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수영 배우기 한 마디로 세상 모든 일에 두루 통하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는 거다. 딱 하나로 찍어줄 수 있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거다. 똑부러지는 소식이 있다. 정답을 찍어주겠다는 거다. 이거 훈련해야 한다. 종교의 신도가 혹은 십계명을 외우고 혹은 재가오계를 실천하듯이 일상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외워둬야 하다. 수첩에 적어놓고 매일 검토해야 한다. 염불하듯이 혹은 기도하듯이 반복해도 좋다. 그것은 탑 포지션을 차지하고 바텀 포지션을 치는 것이다. 짝짓기를 통하여 먼저 완전성에 도달한 다음 마이너스를 행하기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높은 포텐셜에서 낮은 포텐셜로 가야 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상황의 흐름에 휩쓸려 그 반대로 간다는 거다. 무심코 홀려서 따라간다. 그 이유는 어떤 판단을 할 때 판단근거를 상대방으로부터 구하려 들기 때문이다. 주도하지 못하고 종속된다. 인간의 판단은 반응을 따른다. 무조건 상대의 반응이 빠른 쪽으로 결정한다. 상대방이 가만 있으면 막연히 두려워하고 당황한다. 상대가 어떻게든 반응을 해주면 무조건 그쪽으로 간다. 홀리는 거다. 바둑을 둔다면 하수들은 가장 효율적인 곳에 두는게 아니라 가장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곳에 둔다. 일단 끊고 보거나, 일단 잇고 보거나 하는 식으로 손따라 둔다. 바둑판 전체를 살펴보는 일은 없다. 상대의 반응이 빠르고, 시장의 응답이 빠르고, 바로바로 결론 나와주는게 명박이 속도전이다. 보나마나 삽질이다. 바로바로 결론이 나오긴 나왔는데 결론은 747이고 대운하고 뭐고 다 허당이라는 거. ◎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상대의 빠른 반응과 응답을 구하여 속도를 얻고 대신 방향이 틀려 헛걸음을 반복하게 되는게 범부가 망하는 공식이다. 응답이 느려도 바른 방향을 찾아서 조금씩 확률을 올려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완벽한 정답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확실히 아닌 것을 배제하는 방법을 쓴다. 그 경우 확률이 올라간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는 않지만 게임을 진행할수록 점점 일이 쉬워진다. 당장 득점은 못해도 확실히 찬스가 늘어난다. 이 방법을 쓸 경우 장기전이 된다. 장기전을 하려면 결단력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무너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수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당장 약발이 듣는 대증요법에 치중하다가 망한다. ◎ 평소에 운동하면 - 당장 효과 없지만 건강의 확률이 올라간다. ◎ 독한 항생제 쓰면 - 바로 효과 보지만 점차 건강의 확률이 낮아진다. 원칙대로 장기전략을 가지고 길게 승부하면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 쯤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실천하지 못할까? 어떻게 하는게 원칙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답은? 외곽에서 중앙을 찌르는 거다. 바둑은 먼저 변을 차지하고 중앙으로 찌르는 것이 정석이고, 축구 역시 변에서 중앙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정석이다. 왜인가? 변은 배후에서의 불안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변 뒤에 바둑판 없다. 중앙은 양쪽에서 협공당할 위험이 있지만 변은 뒤가 없으므로 배후가 안전하다. 축구 역시 변은 공을 뺏기거나 패스를 차단당할 위험이 적다. 트래픽이 낮기 때문이다. 변은 속공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고수들은 중앙을 활용하지만 그 경우도 변에서 중앙이라는 본질은 유지된다. 시간의 변도 있기 때문이다. 고수는 그라운드를 잘게 쪼개서 중앙에서도 순간적으로 변을 창출하는 능력이 있다. 권투선수는 상대를 좁은 코너로 몰아붙인다. 역시 트래픽이 낮은 넓은 공간을 먼저 차지하여 자신의 운신을 자유롭게 한 다음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다. 본질은 탑을 차지하고 마이너스를 행하는 거다. 