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여러 번 했던 이야기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드는 바람에 마녀사냥이 유행했다고. 마녀사냥은 중세 암흑시대의 악습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근대 계몽주의 시대의 부작용이었다. 봉건시대에는 카톨릭이 지배했으므로 마녀가 활동할 수 없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페스트가 유행하자 카톨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근대 계몽사상의 등장으로 순화판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교회 신부의 판단은 믿을 수 없지만 근대교육을 받은 순회판사는 믿을 수 있다는 순진한 착각이 재앙을 일으켰다. 순회판사는 엘리트다. 그러나 재판은 필연 인민재판이 된다. 마녀가 법정에 출두하기도 전에 구경꾼 중에 거품 물고 쓰러지는 사람 나온다. 저 마녀가 술법을 부렸다고 고함지르는 사람 있다. 여기저기서 실신소동이 일어난다. 마녀라는 명백한 증거다. 공기가 험악해진다. 재판은 파탄이다. 마녀가 아니라는 판정을 했다가는 성난 군중에게 몰매맞아 죽을 판이다. 그리고 이게 유행을 탄다. '최신 마녀감별법 36가지.' '마녀가 쓰는 24가지 기술.' '마녀를 퇴치하는 16가지 부적.' 따위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순식간에 마녀사냥은 전 유럽에 유행해 버린다. 구조론으로 보면 마녀사냥은 권위주의 시스템의 해체과정에 등장한 소인배들의 권력의지가 원인이다. 카톨릭이 권력을 잃자 권력공백이 발생했고 그 자리를 민중이 차지하였다. 문제는 민중이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교육받은 엘리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이 이야기했지만 이런 일은 역사상에 무수히 일어나는 패턴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가만 엎드려 있다가 해방이 되자 이승만과 김구를 찾아와서 애국을 하겠다며 ‘찍어만 주셔. 어느 놈을 죽일까요?’ 이러는 자들 말이다. 공을 세우려고 혈안이 되었다. 계몽주의도 같다. 백주대낮에 마녀가 횡행하는데 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카톨릭 같으니라고. 개신교도가 마녀사냥을 주도했다. 마녀사냥은 미국에서까지 일어났다. 그들은 죄의식이 없다. 만약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면 하느님이 어련히 알아서 구해줄까? 마녀가 아니라면 하느님이 구해줘서 천국에 갈 것이 뻔하니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거리낄 것이 없다. 억울한 희생자를 실수로 화형대에 세웠다면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화형대의 불이 꺼질텐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도 하느님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 망설이면 하느님이 나의 신앙심을 의심할지라. 인정사정없이 마녀를 때려죽여야 하느님이 내게 미소지을 지라. 검증은 하느님의 소관이니 내 알바가 아니라. 인간이 이토록 어리석고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충격받아야 한다. 광기라고 한다. 광기가 특별한 게 아니다. 무의식이 광기다. 마녀사냥의 본질은 권력공백기에 발생하는 소인배의 권력의지다. 문제는 무의식이 환경을 읽는다는 점이다. 무의식이 지금의 환경을 권력공백기로 읽고 어떻게든 집단 안에서 권력이 탄생하도록 움직이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하면 권력이 생긴다. 지식인도 별 수 없다. 호르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악이 언제나 악마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악마는 당연히 머리에 뿔이 나 있고 뒷다리에 발굽이 있고 그런 것이 아니다. 소인배의 권력의지에 놀아나고 있는 바로 당신이 악마일 수 있다. 419 때도 그랬다. 이승만 때는 가만 있던 자들이 장면 정권을 만만하게 보고 온통 들쑤시고 다녔다. 노무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메뉴는 다르게 가져오지만 본질은 같다. 그때 그 시절 미키루크와 난닝구부대의 소행을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자칭 문빠지만 본질은 권력의지다. 난닝구부대가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하긴 이명박도 자기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범죄자들도 논리가 있다. 그냥 나쁜 생각이 들어서 저 녀석을 해쳐야지 하고 심술이 일어나서 남을 해친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먼저 나를 화나게 했고 화가 나서 때린 것이다. 화가 났으니 때렸지 화가 안 났으면 내가 때렸겠느냐고. 먼저 나를 화나게 한 자가 잘못했지. 이런 식이다. 화가 났다는 것은 호르몬이 움직였다는 거다. 호르몬이 움직이므로 본인은 깨닫지 못한다. 그 호르몬을 이겨야 지성이다. 그런데 엘리트라도 대개 넘어간다. 마녀를 죽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권력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므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마녀사냥이 아니면 다른 것을 찾아서 사냥한다. 이들은 국가의 기강이 잡힐 때까지 기술을 바꾸어가며 계속 난동을 부려댄다. 이해찬이 당의 기강을 잡아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신임 소대장이 부임해 오면 소대장 길들이기를 시도한다. 귀농인이 시골마을에 들어오면 귀농인 골려먹기를 한다. 왜 그런 짓을 할까? 무의식이 작용하고 호르몬이 작용하므로 말릴 수 없다. 그들은 흥분해 있다. 에너지가 업되어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따른다. 어떻게든 한 번 발동한 에너지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의해 절대 사라지지 않고 주변에 얼쩡대며 지속적으로 말썽을 일으킨다.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역사의 법칙이기도 하고 물리학 법칙이기도 하고 심리의 법칙이기도 하다. 원래 그렇게 하더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기술이 있는데 하나는 우파들이 쓰는 외부의 적 만들기 기술이다. 히틀러가 쓰는 기술이다. 트럼프가 체급이 안 되는 중국을 미국의 가상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같다. 자한당이 북한을 겨냥하는 것도 같다. 에너지를 외부로 빼내기다. 하나는 진보의 방법인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신기술과 신문물의 등장으로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가면 마녀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예컨대 이런 거다. 과거에는 유사과학이 소인배의 권력의지를 실현시키는 수단이었다. 유리 겔라의 활약이 그렇다. 소련이 유리 겔라에 속아서 초능력자 군대를 만들자 미국도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러다 꽝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속임수가 유행을 타지 못한다. 반대로 그런 속임수와 가짜뉴스를 응징하는 유행이 발달한다. 마녀사냥이 아니라 마녀사냥꾼 사냥이 되어야 한다. 대중을 선동하는 권력보다 선동꾼을 처단하는 권력이 더 찰진 권력이다. 게다가 이기는 권력이기도 하다. 마녀사냥, 귀신소동, 유사과학, 사이비종교, 괴력난신, 가짜뉴스, 음모론은 오래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짓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거짓을 이기는 권력이 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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