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1법칙, 2법칙과 불확정성의 원리는 별개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통합적 모형으로 이해해야 한다.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따로따로 보면 곤란하다. 열역학 1, 2법칙과 불확정성의 원리, 상대성이론 따위가 있다는 것은 아직 통합적 모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열역학 1법칙은 운동에너지에서 위치에너지로 바꾸고, 2법칙은 위치에너지에서 운동에너지로 바꾼다. 운동에너지는 보인다. 위치에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에너지가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짱박혀 있다는게 1법칙이다. 과연 그럴까? 이때 공간의 크기는 문제삼지 않는다. 공간이 면적이 두 배로 팽창한다면? 열은 절반으로 식어버린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사라진 것이다. 단 공간이 커졌으므로 그대로라는 것이다. 근데 공간이 커졌다는 것은? 위치에너지가 감소했다는 거다. 즉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공간은 확대되고 있다. 우주는 식어가고 있다. 에너지는 감소하고 있다. 막판에는 완전히 0에 근접해 버린다. 엔트로피의 법칙은 간단히 공간은 커진다는 거다. 공간이 팽창하고 않고 정지해 있다면? 그래도 의사결정의 관점에서 공간은 커진다. 혹은 점차 공간이 커지는 것과 같아진다. 공간이 커지지 않더라도 공간이 커지는 것과 같아지는 방향으로 우주는 작동한다. 의사결정총량의 지속적인 증가다. 이는 시간이 계속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은 반쯤 공간이다. 시간이 흐르고 있으므로 공간이 커진 효과가 일어나서 우주는 결국 식어버린다. 우주는 팽창하지 않아도 팽창한다. 위치에너지는 자체에 대칭이 있고 운동에너지는 환경과 대칭된다. 즉 대칭되지 않는다. 비대칭이다. 운동에너지가 보이는 것도 환경과 비교해서 그러할 뿐 엄밀한 의미에서는 운동에너지도 보이지 않는다. 운동에너지를 본다는 것은 에너지가 깨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에너지가 깨진다는 것은 대칭이 깨지는 것이다. 에너지는 대칭≫비대칭이므로 대칭이 깨지는 과정에만 볼 수 있다. 비대칭을 다시 대칭으로 만들려면 특별한 방법을 써야 한다. 그 특별한 방법에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결국 에너지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시간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대칭은 자신과의 대칭이고 자신과 대칭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없으므로 에너지를 쓸 수 없다. 위치에너지는 시간을 배제한다. 운동에너지는 시간을 쓴다. 운동에너지 측정은 시간을 정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대칭이 깨져서 위치를 측정할 수 없다. 반대로 위치의 측정은 공간을 정지시킨다. 그 경우 시간적 대칭이 깨진다. 구조론으로는 질이 입자에 앞선다. 질은 중첩이다. 입자는 대칭에 의한 중첩이 축을 획득한 경우를 나타낸다. 질은 축이 없으므로 입자가 아니다. 입자가 아니므로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원래 없다. 대칭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부부의 위치와 부부의 거리 곧 운동량를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없기 때문이다. 부부가 결혼하면 위치가 특정되고 부부간의 거리가 30센티인지 1미터인지 알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위치를 측정하면 거리를 알 수 없고 거리를 측정하면 위치를 알 수 없다. 결론적으로 불확정성은 부부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열역학 1법칙은 중매장이가 있으면 부부가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며 2법칙은 자력으로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불확정성 원리 – 부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중첩으로 보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풀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빛 입자가 A에서 B로 갈 때 동시에 B에서도 A로 무언가 간다는 거다. B가 멀리서 오는 것은 아니다. 운동에너지의 크기만큼 온다. 위치에너지의 대칭을 성립시킬만큼만 온다.
구조론은 간단히 뭐가 하나 더 있다는 거다. 잘 모르겠으면 하나가 더 있는 거다. 상부구조가 있다. 빛은 완전한 입자가 아니며 엄밀한 의미에서 우주 안에 입자는 없다. 외부에서 작용했을 때 반작용하면 입자로 치는 것이며 그 반작용은 입자가 아니라 많은 입자의 집합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입자를 딱 하나 분리해내면 반작용을 하지 않으므로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측정은 반작용을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입자가 시간 상에서 성립하며 시간을 정지시키면 입자는 해체된다. 파동에 가까운 것이다. 파동이 아닌 이유는 공간의 진동이 입자 주변에서 반대쪽으로 움직여서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즉 입자는 공간의 진동을 타고 간다. 그림에서 낚시바늘처럼 표현된 것은 입자의 진행방향과 반대쪽으로 가는 공간의 진동이다. 입자가 있는게 아니고 대칭이 성립하면 입자가 있는 걸로 친다. 그런데 양자단위에서 대칭은 시간적으로만 성립한다. 시간을 정지시키면 대칭되지 않는다. 입자가 없는 거다. 대칭은 방향이 맞아야 한다. 공간의 진동과 입자의 진행방향이 맞아야 한다. 맞지 않으면? 빛이 휘어진다. 공간이 휘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확률적으로 방향이 맞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에 운동에너지를 위치에너지로 바꿀 수 없다. 물론 방향을 맞추면 되므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에너지를 보존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어떻게든 점차 안맞게 된다. 방향이 우연히 맞을 확률보다 안 맞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 불확정성 원리 – 방향이 맞아야 대칭이 성립한다.
써놓고 보니 어렵게 보이는데 간단한 겁니다. 입자는 없다는 말입니다. 입자는 대칭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경우인데 시간이 흘러야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관측은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가정되므로 이미 왜곡이 된 거죠. 불확정성은 공간 안에서 대칭은 없다는 말이고, 엔트로피는 대칭은 깨질수 밖에 없다는 말이고, 질량보존은 대칭을 맞추면 된다는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자연의 자연상태에서 주방장은 아직 짜장면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고 엔트로피는 가만 놔두면 짜장면을 못 먹게 된다는 말이며 질량보존은 주방장이 맘만 먹으면 만들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구조론은 엔트로피에 주목합니다. 생물의 진화든 정치의 진보든 자본의 부흥이든 조직의 팽창이든 가만 놔두면 짜장면을 못 먹게 되므로 먹을 수 있도록 주방장을 꼬셔야 하며 이때 주방장이 따르는 조건은 하나 뿐이므로 방향성이 있으며 조직은 필연적으로 방향성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죽거나. |
방향성과 에너지와 나
나라는 자기소개는 더이상 필요없고
완전성의 극점을 향해 걍 내달리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