먼저 상대를 코너로 몰아 운신할 공간을 빼앗고 다음 시간공격을 해서 판단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 고수가 항상 쓰는 방법이다. 자신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스피드를 올려서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조광래 바보축구는 좁은 공간에 낑겨서 스피드가 죽으므로 상대가 압박을 하면 시간이 촉박해져서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중앙을 쓰더라도 자신이 갇히지 말고 상대를 트래픽에 가둬야 한다. 정치인 역시 먼저 자유주의를 행하여 자신의 동선을 자유롭게 한 다음, 복지로 나아가며 표적을 좁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러므로 선자유주의 노선 후복지확대 전략이 구조론 정치의 정답이다. 무뇌좌파들은 제 발로 코너로 기어들어가서 자신의 운신을 제한한 상태에서 ‘들어오면 받아친다’는 한 가지 전략만 고수하는데 상대가 들어와주지 않으니 받아칠 기회가 없으므로 그냥 고사한다. 정치인이 선명성을 중요시 하는 것도 배후에서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진보든 보수든 중간에서 눈치보다가 양쪽에서 협공당하기 보다는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며 투쟁일변도로 나가야 한다. 손학규나 정동영처럼 중도를 표방하고 나약한 눈치보기 정치를 하면 역시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트래픽 높은 중앙이 코너임을 알아야 한다. 바둑도 축구도 변에서 시작하듯 정치도 변을 차지해야 한다. 안철수는 젊은층이라는 넓은 변을 차지했고 문재인은 친노라는 넓은 변을 차지했다. 그 변에서 중앙으로 치고나가야 한다. 무뇌좌파들처럼 변에서 더 변으로 숨으면 지하철바둑이 되어서 좋지 않다. 중원을 다 뺏기고 귀만 살아서 집부족으로 패한다. 정치노선을 결정할 때는 가운데 중도로 가면 트래픽이 높아서 낑겨죽고, 귀퉁이 극좌나 극우로 가면 집부족으로 굶어죽고 화점 부근이 적당하다. ◎ 극단의 궁벽함을 피하고 중앙의 허무주의를 피하라. 이렇듯 바둑이든, 정치든, 축구든, 권투든, 야구든, 완전히 같다. 이 모형을 머리 속에 콱 박아놓고 두고두고 베껴먹어야 한다. 기독교 신도가 십계명 외듯이, 불교 신도가 오계를 지키듯이 해야한다. 어부가 넓게 그물을 펼쳤다가 점차 그물을 조여서 고기를 잡듯이 처음 영역을 넓게 잡고 점차 좁혀가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농부 역시 처음에는 최대한의 경작면적을 확보하여 넓게 토대를 장악한다. 그 다음 좁은 지역에 노동력과 기술을 집약하는 조이기 공식을 쓴다. 그 경우 기상이변 등 돌발변수가 나타났을 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애초에 경작면적이 좁으면 배추파동 고추파동 해서 망한다. 선확대 후집약이다. 인터넷사업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무조건 많은 회원을 모아 크게 토대를 구축한 다음 기술격차를 벌리는 수법을 써야 한다. 다음이나 네이버나 페이스북이 이 방법으로 성공했다. 징기스칸은 먼저 배후의 불안요소를 제거하여 자신의 운신을 자유롭게 한 후 온갖 수단을 써서 상대를 궁지로 모는 방법을 썼다. 도박꾼 역시 여러 개의 카드를 확보하여 선택지를 늘리는 방법을 쓴다. 세상의 모든 고수들은 전쟁이건, 권투건, 야구건, 축구건, 고기잡이건, 농사건, 사냥이건 상관없이 같은 방법을 쓴다. 그 보편성에 주목해야 한다. 야구는 야구대로 가고 축구는 축구대로 가면 하수다. 과거 송진우와 장종훈이라는 명투수와 대타자를 가지고도 한 번도 우승을 못한 빙그레 김영덕 하수를 예로 들수 있다. 그때 선동렬이 못던졌음에도 해태를 이기지 못했다. 외통수로 갔기 때문이다. 칸나에 회전에서 로마군은 중앙을 두터이 하여 한니발군의 정면을 뚫으려 했다. 아군의 2로 적군의 1을 이기려 한 것이다. 한니발군은 좌우로 날개를 벌려 로마군을 에워싸버렸다. 역시 2로 1을 이겼다. 양쪽 다 아군의 2로 적의 1을 이기려 한 것은 같다. 탑 포지션을 차지하고 바텀 포지션에 있는 적을 제압하려 한 것이다. 차이는? 한니발군의 2는 멀리 떨어져 있다. 배후가 넓어 운신이 가능하다. 한니발은 먼저 변을 차지하고 중앙의 적을 찌른 것이다. 로마군 역시 2를 이루었지만 그 2는 트래픽이 높은 중앙에 낑겨서 운신할 수 없었다. 한니발군의 전열은 방패로 적을 막고 2열은 창으로 찌른다. 로마군은 2열에 있는 병사들의 몸이 낑겨서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들의 동작은 느려졌고 느린 쪽은 빠른 쪽에 패할 수 밖에 없다. 가운데의 로마군은 전면만 뚫으면 각개격파하여 이길 수 있었다. 