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50 대 50의 대칭구조를 만들어야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의사결정구조의 문제다. 이 때문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인간의 원초적 보수성을 이해해야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 원초적 진보성도 있다. 서태지나 싸이처럼 과대평가되는 것이다. 너무 의사결정을 잘하는 상황이 있다. 원초적 보수성을 이해해야 함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원초적 진보성에 따른 거품현상도 이해해야 한다. 구조의 엮임 때문이다. 초반에는 엮여있지 않으므로 거품이 생기고, 후반에는 엮임에 의해 방해자가 나타나므로 반전된다. 좋은 것이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고 믿으면 박수치다가 힘이 커지면 태도를 바꾼다. 조광조를 배신한 중종의 심리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그런 것이 있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민중의 배반을 미리 간파하고 정밀항해에 성공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선지자가 좋은 소식을 들려줘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왜? 아직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조는 엮여있다. 엮여있으므로 방해자가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은 원래 잘 안 변한다. 진리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엮여 있는 판도 전체를 통짜덩어리로 보는 시야다. 사람이 잘 안 변한다는 보수성을 알아챔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진보의 가능성 깨닫기다. 김성근 감독이 새로운 야구를 선보였으나 소수의 지지를 끌어냈을 뿐이다. 염경엽 감독이 꼴찌팀을 4강권으로 끌어올렸으나 다수의 팬들은 시큰둥해 했다. 그래봤자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구한말로 되돌아가 보자. 이양선이 서해바다에 출현하자 조선은 한 방 얻어맞은 셈으로 되었다. 선지자들이 새로운 소식을 퍼뜨렸다. 조선인들은 열광했으며 그 결과는 천주교의 자생적 발생으로 나타났다. 천주교는 인도에서 수백년간 포교했으나 신도 0명을 획득하고 좌절에 빠졌다. 중국에 진출했으나 역시 선교에 실패하고 궁여지책 끝에 고아들을 모아 유교주의사상에 물들기 전에 세뇌시키는 작전을 썼다. 중국인들은 신부들이 고아들을 납치하여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교회는 민중의 습격을 받았다. 그런 판에 조선은 신부를 파견하기도 전에 자동선교가 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딱 거기까지. 천주교인들은 외국군대가 조선을 정벌해주기를 바랬고 그게 역효과를 낳아 천주교 탄압으로 이어졌다. 이 패턴은 반복된다.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소수파의 열광을 끌어내고 곧 피바람이 불어 백지화. 새로운 소식은 그 새로운 것을 반대하는 자들의 힘을 길러줄 뿐이다. 지리멸렬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그래도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조선이 나았다. 그래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은 유지되었으니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왜? 구조의 문제 때문이다. 어떤 것이 옳다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행한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반대로 진보주의 진영의 오버페이스나 거품도 있다. 메커니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김성근 감독의 성공이나 염경엽 감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야구팬들은 이용규와 이범호만 FA로 영입하면 된다니깐, 혹은 김주찬과 강민호만 잡으면 된다니깐, 이러고 있었다. 정신 못차린 것이다. 김승연은 아마 김태균만 잡으면 한화가 도약하는줄 알았을 것이다. 한화가 2000년대 들어 신인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은게 얼마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새로운 것은 시련을 겪는 법이다. 올해는 바뀌었다. 양상문이 꼴찌팀을 단번에 3위까지 올려놓자 감독 5명이 한 꺼번에 날아갔다. 팬들이 정답을 알아버린 것이다. FA 잘 영입하고 외국인만 잘 뽑으면 이만수라도 잘할거라는 환상은 날아갔다. 김성근 1파는 호기심을 끌었을 뿐, 염경엽 2파는 논리를 제공했을 뿐, 양상문 3파로 실증하고, 마침내 김성근 제자가 10개구단의 과반을 차지하여 세력화 되자 팬들이 50 대 50의 구도를 눈치채고 맘을 바꿨다.
◎ 1파는 호기심을 끌 뿐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잘했으나 1파와 2파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조금 더 진도를 나가주어야만 한다. 어떤 논리가 있으면 시간차를 두고 이에 맞서는 대항논리가 생긴다. 시간차 때문에 착각한다. 우리가 이겼다 하고 기고만장해서 오버페이스 하는 것이다. 개화의 물결이 밀려오면 외세를 끌어들이는 개화파의 삽질과, 이를 응징하는 수구파의 반동이 호각지세를 이룬다. 답이 없는 교착상태는 오래간다. 오버페이스 해도 안 되며, 이르게 좌절해도 안 된다. 적이 조용하면 적이 이쪽의 전술을 훔치려고 대기 타는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적이 반격해 오면 침착하게 적의 전술을 훔쳐서 되려 역공을 펼쳐야 한다. 대개 보수는 진보의 전술을 잘 훔치지만, 진보는 보수의 전술을 훔치지 못한다. 진보가 IT로 공격하자 보수가 일베로 역공을 가했다. 보수가 그들의 장기라고 주장하는 경제를 망치는데도 진보는 가만 있다. 보수는 진보의 IT강점를 역이용하는데, 진보는 왜 보수의 경제망치기를 수수방관하는가? 혹시 바보인가? 경제는 보수 몫이므로 진보는 발언권이 없다고 여기는가? 진보가 경제를 잘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 프로야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소수의 정답을 아는 사람이 있으며, 그 정답이 초반에 반짝 하지만, 사회에 잘 안 받아들여지는 구조적 이유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밀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세대가 걸릴 수 있다. 김성근과 그의 제자들이 세력화 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민중은 반드시 배반한다. 그러나 배반을 두려워 말고 선제대응해야 한다. 그런거 다 감안해서 조치해야 한다.
저급한 지식인은 대중의 호기심을 끄는 걸로 만족하고, 중간급 지식인은 번듯한 논리만 들이대면 다 끝난줄 알고 거기서 멈추는 과오를 저지릅니다. 조금 나은 지식인은 현장에서 실증하지만 우리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밑바닥 구조를 바꿔가야 합니다. 근본 인구구성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민중이 원하는건 그럴듯한 논리나 잘 들어맞는 사실이 아닙니다.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바보 김무성 외에 새누리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물리적인 제압상태입니다. 반대편에 인재의 씨를 말려버리는 민주진영의 백년싸움으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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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세상은 옳고 그름으로 돌아가는 것이 말하는 사람의 힘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은 어느 조직의 장이거나
밥을 먹을 때 밥값을 계산해 주는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사람은 옳은 말을 열번 백번 말해줘도 실패에 따른 응징이 없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회생활을 하면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은 옳은 말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듣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 처음 듣는 말이 옳고 그르냐, 진리냐 진리가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음 들었기 때문에 옳은 것이고,
그것을 밥값을 계산하는 사람이 말을 하면 진리가 됩니다.
또 처음듣는 말은 틀려도 수정이 어려워서
그것을 교정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