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서 이런 문제에 관한 심도있는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헤아리셔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인식의 괴리가 커서 토론이 불능입니다. 약간만 언급한다면.
● 조선시대 유교주의의 일정한 성과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성과를 거둘수밖에 없는 중세적(폭압적 사상주입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단이면, 그냥 목숨을 내놔야하는데요.)
● 이런 식의 이해라면 편견입니다. 예컨대 몽골에서 징기스칸은 마누라를 도둑맞았을 정도로 매일 죽이고 싸웠는데 그 보다는 낫죠.
이걸 현대와 비교한다는건 넌센스고 그 시대의 성취를 인정해야 합니다. 유교주의가 폭압이라는건 어불성설.. 징기스칸의 약탈이 폭압이고 일본의 끝없는 내전이 폭압이죠.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맞고 그 시대는 산업이 빈곤한 시대인데 유일한 산업은 전쟁이고, 전쟁보다 지식이 우위에 선 것은 대단히 평가할 만한 사건입니다. 20세기는 산업시대인데 당연히 산업이 지식보다 우위에 선 시대죠.
조선조의 유교주의는 지식이 전쟁을 막은 혁명적인 사건이고, 현대는 산업이 전쟁을 막고 있는데 산업이 위기에 닥치면 다시 전쟁이 발발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황이지요. 지금 산업이 붕괴되었다 치고 지식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보나요? 지금 그 측면에서 조선왕조보다 못합니다.
물론 신분질서에 따른 폭압도 있었지만 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성이 극도로 저조했던 봉건문명 그 자체의 한계입니다. 봉건의 폭압이고 이런 폭압은 그 시대의 모든 나라에 일반화된 것입니다. 서구가 더 심했지요.
● 제가 글속에서 언급한 주요한 내용은 '근대' 이후의 다양한 (굉장히 복잡해진) 논리, 이론, 그리고 가치관속에서 어떻게 대중이 현명하고 긍정적으로 문명 패러다임을 이끌어 가겠는가였습니다.
● 이런 식의 이해는 지식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잘못된 접근입니다. 대중은 산이나 강처럼 고정되어 있는 거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은 지식 뿐이죠. 지식이 움직이지 대중이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 "지식의 업그레이드"는 도올이 요즈음까지 해왔던 TV 강의와 같이 대중적 취향에 일치하는 형태를 취해야하고 앞으로 계속 그러한 대중에게 "쉽고 친근한" 계몽이 이루어져야 하는것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 넌센스입니다. 도올이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 양반은 자기 장사하는 거고 차라리 이효리가 더 뭔가를 하고 있지요. 대중에게 쉽고 친근한건 안성기나 박중훈이죠. 도올이라뇨?
● 제가 궁금한것은 인문학이 그와 같은 대중적 취향의 접근을 한다고 해도,
● 역시 넌센스에요. 인문학이 대중적 취향의 접근을 하다뇨? 이런 발상은 아마 지식 매판업자의 번역사업 때문에 상긴 착오인데 우리나라는 주로 중국이나 서구의 텍스트를 번역하다보니 원서와 한글문서 사이의 괴리 때문에 대중적 취향이라는 단어가 다 나오고 난리인거죠. 진짜 학문은 번역을 거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중적 취향이니 이런 관념이 없겠죠.
● 둘째는, 동렬님께서도 대중에 대한 기대치가 사실 그다지 높지 않으신건 아닌지요.
● 대중은 산이나 강처럼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대하거나 하는 차원이 아니에요. 대중을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죠. 그건 정치판 이야기고. 정치는 정치고 학문은 학문이고 별개죠.
● 그렇다면 글에서 여러번 언급하신 "한국대중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지금 서구 선진국들이 해나가는
● 이건 정치 이야긴데 정치는 테크닉에 불과합니다. 논의가치가 없는 거고. 문명사 차원에서 봐야지요.
● 사실 저는 인간이 문명을 건설한 이유중 하나는 불안(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합니다.
● 인식의 괴리가 있으니까 나중 토론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하고.
저의 정치 이야기는 걍 정치 이야기입니다. 정치는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다. 대중은 산과 바다처럼 존재하는 것이고 그 바다에서 헤엄치기는 지식이라는 물고기의 진화에 달린 것입니다.
즉 문명은 인간지식의 총화인데 운전기술이 진화하는 거지 자동차가 진화하는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 물론 자동차도 진화하겠지만 그건 하느님 소관이고 하여간 대중을 통제한다는건 넌센스입니다.
대중을 야유하고 가르치고 훈화한다는건 엉뚱한 이야기에요. 그건 문자가 보급되지 않은 나미비아나 우간다에서 먹히는 이야기고. 한국은 그 단계를 졸업했습니다.
정치는 테크닉에 불과한 거고 김용옥 아저씨는 혼자서 테크닉을 연습하고 있는거고 이런 쪽은 본질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본질은 뭐냐? 역시 지식에서 답이 나옵니다. 근대는 사실 뉴튼에서 시작된 겁니다.
제 2의 뉴튼이 필요한 거죠. 제 2의 뉴튼이 해야할 일은 지식과 지식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세분화 되어 각자 따로 놀고 있는 지식을 전체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혁명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대중과 지식의 괴리는 지식의 나약함을 반증하는 겁니다. 지식이 죽은 거죠. 지식이 시대의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겁니다. 산업이 지식을 추월하고 있고 지금 인류문명의 운명은 산업에 달려있으며 산업이 죽을 때 문명은 죽습니다.
역사는 수천년, 수만년인데 산업화는 기껏 300년입니다. 수천년 단위로 보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산업은 조만간 정체할 것이고 .. 물론 수백년 더 발전하겠지만 역사는 수만년 단위로 봐야 하니까요. 새로운 지식의 출현에 의해 세계는 재질서화 될 것입니다.
서프에 정치적인 글 위주로 올리다보니 제 생각이 오해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정치는 테크닉에 불과한 건데 이건 안쳐주는 거고 진짜는 따로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