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첫 번째 질문은 ‘Where are you?다. 왜 ‘Who are you?’가 아니었을까? Who와 Where. ‘누가, 무엇을?’의 실체를 묻는가 아니면 ‘언제, 어디서?’의 배경을 묻는가다. 전자는 사물에 대한 입장이고, 후자는 사건에 대한 입장이다. 대칭행동과 비대칭행동의 차이다. 관측자인 자신을 게임의 장에 포함시키느냐 아니면 배제하느냐다. 거기서부터 이후 가는 길은 완전히 갈라진다. 인생의 첫번째 질문이 중요하다. 묻노니 당신의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인가?
화두.. 대략 무슨 뜻인지 알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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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묻지 않아도 대답한다.
무반응이든 추임새건 비판이건 다 나의 에너지에 포섭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다.
적어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다.
내가 무엇이 되든지, 그 자리에서 이상을 꿈꿨다.
그러다 구조론을 만났고, 인류 진보와 이상실현 이라는 큰 틀을 얻게 되었다.
학교가 필요하다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인간 공동체 모델을 학교를 통해서 만들고자 한다. 내가 학교에 있으니까.
좌충우돌, 상처 투성이, 모순이 가득찬 문제투성이 도시 빈민 초등학교에 오니
내가 뭘할지 보인다. 홍명보 말대로 하면 어떤 팀을 꾸릴 것인가가 보였다.
아이들이 창의하고 성장하는 학교 모델을 만들 수 있음을 알았다.
나의 실천은 현장에서 이뤄진다.
어제도 집에 자전거 타고 가는데 횡단보도 신호등과 우회전 차량을 위한 보조 신호등이
옆으로 돌아가 버려서 자칫하면 보행자와 우회전 차량이 부딪힐 것 같더라.
그래서, 112로 신고했다. 근처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고, 확인하고 나서 곧 조치하겠다고 하더라.
미국이 만날 대형 사건사고시 운운하는 영웅타령은 사실 우습다. 영웅이 나오지 않는 사회,
대형사고가 안나서 일개 개인에게 영웅적 행동을 기대하지 않는 공동체가 바로 모두가 영웅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참견병이 좀 남아있긴 한데, 그건 죽을 때 까지 못고칠 벽(癖 )이다.
다만, 그 벽으로 공동체와 어떻게 호흡하고 나 자신을 세워나가고 우리 팀원들과 협력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제목을 바꿨소.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대답을 안해주네요.
위의 내용은 혜문스님의 말씀에 내가 몇 자를 덧붙인 것인데
나의 주석은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 대한 것이오.
이렇게 말하면 넘 어렵고 간단히 아무거나 말해보시오.
대답 안해도 되는 질문...이라 하니, 마음이 편했다는...
정말 안해도 된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마음이 들더라는....
말들을 너무 잘 들어....
ㅋ~... 이제 대답해도 되는 질문...이라 바꿔 놓으니... 갑자기 웃음이 나는데... 그 이유는 상황이 재미 있으니까...
나의 첫번째 질문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럼 두번째 질문은...?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럼 세번째 질문은....?
누구와 갈 것인가?
그럼 네 번째 질문은....?
목적지가 어디인가?
그럼 다섯번째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럼 여섯번째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그럼 일곱번째 질문은....?
존재는 무엇인가?
그럼 여덟번째 질문은....?
삶이란 무엇인가?
그럼 아홉번째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럼 열번째 질문은.....?
세상이란 무엇인가?
대략 하나의 질문이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열개를 만들어 보았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에 다 포함된다고 생각되네요.
누구한테 하는 질문이오?
그러니까...일종의 자기소개 답변인 셈이지요.
who에 서서 what을 물었군요.
중심은 내가 결정 한다는 것.
내가 이미 사건안에 있으므로, 사건의 결을 따라가는 것에 있어서도, 그 중심은 나이니까요.
축을 움직이는 것은 그리 많은게 필요한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에서 !로 가야 되는데,
존재 자체가 ? 이므로 나의 화답은 이미 ! 라고 생각 되네요.
who are you는 속일 수 있소.
