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왜 높은가?
소금은 왜 짠가?
설탕은 왜 단가?
불은 왜 타는가?
불은 왜 뜨거운가?
연기는 왜 위로 올라가는가?
선풍기 바람은 왜 시원한가?
물고기는 왜 비늘이 있는가?
사슴 뿔은 왜 큰가?
남자는 왜 그것이 있는가?
남자/여자는 왜 바람을 피우는가?
인간은 왜 일을 하는가?
- 이 질문들에 대한 간단한 답 혹은 이와 같은 패턴의 질문들을 만들어 주시오.
- 만약 누가 위와 같이 물으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소?
- 참 반드시 '왜'가 들어가야 하오.
- 근데 왜 사람들은 이런걸 질문할까요?
- 왜 질문을 할 때는 왜라고 할까요?
이건 나의 의문이오.
이런 구조로 질문을 만들어 본다면 가장 그럴듯한 질문은 어떤 것이 있겠소?
왜 = 이유 = 전제(질) = 보통 문장에서 잘 드러나지 않음
=> 1. 사람들은 화자가 말하면서 드러내지 않은 것을 묻고자 함.
2. 자연의 현상(양)에 전제된 것을 알고자 함.
3. 사람들 사이에 막연히 합의된 전제를 드러내고자 함.
가장 궁금한 질문 : 왜 당신은 이것을 질문하셨습니까?
사람들이 왜
질문을 하거나 혹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또는 생각을 할 때
'왜'라는 단어를 쓰는지 그 이유와 용법을 알고자 하는 것이오.
질문(왜)은 현상 이전에 현상이 있게 하는 전제를 묻는 것.
사람은 왜 사는가 왜 일하는가 왜 말하는가 왜 우는가 왜 웃는가 왜 사랑하는가 왜 죽는가 따위를 왜 묻는가?
왜 라는 질문은 사람의 행동을 추궁할 때는 쓸만한 수법이구료.
그러나
흰건 왜 흰가? 검은건 왜 검은가 하는
과학적 탐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소.
오! 질문의 뜻만 알아도 구조론의 질은 그냥 알겠군요.
구조론의 질은 간단히
질->바탕, 바탕은 바닥, 바닥은 이 바닥
이 바닥은 영등포바닥 혹은 청량리 바닥
벌교 바닥에서 힘자랑 하지 말고 보성 바닥에서 쌀 자랑 하지 말라고.
바닥은 나와바리(아마 일본말)
나와바리는 구역
구역은 영역
영역은 바운더리
결론적으로 바닥은 사건을 성립시키는 조건을 말하오.
그렇다면 사건은 어떤 조건에서 성립되나?
왜구가 쳐들어오면 사건이 일어나오.
외부에서 침입자가 침투할 때
한 넘을 특정해야 하오.
근데 원래 한 넘이 아니면 어케 되나?
염소 암소 사슴 양떼 오랑우탄 하마 등이 있는데
사자가 나타나면
염소 - 아마 사슴을 먹으로 왔겠지 나랑은 상관없군
사슴 - 아마 염소를 먹으러 왔겠지 나랑은 상관없군
다들 이러고 있으면
즉 대항할 수 없다는 문제
작용 반작용을 성립시킬 수 없다는 문제
그러나 반대로
같은 염소만
같은 사슴만
같은 양떼만
같은 오랑우탄만 있으면
그때는 대항할 수 있소.
이때 사건이 유발되려면 저쪽의 1 대 이쪽의 1이 되어야 하오.
일대일이 안 되면 흐지부지 되어 알 수가 없게 되오.
일대일을 성립시키는 과정이 질이오.
이번의 알제리 테러사건과 같은게 나면
도무지 누가 누구를 공격했느냐?
알제리가 일본을 공격했느냐?
아닌데?
근데 일본인은 왜 죽었지?
알 카에다가 프랑스 정부를 때렸다
이게 맞는 일대일이오.
그러나 알 카에다의 실체가 있는가?
과연 911의 공격대상이 미국인가?
이건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오.
월남전은 한국과 베트남의 전쟁인가?
625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인가?
아니면 미국과 소련의 전쟁인가?
아니면 김일성과 UN의 전쟁인가?
이런걸 확실히 정하는 과정이 질이오.
감사합니다.
답...사람들 머리속이 이해가 안되어서...
상호작용을 통한 에너지의 평형, 자리바꿈?
모든 것이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면, 그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것 아니겠소?
왜 사는가? 이 질문은 자기 삶의 필연성을 구하고자 함 아니겠소?
왜라는 질문은, 무언가 존재한다면 하필 그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정, 그 필연성을 묻는 것 아니겠소?
그럴듯한 설명말고, 딱 떨어지는 설명.
존재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합리적인 설명을 구하고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싶소.
왜 라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소?
내가 보기엔 그냥 습관인거 같은데.
아주 나쁜 습관.
갈릴레이가 그랬다고 들은 것 같은데(맞나? 학부 때 들은 거라서),
이전의 서양철학자들, 특히 그리스 철학자들이 왜?를 물은 반면
자기는 어떻게?를 물었기 때문에 과학적 발견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
아마 왜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이 더 좋지 않나 싶소
빙고.
왜라고 하는 순간 모든 과학적 사고는 결딴이 나고 마는 것이오.
정말로 창의적 사고를 하려면 절대 왜 라고 묻지 마시오.
그거 망하는 지름길이오.
왜 보다는 어떻게?
어떻게 보다는 무엇이냐가 어떤가요?
어떻게라는 것도 위하여의 요소가 있지않나요?
관계는 무엇이냐?
존엄은 무엇이냐?
정신은 무엇이냐?
- 무엇이냐? 라는 질문을 통해
구조론적인 사고를 추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가 나지 않소?
조카가 계속
아빠 왜? 엄마 왜? 이거 왜? 저거 왜?
왜? 왜? 왜? 하면 짜증날거 같은데.
집중하지 않으면 문으로 들어와서 창문으로 나가도 모르므로...
아이가 왜라고 자꾸 묻는 것은 자신에게 집중해달라는 거라고 생각되네요.
얘기좀 하자..좀 들어줘...놀아줘...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왜? 는 뭔가에 충족이 안되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어원을 연구해 보면 왜? Why는
정글에서 적의 침입을 알리는 비명소리 신호(call)가 올때
그 신호를 보낸 원인을 질문하는 것이오.
왜 불렀어? 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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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있는것은 의하여에서 답을 찾으라는 것으로 보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