반면 한니발군은 좌우 양쪽에 폭넓게 전개해서 양쪽을 동시에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더 시야가 넓어야 했다. 이는 양 손에 카드를 쥔 것과 같다. 조범현 감독은 윤석민 하나로 SK를 이기려 했다. 빙그레 김영덕 감독이 송진우 하나로 해태를 이기려 한 것과 같다. ‘송진우가 점수를 주면 지는 거야’ 하고 공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김영덕감독은 사실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혔다. 이 경우 기적을 바라고 올인을 하다가 오링이 되어서 망한다. 실제로는 많은 돌발상황이 일어났다. 모든 돌발변수가 해태만 이롭게 했다. 왜? 양손에 카드를 쥐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진우 하나에 기댔다. 송진우가 못던져도 장종훈이 홈런치면 이긴다거나 이런건 생각을 안해본 것이다. 그날따라 선동렬이 실투하는 등 빙그레에 행운이 따랐지만 그 행운을 주워담을 바구니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동렬을 이길 수는 없어.’하고 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외통수로 가면 진다. 양승호감독이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게임은 잘했다. 장원준 다음에 부첵을 투입했으면 결과는 알 수 없다. 뒤로 갈수록 강해져야 이긴다. 에이스가 송진우인데 송진우가 선발이고 그 뒤가 없으면 이길 수 없는 거다. 뒷문이 열려있으니 송진우는 부담감 두 배가 된다. 이래서는 최선을 다 할 수가 없다. 투수는 뒤로 갈수록 강속구를 던져야 한다. 이는 징기스칸이 먼저 타타르족을 몰살하여 배후의 불안요소를 제거해놓고 금나라를 공격한 것과 같다. 이후 아랍과 고려를 공격해서 송을 고립시켰다. 하수는 초반에 모든 힘을 쏟아버리고 고수는 갈수록 점점 더 강해져 간다. 고수의 방법을 쓰려면 이쪽에 운신할 자유를 주고, 다양한 카드를 쥐고, 뒷문을 단속하여 배후에서의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자전거를 쉽게 배우는 방법은 안장 높이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다. 자기 키에 맞아야 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 한다. 처음에는 페달을 빼고 빈 자전거를 타는게 낫다. 두 발로 땅을 밀어서 가는 거다. 어느 정도 균형잡기에 익숙해지면 페달에 발을 올리고 슬슬 밟아주면 된다. 이때 발이 땅에 닿기 때문에 넘어질 걱정이 없다. 배후의 불안요소가 제거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자전거를 못 타는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무언가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면 판단의 부담이 없으므로 실력이 바로 는다. 브레이크 잡는 연습도 중요하다. 안장이 높고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넘어질까 불안해서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곧바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핸들을 꺾어서 상대를 피하려고 한다. 그 경우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돌발상황은 두 번이상 잇달아 일어나기 때문이다. 핸들을 꺾어 달려드는 꼬마를 피했는데 또 강아지가 앞을 가로막는 격이다. 초보자는 핸들을 꺾을 생각말고 무조건 브레이크를 잡아야 한다. 발을 땅에 딛고 자전거를 세워야 한다.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안장을 낮추어야 한다. 자기 키에 맞는 낮은 자전거를 선택해야 한다. 페달없이 발로 땅을 밀어 타는 연습을 해야한다. ◎ 어떤 일이든 실력을 늘리려면 어떤 판단을 해야하는 상황을 원초적으로 제거해서 판단에 대한 부담을 없애라. 여기서 핵심은 난이도가 낮은 상태에서 전체과정을 마스터 한 후 난이도를 높여가는 전술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전거는 균형을 잡고 페달을 밟아 전진하는게 아니라 먼저 전진해야 균형이 잡힌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물에 뜬 후에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니라 헤엄을 쳐야 물에 뜬다. 물에 뜨는건 부분이고 헤엄치는게 전체이기 때문이다. 부분이 안되는데 전체부터 하기는 불능이다. 그러므로 난이도를 낮춰야 한다.