원래는 학생인데 얼굴이 좀 삭았다면 담배 한 갑 살 수 있소.
원래는 국정원 직원인데 댓글달면서 사이코패스 놀이도 할 수 있소.
원래는 사기꾼인데 대통령이라고 우길 수 있소.
원래는 공주인데 대통령이라고 우길 수 있소.
who=까
외침이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와서 그 소리를 낸 너는 누구냐 하고 묻고 있소.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대응한 것이오. Who(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소리를 낸 것이 누구냐가 아니오.
무슨 소리가 났는지도 중요하지 않소.
그곳이 어디인가where에 모든 것이 달려 있소.
호랑이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호랑이와 당신이 마주한 곳이 동물원이냐, 아니면 산 속이냐에 달려 있소.
당신이 국정원 직원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소.
당신이 있는 곳이 일베이냐, 아니면 UN본부가 있는 브뤼셀이냐가 중요하오.
출신이 중요하오, 배경이 중요하오, 상황이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하오.
물어야 할 것이 많지만, 단 하나를 물으라면 이것이오.
Where are you from?
똑같은 물고기라도 바다에서 잡으면 싱싱할 활어라서 10만원
반대로 양식장에서 잡은 거면 5만원.
반값이 되오.
물고기가 있소,
물고기를 잡은 그물이 있고,
또 그 그물을 잡아당긴 어부가 있고,
또 그 어부를 고용한 선주가 있소.
who are you? 물고기가 감성돔인지 옥돔인지 문어인지 오징어인지를 묻고 있소.
where are you from? 물고기 뒤의 그물, 그물 뒤의 어부, 어부 뒤의 선주, 이렇게 기원을 묻고 있소.
물어야 할 것은 기원이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가 중요하오.
' where are you from?'과 'who are you?'은 같은 말이오.
'너 어디서 온 놈이냐?' = '너 누구냐?'
‘너는 누구 편이냐?’요.
‘누구’가 나와 있지만 편이라는 소속을 묻는 ‘어디’가 되오.
기성용들이 모르는 것이 있소.
자신의 소속을 구분하지 못 하는 것이오.
기성용은 한혜진과의 결혼으로 부부팀에 속해 있고
그 부모님과의 가족팀에 속했고
축구선수로 자신의 소속팀에 속해 있고
국가대표로 대표팀에 속해있고
대한민국에 속해 있고
인류에 속해 있소.
그 소속된 곳에서는 팀을 존중하고 팀플레이해야 하오.
팀플레이를 해치는 가장 나쁜 태도는 이죽거리고 빈정거리는 것이오.
팀을 존중하지 않고 우습게 볼 때 겉돌면서 이런 행동을 하오.
상대를 조롱하면서 자신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잠시의 위안일 뿐
존재불안을 해소할 수 없소.
상대의 단점을 보고 대응하는 전형적인 어리광이고 대칭행동이오.
팀플레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 비대칭행동이라야 하오.
중요한 것은
자신이 what에 서 있다는 점이오.
Why not High-Dimension?
그러나 내가 누군인가에 대한 대답은 항상 밖에 있소. 그래서 나는 의미가 없소.
어떠한 사태를 바라봄에 있어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내가 누구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나 경기도지사 김문수인데.'
라며 천연덕스럽게 119에 전화를
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안쪽 혹은 바깥쪽
둘 중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
니까요.
즉 119에 전화를 걸 수 있는 자격이란
내가 도지사이건 대통령이건 누구든
간에 사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이
사건 안에 들어있는 당사자만이
119에 전화를 걸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로 보건데 하느님은 신인데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보다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지 겸손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느님 당신의 관점을
인간에게 느끼게 하고자하는 일종의 선문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보통 아기가 처음 태어나면
'아 쒸바 여기가 어디야?' 하지 않소?
물론 듣는 사람 귀에는 '응애에요'로 들리겠지만.
ㅎㅎㅎ 맞습니다.
그 다음 먹을 것을 찾죠.
'먹을거 필요해. 먹을거 어디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