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그림의 문제 그림 이야기 하자는게 아니다. 그림 이야기는 화가들에게 맡기시고 여기서는 다 구조론 이야기다. 구조론에 대한 초보적인 개념이 안 잡힌 분들이 많다. 일단 개념부터 잡으시라는 말이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미모의 평균이 아니면 수치의 평균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자동으로 나와줘야 한다. 꼭 말로 해야 하나? 답답한 일이다. 세상을 대칭적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여러분께 묻는다. 그 시선을 이미 획득했느냐고. 그래야 대화가 진전된다. 초급반, 중급반, 고급만으로 나눠져 있지 않다 보니, 구조론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가 안 된 사람이, 혹은 애초에 이해할 생각이 없는 분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초보적인 개념잡기가 중요하다. 여러분은 개념이 잡혔는가? 열에 아홉은 안 잡힌 것 같다. 개념부터 잡기 바란다. 그래야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이건 뭐 울화통이 터지는 문제이다. 이 장면에서는 화를 내야 한다. 그만큼 중요하다.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구조론은 정답을 찍어주기 때문에 자유와 다양성을 억압한다는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문 밖에서 얼쩡거리는 사람의 생각이다. 일단 구조론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안으로 들어오면 이곳이 신천지고 거대한 자유와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신대륙으로 가면 자유와 다양성이 있는데, 신대륙으로 항해하여 가는 동안 배 안에서는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하는 것과 같다. 자유는 신대륙에 있다. 신대륙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일단 선장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신대륙과 신대륙으로 가는 배가 다르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이해가 안 되는가? 컴퓨터를 배우면 자유를 얻지만 배우는 과정은 자유가 없다. 납득이 안 되는가? 그림을 배우면 자유가 있지만 배우는 과정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이거 받아들여야 한다. 구조는 얽힘이다. 얽히면 자유가 없다. 그래서 구조가 싫다.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구조가 싫다면, 구조로 얽히기 싫다면 이 사이트에서 나가야 한다. 구조를 거부한다면 강퇴시키는 수 밖에 없다. 주사위는 6개의 눈이 있다. 주사위 두 개를 던지면 36개의 눈이 있다. 6배나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주사위가 말한다. 나는 저 넘하고 같이 있기 싫은데? 난 혼자 놀고 싶은데? 혼자 놀면 단조롭다. 자유가 없다. 혼자로는 6눈 밖에 없다. 외톨이다. 그런 사람은 평생 혼자 사는 수 밖에 없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게 자유로운가, 아니면 도시에서 함께 사는게 자유로운가?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하고 난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림 안에 이발소 그림도 있고, 파인아트도 있는게 아니다. 그림과 이발소그림이 있으며, 둘은 대칭적이며 이발소그림은 일단 그림이 아니다. 세상을 대칭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명제를 받아들여야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이걸 모르니 미모의 평균이 아니라고 말해줘도 수치의 평균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자동인식이 안된다. 구조는 대칭이다. 대칭을 거부하면 구조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서 나가야 한다. ◎ 과학도 좋고 종교도 좋지만, 과학 안에는 종교가 없다. ◎ 그림도 좋고 이발소그림도 좋지만, 그림 안에는 이발소그림이 없다. 과학 안에 종교도 있고 미신도 있는게 아니다. 미신과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산족은 주술도 과학으로 치던데요? 주술도 분명히 약간의 과학성은 있는데요? 이러면 할 말이 없다. 당장 나가! 꺼져! 풍수지리가 과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과학적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이 아닌 것이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과학과 과학적은 안 친하다. 둘은 철천지 원수다. 대칭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옛날에는 이발사가 의사였다. 이발사가 의사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다니면 잡혀간다. 저기요. 로마시절에는 이발사도 의사였걸랑요? 이거 안 통한다. 치과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협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의사협회에 들어야 의사이며,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간호조무사도 의사가 아니다.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 뿐이다. 이 외에는 없다. 침구사? 물리치료사? 스포츠마사지사? 안마사? 이들은 의료인이 아니다. 코나무를 달여먹으면 비염이 치료된다. 이건 한의학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특허를 낼 수 없다. 신약특허는 오직 하나의 물질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코나무에서 그 물질을 찾아내는 사람은 양의사다. 구조적으로 한의사는 양의사에게 밥그릇을 뺏기게 되어 있다. 이게 옳은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골판정은 심판이 하는 것이며, 그 약속은 시합을 하기 전에 정해져 있다. 이미 시합이 진행중인데 잘못된 골판정을 거부할 수 없다. 시합하기 전에 협회를 찾아가서 미리 규칙을 바꿔놔야 한다. 