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한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악의 뿌리가 퇴계에 있다고 말하면 확실히 지나친 거다. 견강부회가 되겠다. 그러나 오늘날 매국 한나라떼의 중심 이데올로기인 경상도 우월주의 뿌리가 영남 남인세력의 유교 근본주의 정서에 가닿는다고 봄은 일정부분 타당하다. 필자로 말하면.. 퇴계학파의 근거지라 할 경상도 안동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는 사람이다. 퇴계.. 정말 고약하다. 1천원권 지폐마저 기피하게 할 정도로.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가시처럼 걸린게 있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목사가 절에까지 찾아가서 스님 앞에서 ‘회개하라’고 외쳐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의 개인 홈페이지에까지 찾아와서 퇴계관련 도서를 홍보하는 분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물론 그 분이 악의를 가지고 그랬다고 보지는 않지만, 설사 선의로 하는 일이라 해도 ‘스님 앞에서 설교’는 아닌 거다.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악이 선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가? 맹목적 선의가 아니라 비판적 합리성이 필요한 거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도 있더라만.. 필자가 ‘퇴계가 죽어야 이 나라가 산다’고 믿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퇴계의 근거지라 할 특정지역에서 경험한 일인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아직도 백정마을이 있었다. 마을 아주머니 말씀이 백정마을 사람과는 혼사를 피한다는 거다. 정말 집요하다. 사악하다. 치를 떨만하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사람들의 잘못을 모두 퇴계 한 사람 때문으로 돌릴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해한 것으로 말하면.. 니체가 ‘초인’을 외치자 나치가 이를 인종주의에 활용했듯이.. 퇴계가 교육을 통한 인간계발을 외치자 경상도 남인세력이 이를 온갖 형태의 차별주의에 이용했던 것은 분명하다. 어느 정도였는가? 조선 후기에 서얼이나 중인들은 길을 가다가 남인 선비를 보면 침을 뱉고 '재수없다'며 다른 길로 돌아갔다고 한다. 남인들이 서얼등용 등을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효종 이후 북벌정책이 채택되면서 양반계급과 평민계급을 화해시킬 필요가 생겼다. 평민계급의 지지를 끌어내야 북벌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론이 서얼-중인 등용을 통한 계급간 화해를 주장한 반면 남인이 집요하게 반대한 것이다. 남인은 유교주의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원리주의 세력에 속한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차별했기 때문에 사찰이 양반들의 놀이터가 되기 일쑤였는데.. 스님이 일주문 앞에 서서 찾아오는 선비 거동만 봐도 당색을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고 한다. 노론 선비가 절을 방문하면.. ‘큰 스님 있소? 차나 한 잔 나눕시다.’ 점잖게 이러는 거다. 스님과 선비가 친구가 된다. 반면 소론 선비가 절에 찾아오면.. ‘무식한 중들아! 나하고 토론이나 해볼까. 석가모니가 말이여.’ 이러면서 공연히 시비를 건다. 그러나 적어도 소론은 스님을 인간 취급은 한다. 대화 상대로 쳐주는 거다. 남인이 찾아오면.. “이놈. 중놈들 어디에 숨었느냐. 양반들이 여기서 시회를 열터인즉 얼른 시중을 들지 못할까? 술상 봐오지 않고 뭣하느냐?” 하고 꾸짖는 거다. 조선시대의 사색당쟁은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치열했다. 노론과 소론, 남인은 부인들의 옷맵시까지 달랐다. 노론이 계급을 뛰어넘어 풍류를 즐기는 문화주의 패거리라면, 소론은 토론을 즐기는 논쟁가 부류, 남인은 종교적 차별주의 광신도 집단이었다. 정조 대에 남인이 집권했을 때.. 정조가 노론 벽파를 겨냥하여 문체반정을 일으킨데서 보듯이 남인이 수구개혁을 진행시켜 결국 양반과 상민 간에 이반하는 바람에 그것이 조선이 망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왜놈이 침략을 자행하는 데도 무지렁이 평민들은 ‘거 꼴좋다! 양반이 잘난척 하더니 톡톡히 망신당하는구먼’ 하고 비웃고 있었던 거다. 의병장 신돌석은 평민이라는 이유로 양반 의병장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정도였던 거다.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물론 노론도 장기집권으로 타락했고, 남인 중에서도 뜻있는 개혁가가 없잖아 있었다지만 이는 한나라당 안에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 찾아보면 몇 명은 있다는 정도의 의미에 불과한 거다. 본질은 유교의 종교화다. 그 뿌리에 남인이 있고 퇴계가 있다. 퇴계가 나쁜건 아니다. 중국에서도 공자를 재평가하자는 마당에 이제 와서 우리가 퇴계의 학문적 성취를 긍정적으로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모든 악이 퇴계로부터 비롯된다면, 역설적으로 한국의 모든 선이 퇴계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사정이 있다. 한국문화의 정체성이 조선왕조의 선비문화에 있다면 그 뿌리에 퇴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퇴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퇴계의 재평가는 퇴계의 확실한 극복 이후에나 가능할 일이다. 여전히 퇴계는 야차같이 달라붙어 내 목을 조르고 있다. 나를 질식시키려 든다. 대한민국은 퇴계라는 감옥에 갇히어 있다. 군대에서 선참의 얼차려, 회사에서 고참의 전횡, 어느 집단에나 있는 텃세나 기득권의 횡포.. 그 뿌리를 더듬어 보면 끝내 퇴계의 차별주의를 만나게 된다.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한국정신’이 무엇일까? 이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우리가 ‘한국인다움’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그 미학을 완성하지 못하면.. 우리는 변방에 머물러 있을 뿐 세계의 중심으로 치고나갈 수가 없다. 유교주의를 떼놓고 한국다움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두 얼굴, 학문화 된 유교합리주의의 긍정적 측면과 종교화 된 유교 근본주의의 차별 이데올로기, 그 중에서 계승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서구가 여전히.. 서구가 자행한 모든 악행의 원인이라 할.. 백인우월주의의 뿌리라 할.. 기독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부시를 앞세우고 전쟁책동을 벌인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가장 사악한 데서 보듯이.. 또 아랍이 여전히 회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고, 태국이 불교를, 인도가 힌두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이 유독 유교라는 종교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유교가 일정부분 종교가 아니라 학문이며.. 과학으로서의 유교주의가 존재하고 그 유교주의는 일정부분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한편으로 유교는 종교다. 중국에서 관리등용시험 과목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유교주의를 한국에서 종교로 발전시킨 세력은 영남 남인이다. 그 남인의 뿌리가 퇴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퇴계는 여전히 극복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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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선민사상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드는 군요
" 너하고 나하고는 달라 ! "
" 원래부터 나는 잘났는데... 너는 못났어 "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안하고 차별을 두는 것은
공동체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히틀러가 예전과 다르게 보이더군요
물론 자신의 정치에 이용했겠지만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