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 100년 전에 있었던 일 코로나19에 씹혔지만 아카데미에서 기생충과 경쟁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다. 롱테이크를 이어붙이는 촬영과 편집이 특히 뛰어났는데 영화학도라면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가 되겠다. 영국군과 독일군의 참호를 상세히 고증했는데 밀덕들이 탄복할 만하다. 글래디에이터가 뜬 이유는 화살이 카메라에 날아와 꽂히는 듯한 사실주의적인 촬영기술 때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카메라맨이 전장에 뛰어들어 카메라를 들고 총알 사이를 누비는 듯한 핸드헬드 촬영으로 전쟁영화의 혁신을 가져왔다. 하여간 촬영상 받을 만하다. 스톤헨지 주변 솔즈베리 언덕을 다 파헤쳐놓은 거대한 참호공사를 벌여 꽤 노가다가 들었다고 생각되는데 아카데미 촬영상 촬영은 이렇게 하는 거다 하고 과시하려는게 보인다. 영국군의 얕고 구린 참호와 비교되는 독일군의 10미터 깊이 땅굴참호는 잘 고증되었다. 밀덕들이 보면 오르가즘을 느끼고 오줌을 지릴 듯하다. 아쉬운 것은 실제 참호전이 나오지 않은 점이다. 양측 100만 명의 병사가 15킬로 사이에서 녹아 없어졌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을까? 사실이지 전쟁은 쌍방이 다 이길 전술과 전략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냥 바보다! 나쁘다! 하고 외치는건 답이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긴다는 계산이 있다. 계산이 맞지 않으면 재빨리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의사결정을 못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못 하는 나쁜 체제가 지고 잘하는 체제가 이긴다. 영국군의 필승법 - 우리는 영국신사 특유의 상명하복으로 군기가 세다. - 우리는 많은 식민지와 영연방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백만대군의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뚝심이 있다. - 우리는 탱크라는 신무기가 있다.
독일군의 필승법 - 우리는 과학적으로 실험을 다 해봤다. - 영국군의 소구경포와 유산탄에 대비하는 10미터짜리 참호가 있다. - 우리는 현장의 지휘관에게 재량권을 주고 상황에 맞게 대응한다. 김일성이 한반도에서 무모한 전쟁을 벌인 이유는 모택동에게 배운 전술과 소련에게 얻은 전차를 실전에 써먹어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다. 인간이 도구를 쥐면 반드시 그것을 써먹으려고 한다. 상대의 맞대응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어떤 에너지의 흐름에 말려들고 만다. 모택동은 특유의 야간전과 우회기동에 심리전이 있었다. 농민을 약탈하지 않는 이자성의 농민군 전술이 먹혔다. 김일성은 그걸 실전에 써먹으려고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군은 미군의 신무기를 써보고 싶어 했다. 옹진반도에서 인민군 69명을 죽이는데 100만 발을 쐈다. 너무 쏴대서 미군이 국군에게 대포알 좀 아끼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영국과 독일은 자기네가 뭔가 한 방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게 먹히지 않는 망한 전략이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 작전변경을 못한다. 아니 망한 전략이라는 확인을 하고도 머뭇거리며 의사결정 못한다. 그래서 실종자까지 도합 5,000만이 들판에 누워버린 것이다. 특히 영국군은 식민지와 영연방에서 병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우격다짐으로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멀리서 온 식민지 병사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면 엄격해야 한다. 이게 보통 다국적군이 망하는 공식이다. 정의당은 녹생당세력, 노동자세력, 엘리트집단, 페미니스트세력 각종 시민단체 등 여러 세력이 다국적군을 이루므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고지식하게 대응해야 권위가 선다는 딜레마가 있다. 심상정이 유연하게 협상하면 시민단체 세력이 백퍼센트 저격 들어간다. 내부의 적이 있다. 진중권들이 난리치는 이유는 민주당이 이길 것 같아서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어준 등이 나대는 꼴을 어떻게 보나? 이런 거다. 1차대전은 무조건 방어하는 쪽이 유리한 전쟁이었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모두 유리한 지형을 장악하고 방어할 연구를 했다. 그러나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장악하려다가 죄다 죽어버렸다. 독일군이 먼저 방어에 유리한 베르뎅을 장악하려다가 몰살을 당하고 다음 영국군이 독일군을 흉내내어 솜을 차지하려다가 몰살을 당했다. 영국군은 엄청나게 많은 폭탄을 퍼부으면 이긴다고 믿은 것이다. 핵심은 대포의 위력을 과신하고 기관총의 위력을 모른 것이다. 그냥 대포를 많이 쏘면 된다는 망상은 625까지 이어졌다. 독일군과 영국군은 공통적으로 전투에 이길 생각보다는 소모전을 벌여 교전비를 유리하게 가져가면 적군의 병사가 바닥나서 항복할 거라고 믿었다. 이는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다. 마지막 한 명의 살아남은 병사가 자기편이면 이긴다고 믿은 것이다. 독일이 프랑스보다 인구가 많으니까. 그러나 영국도 식민지에서 인구를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롬멜과 같은 명장들은 엄호사격과 지형지물 이용으로 이기는 방법을 알았다. 무엇인가? 1차대전은 장교의 싸움이 아니라 장군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장교는 하는 일이 없이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중에 몇몇 장교들은 뛰어난 지휘로 인명희생을 최소화하고 적을 죽일 수 있음을 보였다. 그리하여 2차대전은 장교의 전쟁이 되었다.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종심을 돌파하는 전격전의 등장이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3김시대는 장군의 전쟁이었다. 장교는 할 일이 없고 누가 더 많은 병사를 동원하느냐 싸움이었으며 지역주의가 먹혔다. 그러나 현대전은 장교의 전쟁이며 유기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뛰어난 장교가 몇몇 거점을 돌파하면 적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장교의 전쟁이 가능한 것은 전차와 비행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SNS 전쟁에는 더 많은 장교를 보유한 쪽이 이긴다. 현장의 지휘관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는 쪽이 이긴다. 자한당은 1차대전을 하고 있다. 우리는 2차대전으로 받으면 된다. |
"SNS 전쟁에는 더 많은 장교를 보유한 쪽이 이긴다. 현장의 지휘관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는 쪽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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