시합 들어가면 심판만 판정을 내릴 권한을 가진다. 심판독재냐? 심판은 왕이냐? 심판은 신이냐? 이런 항의는 기각된다. 할말 있으면 시합 하기 전에 협회를 찾으라고. 결혼하면 얽힌다. 싫으면 노총각으로 사는 거다. 노총각의 자유와 결혼한 부부의 자유 중에 선택해야 한다. 결혼하면 더 많은 자유가 있다고 믿고 다들 결혼하는 거다. 그리고 결혼하면 되물릴 수 없다. 결혼 아니면 독신이지 반결혼은 없다. 0.5결혼? 그런거 없다. 자유민주주의니까 국가 안에 나는 사설국가를 만들겠다? 자유대한이니까 나는 자동차를 타고 좌측통행을 하겠다? 이는 허용이 안 된다. 왜? 구조의 얽힘 때문이다. 구조는 얽힘이고 얽힘은 의사결정단위다. 이 단위를 존중해야 한다. 1학년이면 1학년이고 2학년이면 2학년이지 1.5학년은 없다. 단위가 있는 것이다. 자유와 다양성을 내세워서 단위를 허물려고 한다면 반구조적인 작태이자 망동이다. 단위를 인정해야 더 많은 자유와 다양성이 주어진다. 신대륙에는 자유가 있지만 신대륙으로 가는 배 안에서는 자유가 없다.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구조는 얽힘이고 얽혀야 자유와 다양성이 있는 것이며 그 얽히는 과정은 자유를 반납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쑥뜸으로 발바닥의 20년 묵은 티눈을 뺀 적이 있다. 내가 내 발에 티눈 빼는건 내맘이지만 만약 돈 받고 다른 사람의 티눈을 빼주면 잡혀간다. 자유대한에서 티눈도 못 빼냐고 항의해봤자 소용없다.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는 시스템이고 시스템은 얽힘이며, 얽힘은 얽히기 전게 규칙을 정한다. 억울하면 쑥뜸으로 티눈빼기협회를 만들어서 국회에 청원해서 입법하면 된다. 구조는 얽힘이고, 규칙은 사전에 정해져야 하며, 정해진 규칙은 따라야 한다는 기본개념을 잡기 바란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세상을 대칭적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림과 이발소그림은 적이다. 한 편이 아니다. 그건 마치 과학과 종교가 대칭적인 것과 같고, 의사와 주술사가 대칭적인 것과 같다. 의사는 주술사를 용납하지 않는다. 주술사도 병을 고치지만 인정되지 않는다. 어쨌든 병만 고치면 되잖냐고?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고쳐도 시스템으로 고쳐야 한다. 고장난 TV를 발로 툭툭 차서 화면이 나오게 해놓고 어쨌든 화면이 나오면 된거 아니냐? 안 된다. 과학과 종교 중에서 선택해야 하며, 종교는 자유로이 믿되, 과학 안에서 종교적인 발언은 일체 금지된다. 구조론 안에서 비구조론적인 작태는 일체 금지된다. 그쪽은 발언권이 없다. 이건 뭐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는 것과 같이 당연한 것이다. 얽히면 자유가 제한된다. 일부 화가들이 이발소그림을 예찬하는건 뭐냐고? 그건 양의사가 한의사가 발견한 코나무를 빼가듯이 정당하다. 양의사가 한의사의 밥그릇을 빼앗는건 합법적이다. 그러나 십전대보탕은 절대로 신약특허가 안 난다. 십전대보탕의 어떤 성분을 양의사가 빼가서 특허를 내면? 특허가 난다. 이게 이해가 안 된다면 대화가 곤란하다. 머리와 꼬리는 대칭적이고 당연히 머리가 꼬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어린이가 크레파스로 대충 그린 그림은 어쨌든 그림이다. 잘 그렸냐 못그렸냐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art이기 때문이다. 아트는 기술이다. 어린이는 적어도 표현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어려움에 도전했다. 그러나 블론디 만화를 보자. 블론디 만화의 주인공들은 항상 다리를 묘한 각도로 구부리고 있다. 왜 다리를 구부리지? 현실에서 불가능한 주춤서기 자세다.
이유는 인물이 바라보는 방향을 지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리를 펴면 인물이 어느 방향을 보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림이 어색해진다. 그 어색함에 도전해야 한다. 그 도전을 회피하고 꼼수를 부린 것이다. 도전하지 않고 요령을 피웠기 때문에 art가 아니다. 모든 것은 얽혀 있으며 그 얽혀있음에 도전하면 그림이고, 꼼수로 빠져나가면 이발소그림이다.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 아니다. 의사와 무당 중에 누가 더 병을 잘 치료할까? 아프리카에서는 무당이 더 잘 치료한다. 의사가 병을 치료한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는다. 1만년 동안 무당이 의사보다 나았다. 푸닥거리를 하면 병이 나았다. 그러나 무당은 그 어려움에 도전하지 않으므로 의사가 아니다. 병을 치료해도 의사가 아니다. 이러한 개념이 똑바로 서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구조론은 대칭적으로 이해한다. 그림 안에 이발소그림이 있는게 아니고, 그림과 그림 아닌 이발소그림이 대칭적으로 있는 것이며, 과학 안에 종교가 있는게 아니고, 과학과 과학 아닌 종교가 대칭적으로 있는 것이다.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과학자도 신앙을 가질 수 있다. 단 과학자가 수업 중에 종교를 가르치면 안 된다. 자유와 다양성을 내세워서 창조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그건 당초의 약속을 깨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의제기는 시합 전에 하시고, 시합 들어가면 규칙을 따라야 한다. 얽혔기 때문이다. 얽힘이 구조다. 얽히면 골치가 아파진다. 도전해야 한다. 꼼수나 요령으로 빠져나가면 배반이다. 배반자는 이 사이트에서 발언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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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가지를 쳐내고 핵심만 남겨서 그걸로 따져야지, 온갖 예외를 들고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진도를 못나감.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그래서 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이것 저것 다 옳다고 한다. 이런, 젠장.
많이 답답하신 모양입니다.
어정쩡한 사람들 의식하지 마시고....걍, 계속 하세요.
구조론을 알면 다양성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구조론을 모르면서 다양성을 주장하면
다양성이 획일성으로 변질되거나 삼천포로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