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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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5034 vote 0 2010.02.10 (00:16:40)

20세기가 교육의 세기, 역사상 처음으로 공교육이란 이름 하에 대규모로 지적 인프라가 구축된 세기였다고 하나
도대체 야만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소. 교육 역시 야만을 말소하는 덴 실패한 듯 하오.

초딩때부터 야만을 보았소. 모자른 아이가 한 명 있으면 아이들은 그 아이를 반드시 놀리게 괴롭히더구려. 선생이 개입할법도 한데 선생은 그냥 그 아이를 개무시. 아이들도 개무시. 모자르고 코흘리고 못생기고 공부못하고, 암튼 다들 멀리하는데, 나 또한 거리를 두었소.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의 미안함, 죄책감. 괜히 아이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 아이에게 몹쓸 말을 하고선 가슴 속에 드는 찜찜함. 암튼 그 더러운 기분이 싫어서 나는 학창시절 내내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엔 동참하지 않았소. 무언가 내 마음 속에 그러면 안 된다는 느낌이 있었소.

그것은 어떤 고도의 윤리적인 추론 결과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직관 같은 것이었소.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때, 상대방의 괴로움이 마치 나에게도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 있었소. 아마 어린 시절 대부분 다른 누군가가 얼굴을 찡그리면 자신도 찡그리게 되고, 어른이 웃으면 나도 웃고, 어른이 울면 나도 우는 체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오. 대뇌에 감정을 미러링할 수 있게 기능하는 신경세포들이 있다는데, 아마 그것들의 영향인지 몰라도 암튼 누군가를 괴롭힐 때 상대방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어느새 흉내내다보면 나 또한 괴로워지기에 좀처럼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엔 동참할 수 없었소.  

그러나 때때로 집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야만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이 불끈 솟아오를 때가 있었소. 분위기에 휩쓸려 함께 욕하고, 함께 때리고, 함께 짓밟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참았소.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그런 야만을 저지르고 있을 때, 나는 침묵하고 피하고 외면했소. 두려웠기 때문이오.

아직도 기억나오. 고딩시절 반에 있던 못생긴 여자아이 하나. 남학생들 전체가 별명을 지어 놀렸소. 나 또한 동참했고. 야만이었소. 인류학을 보면 어떤 원시 부족 집단에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집단 내부에 스트레스가 고조되면, 반드시 희생양이 생기오. 가장 약한 고리, 여성, 아이, 노인 뭐 이런 부류가 주로 희생양이 되오. 우리 역시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 까지 학교에서 사육되면서 쌓인 스트레스, 선생들의 비인격적인 대우, 비인간적인 교육풍토 속에서 느낀 압력을 그런 식으로 해소하고 있었소. 20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원시의 방법을 쓰고 있었던 게요.

아마 누군가는 이 대목에서 '에휴, 교육이 죄다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렇지 뭐, 인성 교육이 중요한 거야, 인성 교육!'
인성 교육?
조까는 소리요. 이들은 인성이 무슨 붕어빵 마냥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이오.
그러나 진정 말하건대, 내 인성은 4살 때 방 안에서 <내가 있다>라고 느낀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았소.

인성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놔둬서 되는 것도 아니오.
무엇보다도 인성을 말할 땐, 그 최소 단위인 개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 한 사람의 인격권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이 있어야 하오.
그러나 여전히 두발단속, 체벌, 야자 등이 남아 있는 한, 인성 교육이 될 턱이 없소.
한 개인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조차 침해하는 판국에 무얼 바라겠소. 

쥐박이의 등극 이후, 유난히 야만적인 사건들이 판을 치고 있소.
이번에 논란이 된 졸업식도 그렇고.

암튼, 대학졸업이 평균학력인 이 시점에, 이젠 최소한도의 도리는  있어야 하지 않나 싶소.
야만에 대해선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어야 하오.
허나, 그러한 단호함은 교육을 통해 기대할 순 없소.
내 경험에 따르면, 교육은 오히려 야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키우긴 커녕 누그러뜨리오.

얼치기 진화론을 배운 이들은 약육강식이란 덜떨어진 문구로 야만을 용납하고
못 베운 이들은 아예 개념이 없으니 야만을 용납하는 형국이고
우리네 서민들은 원래 세상이 그런 거지 하고 야만을 용납하고 있고
아이들은 남들도 다 하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래요 하면서 야만을 행하고 있소.

도가 사라지니 덕이 등장하고, 덕이 사라지니 예가 등장하고, 예가 사라지니 법이 나서는데,
법으로 야만을 잡으려면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야만의 수만큼 법이 존재해야 할 테니,
그것도 참 골아픈 일이오.

역시 일을 쉽게 풀려면 도가 바로서야 하오. 벼리를 잡아당기면 그물 전체가 딸려 오듯이, 야만의 근절도 한 번에 바로, 단박에 이뤄져야 하오.
야만은 그 뿌리부터 근절해야 하오.

방법은?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식물의 잎을 심심풀이 삼아 꺾던 나에게 어머님께서 들려주신 말,
"얘야, 네가 잎을 꺾으면 식물도 아야 한단다, 엄마가 너를 꼬집으면 아프듯, 그렇게 식물도 아파한단다"

인성의 기본은, 우리의 사람됨의 근간에는 바로 다른 존재의 고통을 마치 자신이 겪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보오.
그걸 키워주는 것이 진정한 인성 교육일 것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8]아제

2010.02.10 (01:20:53)

야만이 야만일 때는 그래도 괜퍊소.
야만은 영악하기도 하오..그래서 잔인하오.

야만은 지성을 인질 삼아 지성의 머리에 총을 대고
"야만해 진다면 이 지성을 살려주겠다."고 협박하오.

이 시험이 어렵소..
물론 이 시험에 도달하기도 어렵지만.. 
[레벨:12]부하지하

2010.02.10 (02:19:30)

 지성이 아닌담에야 야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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