어릴 때 냇가에서 배울 때는 누구나 쉽게 수영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 수영장에서 강사에게 배우면 잘 늘지 않는다. 강사들은 먼저 물에 뜬 다음 헤엄쳐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부분을 먼저 가르치는게 실패다.
자전거를 배울 때는 안장을 낮춰 발이 땅에 닿아야 하듯이 수영을 배울 때는 얕은 물에서 안전을 확보한 다음, 눈을 감고 잠수하여 헤엄치는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 자전거 초보자가 브레이크 잡기를 두려워 하듯이 수영초보자는 물에서 헤엄치다가 멈추지를 못한다. 수영장에는 붙잡을 손잡이가 있지만 바다에는 붙잡을 수 있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잠수하여 바닥을 확인하고 안전을 담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바닥과 수면이라는 양방향이 있기 때문에 판단의 부담이 있다. 잠수훈련을 하여 바닥의 안전을 확인하면 한 방향으로 통일되어 무엇을 해야할지 확실히 알게 된다.최대한 난이도를 낮춘 상태에서 기승전결의 전체과정을 경험하게 하면 저절로 요령을 알게 된다. 먼저 물에 익숙해져야 하고 그러려면 잠수하여 바닥에 도달하였다가 거기서 다시 빠져나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형과 환경을 총체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쉬운 단계에서 먼저 완전성에 도달한 다음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며 높은 단계에 도전하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다. 쉬운거 하나를 먼저 완벽하게 한 다음 이를 복제하여 사방에 두루 적용한다. 징기스칸은 본인이 완벽해진 다음 종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널리 천하의 인재를 구할 필요가 없다. 가장 가까이에서 징기스칸을 지켜본 사람은 꼬마때 종으로 팔려온 젤매와 그의 동생 수부테이였다. 그들은 명장이 되었다. 요령이 있고, 공식이 있고, 모범이 있고, 모형이 있고, 교과서가 있다. 그 교과서는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수영이든, 자전거든, 축구든, 야구든, 예술이든 빠짐없이 적용된다. 무조건 넓은데를 확보하고 좁은데를 찔러라. 읍참마속의 고사와 같다. 마속은 쓸데없이 산 위로 올라가서 높은 데다 진을 쳤다. 넓은 숲을 버리고 좁은 산을 진지로 선택했다가 망한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지역주의라는 높은 산에 기어올라가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 정치적 선택지가 줄어든 것이다. 점차 보수꼴통의 극단으로 가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다. 독안의 쥐가 되었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먼저 난이도를 낮추고 유치원 영어를 능통하게 한 다음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알파벳 배우고 문법 배우다가 망했다. 영어의 세계는 넓고도 넓어서 배후에 너무나 많은 불안요소가 있다. 단어암기, 발음, 회화, 문법 등 잔뜩 많다. 판단해야 할 부담을 줄여야 한다. 버튼 하나로 해결본 스티브 잡스에게 배워야 한다. 먼저 쉬운 하나를 완전하게 한 다음 그것을 대량으로 복제하라. 이것이 정답이다. 그러므로 완전성이 중요하다.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것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화된 쉬운 완전 말이다. 먼저 쉬운 단계에서 기승전결 전체과정을 뗀 다음 난이도를 높여가라. 자전거는 땅에 발 딛고 배우고 수영은 얕은 물에서 잠수해서 배워라. 배후의 불안요소를 없애서 판단의 부담을 제거하라. 안장을 낮춰 자빠지는 공포를 제거하고 잠수를 해서 물공포증을 제거하는 것이다. 1) 넓은 곳을 차지하여 자신에게 자유를 준 다음 2) 등 뒤의 안전을 확보해서 돌발상황에 판단해야 하는 부담을 제거하고 3) 상대를 계속 자극하면 상대가 그 반응에 홀려서 살살 따라오는 바 유인하여 4) 상대를 트래픽이 높은 중앙이나 구석진 곳에 가두어 느리게 하고 5) 뒤로 갈수록 강수를 두어 상대를 초조하게 만든다. 이것이 승리의 공식이다. 