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둘로 나뉜다.
<나>와 <나 아닌 것.>
끝인가?
아니다.뭔가 부족하고 뭔가 허전하다.
생명이 빠진 것이다. 인생(人生)에 있어 생(生)이 빠진 분류는 의미없다.
그러나 우리가 머리로만 분류하면
인생을 나와 나 이외의 것으로 이분하는 오류를 범한다.
머리라는 것은 참으로 딱딱하다.부드럽지가 않다. 한마디로 머리는 머리가 안좋다는 것.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이상한 놈이다.
나무는 나무 이외의 것에 의지해 있다.
나무는 햇볕이라든가,흙이라든가,물이라든가,공기에 의지해 있다.
나무는 나무 자신에 의지하는 부분이 극소이고 오히려 나무 아닌 것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가 그 자체의 동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것에 의존해 있는 것을 일컫는다.
인생으로 눈을 돌리자.
인간은 <나>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것에서 그 동력원을 받아 삶을 영위한다.
즉, 나 아닌 것이 나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나>라는 것의 모든 행위는 <나 아닌 것>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
도무지 내가 나에게 도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생명이다.
생명이란 상호작용이다.
생명이기에..
불교에서는 <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혹은 성령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
뭔가?
감정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곧 생명이며,
생명은 상호작용이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통털어 나이기에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존재는 사랑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나>는 상호작용 한만큼 나이며,
사랑한만큼 나이며,그 범위가 나이다.
그러므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한 그 나는
머리로만 이해하는 나이며, 작은 나이며, 임시적인 나이며,
결국은 불가능한 것을 고집하는 가짜 나이다.
인생이 아픈가?
걱정마라.
<나>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상호작용을 하려는 순간이다.
그래서 아픈 것이다.
그러나 아프다는 것은 이쪽에서의 관점이고
생명의 입장에선 기쁜 것이다.
아프다,기쁘다에 휘둘리지 말고
생명을 보라.
인생을 보라.
긍정적이어라.
그리고 진도 나가라.
자기를 챙기려 말라.
불가능하다.
<나>를 위한다고 그게 위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 아닌 것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닌데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는 것은 나에겐 손해다 나무가 그 열매를 먹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무가 나무 자신을 위하지 않을 때가 사실은 나무를 위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멋지게 나를 위하지 않음이다.
그래서 결국 나를 위하게 되는 오히려 효율적인 투자다.
인생 단위로 봐야 한다.
나의 단위로 보면 안된다.
왜냐하면 원래 <나>라는 개별 단위는 없다.
실존이란 <상호작용>이 한 단위가 되어있다는 것을 일컫는다.
<나>란 없고,
<나만큼>이 나다.
좋은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