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이 아닌가? 안전기준은 절대로 안 지키고, 안전모도 안 쓰고, 안전벨트를 안 매는지 교통사고 사망자는 너무 많고, 음주운전은 태연하게 저지르고, 하지 마라는 짓은 꼭 하고.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는 갑자기 겁쟁이가 된 듯하다. 왜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것일까? 갑자기 마스크를 찾는다. 아직 한국에서는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이 더 높다. 차라리 피뢰침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게 어떨까?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으려면 외출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위험하게 밤늦은 시간에도 태연히 거리를 쏘다니는 한국인들이 말이다. 3개월 동안 8,200명이 독감으로 죽었지만 마스크는 쓰지 않는 미국인들 앞에 창피하다. 한국인들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어른스럽지가 못하다. 하긴 각자 역할대로 가는 법이다. 90살 먹은 할머니가 70살 먹은 아들에게 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할 말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만나서 취직 언제 할 거냐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사실 할 말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전에 이미 깨져 있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집단 무의식에 따라 집단 안에서 그것을 자기 역할로 삼았기 때문이다. 호들갑 떠는 파수꾼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고 설거지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도 있다. 당신은 집단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문제는 권력이다.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이유는 목격자들 때문이다. 증언하는 사람이 있다. 마녀가 재판정에서 청중을 향해 눈을 부라리면 기절하는 사람 꼭 나온다. 마녀가 요술을 부렸다는 빼박 증거가 나왔다. 증거가 나왔으니 화형이다. 군중은 그런 식이다. 우리 추태를 부리지 말자. 만원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밀집한 공간이라면 마스크를 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무지해서가 아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집단의 권력구조 안에서 호흡하고 싶기 때문이다. 현장의 변화를 주도하고 싶은 것이다. 권력은 그 안에 있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등신이라서 뻘짓하는게 아니다. 사건이 일어나면 주류에 가담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편에 가담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든 역할을 찾는다. 격리시설을 반대한다며 시위를 하는 사람이나 격리시설에 온 교민을 환영하는 사람이나 본심은 같다. 추상적인 존재인 권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파티를 즐기는 사람도, 권위주의적인 행사를 좋아하는 사람도 권력을 표현하려는 점은 같다. 자유로운 권력이든 엄격한 권력이든 집단의 영향력이다. 그런 무의식에 끌려다니면 지는 것이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기는 자에게만 발언권이 있다. 의사결정권이 있다. 극기복례라 했다. 무의식을 이겨야 한다. 엘리트로서의 자부심과 지적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아는 사람은 다르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의식적으로 다르려고 해야 한다. 이겨 먹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뇌가 당신의 무의식을 어떻게 훈련시켰느냐에 따라 행동이 결정된다. 중국에서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노인이 걸리기 때문이다. 우한까지 다녀갈 한국인이라면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현지인이라면 시장을 들락거리는 노인이 많다. 노인이라면 외출을 삼가고 나가더라도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신체접촉을 했다면 손을 씻어야 한다. 야외의 바이러스는 이틀 안에 죽는다. 과학을 믿고 확률에 의지해야 한다. 어차피 코로나바이러스 아니라도 매년 5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독감에 희생되고 있다. 평소에도 하루에 열 명은 독감으로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주로 노인들이 독감에 희생되므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한국에 사망자가 없다. 사망자를 0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아는 사람은 차분하게 행동해서 신뢰를 얻어야 하고 모르는 사람은 제발 아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김치가 사스에 특효라느니 이런 개망신 짓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자. 하긴 백 년 전 스페인 독감 때도 조선인은 덜 죽었다. 조선인이 13만 명 죽었을 때 일본인은 48만 명이 죽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은 잘 죽지 않는다. 당시 서울에서도 일본인이 많이 죽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마 그 차이가 아니었을까? 따뜻한 온돌방이 독감치료에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무너지는 중국의 취약한 시스템이 더 무섭다. 부화뇌동하며 추태를 부리는 기레기들이 더 무섭다. 국격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중국은 보름 만에 병원건설을 묘기로 보여준다지만 우리는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존경하게 만들어야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쫄지 말자. 이 말을 하고 싶다. 의젓함을 보여줄 찬스는 자주 오지 않는다. |
오늘 아직 확진자 추가가 안되었다는 연합뉴스 기사의의 댓글을보니 마치 확진자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군요. 나오면 나왔다고 욕설, 안나오면 안나온다고 욕설.
오늘 확진자 안나와서 열받으신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집에도 못들어가고 애쓰는 질병관리센터 분들의 노고와 피로가 걱정되는데 편히 앉아서 키보드 워리어짓이나 하는 사람들 자체가 질병입니다. 15명 나왔고 사망자 아직 없는데 이 정도니 2-3명이라도 혹시나 사망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나겠네요. 대부분 성숙한 국민들인데 몰상식한 키보드워리어들과 공포심 자극하는 기레기들이 정말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미국독감은 아예 신경도 안씁니다. 중국에서 감기로 죽는 사람들 늘상 수만명씩은 있는 것 아닙니까?
훨씬 잘사는 미국도 1만명 정도 죽었다는데.
빨리 확진자 늘어났다는 뉴스 속보만 하루 종일 기다리고 악플 달려고 준비중인 한심한 사회부적응자들이 매우 많은 것 같습니다. 할줄 아는 거라곤 악플달고 세상 비난하는 것 밖에 없는 인간들. 확진자가 확확 늘어나지 않으니 정부에서 사망자를 은폐한다는 헛소리도 해대고. 기자들은 어떻게든 선동하려고 안간힘을 쓰고들 있고.
감기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데, 겪어 보지 못한 감기는 무서운가 봅니다.
감기가 무서운 게 아니라 '겪어 보지 못함'이 무서운가 봅니다.
겪어 보지 않아서 겁을 내나 봅니다.
안전기준을 안 지켜보니 괜찮았다고 겁 내지 않고, 안전모도 안 써 보니 괜찮았다고 겁 내지 않고, 안전벨트를 안 매 보니 괜찮았다고 겁 내지 않고, 음주운전도 해 보니 별 일 없었다고 겁 내지 않고, 하지 마라는 짓 굳이 몰래 하고 나니 괜찮았다고 겁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겪어 보지 않은 일은 겁을 냅니다.
겪어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하는 힘이 지혜가 아닐까 싶네요.
겪어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힘의 원리가 구조론이 아닐까 싶네요.
제대로 이해한 한 건 아니지만 알지 못하던 걸, 깨닫지 못하던 걸 아주 조금이라도 알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90살 먹은 할머니가 70살 먹은 아들에게 차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이유는 할 말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도 기분 좋게 뒤통수 맞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역시나 고맙습니다.
"그런 무의식에 끌려다니면 지는 것이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기는 자에게만 발언권이 있다. 의사결정권이 있다."
- http://gujoron.com/xe/1163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