보이지 많지만 반드시 '권'이 존재한다. 의사결정의 위임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력학 제2법칙
권력의 크기는 집단구성원이 의사결정을 위임하는 크기에 비례한다. 그것이 강제든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든.
권력학 제3법칙
권력은 실체가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 존재가 확인되어야 집단을 통솔할 수 있다. 의사결정의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그 '권'이 관찰된다.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것은 권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다. 데모를 하는 것도, 진압을 하는 것도 권력의 확인행위다. 조폭 두목이 2인자를 가끔 패는 것도 권력의 확인행위다. 권력자가 삐딱한 짓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말씀이오.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중요성에 근접하는 권력을 갖고 일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는 권력만 갖고 있으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의 악의와 마찬가지로
일만 잘하고 최소한의 권력을 챙겨두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