하수는 이 반대로 초반부터 맹장을 앞세워 엄포를 놓다가 졸지에 맹장을 잃고 다음 수가 없어서 허둥지둥 하다가 망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계속 반응을 해주는데 재미가 들려서 계속 뒤쫓아 가다가 함정에 빠지거나, 혹은 괜히 불안해서 사람 많은 중앙에 몰려있다가 동작이 둔해져서 지거나, 혹은 외딴 곳에 숨었다가 들켜서 독안의 쥐가 되거나, 혹은 배후가 불안해서 진격에 속도를 내지 못하거나, 혹은 고집통이 되어 자신에게 자유를 주지 않으므로 적에게 아군의 전술을 알려준 셈이 되어 지거나 하게 된다. 딱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윤석민만 믿겠다.’ ‘이대호가 홈런을 쳐야 이긴다.’ 이런 식으로 대표선수 하나에 올인하면 반드시 오링된다. 그 선수가 지나치게 부담을 가지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은 항상 잃어나는 법이고 그 행운의 변수를 주워담을 그릇은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그 그릇은 폭넓은 자유와 융통성에서 얻어지는 바 무조건 궁벽한 데를 피하고 넓은 데 포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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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나의 원리를 터득하면 전부 연결된다.
예전에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해 질문 드렸을 때....
동렬님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글을 쓰신다고 하셨고, 저는 그것이 조금은 혼란스러웠었는데...
지금은 전혀....
하나의 원리가 존재론과 인식론에도 동시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
여기서 그럼 존재론이 먼저냐 인식론이 먼저냐... 몸이 먼저냐 정신이 먼저냐 할 수도 있는데...
존재론으로 보면 존재 그 자체가 성립이 되어야 인식론이 펼쳐지므로...
몸과 정신은 만나야 뭔가 성립이 되므로, 동시 다발적으로 성립된다.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성립되는 것이 존재론적 측면이고, 인식론은 그 다음에 거꾸로 보는 현상이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존재론의 원리가 인식론에도 적용이 되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의 원리가 복제되어 퍼져나가고 그것이 모든 것에 적용이 된다.라고 생각되네요.
존재는 be,
be는 있다가 아니라 되다에 가깝습니다.
있다는 is고 be는 어떤 사건의 진행을 의미하는게 보통입니다.
let it be는 '있는대로 해라'가 아니라 '되는데로 해라'가 더 정확합니다.
be는 정이 아니라 동이라는 말이지요.
인식은 정을 따라가고 존재는 동을 따라갑니다.
근데 존재가 정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뭐 의사소통은 실패지요.
인식은 식물처럼 고정되는 사물을 쳐다보고
존재는 달리는 자동차처럼 강력한 액션을 펼칩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존재가 남산처럼 그냥 우두커니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 안 통하는 거죠.
인식은 사물을 정지시킨다.
존재는 사물을 작동시킨다.
이거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인식은 카메라가 자연을 사진에 고정시키듯이 동을 정에 가두어 왜곡합니다.
존재는 일한다.
'되는데로 해라'... 되어가는 대로 해라... 일이 되는데로 해라... 일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결따라 간다.... 니 스타일대로 해라.
고로 존재는 움직인다.동적이다.
하여 사람이 모이는 곳에 사건이 있고, 문제도 있고, 에너지도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언제라도 문제가 있고 에너지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를 풀어내는 것이 ..곧 동적인 것.
이거 천기누설 아닌가?
천기 누설하는 곳...^^
이런~ 올만에 너무 쉽잖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