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C 더 벙커의 몰락으로 해외로케 하면 반드시 망하는 충무로 공식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비단 해외로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면 어색해진다. 이런 미묘한 지점에서는 환경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죽으면 망한다. 망작의 공통점은 거꾸로 제압된 것이다. 파리로 촬영을 갔다고 치자. 에펠탑 앞에서 기가 죽는다. 우와 에펠탑이다. 감탄하면 망한다. 나라면 에펠탑은 1초 정도 스치고 지나가게 할 것이다. 감격해서 몇 분째 그걸 찍고 있으면 당연히 망한다. 근래에는 상당히 나아졌지만 필자가 한창 영화이야기를 쓰던 90년대 초반에는 거의 망했다. 해외로케로 망하는 이유는 감독과 배우들이 주눅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홍콩영화들은 기죽지 않았다. 이소룡은 콜로세움에서 도둑촬영을 하면서도 감탄사를 내뱉지 않았다. 뒷골목에서 싸우듯 했다.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소룡은 팔자좋게 근육을 풀고 있다. 콜로세움을 가볍게 밟아버리는 그런 뻔뻔함이 있어야 한다. 주윤발, 홍금보도 쫄지 않았다. 한국영화는 당연히 쫄았다. 다만 베를린은 쫄지 않았다. 근데 베를린이 맞아? 제목이 베를린일 뿐 베를린 시내관광을 시켜주지 않는다. 실제로는 상당부분 라트비아에서 찍었으니까. 놈놈놈도 쫄지 않았다. 서부극의 전형적인 클리셰가 등장하지 않고 정우성의 이색적인 총격신이 등장한다. 쫄아 있으면 그런 액션이 나와주지 않는다. 망한 영화들은 무사처럼 쫄아 있었다. 명나라 공주에 고려의 노예라는 설정부터 쫄았다. 당연히 고려 왕자와 명나라 노예여야 맞잖아. 고려노예 역할이라야 한다면 주성치가 맡아야 제격인데 말이다. 주성치는 쫄지 않으니까.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논둑에서 미끄러지는 연기는 사실 NG가 난 것을 애드립으로 처리한 거다. 논둑은 송강호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익숙한 공간이면 긴밀해진다. 배우는 물체와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망한 영화의 공통점은 배우가 주변 사물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벽에 기대지도 않고 탁자를 발로 차지도 않는다. 쫄아있기 때문이다. 벽에 기대다가 뭐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탁자를 발로 찼다가 부서지면 어떡하지? 배우는 기대고 만지고 뒹굴기를 예사로 해야 한다. 그게 연기력이다. 국내에서는 잘하다가도 해외로 가면 10센티 거리를 띄운다. 남의 동네니까 쫄아서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된다. 그 공간을 얕잡아봐야 한다. 주연은 연기를 못하고 조연은 연기를 잘한다. 조연은 무언가 손에 들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물을 건드리게 되고 그래서 연기가 살아난다. 주연은 화장이 망할까봐 조명을 신경쓰다가 망하고 의상을 신경쓰다가 망한다. 스태프가 30분 공들여 얼굴화장을 해줬다. 화장을 다시 해야 한다면 촬영은 한없이 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가 망한다. 배우는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하며 무언가를 만지고 있어야 하며 어딘가에 기대고 있어야 한다. 뭔가를 걷어차고 손으로 떠밀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익숙한 공간이라야 한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의 연기는 쫄아서 망한다. 옥자도 사실 망작이다. 중국 공주와 고려노예의 망작공식이 미국 사업가와 산골소녀로 패턴을 박았다. 당연히 망한다. 쫄아서 망한 것이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영어를 쓰지 않았다. 쫄지 않았던 것이다. 영어 쓰면 쫄고 쫄면 망한다. 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집처럼 편안해야 성공한다. 이소룡은 오만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백인들 앞에서 쫄지 않았다. 주성치도 쫄지 않았다. 성룡은 미국 가서 쫄았다. 환경과 긴밀하지 않으면 망한다. 주인공이 말을 못 타거나 말을 무서워한다면 서부영화를 찍을 수 없다. 그런데 말을 못 탄다. 쭈뼛거리고 망설이는게 보인다. 거지꼴을 하고서도 소림축구의 주성치처럼 태연자약한 배우는 잘 없다. 배우는 옷을 잘 입고 자신감을 가지고 주변을 압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