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갈등의 본질은 개인주의다. 후진국은 집단에 묻어간다. 동료를 잘 챙겨야 한다. 시인이 원고료를 받아서 마누라 갖다주면 역적이다. 전액을 동료에게 쏘는게 당연하다. 시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문학동네의 공동소유다. 시인부락 사회주의 시스템이다. 사회 전체가 그런 분위기로 돌아간다. 후진국은 남의 것을 훔친다. 한 명이 선진국의 기술을 베껴오면 모두가 나눠먹는다. 한 명은 도둑질을 하고 나머지는 망을 보는 것이다. 인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이 시스템 덕분에 한중일 세 나라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전진하려면 개인주의다. 이제는 선진국이 되어 버렸다. 베끼려고 해도 베낄 대상이 없다. 창의를 해야 한다. 선진국은 창의를 하는 자가 독식한다. 후진국은 창의가 없기 때문에 독식이 불가능하다. 이제는 상금을 받아도 동료에게 쏘지 않는다. 옛날에는 차별해도 계급을 차별했다. 국가를 차별하면 침략전쟁이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차별한다. 상놈을 차별하고, 흑인을 차별하고, 여성을 차별하고, 종교를 차별하고, 지역을 차별한다. 지금은? 만인이 만인을 차별한다. 차별주의나 평등주의나 영원하다. 차별의 형태가 바뀔 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은 국소화 되고 개인화 된다. 보이는 차별은 사라지고 은밀한 차별이 일어난다. 원시사회는 평등했지만 실제로는 완력이 센 자가 지배했다. 완력이 도구였기 때문이다. 먼저 도구를 장악한 자가 계급을 만들었다. 생산력이 증대하자 계급이 무너졌다. 옛날에는 소수의 기사계급이 말을 탔는데 지금은 누구나 보병이 되어 총을 쥔다. 계급이란 인간이 인간을 도구화 하는 것이다. 가전제품이 늘어나자 식모가 필요 없게 되었다. 결국 차별의 원천은 생산력의 한계에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개인의 시대다. 개인의 생산력 차이가 두드러진다. 일본이 홀로 연공서열을 고집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구조에서는 관종이 득세한다. 타블로가 고생을 먹고 이근이 욕을 먹는 이유다. 선진국인 미국은 진작부터 관종이 득세했다. 미국식으로 한 거다. 페미니즘이니 동물권이니 공정타령이니 하지만 본질은 개인주의 적응장애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룰이 바뀌는 데 따른 피해자가 발생한다. 과거라면 욕을 먹었을 관종이 유튜브로 돈을 번다. 유난을 떠는 사차원이 기회를 잡는다. 결국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산력의 변화 때문이다. 후진국은 남의 기술을 복제하므로 한 명의 뛰어난 인재보다는 말 잘 듣는 직원이 필요했다. 멋대로 창의하면 안 되고 그대로 베껴야 성공하는 구조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선배들에게 충성했는데 후배들이 안 들어온다. 동아리방에 애들이 안 와버려. 부려먹을 동생이 없어서 분노가 쌓인 거다. 이기적인 사차원, 아스퍼거, 관종이 득세한다. 큰 흐름으로 보면 사회는 엘리트주의>대중주의>개인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7080은 엘리트주의였다. 대졸자가 5퍼센트 이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때는 민중이니 대동세상이니 하는 말이 인기가 있었다. 쪽수에 묻어가려는 심리가 팽배했던 것이다. 김어준 등 2030이 중간의 이기택, 홍사덕 등 4050을 제끼고 6070 김대중과 손을 잡았다. 왜 젊은 2030은 4050 선배들을 배반하고 6070과 손잡았을까? 4050 부장님이 컴맹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2030이 6070과 손잡고 4050을 제낀다. 왜? 개인주의 때문이다. 4050은 대동세상을 꿈꾸는 집단주의 문화가 남아있어서 걸핏하면 회식이다 뭐다 하고 후배들을 불러내서 부려먹으려 한다. 지금은 유튜브로 단번에 뜰 수 있다. 선배의 도움 필요 없다. 동료들과의 협력 필요 없다. 세계시장으로 바로 진출한다. 이들은 4050의 평등주의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집단에 소속되어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그렇게 흘러간다면 적응할 수밖에 없다. |
오타 같습니다